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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원리] 권세와 능력

초록 등불 2012. 2. 10. 20:21

 

  [영의 원리] 권세와 능력

 

성경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영적인 권능을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권세와 능력입니다.


여기서 권세라 함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에서 비롯되는 신분적 차원의 것을 말하고, 능력은 성령의 불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자연적인 인간이 어떤 초자연적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하지요.


벤허라는 영화를 보면 노예로 전락하여 군선의 노를 젓던 벤허가 전쟁 중 죽어가던 로마 장군을 살리게 되고 그로 인하여 부자의 인연을 맺으면서 그의 신분이 하루아침에 노예에서 로마의 시민권을 얻게 됨은 물론이고 높은 신분의 위치에 오르게 되지요.


그리고 그의 위치와 신분을 알려주는 반지를 손에 끼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자기 고향의 높은 지위에 있던 자신의 원수마저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요. 이러한 신분적 차원의 변화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권세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신분적 놀라운 변화에 대하여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성경의 한 부분이 에베소서에 나오지요.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본질상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을 따르며 본질상 하나님 앞에서 진노의 대상이요, 멸망의 대상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릴적에 부르던 찬양 중에 “예수님 권세, 내 권세”라는 가사가 있듯이 성경은 우리에게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권능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그 예수님의 권세를 동일하게 우리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권세입니다.


그리고 능력은 불과 빛과 바람의 속성을 한편 가지신 삼위의 한 분이신 성령님께서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가지게 되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능력을 말합니다. 협의적으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를 말할 것이고, 광의적으로는 생활의 은사 등을 포함한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말미암아 자연적인 상태에서 갖지 못했던 어떠한 능력을 소유하게 됨을 말합니다. 능력이란 곧 우리에게 덧입혀 주시는 성령의 능력이지요.


그렇다면 권세와 능력 가운데 어떤 것이 소중할까요? 여러분은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엇을 선택하고 싶으신가요?


영이신 하나님과 그 세계와 성령의 다양한 역사와 현상에 대해서는 한편 많은 부분 성경에서 세세하게 알려주지 않는 부분도 많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그토록 많이 언급되는 사단과 그 수하인 귀신에 대해서도 아주 부분적으로 말씀하고 있고, 또한 우군이며 천천이며 만만인 천사의 존재 속성이나 계급이나 조직이나 활동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아가 성령의 임재와 나타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너무도 흔하게 경험함으로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이제는 상식선에서 받아들이는 육적 감각의 다양한 것들, 열감, 냉감, 전류의 느낌, 부양감, 포근함, 강렬한 빛, 시원한 느낌, 쓰러짐 등의 다양한 역사에 대해서는 성경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축사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육적 현상에 대해서도 그다지 많은 기록이 없지요.


가장 흔하게 경험하는 육적 감각인 열감에 대해서조차도 구약시대의 사울이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더워 옷을 벗고 벌거벗었다는 기록이 나오긴 하지만, 아주 부분적이지요. 한편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일이라 하나님의 계시하심이 없이 결코 온전히 알아내고 밝혀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영적인 많은 부분이 우리에게 연구와 숙제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늘 시대별로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라 더욱 그러합니다.


어쨌거나 성령의 임재시 우리가 가장 흔히 경험하는 것 중의 하나는 열감, 곧 몸의 뜨거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도 사람마다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부위가 다릅니다.


결국 온 몸에 불이 임하는 것이지만 특별히 더욱 강하게 느끼는 부위가 일반적으로는 손과 팔 부위입니다. 그런데 부차적인 부위가 사람마다 다소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다리 부위에 강렬한 불의 느낌이 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등에 임하는 등 차이가 납니다.


물론 어떤 신체적인 구조의 차이 때문에 그렇게 다르게 임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한편 그런 불이 임하는 위치가 어떤 다른 영적인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도 없잖아 있습니다. 어떤 책을 보니 다리에 불이 임하면 뛰어 다니며 섬기거나 전도하라는 의미라고 나름 해석을 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일리가 있어도 보였습니다.


가령 신유나 축사 등의 능력을 행하여야 하는데, 팔이 아닌 다리에 불이 와 있는 것보다는 다리가 아닌 손과 팔에 강렬한 불을 느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안수하고 있는데 손이 뜨겁지 아니하고 발에 뜨거움을 느낀다면, 손이 뜨거움을 느끼는 것만 못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로 본다면 다리에 불이 임하였다는 것은 손이 아닌 다리로 무엇인가를 섬기라고 해석해봄직도 논리적으로 가능하지요.

영적 현상들도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과 어떤 유사성을 가지고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의 원리들로 영적인 일들에 대하여 이해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로 생각이 됩니다.

가령 빛은 지혜와 깨달음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영적 현상에서 지혜와 계시로 성령이 역사하실 때 우리는 종종 빛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지적인 것은 뜨거운 것보다 차가움에 가깝습니다. 냉철해야 하니까요. 영적인 역사에서도 이지적인 차분한 계시의 영이 임할 때는 뜨거움보다는 서늘함의 청량감을 느끼곤 하게 됩니다. 불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능력이나 어떤 힘입니다.

