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잠 20:27)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안내하시고 지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영을 이용하신다는 말입니다. 그 분은 내면의 증거(inward witness)를 통해 우리 영에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우리의 ‘영’ 역시 자신의 음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양심, 인도(guidance), 직관(intuition)이라 부릅니다. 세상에서는 예감(hunch)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영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건 안받았건, 그는 여전히 영적인 존재이고, 그 영 안의 일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내면의 음성은 우리 생각에 길잡이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이 내면의 음성을 따랐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마음의 고통들의 정말로 많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내부의 증거를 따랐다면, 결코 투자해서 돈을 잃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 내부의 음성을 들었다면, 어떤 거래나 사업상의 협력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친구를 사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훌륭한 젊은이들이 잘못된 무리에 속해서 잘못된 친구를 고르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에 귀를 기울였다면 많은 실수들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몇 년 전 교회의 부흥을 위한 어떤 목사의 초청을 받아들인 적이 있습니다. 제게는 그 집회를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어떤 특별한 인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가도 되겠다고 짐작했습니다.
부흥 집회의 계획에 따라 그 교회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저녁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 중에 이 다음 번 교회에 가지 말아야겠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분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차츰 없어지려니 하고는 무시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부터 나왔을 때, 그 느낌은 차츰 없어졌습니다.
다음 날 다시 기도하는 중에, 이 내면의 음성이 다시 그 교회에 가지 말라고 강하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이미 그 교회에 가겠다고 목사님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약속을 했고 광고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가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내 계획상의 유일한 집회였고, “지금 내 앞에 열려 있는 문이 이것 하나뿐이므로 그냥 계속 할 뿐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기도 처소에서 일어났을 때 그 느낌은 또 다시 내게서 떠났고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기도 중에, 성령께서 다시 그 교회에 가지 말라고 말리셨지만 나는 다시 무시했습니다. 내가 그 교회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목사님에게 문제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나는 몇 가지 이유에서 그 집회에 대해 유감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단지 며칠만 있다가 떠날거라는 의문들이 생기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 목사님에게 계획대로 일주일 동안 설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마을에 쾌적한 모텔이 몇 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 목사님 자신은 매우 좋은 집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를 전도자 숙소로 데려갔는데, 거기는 그의 집 뒤의 닭장과 거의 비슷한 크기였습니다. 그는 “이번 집회에서 모금하려는 헌금이 약간 있는데, 만약 남게 된다면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에 당신에게 25불에서 50불 정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헌금을 위해 집회를 계획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나의 전도팀을 데리고, 1200마일이나 여행해서 그 곳에 간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여행 경비 모두와 내 자신의 경비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나는 나와 그들의 식사와 쾌적한 모텔의 숙박료를 지불했고, 그 주 마지막에 나는 40불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 마을을 떠나 다음 집회 장소로 가기 위해 은행에서 300불을 빌려야 했습니다.
말할 필요 없이 내부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은 모험의 대가는 값비싼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좋은 교훈이 되었습니다. 만약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영이 생각을 지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믿음으로 걷는다는 것은 말씀에 의해 걷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과 속 사람이 우리를 제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3개월 정도 후에, 나는 집회를 열었고, 그것은 주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재정 상태는 매우 좋아졌고, 청구서들을 갚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집회 이후 즉시 몇몇 부흥 집회에 초대되었지만, 나는 주께서 가기를 원하시는 곳이 어디인지 증거를 얻지 못했습니다. 나는 음성을 듣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느 초대에 응해야 할지 내 속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진행되었던 집회의 마지막 주가 되었을 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그런 짧은 기간의 예고로는 또 다른 집회를 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방송도 만들어야 하고 지방 신문에 실을 광고 등등...
나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자, 뭔가 해야겠어요. 나에게 그 도시에서 집회를 열어 달라고 여러 번 초청했던 아무개 형제에게 전화를 해야겠어요.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오늘 밤에 전화하면 그가 내일 신문에 광고를 실을 수 있을 거고, 우리는 다음 월요일 밤에 집회를 시작할 수 있을 거요.”
