가족관계 치유
제 1 장
가족관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셨을까? 그렇지 않다고 보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다른 모든 동물들을 암수 한 쌍씩 지으신 하나님이 오직 사람만 짝없이 지으시진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는 피조물이기에 아담으로 하여금 자신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고 따라서 돕는 배필을 지어주셨을 때 그 소중함과 감사함을 알며 서로 사랑하게 하시기 위함이셨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관계를 형성하고 산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서로 관계를 맺고 살지만 그들보다 더 깊고 차원 높은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가도록 하셨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고 가장 기본이 되는 관계는 역시 가족관계이다. 따라서 가족관계는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제도가운데 맨 처음 만드신 것은 가정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공생애의 첫 발자국을 가정이 시작되는 가나의 혼인잔치로 옮기셨다는 점은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족관계가 화목할 때는 심리적 안정을 이루어 매사에 자신을 가지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가정은 인생의 출발점이요 모든 싸움을 싸우고 마지막에 돌아와 쉴 수 있는 안식처이다. 까닭에 화목한 가정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한 사람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에서나 일을 하거나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결과는 자명한 일이라 할 것이다.
또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든든한 후원자들이 집에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자신 있게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 특히 밖에서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아내가 정성껏 저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며 귀여운 아이들이 아빠를 반기며 뛰어나온다면 하루의 피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가정의 화목은 곧 심리적 사회적 안정과 직결된다.
1. 화목하지 못한 가족관계가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
첫째, 소극적인 사람은 가족들과 만나기를 기피하는 등 우울증의 증세가 나타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보이지 않고 어떤 문제건 기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사람들과 접촉하거나 대화하는 것을 꺼리며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매사에 용기를 잃고 부딪히는 환경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특히 지금은 옛날과는 달리 온 가족이 방을 각각 따로 쓰고 있고 식사시간도 서로 달라 웬만큼 화목한 가정이 아니면 함께 모여 오순도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다. 이럴 경우 가정이 병들면 어른은 어른대로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집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고 일단 집에 돌아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아버린다. 그리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컴퓨터 게임과 같은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된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한 지붕에 사는 가족이지만 내막을 보면 남과 같이 ‘나 홀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연세대 여성연구소 손승영(孫承瑛) 전문연구원은 “우리 사회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정에서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 사회 안에서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려 한다. 예컨대 수험생들은 집보다 또래집단이 모이는 독서실을 선호했고, 남편은 집에서 술을 마시기 보다 술집에서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등이다” 라고 하였다(중앙일보 1996. 11. 11 기획기사 참조).
둘째, 파괴적인 사람은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어떤 부부에게 의견 차이가 생겼다. 처음엔 조용조용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다가 언쟁으로 번졌고, 종래에는 격해져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려 하자 그 아내는 욕질을 하면서 문을 박차고 도망쳤다. 화가 머리 끝까지 솟은 남편이 뒤따라 좇아가다가 부인이 보이지 않자 문 밖에서 놀라 눈이 둥그래진 아들에게 “야 이놈아, 그년이 어디로 갔니?”하고 묻자 겁에 질린 아들은 “예! 그년이 저쪽으로 도망쳤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물론 얼떨결에 오고간 순간적이고도 매우 짤막한 대화(?)이긴 하지만 화목하고 단란해야 할 가정에서의 폭언과 폭력은 이미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여성의 전화’가 지난 1995년 한해 동안 받은 15,300건의 전화상담 중 구타와 관련된 상담이 3,200건(21.1%)이나 되었는데(동아일보 1996. 5. 13) 1996년에도 총 23,753건 중 5,808건(24.5%)으로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1997. 5 22 중앙일보). 따라서 여성계에서는 ‘가정폭력 방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폭력과 폭언은 자녀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아동학대 보호법’이 잘 발달되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내 자식 내가 때리는데 누가 말리느냐’는 유교적 사고방식이 강하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자녀 학대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셋째, 반항적인 사람은 가정을 이탈하게 된다
경찰청은 지난 1995년에 전국 5백97개 학원가에서 6만 7천여 명의 학원폭력배를 적발, 이 가운데 1만 8천여 명을 구속하고, 약 5만 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학생폭력서클도 1천여 개에 이르고, 이들에게 돈을 털리거나 폭행 등을 당한 피해 학생이 전학생의 7.2%인 61만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1996. 2. 15 중앙일보).
