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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실제] 주님의 특별한 위로, 천사 이야기 (5)

초록 등불 2012. 3. 6. 17:24

 

  [영의 실제] 주님의 특별한 위로, 천사이야기(5)

 

좋아하는 봄이 왔습니다. 봄의 첫날 다소 쌀쌀하였지만 좋아하는 봄이 왔으니 어찌 봄맞이를 아니 가겠습니까? 자전거를 타고 늘 찾는 갈대 숲 강변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직 다소 쌀쌀하지만 그래도 봄, 얼었던 강물도 마음을 풀고 잔잔히 흐르고 있더군요.


가면서 영으로 보니 언제나 곁에 있는 어린 제가 다정이라 이름 지어준 소녀 모습의 천사가 계절이 바뀌어서 그런지 늘 입던 새하얀 옷이 아니라 하얀 옷에 작고 예쁜 알록한 꽃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봄 공주로 변신을 한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주님께서 우리의 계절이나 날짜를 생각하고 배려하셔서 가끔은 영적인 일들을 베푸시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 목회자의 길을 두고 고민하며 기도할 때 꿈속에서 길과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져 주실 것을 솔로몬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선명한 음성으로 이르신 날도 성탄절 밤이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는 환상과 함께 우렛소리 같은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신 날은 거룩한 주일 아침이었고, 제가 기쁨이로 이름 지어 준 귀여운 꼬마천사 기쁨이가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 재롱을 피우며 제게 기쁨과 웃음을 안겨준 날도 지난 성탄절 아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봄이 와서 그런지 새롭게 하얀 옷에 알록한 꽃무늬가 있는 예쁜 옷을 입고 보이니 더욱 예뻐 보이고 기분이 새로웠습니다. ‘생각으로’ 자전거 뒤에 앉혀 태우고는 좋아하는 강변 주위를 드라이버 하고 왔지요.


제가 ‘생각으로’라는 부분에 포인트를 준 것은 이런 영적 경험과 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나름 살펴보면서 영의 세계는 생각의 세계라는 것을 한편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가령 때로 악한 영이 영의 눈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쫓아내겠습니까? 물질계의 존재가 아닌데 어떻게 쫓아내겠습니까? 가령 늘 곁에 이미지 곧 형상으로 보이시는 주님께 어떻게 저도 사랑을 표현하겠습니까? 일어나서 꽃다발을 드리면 받습니까? 아니지요. 영의 세계는 생각으로 교통하고 생각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악한 영의 형상이 다가오면 예수 이름으로 선포하여 쫓기도 하지만 생각으로 밀어내어 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주님과 천사들은 생각으로 맞이하고 생각으로 대화하고 생각으로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물론 그냥 혼자 하는 상상이나 망상과는 다른 것이지요. 영 안에서 성령 안에서 나누는 것이지요.


이처럼 영의 세계는 믿음의 세계요, 마음의 세계요, 생각의 세계란 것을 이런저런 경험을 통하여 더욱 알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곁에 계신 주님이나 하늘에 속한 여러 존재들이 보이면 생각으로 대화하고 생각으로 함께 나눕니다. 악한 영이 보이면 생각으로 밀어내어버리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봄나들이 첫날은 다소 추워서 조금은 일찍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3월 3일, 봄의 첫 주말이 다가왔더군요. 평소 거의 밖에 나가보기도 힘들만큼 바쁘다 보니, 주말에는 거의 나가서 운동과 산책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면서 밖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다정이가 역시 그날 입고 있었던 봄맞이 하얀 옷에 꼭 안개꽃처럼 작은 알록한 꽃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서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보이더군요.


저도 이전엔 천사 이야기를 누군가 하면 의심반 믿음반 그랬었는데,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어쩌면 제가 그냥 상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결코 아닙니다.


저는 수리계열에 재능을 보였고 물리학을 공부한 아주 논리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게 일어나는 이런 영적인 현상들을 몇 가지 방법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영으로 보이는 현상에 대하여 이런 과학적으로 말하면 실험결과를 얻었습니다.


한편 목회자로써 다양한 영적인 일과 현상들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각도에서 살펴본 것이기도 합니다.


