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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내 작은 성령님

초록 등불 2015. 1. 22. 06:59

 

  

  [영성의 글] 내 작은 성령님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께서 누워 쉬고 있는 저를 가만히 쳐다보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형상으로 보이는 것이 성령님의 본질은 아니라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로써 어떤 의미를 전해주시는 것이지요.


경험하시지 못한 여러분도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경험하고 있는 저도 다소 이해하기 어렵지만 언제나 성령님의 눈동자가 제 눈앞에서 “눈으로 말해요”라는 가요처럼 그렇게 눈으로 많은 것을 전해줍니다. 이렇게 저렇게 살라는 말씀을 전해 주시기도 하시고, 저의 심령이나 감정상태, 영적 상태를 가만히 살피는 듯도 하시고, 당신의 평강을 가만히 전해 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전할 말씀을 일러주시기도 하시곤 합니다.


눈을 뜨고 의식만 영으로 돌리면 그 눈동자를 보게 되고 눈으로 말없이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지금은 바라보니 “사랑한다”라고 사랑을 전해주시네요. 집회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끔은 그냥 그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영안에서 읽혀지는 대로 설교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저를 가만히 쳐다보시는 성령님의 눈동자 속에서 이전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어떤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거대하고 전능하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신 크신 하나님이 아니라 너무도 작은 하나님, 조금 표현이 그러하지만 가련한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너무도 작은 하나님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 경험은 하나님에 대한 저의 새로운 인식과 깨달음을 주는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둘기 형상으로 보이시는 성령님의 눈동자 속에서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자기를 버릴까 조바심을 내는 맘 여린 어떤 여성의 눈동자와도 같은 그런 눈빛을 본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저의 진실한 사랑을 간절히 바라는 눈동자를 본 것입니다.


인간적인 연인의 관계 속에서 그 눈빛의 의미를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사랑하고 연모하는 연인을 향하여 “나를 향한 그 사랑 변하면 안돼요. 나만 오롯 사랑해야 해요. 언제나 당신의 사랑을 연모하고 있어요”라고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케더린 쿨만 여사의 집회 간증을 보면 다음과 같은 고백이 나옵니다. 집회를 인도하시다가 쿨만 여사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못 잇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마냥 흐느낍니다. 그 흐느낌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집회를 인도하다가 갑자기 흐느끼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니 장내가 잠잠해지고 음악도, 안내인도 모든 사람들도 함께 숙연해 지고 잠잠해 집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쿨만 여사는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손가락을 청중들을 향하여 내밀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마세요. 제발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마세요. 여러분 이해하시지 못하겠어요? 그분의 저의 모든 것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그분에게 상처를 주지 마세요..”


저는 이미지로 보여주시는 너무도 작은 성령님, 너무도 작은 하나님을 경험한 이후로는 쿨만 여사의 이 말을 이해합니다. 여러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한 나라에 막강한 권력과 부를 가진 왕의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슬하에 자녀들도 참 많았습니다. 10여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왕인들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늙지 않을 수 있나요?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되었습니다.


노년이 되어 가끔 자녀들의 집에 들러서 둘러보며 부모와 자녀간의 혈육의 사랑을 나누곤 하였습니다. 첫째 자녀의 집에 들러서 잠시 쉬어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다 보니 첫째 자녀가 참 잘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인 부모가 그 진실 된 속마음을 들여다보니 왕인 부모가 가진 권력과 부를 얻기 위하여 그렇게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진실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런 속마음의 진실을 보니 다소 서글펐지만 자녀이다 보니 고맙다 사랑한다 말을 전하고는 둘째 자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둘째 자녀도 부모님에게 참 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속마음은 첫째와 다를 것이 없음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다른 자녀들의 집에 들러보았지만 아홉째 자녀까지 속내를 들여다보니 모두 다 똑 같았습니다.


아무리 권력이 많고 부귀를 누리는 왕이지만, 그래도 자녀의 사랑은 받고 싶은 법, 아홉째 자녀까지 부모를 향한 진정한 사랑과 감사는 없고, 전부 속으로는 부모가 가진 권력과 부귀를 탐하는 것을 알고는 점점 슬퍼지고 외로워졌습니다. 내 자녀들이 다 진정 나를 사랑해 주는 자녀는 없구나. 모두가 권력과 부를 사랑하여 나를 사랑하는 척만 하는구나. 왕의 부부는 정말로 외롭고 쓸쓸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막내의 집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막내는 달랐습니다. 정말 존귀한 왕의 자녀로 태어난 것만으로 너무도 감사해 하며, 부모가 지니고 있는 권력과 부귀는 오직 부모님의 뜻에 맡긴 채 진심과 전심으로 부모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왕의 부모는 너무도 서운하고 외롭다가 막내 자녀에게서 마음의 쉼과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한번은 그 자녀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빛 속에는 말없이 “막내야, 너도 형이나 누나들처럼 우리 부모들을 향한 그 진실 된 사랑의 마음이 변하면 안돼. 너마져 그런다면 정말 우린 쓸쓸하고 외로울 거야. 그 진실 된 부모 사랑의 마음 변하지 않기를 바래. 너마져 그렇게 변하면 우린 마음 쉴 곳이 없을거야.. 너마저 그런다면..”