이 학생들은 대부분 원만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이며, 이런 가정에 불만을 품고 집을 뛰쳐나온 가출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또래집단을 형성하여 폭력서클을 만들고 용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학생들의 돈을 빼앗거나 남의 집 담을 넘어 훔치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문제로 비화하게 된다. 요즘에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소설 ‘브이(V)세대’는 이런 가출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출은 비단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가정의 불화를 참지 못하고 가출을 하는 주부들도 적지 않다. 지난 1996년 10월 결혼하여 시부모를 모시고 새살림을 시작한 동소문동의 서모씨(필자의 교회 교인)는 시부모와의 갈등, 종교적 갈등(가족은 모두 기독교인이며 본인은 남자와 교제를 시작하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을 이기지 못하고 친정으로 발길을 옮기기를 수차례, 6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에는 가출을 해 버리고 말았다.
넷째, 극단적인 사람은 이혼을 하거나 심지어 자살이나 살인을 하는 등 자포자기하게 된다.
통계청이 세계 가정의 날(1993. 5. 15)을 맞아 발표한 ‘가정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이혼이 4배 가까이 증가하면서 이혼부부들의 평균 동거기간이 결국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혼자 사는 가구가 15년간 3.6배나 증가, 1백만 가구를 넘어서고 소년소녀 가장도 지난해 7천3백22명으로 8년전보다 50%나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992년의 경우 5만 7천쌍이 이혼, 72년(1만2천쌍)보다 3.75배 증가했다. 또 우리 나라 이혼부부의 평균 동거기간은 8.4년으로 미국(9.1), 일본(10.8년), 프랑스(13.4년) 브라질(16.9년)등보다 훨씬 짧은 것으로 나타나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냄비사랑’이 만연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쉽게 파탄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옛날에는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오면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다시 시댁으로 돌려보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친정부모들이 “그렇게 속썩이고 살 필요가 있느냐? 그냥 집으로 들어와 버려” 하고 오히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보다 더 심한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을 하거나 상대방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빈발하다는 것이다.
지난 1996년 4월 자신의 딸(丁美淑, 48세)이 동거중인 남자(吳원종, 50세)에게 매맞고 사는 기구한 삶을 보다 못해 살해 한 노모(李相姬, 72세)가 있어 세인의 관심을 끈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딸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수를 하였으나 17일만에 어머니가 진범으로 밝혀져 쇠고랑을 차야 했다.
‘내가 진범’이라며 서로 살인혐의를 뒤집어쓰려 했던 ‘비운의 모녀사건’은 새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다. 짐승 같은 사위의 폭력 앞에서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모성은 살인을 택한 것이다. 이 사건을 놓고 서울대 이용식(李用植)교수 등 다수의 국내 형법학자들은 李할머니를 벌할 수 없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연약한 부녀가 남편의 거듭되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살인을 택할 수밖에 없을 때 정당방위를 인정하던가, 계속되는 위난(危難)앞에 생명․신체에 대한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동은 다소 과잉수단을 선택하더라도 책임 지울 수 없다는 소위 면책적 긴급피난(免責的 緊急避難)이론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런 법논리에 더해 李할머니가 72세의 고령이란 점까지 참작한다면 李할머니는 불구속상태에서 재판 받도록 하는 것이 일반정서에 합치된다는 생각이었다(1996. 5. 10 중앙일보). 결국 재판부는 李여인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여 풀어주었다.