첫째, 눈을 감으면 안 보입니다. 둘째, 안경을 벗으면 상이 흐려집니다. 셋째, 불을 끄면 어두워지고 어둠 속으로 상이 희미해집니다. 영적으로는 정결한 삶을 살지 못하면 상이 흐려집니다. 이런 결과로 방언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의 입에 어떤 영적 작용을 하셔서 영의 언어를 말하게 하시는 것처럼, 저의 육신의 눈에 어떤 영적 작용을 하셔서 영적인 존재들을 보게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안 보이니 결코 상상은 아닌 것이지요.


다만 다른 것은 육신의 눈을 앞밖에 보지 못하지만 영으로 보이는 것들은 눈을 뜨면 어디나 어느 방향이나 보이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보이는 영적 존재도 저의 마음대로 조정이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한번 보았던 영적 존재들은 보려고 생각하면서 보면 나타나 얼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늘 곁에 반무의식 상태에서도 보이는 존재들은 성령과 주님께서 결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번 주님과 함께 나타난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세마포를 입은 꼬마 소년의 천사가 나타난 이후로 한 이틀은 곁에 있는 소녀 천사를 늘 곁에 있는 것처럼 느끼거나 볼 수 없었습니다. 세마포 소년 천사만이 뚜렷이 보이고 식사를 하거나 무엇을 하던지 옆에 앉아서 까만 눈동자로 가만 쳐다보곤 하였지요. "넌 또 누구니?"


이런저런 천사로 생각되는 영적 존재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은 우리를 섬기고 도움이 되라고 보내셨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세마포 소년 천사는 눈이 부시도록 하얀 옷을 입고 있기에 제게 정결한 느낌과 영을 전해줍니다. 돌아보면 그 시간은 다소 영적 상태가 맑지 못하였던 같습니다. 그 상태를 회복하니 이틀 후에 다시 늘 인간적인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지내는 제게 도움이 되는 따뜻한 정을 전해주는 느낌의 제가 다정이로 이름 지은 예쁜 소녀 천사가 다시 곁에 보이더군요.


돌아보면 각각의 영적 상태에 따라서 다른 느낌과 영을 전해주는 천사를 곁에 두신 것 같습니다. 영적 상태에 따라 제게 도움이 되는 느낌과 영의 천사들을 곁에 두신 것 같습니다. 다만 어린 소년이나 소녀의 모습으로 보여주시는 것은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고, 또 우리가 아이처럼 순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영적으로 아름다운 것이어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본질이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어떤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 하였지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 앞의 생물들도 참 특이하고 이상한 모습으로 나오지요. 어떤 상징과 의미로 그렇게 보여주신 것이지 그것이 그 영적 존재들의 참 본질이나 모습은 아닌 것이지요.


그러므로 영적 존재의 참 본질과 모습은 우리가 영적 존재가 되어서 하늘나라에 가기 전까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신비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늘 어린 아이들의 모습의 천사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장성한 청년 모습의 천사도 보입니다. 구체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않지만 때로는 흰옷을 입은 수많은 무리들, 수많은 천사들을 보곤 합니다.


성경이 말하듯 우리가 볼 수 있던지 아니던지 간에 우리들의 곁에는 우리를 돕는 우군인 천사들이 수업이 있습니다. 사단과 악한 영들만 우리 곁을 맴도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보다 더 많고 많은 우군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빛의 존재들이 우리 곁에 있으며 우리를 보호하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마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어쨌거나 봄 첫날 봄맞이 나들이에 이어, 주말 나들이를 하려고 하고 있으니 어느 때보다 다정이가 뚜렷하게 보이며 나타나 곁에서 생기롭게 움직이더군요. 식사 준비를 하면 따라 다니고 앉아 식사를 하면 곁에 앉아서 쳐다보곤 하더군요.


가끔은 주님이나 천사 등의 영적인 존재가 뚜렷하게 보일 때면 생시 같아서 조금 놀랄 때도 있습니다. 집에서 혼자 식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초등학교 3-4년 딸아이를 하나 둔 것 같더군요. 아마 본 모습 중에서 가장 생시처럼 보여서 조금 놀란 하루이기도 하였습니다.


