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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주님의 위로, 천사 이야기 (2)

초록 등불 2012. 2. 6. 18:22

 

  [영의 실제] 특별한 주님의 위로, 천사 이야기(2)

 

앞선 천사의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의 이야기를 써 봅니다. 제가 ‘사랑이’로 이름 지은 12살 가량의 사랑과 포근함을 안겨주는 느낌의 천사 외에 두 번째로 제게 나타난 천사는 8살 가량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입니다.


사랑과 포근함을 안겨주는 ‘사랑이’와는 달리 제가 ‘기쁨이’로 이름 지은 이 어린 소년 천사는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제가 임의로 부르면 오지만, 제 곁에서가 아니라 언제나 저 멀리서 재롱과 웃음 띤 얼굴로 종종 저를 웃게 하여 줍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의 삶의 아픔은 가지가지이지만 속성은 크게 두 가지 외로움과 아픔, 곧 슬픔입니다. 주님은 이 두 가지를 개인적으로 위로하시기 위하여 그냥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런 영적인 현상으로 저를 위로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가 사랑과 포근함을 안겨 준다면 곧 저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준다면, ‘기쁨이’는 저의 슬픔과 아픔을 달래주려는 것 같습니다. 늘 보려하면 보이지만, 특별히 영적으로나 혹은 성령 안에서 희락의 세계로 들어가면 아주 재롱을 피우면서 저를 웃게 만듭니다.


살짝 곱슬한 머리에 초롱초롱 귀여운 눈망울, 발그레한 뺨, 그리고 애기토끼처럼 귀여운 하얀 이빨로 모습 자체도 바라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지만, 재롱을 피우며 웃어대면 따라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보려하니 보이지만 모습이 정말 귀엽고 쳐다만 보아도 귀여운 느낌, 밝은 느낌을 전해줍니다.


가장 저를 웃긴 날은 크리스마스 아침인데 기도를 하는 가운데, ‘기쁨이’가 결혼식 때 신부가 입는 뒤가 아주 길게 끌리는 옷을 입고 나타났더군요. 크리스마스 선물인지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요, 그리고는 재롱을 부려대는데 기도하다가 소리내서 웃고 말았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이런 영적 현상은 저의 개인적인 아픔을 달려주시려는 일반적이지 않은 주님의 개인적인 배려요, 위로 같습니다. 그러니 다소 이해가 되지 않으시는 분들도 그냥 저의 개인적인 영적 경험으로 생각해 주시고, 공론화 하시지는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이전에 방언이 오해를 많이 받았고 하였듯, 이런 현상도 언젠가 경험하게 되시면 이해하게 되실 날이 올 것이니까요.


‘기쁨이’의 재롱을 보기 며칠 전에는 정말 기도하는 가운데 다 자란 청년 모습의 천사가 기도 중 다녀갔습니다.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하나 들고 왔는데, 다비드 조각상에 나오는 청년처럼 그런 멋진 청년의 모습이더군요. 이 청년 천사는 영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환상처럼 심령으로 너무도 명확하게 보였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의 말씀을 가지고 와서 전해주곤 가더군요.

어린 천사의 모습 이외에 상징적 환상이 아닌 구체적인 모습을 본 천사는 이 청년모습의 천사가 처음입니다.


어쨌거나 기도나 찬송을 하면 ‘기쁨이’의 재롱과 귀여운 모습도 간간 보며, 늘 곁에서 따뜻함과 포근함과 마음을 달래주는 ‘사랑이’의 존재로, 그렇게 주님의 위로 가운데 하루하루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은 영성집회가 있는 날이었던 같습니다. 늘 곁에 보이던 ‘사랑이’의 모습이 바뀌고 달려져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곧 우리 얼굴의 모습을 잊어버리듯, 영으로 늘 아슴아슴 보이다가 집중해서 보면 다소 명확하게, 때로는 기도 등으로 성령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명확하게 보이곤 하지만, 정확한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고, 늘 아슴아슴 주위에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조금 모습이 변한 것 같았습니다.


연갈색의 머리였는데 머리가 까맣게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네. 천사라서 옷도 마음대로 바꿔입고 머리 색깔도 마음대로 하여서 나타나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지요. 그렇게 하루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기도 등을 하면서 자꾸만 살피고 들여다보니 정말 ‘사랑이’가 아닌 다른 모습, 다른 천사더군요.


머리 색깔만 다른 게 아니고 얼굴 모습도 그리고 나이도 아주 어려 보여서 6살가량 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옷도 하얀 옷을 입고는 하얀 머리띠에 까만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눈동자도 우리 동양 사람처럼 아주 검은 초롱한 흑진주 눈동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정갈하고 정결한 느낌의 천사였습니다.