또한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동안에도 19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지금까지 18년동안 매질을 일삼아온 남편(崔東富․41․노동)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윤선화(尹善花․37․서울 관악구 신림동)씨는 지난 21일 새벽(1997.5.21)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이 항상 그랬듯이 신을 신은 채로 방에 들어와 발로 차고 주먹을 휘두르다 잠이든 남편의 가슴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이다(1997. 5. 22. 중앙일보)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난 1989년 7월 17일 오후6시쯤 경북 성주군 선남면 성원리 정연택씨(34) 집 안방에서 정씨의 장녀 미희양(당시 성주중앙초등학교 6년)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이 잦은 것을 비관 “엄마는 제발 아빠와 싸우지마. 아빠는 술 먹지 마”라는 메모를 남기고 음독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2. 화목하지 못한 가족관계가 신앙적으로 미치는 영향
첫째, 믿음이 약한 사람 특히 남편들은 신앙을 등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특별한 소수의 가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가정들이 남편들은 아내에게 이끌려 교회에 다니고 있다. 이런 경우 대개 “나 오늘 교회에 안가!” 하는 말은 아내를 위협하는 좋은 무기가 된다. 남편이 이렇게 나오면 아내들은 대부분 사정하고 달래서 데려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도가 지나치다보면 여자들도 “교회는 나를 위해서 가는가, 당신 맘대로 하라”고 나온다. 결국 가정 불화가 남편으로 하여금 교회를 멀리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1993년 12월 고려대학교 인촐기념관에서 열린 ‘한국사회학대회’에서 광주대 노치준 교수(포도원교회 집사)는 ‘종교의 차이로 인한 가족간의 갈등 연구’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는데 그는 종교갈등의 결과는 관계단절, 소원한 관계, 계속 갈등, 개종 또는 신앙생활 포기, 평화적 공존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지만 부부간의 종교적 갈등의 경우 33%는 개종을 하거나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경향을 보이며, 고부간에는 개종이나 포기가 34%에 이른다고 했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이 경우 시부모가 며느리의 신앙을 따라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하는데 그는 그 이유를 “젊은 며느리들은 종교적 헌신도가 강한 기독교인이 많고, 시부모의 경우 종교적 헌신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비기독교인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둘째, 반면에 믿음이 좋은 사람 특히 여인들은 광신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박모 집사(40세)는 고등학교 때 만나 사귀다가 결혼에 성공한 여인이다. 그러나 결혼 후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잦아지더니 10여년 만에 남편은 아이 둘과 아내를 버리고 이혼을 하여 다른 여자와 살고 있다. 홧김에 찍어준 도장이 화근이 되어 재산과 남편을 잃은 이 여인은 아이 둘을 친정에 맡겨두고 병원에 간병인으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포천에 아파트를 장만하고 여름 방학 때는 친정에 있는 두 아이들을 데려올 꿈에 부풀어 있다. 이 분의 경우는 오히려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들과 헤어져 외롭게 살면서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신앙생활에도 열심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많은 신자들은 처음에는 더 신앙에 열심을 내지만 이것이 현실도피성 광신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사의 지도를 받으며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기보다는 기도원을 전전긍긍하면서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려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오직 교회, 오직 신앙밖에 모르는 사람, 그래서 대인관계나 사회성이 결여된 비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쉽다.
셋째, 자녀들의 경우는 이런 부모들의 신앙생활에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광명시에 있는 모 장로교회 목사의 아들은 학생시절에는 아버지가 섬기는 교회에서 학생회장을 지내는 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군에 다녀온 후부터는 교회를 자주 빠지더니 이제는 아예 교회에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있다. 아버지가 주일 낮예배를 인도하고 집에 돌아와 보면 다 큰아들은 집에 누워 뒹굴며 TV나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과 가정에서의 일상생활이 상반되는 것을 느낀 아들이 아버지에게 실망과 회의를 느낀 나머지 반항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 청년은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면서 다만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는 것 뿐, 어느 교회든 다시 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심한 경우는 자녀들이 종교적 탈선을 하여 이단종파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제 2 장
관계를 치유하는 방법과 그 결과
가족관계를 치유하는 방법은 역시 병원에서 의사들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에서 그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들은 환자가 찾아오면 일단 철저한 진찰을 하게 된다. 특히 대형 종합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진단 장비나 기술이 있어 오랜 시간 철저한 검진을 실시하여 병명을 분명히 밝혀낸 후 치료를 하기 시작한다. 급한 환자가 있다고 해서 눈으로 대충 훑어보고 경험과 상식에 의해 치료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의사가 있다면 언젠가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은 데이빗 씨맨즈(David A. Seamands) 박사의 저서 ‘상한 감정의 치유(Healing for Damaged Emotions)’에서 자료를 얻었음을 밝힌다.