나는 다른 방으로 가서 그에게 전화를 하려고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내 안의 음성(증거는 아니었습니다)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고 나는 놀라서 펄쩍 뛰었습니다. 음성은 “하지마, 하지마”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미 수화기를 들긴 했지만 다이얼은 아직 돌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수화기를 도로 내려놓고 물었습니다.
“주님, 지금 제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6월까지 준비된 집회가 없습니다. 게다가 갚아야 할 채무도 있구요. 제가 무엇을 할까요?” 이번에는 전과 같이 아무런 음성도 들을 수 없었지만 나의 안에서 내적 존재(inner being)로부터 “그냥 그다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들었음을 알았고 그래서 내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물었습니다. “뭐라고 그래요?”
“전화 안했어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전화 안했어요? 왜요?”
“주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소.” 아내도 만족해했습니다.
다음 날 저녁 우리는 다음 부흥 집회에 대한 계획을 토의했습니다.
“자, 뭔가를 해야만 해요. 충분히 오래 기다려 왔어요. 뭔가를 해야만 해요. 왜냐하면 지불해야 할 청구서가 있어요.”
신문에 광고를 싣기 위한 마지막 시한이었던 어젯밤에 고려했던 그 집회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전날이라도 미리 알려만 주면 어느 때건 가능한 시간에 교회로 와주기를 요청했던 약 200마일 떨어진 곳의 어떤 목사님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일어나 전화하러 갔습니다. 전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리려 하는데, 또 다시 내 안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지마.”
나는 따졌습니다.
“하지만 주님, 저는 뭘 합니까? 저도 살아야 합니다. 내야 할 집세도 있고 애들도 키워야 하고 지불해야 할 청구서도 있구요. 그리고 이번 주일 저녁 예배 후로는 들어올 수입이 전혀 없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제가 가길 원하는 곳이 있고 제가 하길 원하는 일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바라며 그 분이 하시는 일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 분께서 말하지 않는 것도 의지합니다. 정말로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분의 약속을 의지하는지, 그리고 그 분께 완전히 의지하는 것을 배우는 시기인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내가 있던 바로 그 곳에 머무르라고 감동을 주시는 듯 보였고, 내게 어떤 좋은 것을 준비하셨으며, 내가 마약 떠난다면 그것을 잃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다음 날 아침 목사님이 내게 한 주 더 머물 수 있겠느냐고 물어볼 것이라는 것을 내 안에서부터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하면 집회를 4주 동안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물었습니다.
“그 분이 뭐래요?”
나는 “전화를 걸지 않았어요.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라고 말했고 아내는 이해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저기...... 음...... 제가 좀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요.” 그는 주저하며 우물거렸습니다.
나는 “저는 무슨 얘긴지 알고 있고 대답은 ‘예’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머물 수 있겠습니까?” 그가 물었습니다.
“예, 한 주 더 있겠습니다.”
그 넷째 주 집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웠는지요. 예배당이 매일 밤 가득 찼고 영혼들이 구원받았으며 신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 주가 거의 다 지날 무렵 어느 날 오후에 한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해긴 목사님, 저를 기억 못하실 거예요”하며 자기 이름을 말했습니다.
“저는 목사님 집회에서 성령 세례를 받았어요. 주님께서 당신께 천 달러를 드리라고 하셨어요.”
제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았다면 저는 이것을 놓쳤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채로 기다린다는 건 힘든 일인데,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보이는 것을 따라 행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걷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은 심령(heart)의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하룻밤 새에 이런 믿음의 길을 걷도록 훈련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가면서 여러 번 실수할 것이고 하나님을 놓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을 계속 찾을 때, 내면의 음성에 인도되도록 우리 영을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해긴 목사님의 질의응답
질문: 내 영으로 무엇을 알 때,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알 수 있습니까?
답: 지식이 당신 자신의 영이란 사실은 반드시 틀리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무엇인가 일어날 것을 그들의 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게 대하여서도 예측을 하고 나도 그들이 말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점치는 것이나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영(his own human spirit)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에 단순히 어떤 사람은 그의 영으로 어떤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의 음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들의 영은 그들의 마음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자녀는 영적인 것에 대해서 자신의 영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으로 하여금 무엇을 보여주고 그에게 무엇을 말하도록 허락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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