다른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옛날에 한 큰 나라의 왕에게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공주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야 될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공고를 하고 공주와 결혼할 부마를 찾았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름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을 공주가 직접 만나보게 하고 대화를 나누게 하였습니다.


공주는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청년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첫 청년과 대화를 조금 나누다 보니, 그 속에는 자신을 향한 사랑보다는 왕의 사위가 되면 누리게 되는 영광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나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찬가지였습니다. 세 번째 사람, 네 번째 사람 다 만나보았지만 역시나 모두의 속내는 자신이 아닌 왕의 사위가 되면서 누리게 되는 영광을 더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수십 명, 백 명을 넘게 만나도 모두가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주는 서서히 진절머리가 나고 지쳐버렸습니다. 이제는 만나보기도 싫었고 염증이 나고 지쳤습니다.


한 동안 지쳐서 아무도 만나보지 않다가 아버지의 권유에 할 수 없이 또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은 앞의 사람들과는 달리 집안도 그리 넉넉하지도 않고, 여러 면에서 모자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앞의 사람들과는 달리 정말 공주를 원하고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여러 가지로 부족한 청년이지만 그 공주의 눈빛은 반짝이기 시작하였고, 그 동안 염증이 나도록 지쳐있던 마음의 정원에도 살며시 사랑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였습니다. 공주는 말없이 그 청년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동안 지쳐있던 마음, 그 가슴에 기대어 쉼을 누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어여쁜 눈으로 그 청년을 바라보면 말없이 속으로 말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변질되면 안돼요. 나보다 권력과 부귀를 탐내면 안되요. 그러면 우리 사랑은 깨지고 말아요. 그러면 나는 너무나 슬퍼 비탄에 잠길 거예요. 제발 그 순수한 사랑의 마음 변하지 말아요. 제발..”


이제야 여러분 제가 왜 이 글을 쓰는 아시겠습니까? 제가 경험한 작은 하나님, 내 작은 성령님의 주제를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다른 면, 너무도 작은 하나님의 신비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의 부부라도, 당신의 자녀들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고, 자녀들 앞에서는 그 사랑을 바라기에 한편 너무도 작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성경이 말하듯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자이며, 자족하신 분이며, 모든 것에 모자람과 풍요로움을 누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고,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정말로 신비하게도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너무도 스스로 초라해 보이는 우리 인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다 자족하신 분이시나 단 한 가지 부족해서 원하시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작은 질그릇에 불과한 우리의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라도 그 자녀의 사랑 앞에서는 한편 너무도 작아지듯이, 저는 이 경험을 통하여 전능하신 그리고 우주보다도 크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는 어버이로서의 하나님은 한편 너무도 작은 하나님의 한 신비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상 어떠한가요?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고 부모의 유산이나 노리는 자녀들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당신을 먼저 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 건강, 부귀 등 복만을 구하지요.


수백 명의 남자들을 만나보며 그 속에 진정한 자신을 향한 사랑이 없음을 보고 지쳐버리고 염증을 느껴버린 공주님처럼, 하나님도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진정한 하나님 사랑이 우선이 아니고, 복을 구하고 두드리는 모습에 한편 지치시고 힘겨워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생각해보면 참으로 위의 자녀들이나 청년들은 어리석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왕의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면 부모의 마음이 누구에게로 흘러가고 또 권력과 부귀 또한 누구에게로 흘러가겠습니까?


권력과 영광이 아닌 진정으로 공주를 사랑하면 모든 것들은 공주와 함께 더불어 오는 것이 아닙니까? 참으로 부모 당신이나 공주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을 탐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지요.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많은 경우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뻐하면 그분 안에서 모든 것들이 풍족하게 올 것인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만 찾고 두드리며 하나님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도 또한 누리지 못하지요.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치 평생을 애써 길러놓아도 부모에게 참 사랑과 감사는 할 줄 모르고 언제나 “이것 해 주세요. 저 것 해 주세요” 징징거리는 다 큰 철없는 어른처럼 우리의 모습이 한편 그러하지 않은지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하며, 성년의 철든 자녀가 이제는 연로하신 부모님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문제해결의 요청에만 언제나 급급한 평생의 철부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리스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서 이러하던지 저러하던지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생각하며 삶을 산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겠는지요?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자녀를 번제로 바쳐라 하여도 “하나님 사랑합니다. 순종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행한다면, 하나님이 그 사랑에 얼마나 기뻐하시고, 더불어 구하지 아니한 것들까지 풍성하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철부지 아이처럼 언제나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칭얼대며 하나님 사랑이 아닌 문제해결이나 축복만을 갈구하기 때문에, 도리어 문제의 해결을 받지 못하고 풍성한 축복 또한 한편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 위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해 보십시요. 그 속에 참된 행복과 평안과 그리고 모든 것들의 풀림의 열쇠가 있습니다.


