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들수록 미혼청년들은 싱글인 자신의 모습에 괜히 울적해지고 결혼하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지난날 어느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헤어졌을 경우엔 그 가슴앓이가 더욱 깊어집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도록 지음받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에겐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가슴 한구석의 빈자리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랑만으론 만족될 수 없고, 그렇다고 하나님의 사랑만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심연(深淵)은 우리 인간의 고독과 실존을 새롭게 일깨워줍니다.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미혼청년들 중의 또 한 부류는 과거 이성교제 실패의 충격을 겪고 아직 그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경우입니다. 그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아직도 과거의 실패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과거 시간 속에서 헤매는 것을 봅니다. 분명히 현실은 결별과 이별을 확인시키지만, 그들은 그것을 결코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아니, 저절로 그렇게 돼집니다. 마음속에서 정리하지 못한 과거의 애인(愛人)은 현실로 다가오는 무수한 가능성을 물리치고 내쫓고 심지어 미래(未來)마저 거부토록 부추깁니다. 그로 인해 미혼인 그(그녀)는 점점 현실로부터 고립됩니다.
이러한 원인은 그(그녀)가 아직도 과거의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무리 괴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과거였을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가슴 깊이 슬퍼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즐깁니다. 치를 떨며 깨끗이 정리하길 원하면서도 계속 원점을 맴돌며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는 아이러니. 이름하여 ‘추억병’ 또는 ‘이별후유증’인 것입니다. 그러한 ‘회한의 덫’에 걸린 이는 아무리 새로운 이성을 소개받거나 교제해도 여전히 과거 사랑했던 그 사람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채 과거의 악령에 사로잡혀 울부짖고 신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도 전혀 자각치 못한 채.
오늘날 많은 이들이 ‘첫사랑’에 대해 추억하고 동경하며 심지어 재회(再會)를 미화시키는 경우까지 봅니다.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던 풋사랑에 대한 추억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현실에서의 재현(再現)을 갈망하는 흡인력이 큽니다. 그렇지만, 그것의 현실적 구현이나, 그 연장선에서 이미 헤어진 과거의 사람을 그리워하거나 떠나 버린 사랑에 집착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칫 과거의 수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슬픔과 좌절의 나날을 보낼 위험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이별한 애인을 오랫동안 잊지 못해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한 30대 중반의 형제와 결혼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형제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과 이미 떠나 버린 그 사람을 마음속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새로운 출발을 고대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수년간 교제했던 옛 애인에 대해 미련을 둬왔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치 못했던 것입니다. 계속 새로운 이성을 소개받고 결혼하라는 주변의 압력을 받지만, 막상 이성을 만나 교제할라치면 이미 헤어진 옛 애인의 얼굴이 떠올라 쉽게 결론짓고 회의에 빠지는 일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안타까우면서도 불행한 모습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일 경우라 할지라도, 훗날 이렇게 결혼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면 당사자에게 비극입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애절하고 드라마틱할 경우, 그 운명론적 미학(美學)은 더욱 증폭되지만, 이것은 대단히 불행한 결말이며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결과가 됩니다. 비록 헤어졌더라도 아름다운 사랑은 가슴에 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추억과 미련이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경우엔 속히 마음속으로 정리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과거의 사랑은 더 이상 아름다운 추억도 미학적 스토리도 아닌, 처절한 악몽으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과감하게 과거의 미련을 끊으면 결혼의 문이 열릴 것이요, 끝까지 움키고 고집부리면 계속 결혼은 지연될 뿐입니다.
오늘날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 중에 이처럼 실패한 사랑에 대한 미(未)정리와 실연의 상처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며 결혼을 기피하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고통스런 환경을 바꾸기 위해, 깨어진 사랑을 만회키 위해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결혼을 갈망하며 시도하지만 실제로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다가오기를 학수고대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 가능성에 대해 회의하며 새로운 만남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는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어떤 이는 새로운 환경이 자신에게 안겨줄 행복을 두려워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한 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자신의 연인(戀人)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며, 비록 그 사람이 더 이상 내 사람은 아니지만, 막상 새로운 연인을 맞아들이려 할 때 아직 마음속에서 정리치 못한 옛사랑의 추억이 발목을 잡기 때문입니다. 그 지겹고 괴로운 미련과 추억을 쫓아내려 하지만, 이젠 오히려 그 미련과 추억이 그 사람 안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못 나가겠다고 버티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거의 절망적 상황인 것입니다. 이미 과거의 연인은 사라졌고 새로운 연인을 맞아들여야 하는데, 전혀 상관없는 제삼의 존재인 미련과 추억이라는 놈이 앞길을 가로막고 멱살을 쥐고 흔드는 형국인 셈입니다. 참으로 비극이요 슬픈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로 인한 피해는 전적으로 그 당사자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한 사람일수록,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일수록, 관계가 깊었을수록 그 증세가 심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아직 결혼 안 한 자신은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믿으며, 남들이 모르는 그럴 만한 분명한 이유가 많다고 강변하며, 스스로 그렇게 고통을 겪어 마땅하다고 자학하며 점점 과거란 악몽의 늪에서 허우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쉽사리 그 과거 실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과거 악몽의 노예로 전락하기 쉬운 법입니다. 오늘날 안타깝게도 일부 미혼크리스천청년들 중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발견되며, 이는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미래 배우자에게도 불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불치병으로부터 해방받는 길은 망각인데, 정상인에게 있어 의지의 선행 없이는 이 또한 불가능합니다. 이미 움키고 있던 것을 과감히 포기해야 새로운 축복을 움켜쥘 수 있듯, 과거의 추억을 훌훌 털어버려야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다가오며 결혼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결혼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날 아름다웠던 추억이든 슬펐던 추억이든, 하루빨리 잊고 그 미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결단하기까지 긴긴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해야겠지만, 그래도 일단 그렇게 결단을 하고 나면 놀랍게 변화된 행동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실연(失戀)과 망상의 병상(病床)을 떨치고 일어나야겠다는 결단만 굳게 서면 곧 찬란한 햇살을 온 영혼으로 맞아들일 수 있으며, 더 이상 음습하고 우울하고 비통스럽고 슬픈 과거 악몽의 터널 속에서 헤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광명의 새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선 지난날의 잘못된 관계에 대한 회개 또한 병행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운 잘못,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자신의 선택과 의지를 앞세운 교만의 죄, 하나님의 길보다 자신의 길이 옳다고 우기며 버텨온 자기 의(自己義)의 죄, 그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치 못하고 깨진 관계와 잃어버린 시간과 마음속의 애욕을 떨쳐내지 못한 잘못 등을 낱낱이 회개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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