첫째, 바른 진단이 필요하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탈선 학생을 상담해 보면 가출하고 성격이 비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감추어진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 때로는 그 사람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데이빗 씨맨즈 박사는 그의 저서 ‘상한 감정의 치유’에서 인생의 나이테가 있다고 하였다. 즉 큰 나무를 잘라 나이테를 보면 가물었을 때, 비가 많이 왔을 때, 혹은 번개를 맞았을 때 등 해마다 나무의 성장 기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성장할 때의 갖가지 체험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의 나이테 속에 기록이 남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본인이 알고 있는 어느 부부는 결혼 후 신혼여행에서 여자가 잠자리를 완강히 거부해 결혼이 파탄에 이를 뻔 한 경우가 있었다. 그녀는 어릴 때 자기에게 친절히 대해주던 남자에게서 성추행을 당할 뻔 한 경험이 남아있어 무의식 중에 남편까지도 거부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원인을 하나 하나 지적해 주는 의사들과는 달리 본인 스스로 원인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그래서 문제를 진단하는 ‘부부 점검표’라든지 ‘좋은 부모 착한 자녀가 되기 위한 점검표’ 등을 만들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진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바른 처방이 필요하다.
일단 본인 스스로 문제의 원인을 바르게 진단하였다면 절반의 치유는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자는 사람이 아니고 성령이시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하였다(롬 8:26). 그러나 이렇게 성령께서 치유하시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도 있다.
①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의 책임을 전적으로 상대방에게 돌리려 한다. 그러나 교통사고의 대부분이 쌍방과실로 처리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의 대부분 역시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②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23 이하에서 평생을 벌어도 갚을 길이 없는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신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는 이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00데나리온의 빚을 갚지 않는다고 친구를 옥에 가두었다. 이 사실을 안 임금은 다시 이 신하를 잡아 옥에 가두며 일만 달란트의 빚을 다 갚기 전에는 나올 수 없다고 하셨다. 이 말씀의 핵심은 무엇인가? “너희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하셨다. 사실 내가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으면 그 일로 인해 우리 자신은 더 큰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③우리의 문제를 치료하는 양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른 방법으로 치유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그때마다 적절한 말씀을 주셔서 문제를 치유하게 하신다. 이런 극적인 경험을 한 시편 기자는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20)
셋째, 서로의 신뢰가 필요하다.
질병을 치료는 환자와 의사가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서만 가능하다. 만약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수술을 하겠다고 할 때 선뜻 수술실에 몸을 맡길 수 있겠는가? 환자가 의사를 믿고 처방에 따라 약을 먹고 의사의 지시를 따라주어야 속히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요구를 한다 해도 믿고 따라주는 용기가 있을 때 이미 문제는 절반 이상 치료된 것이다. 또한 신뢰란 가족 서로의 신뢰도 필수적이다. 서로 마음 문을 열고 마음속에 있는 문제들을 꺼내 놓고 진솔하게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가정환경도 조성되어야 한다.
제 3 장
관계 갈등을 겪고 있는 성도들의 목회지도
1900년대 목회는 심방중심의 목회였고, 1950년대 이후 설교가 목회의 중심이었다가 1970년대 이후 제자훈련과 같은 양육 프로그램이 목회의 큰 변수를 가져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흘러갈수록 더욱 다양화된 목회 현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시대의 변화와 함께 많은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다.