“앗! 주님, 그동안 정든 ‘사랑이’는 어디가고 얘는 누구래요? 정든 ‘사랑이’ 돌려주세요!”라고 물어보았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한 참을 기도하면서 영으로 그 의미를 살피니, 성령 안에서 그 연유에 대한 깨달음이랄까 가르침이 오더군요.


그것은 제가 다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마음과 영이 흐려졌기 때문에 새롭고 정결하게 되는 과정에 도움을 주시려고 사랑과 편안함과 포근함을 안겨주는 사랑이 대신에 이 작은 소녀 천사를 곁에 둔 것이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읽으시면 마치 동화와 같은 느낌이 드시겠지만, 말씀드린 대로 나이에 상관없이 한편 천성이 늘 아이 같은 면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제게는 이런 어린 모습의 천사들을 보내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런 현상이 처음이라 어쩌면 그냥 일종의 정신작용일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성령이 소멸하면 사라지는 등 여러 가지 현상으로 종합하여 본 결과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천사들은 우리들을 섬기라고, 곧 우리에게 유익과 도움을 위하여 보내신다고 기록하고 있지요.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이 말씀처럼 지금 제게 다시금 정결함과 거룩함의 회복이 필요하니까 주님께서 사랑과 포근함의 느낌을 안겨주는 ‘사랑이’ 대신에, 바라보면 하얀 머리띠, 하얀 옷, 흑진주 빛 까만 눈동자의 뒤에 제가 ‘정결이’로 이름지은 어린 천사를 곁에 보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의미를 깨닫고는 말씀과 기도와 물과 피와 성령으로 다시금 온전한 거룩함을 회복하려 애쓰며 다소 회복되니 언제 사라졌었느냐는 듯이 다시금 ‘사랑이’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언제나 말없이 곁에서 사랑과 포근함과 따뜻함을 전해주는 ‘사랑이’, 다시 만나니 너무도 반가웠습니다.


그 뒤에도 말씀대로 온전히 살면 ‘정결이’는 한 걸음 물러나 있고 ‘사랑이’가 곁에 가까이 있음이 보이고, 조금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띠꼼! ‘정결이’가 가까이 다가서곤 했습니다. 띠꼼! 정결이도 제일 어려보이고 귀엽긴 하지만, 제가 한편 말씀대로 잘 살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므로 다가오면 정결이도 “띠꼼!”, 저도 “띠꼼!”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하였지요.


주님께서 다시금 온전함과 거룩함의 회복을 위하여 곁에 다소의 부담으로 두시는 것처럼, 하는 행동도 ‘사랑이’와는 달리 정말 안아주고 얼려주고 봐주어야 하는 정말 어린아이처럼 행동도 다소 그런 편이더군요. 그런 일을 겪은 후로는 ‘사랑이’가 늘 곁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말씀대로 살려고 애쓴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애쓰며 늘 곁에 있는 ‘사랑이’를 영으로 지각하기도 하며 또 보기도 하며 한 동안 지냈습니다.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이 되지는 않는데 한편 영의 세계는 우리가 실제로 손을 잡고 악수를 하거나 할 수 없이 생각으로 하게 되듯이, 다소의 생각이랄까 그런 작용이 허용되더군요.


그래서 옆에 기대어 있게 하려면 그렇게 할 수 있고 얼굴을 마주하고 안아주려면 또 가능하고 그렇더군요.


어린 사람들의 아이들과는 달리 이 천사들은 그다지 말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입술을 쫑알거리며 따라하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찬양할 때입니다. 찬양을 드리면 따라서 부릅니다.


가끔 참 행복한 때는 피곤해서 누워서 찬양을 듣거나 부르고 있으면 마치 허공에 무대라도 펼쳐진 것처럼, 이 아기 천사들이 춤을 추곤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워십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찬양 따라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귀엽기도 하고 참 행복하기도 합니다.


제 2편의 이야기는 이 즈음에서 마칠까 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고 특별한 아픔의 상황 속에서 살아오고 살아가는 저를 위로하기 위한 주님의 개인적인 배려 같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영적으로 그냥 다소간의 오류도 있을 수도 있음을 말씀드리며, 공론화 하거나 어떤 객관적인 영적 현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님도 말씀드립니다.


다만 여러 가지 정황과 상황을 살펴볼 때 단순한 정신 작용 같은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일어나고 보여지는 현상이며, 특별한 아픔과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저를 향하신 주님의 배려요, 하늘의 위로인 듯싶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 개인에게도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위로의 경험들이 있겠지요. 그리고 앞으로 경험하시게 되겠지요.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 주시고 또한 생명을 아낌없이 주시고 이제는 우리 속에 직접 오셔서 거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 더구나 때때로 우리 각 개인에게 개인을 따라 특별한 다양한 위로들, 이러한 하늘의 넘치는 위로로써 환난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환난 가운데서도 능히 환난 당하는 자들을 또한 넉넉히 위로하게 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의사랑에 감사할 뿐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고후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계7: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출처 및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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