봄의 첫 주말은 나가니 아직 겨울의 여운이 남아 있지만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가서 그런지 포근하고 따뜻하더군요. 늘 가는 갈대숲 강변가 도로를 타고 운동이 필요하니 필요한 운동기구가 있는 곳까지 가서 몸을 좀 풀었습니다. 잠시 운동을 하고는 벤치에 앉아서 봄 햇살을 쪼아 먹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햇살의 포근함이더군요. 어쩌면 정말 오랜만에 잠시 생의 고단함을 잊는 행복한 시간이더군요. 예쁘다고 표현하기엔 너무도 부족한 정말 예쁜 서양 소녀 모습의 천사 다정이와 생각으로 교감하며, 봄날의 강변 나무 아래 세워보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예쁘게 생겼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제게 따뜻한 정을 전해주시기 위하여 이미지로 보여주시는 천사이니 최상의 미적 감각으로 그려서 보여주시지 않겠습니까? 정말 예쁘고 귀엽고 정이 가득 풍겨오는 예쁜 모습의 소녀 천사입니다.


햇살을 받고 봄 강변 나무 아래 서 있는 어여쁜 모습을 보며, “영적 존재도 카메라로 찍어낼 수 있다면..”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과 모습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봄 공주처럼 곁을 맴돌며 생기롭게 뛰어 다니는 다정이를 영으로 보고 있노라니, 따뜻한 햇살 늘 다소 부족한 체력 곤한 몸, 졸음이 조금 오더군요. 나들이를 가면 늘 연필과 노트를 가지고 가서 시감이 오면 적어보기도 하는데, 앉아서 조용히 시가를 하나 적어보았습니다.


봄맞이 노래


                     丹心 정소월 (=초록 등불)



봄, 벤치에 앉아

햇살을 가만 쪼아 먹는다


겨우내 얼었던 강도

얼었던 마음을 풀고

겨울의 슬픔은 바다로 흘려흘려

새르르 봄 시내를 맞는다


천사도 봄맞이

꽃무늬 하얀 옷을 입고

봄공주마냥 뛰노는데


겨울의 고단함이 녹는 탓인가

조용히 잦아드는 졸음


잠시 천사랑

봄 하늘이나 날아볼까나!



잠시 나가 운동겸 나들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보통 졸음이 쏟아집니다. 두어 시간 잠을 자야 합니다. 아직은 체력이 부족한 탓에 조금만 운동을 하여도 피로감이 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낮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녁 늦게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야 하는 시간에 잠이 쏟아지더군요. 이런 경우는 그냥 불을 켜놓고 엎어져서 잡니다.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하니까요. 그렇게 자는 듯 마는 듯 졸고 일어나니 새벽 두어 시, 매일 반드시 해야 하는 영적 생명의 시간이니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러저러한 영적인 배려로 늘 영으로 곁에 계신 주님도 보이고, 많은 천사들도 보이고 얼마 전부터는 하얀 비둘기 형상으로 성령님이 함께 계신 것도 보여주시곤 하지만, 만나는 사람 거의 없이 대부분 혼자인 시간의 고독한 삶, 다소 인간적인 고독감이 몰려오더군요. 하늘의 위로도 좋지만 따듯한 사람들의 위로도 그립더군요.


선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조금은 더욱 그랬던 같습니다. 이럴 때에 마음에 생기와 소망과 새 힘과 기쁨을 주는 것은 주님의 음성 밖에 없지요. 가만 주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다시금 진리인 성경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말씀 안의 소망은 참되니 그 소망 안에서 기뻐하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건강하면 행복할까요? 부요하면 행복할까요? 깊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행복할까요? 명예와 부귀를 누리면 행복할까요? 아니요, 아니더군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다 생은 수고롭게 느낄 것 같았습니다. 제가 건강해도, 부요해도, 지금 따듯이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속에 쌓여 있어도, 여전히 맘 다소 적적하고 쓸쓸할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의 궁극적인 만족과 행복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까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임하고 하나님 안에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 안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영혼의 기쁨과 희락과 만족을 누리지만, “이미” 그러나 또 한편 “아직”이라는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생의 시간, 그 시간 속에서는 누구나 이런 다소의 적적함과 생의 수고로움은 느낄 것 같습니다.


그 깨달음 속에서,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음성 속에서 진정한 우리 영혼의 봄은 계절의 봄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그날이며, 그 소망이 저와 우리의 봄으로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계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저와 여러분 모두 이 진정한 소망, 진정한 영혼의 봄날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참으로 붙잡고, 수고로움이 적지 않은 우리네 생이지만, 그리고 우리가 감당하고 감내해야 할 사명의 십자가들이 때로 수고롭지만, 이 소망을 붙잡고 기쁨으로 달음박질 하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봄 햇살 아래 벤치에서 노곤한 행복감으로 졸게 하시는 행복을 주시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않습니까? 아멘! 샬롬.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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