첫째, 남녀에게 동등한 학문의 기회가 주어지고 여성의 지위가 신장됨에 따라 가부장(家父長)적 가정의 기본 질서가 흔들리면서 위협을 받고 있다. 따라서 아버지의 권위가 약해져가면서 가정에 어른이 없어졌다. 이것이 곧 독일의 정신 분석학자 미처를리히가 말하는 ‘아버지 없는 사회’다. 칼럼니스트 김성우 씨는 그가 쓴 글에 아버지의 권위가 없는 사회를 걱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권위가 없는 사회는 어른의 기침 소리가 없는 사회다. 저마다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떠들어도 일갈(一喝)할 목청이 없고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날뛰어도 야단칠 회초리가 없다. 아래위가 없이 모두 동격이요, 질서도 규율도 없이 난장(亂場)판이다.”(송길원 목사 설교집 ‘그래도 아버지 노릇은 하고 살아야죠’에서 재인용) 안타까운 것은 남자들이 이런 시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여성들의 취업이 쉽고 수입이 늘게 되자 이혼율이 점점 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고전 가운데 한(恨)을 주제로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처럼 우리의 옛 여인들은 맺힌 한을 가슴에 품고 참으며 살아왔다. 여기에는 유교적 교훈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여인들의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위자료가 없이는 이혼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속썩이는 남자와 사는 이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속편하고 차라리 돈을 모으고 산다.
셋째,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삶에 대한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 부모는 굶어도 자녀들은 유명 브랜드의 좋은 옷을 입힌다. 따라서 자녀세대는 부족함이 없는 세대이다.
넷째, 자녀들이 하나 혹은 둘밖에 없는 독자시대이다. 따라서 너무 위해주다 보니 버릇이 없다. 자기밖에 모른다. 자녀가 가정에서 가장 어른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특성은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기 고집이 세고 남을 생각해주거나 양보할 줄을 모른다. 한때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고 … ”하는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가 ‘전두환 주제가’라는 풍자가 있었는데 이젠 오히려 아이들이 불러야 할 주제가가 아닐지 모르겠다.
다섯째, 부모가 모두 취업전선에서 뛰다보니 집은 있지만 가정은 없다. 서로 바쁘고 피곤하니 함께 만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다. 또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하니 요구하지도 않은 용돈을 넉넉히 준다. 이것이 또 다른 탈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상과 같은 현대 가정의 문제점들을 누가 치유하며 누가 지도하겠는가? 학교나 학원은 이제 진학을 위한 한 과정에 불과하다. ‘선생은 있지만 스승은 없다’는 말을 한다. 여기에 교회의 책임과 역할이 있는 것이다. 교회는 관계갈등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런 필요성을 인식한 분들에 의해 많은 연구와 교육, 그리고 정보가 제공되고 있고 필요성을 인식한 교역자들이 관심을 갖고 대처하고 있어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다.
여기서는 가정사역 전문가들이 소개하는 몇몇 사역이나 프로그램들 중에서 우리가 시도하고 있거나 실시 준비중인 것들은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하겠다.
1. 장기적인 프로그램
(1) 부부학교 또는 부부성경공부
가정에 문제가 발생한 후 대책을 강구하는 것도 중요한 사역이지만 장기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덜어줄 수 있는 예방적 사역이 중요한데 그 중 하나가 부부성경공부이다.
기존의 성경공부들은 대개 시간의 여유가 있는 주부들이 그 대상이었고 그 내용도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에 국한되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아내의 신앙은 점점 진보하는 반면 남편의 신앙은 상대적으로 점점 후퇴하고 있었다.
직장에 출근하는 남편들과 시간을 함께 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으나 퇴근 후 늦은 시간, 새벽 이른 시간, 혹은 주일 오후시간 등을 이용하면 큰 문제가 없다.