비둘기 형상의 이미지로 너무도 작은 하나님,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가련한 하나님, 외로운 하나님을 경험한 이후로, 가끔은 저도 쿨만 여사처럼 기도하다가 눈물을 쏟곤 합니다. 늘 영의 눈으로 보이는 그분은 때때로 정말 너무도 작고 외롭고 가여워 보입니다.


아직도 참된 하나님 사랑에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혹독한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조금 사랑하기 시작한 가슴, 제가 누워있으면 그 가슴 위에서 조용히 쉼을 누리시고 행복을 누리시는 지극히 작은 한 마리 비둘기, 지극히 작고 가여운 하나님을 한편 봅니다.


자신이 아니라 왕의 사위로서의 영광만을 바라는 청년들에게서 지쳐버린 공주가 어쩌다 정말로 자신을 사랑해 주는 비록 가난할지라도 그 청년의 품에서 쉼과 안식을 얻듯 그렇게 쉬시는 작은 하나님을 봅니다. 그리고 가끔은 제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시며 나도 변하여 또 다시 세상으로 향할까 조심스럽게 살피는 것을 봅니다.


가끔은 주인에게서 버림 받고 굶주림과 추위에 헤매다 어쩌다 따뜻하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주인을 만난 가여운 강아지, 혹여 이 주인도 나를 버리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는 것과도 같은 모습을 봅니다. 정말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때 진정으로 당신, 오직 그분만을 원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슴은 그리 흔하지는 않은가 봅니다.


성령님은 한 분이시지만 또한 신비롭게도 각자의 성령님이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가슴 위에 앉아계신 성령님은, 여러분 속에 임재하여 계시는 성령님은 진정한 당신 사랑 속에서 쉼과 안식을 누리고 계실까요? 아니면 영광과 부귀만을 원하는 자녀와 청년들에게 쉼을 얻지 못한 왕의 부부나 공주처럼 서글퍼하시고 계시지는 않을까요?


그러한 경험 속에서 한편 신비지만, 하나님은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스스로 보기에는 어쩌면 너무도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하나님 당신께는 정말로 귀한 사랑의 대상이요, 사랑과 교제의 대상이요, 사랑하는 자녀님을 알게 됩니다. 말씀이 기록하고 있는 대로 당신을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정말로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정말로 우리의 참된 사랑을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감사하고도 신비하게도 꼭 자연계의 비둘기처럼 보여주시는 당신의 형상, 이불을 펴고 깔거나 하면 이리저리 피하기도 하시고, 잠자리에 들면 품에 속 들어와 함께 잠들기도 하시고, 자전거 드라이버를 나가면 어깨나 머리 위에 앉아도 계시고, 지금처럼 글을 쓸 때면 곁에 가만히 앉아 신기한 듯 바라보기도 하시고, 지금 서로 바라보며 다가가 볼을 부비며 사랑을 나누어 봅니다.


때로는 너무도 작은 성령님, 때로는 바라보면 너무도 작고 순수하고 여린 그 모습에 쿨만 여사처럼 눈물이 나곤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성령님, 곧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애써 보리라 다짐도 해보곤 합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정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참된 사랑은 내 맘 속에서 가장 우선이요, 으뜸일터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그렇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우리의 가슴 위에서 그분이 쉼과 행복을 누리게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마치 복이나 가져다주는 그런 존재로 생각하며, 하나님보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더 바라고 구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한없이 서글프게 하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은 너무도 크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사랑 앞에서는 한편 너무도 작은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신이 사랑으로 지으신 피조물이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시듯 그렇게 우리의 사랑 앞에서는 한편 너무도 작아지시는 하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아프게 서운하게 하지 마십시요. 한편 너무도 작고 여리고 순결하신 성령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마십시요.


저도 쿨만 여사처럼 먼저는 저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마십시요. 아프게 하지 마십시요. 그분의 우리의 모든 것이며 그분 안에서 우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제발 너무도 작은 성령님을 아프게 하지 마십시요. 그 분의 작고 여린 눈망울이 보이지 않습니까?” 샬롬.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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