다행히 이미 부부성경공부 교재가 이미 나와있고 또 준비중인 교재도 있는 것 같다
•박중식 ‘크리스챤 부부생활 웍샵’ 새중앙교회
•웨인 맥 ‘부부생활 성경공부’ 두란노서원
•송길원 ‘아름다운 가정 설계’ 한국문서선교회
(2) 가정사역 전문가들의 세미나
물론 담임목사나 교회 안의 부교역자들이 특강형식을 빌어 실시할 수 있으나 비전문가와 전문가는 그 사역과 효율에서 큰 차이가 난다. 특히 부부문제나 가정문제 등은 예민한 사안들이어서 사정을 훤히 아는 사람들이 가르치면 자칫 오해를 하거나 시험에 들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교회로 초청하거나 가정사역 전문기관들이 시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 특히 소규모 교회에서는 강사를 초청하여 세미나를 가지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때 전문기관의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것은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①대표적인 세미나 및 모임
•메타맨(Metaman) 세미나(좋은 남자 만들기 운동 본부)
•아버지 학교(두란노서원)
•행복한 가정 만들기 세미나(기독교 가정사역연구소)
•아버지 모임(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②대표적인 가정사역 단체들
•기독교 가정사역 연구소(0344-905-1009) •크리스쳔 가정사역센터(3476-5561)
•두란노 가정사역 상담연구원(797-5942) •두란노 어리이 연구원(795-5496)
•한국 예수문화원(325-5770) •가정문화원(444-2212)
•가정선교교육원(646-1426) •신성회 상담정보실(042-221-1513)
•인천 가정문화원(032-431-0691) •기윤실 가족상담소(887-1690)
(3)부부 자원봉사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부부라면(사실 시간이 남는 사람은 없다 시간을 아껴쓰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양로원이나 정신․지체부자유자 수용시설, 병원 등에서 자원봉사를 하면 일의 보람도 느낄 뿐 아니라 현재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도 항상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난해인가 SBS-TV의 ‘세상 속으로’ 시간에 방영된 ‘34년전의 약속’에 방영된 부부는 비록 우리와 종교가 다른 사람들(로마 가톨릭)이지만 자원봉사를 통해 보람을 찾는 좋은 프로그램이어서 녹화를 하여 예배 후에 액정화면으로 보여주고 교회 자료실에 비치해 두었다.
(4)가족찬양대회
많은 교회에서 실시하는 평범한 프로그램이지만 준비하는 한 달간은 온 가족이 하나되어 찬양을 하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준다. 다만 해를 거듭할수록 식상해질 염려가 있으므로 많은 연구를 하고 또 이웃 교회와 정보를 교환하여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5)가정예배
현대 가정에서 가족간의 갈등이나 마찰의 근본적인 주요원인은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못한데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흔히 가장은 직장에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밤늦게 귀가한다. 그리고 가족과 짧은 대화를 나누며 얼마간 TV를 보다가 잠자리에 든다. 아침이면 다시 출근하기에 바쁘고, 밤이 되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생활이 계속된다. 열심히 뛰지 않으면 도태되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다.
가정에 충실하다 보면 직장에서 뒤지고 직장에 충실하다 보면 가정에 소홀해지는 것이 현대 가정의 특징이자 맹점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한 가정 선교기관의 잠정적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 가정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가정예배를 드리는 경우는 1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지켜지는 가정에서도 극히 형식화 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위한 가장 전통적인 프로그램은 역시 가정예배이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많은 가정들이 꾸준히 실시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옛날 농경사회와 다르게 학생은 학생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서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 함께 모일 시간을 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매일 할 수 없다면 일주일에 두세 번이라도, 온 가족이 다 모이지 못해도 모인 식구끼리는 예배를 한다는 자세만 가지고 있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록펠러씨의 아버지는 신앙이 매우 두터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가족은 대가족으로 약 30명쯤 되었다고 하는데 그 전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할텐데 도저히 전 가족이 모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록펠러의 아버지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1주일에 한 번씩 가족 예배날을 정하여 그 시간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하도록 하였다. 불참했을 때는 벌금을 내게 하여 될 수 있는 한 가족예배를 드리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이야기라서 소개한다.
(6)가정에 대한 설교
지금까지 교회에서 가정에 대한 설교는 5월 첫째 주일과 둘째 주일에 들을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하나님께서 천국의 모형으로 세우신 두 기관이 가정과 교회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교회생활에 대한 설교에 비해 가정생활에 대한 설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지난 1996년 11월 27일 온누리교회에서 가진 ‘제1회 가정학술대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송길원 목사께서 밝힌 대로 “가정과 교회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가정사역의 회복은 교회의 회복이고 가정이 새로워지면 교회도 새로워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교회에서 성도의 가정생활에 대한 설교의 비중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7)기타
임산부를 위한 태교 목회, 불신 배우자 초청 세미나, 결혼 준비학교, 가족신문 만들기 등은 건전한 신앙가정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들이다.
2. 문제가정을 위한 단기 프로그램
(1)사랑의 편지 쓰기
부부문제나 자녀문제, 혹은 고부문제까지도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행복하려면 ‘먼저 귀를 열고 다음엔 입을 열고 또 하나 마음을 열라’고 했다. 서로 연애할 적에는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오순도순 대화도 잘 나누며 마음도 터놓고 함께 재미있게 지내다가 결혼 후 세월이 지나면 서로가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바로 이때 불행이 찾아온다. 솔직하게 서로의 가슴을 여는 대화가 오늘을 복되게 하는 지름길인데 막상 대화를 하자니 쑥스럽고 쉽지 않다. 이때 가장 쉬운 방법이 사랑의 편지를 쓰도록 하는 것이다.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쓰게 되면 상대방에게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이 편지 쓰기는 비단 부부사이뿐 아니라 자녀 혹은 고부사이에도 잘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참고로 현재 시중에는 두란노서원에서 발행한 ‘사랑 가꾸기를 위한 편지 노우트’(송길원)가 예쁘게 꾸며져 나왔는데 앞뒤로 부부가 서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2)상담실 운영
사랑의 편지 쓰기가 본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라면 상담실을 운영하는 것은 목회자나 상담전문가들이 문제해결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본인들이 직접 찾아와 상담실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 때는 이미 시기적으로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교인들을 돌아보면서 상담이 필요한 사람은 찾아가는 것이 좋다. 또한 상담함을 설치하여 언제나 답답한 문제를 써넣게 한다거나 상담 전화를 개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기서 문제는 목사나 사모가 전문상담 교육을 받지 않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은 상담전문교육기관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서 1-2년 정도 교육을 받으면 상담에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목사보다는 사모가 이 일을 맡아주면 목회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상담이 빈번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프라이버시에 관계된 상담은 회피하려고 한다. 따라서 전문 상담기관과 연결시켜주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상담센터들은 대부분 무료로 운영되고 있어 이용하는데 경제적인 부담이 없어 권하기도 좋다.
참고로 서울지역에 있는 여성을 위한 상담센터는 다음과 같다.
①가정문제 상담
•며느리전화 577-5657 •사랑의전화 712-8600 •여성법률상담소 587-3233
•서울가정법률상담소 782-3427 •생명의전화 916-9191 •영양상담의전화 842-2466
•한국여의사회상담전화 716-1662 •여성노동상담센터 269-5763 •한국노인의전화 722-8007
•한국가족치료연구소 652-2862(부부성격차이,우울증,주부의 성격)•성폭력상담소 263-6471
②자녀교육 상담
•가정의전화 274-1626 •청소년대화의광장 730-2000
•서울YMCA청소년상담실 591-6060 •신나는전화 336-6233(초등학생자녀)
•아동걱정전화 543-1500 •따르릉선생님 325-6450(초등학생자녀)
③취업 상담
•여성자원금고 3662-4271 •YWCA일하는여성의집 951-0187(취업기술지도도 실시)
④이런 곳에서 해결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전화하여 상담할 곳이 한 곳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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