이러한 면을 살펴보면 성령의 불이 임하는 신체적 위치를 상식선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어느 정도 타탕성이 있는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하게 합니다.

손에 불이 임한다면 손으로 안수하거나 섬기거나 능력사역을 행하라는 의미 들 중 하나 이겠지요. 다리에 불이 임한다면 뛰어 다니며 복음을 전하거나 또는 구제 등의 섬김의 삶을 살라는 의미로 볼 수 있겠지요. 이마에 불이 임한다면 이는 권세와 위치의 상징이니 권세적인 의미와 공동체 내에서 어떤 리더의 역할을 부여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등에 불이 임한다면 가장 무거운 곳을 질 수 있는 곳이 등이니 감당해야 할 사명의 무게가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깨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슴에 임한다면 가슴은 사랑의 상징이니 누구보다 더 차원 깊은 사랑의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배에 임한다면 배는 권능을 의미하니 깊은 능력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냥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제가 한번 짐작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연구가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들의 공통분모를 찾아 어느 정도 정리된다면 영적인 현상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의 경우는 두 손과 팔에 불의 느낌과 전류의 느낌, 때로는 손을 들고 기도하면 팔의 무게가 많이 느껴지지 않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잡아 주었던 것처럼 누군가 손을 붙잡아 들어주는 것마냥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부양감과 드물게는 반대로 어떤 무게감이 임하고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겪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지요.


그런데 저는 그 다음 불이 임하는 부위가 머리부위, 그 중에서 특별히 이마에 불이 임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 이마에 불이 임하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라고 물어보니, “권세와 능력”이라는 내적 음성을 들려주시는데 능력보다는 권세적인 의미에 무게감을 주시며 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음성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성경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곧 이마에 인을 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계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그리고 더불어 생각해보니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을 하는 가장 일반적인 곳이 바로 이마였습니다. 군대를 생각해보면 물론 어깨나 팔 상단에 군대 내에서 자신의 위치적 신분을 알려주는 계급장을 달기도 하지만, 가장 상징적인 곳은 모자의 정면, 곧 이마 부분이지요. 그런 부분의 생각해보니 이마에 불이 임하면 불의 속성이 능력이니 능력도 부어주심을 의미하게지만, 권세적인 의미를 더 실어서 들려주신 주님의 음성이 다소 이해가 되고 수긍이 되더군요.


“아니, 목사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권세는 동일한 것이 아닐까요?”라고 질문하실 수 있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권능의 기름부어주심, 곧 직임과 은사도 각 사람을 따라 다를뿐더러 능력의 나타남도 차이가 있다는 현실의 명백한 증거들 앞에서, 권세이던지 능력이던지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차원에서 우리의 영적인 삶의 정도에 따라 한편 성령의 나타나심과 역사하심이 권세적인 부분이던, 능력적인 부분이던 차이가 있음을 추정하고 결론지을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권세란 신분적인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신분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펴보면 우리의 행위와 많은 연관이 있음을 우리의 삶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나라의 왕자가 왕자라는 신분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 신분적 권세를 인정해 주겠지만, 만약 그가 입술에는 욕설을 달고 살며, 술과 도박이나 허랑방탕한 사람을 마구 살면서 그 신분에 걸맞지 않는 삶을 계속 산다면 사람들이 점점 그를 왕자로 인정하지도 않으려 할 것이며 그 신분적 권세도 조금씩 무시해 버리려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정치 고위 관료가 실상 높은 위치에 있지만, 만약 그가 왕과 관계가 악화되어 미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실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 것입니다. 곧 신분이 낮아질 것이고 아니면 귀양살이도 갈지 모르니 종이호랑이처럼 여기겠지요.


하지만 신분은 비록 낮더라도 왕의 측근에서 왕을 모시는 내시나 혹은 경호무사라면 때로는 외관적 신분은 낮아도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왕 가까이 있으며 왕의 사랑과 총애와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도 이와 같은 이치로 두 가지 차원, 하나는 우리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성결한 삶과 그리고 하나님과 누리는 친말감의 정도에 따라서 권세의 정도가 결정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의 삶에 따라 당신과의 친밀함 정도를 허락하시므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거룩하고 성결된 삶에 우리의 권세의 정도가 결정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신앙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하여 한편 신앙공동체의 영적 질서에 따라 권세를 주시기도 하시는 부분도 있겠지만, 또한 많은 부분 그러한 인간적인 질서가 아닌 기도하고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정도에 따라 권세를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목회자 반열의 분들이 쫓지 못하는 귀신을 어린 학생이 말 한마디로 쫓는 경우도 생기는 것입니다.


권세는 이처럼 신분과 위치에 관한 것이라면 능력은 한편 성령 안에서 어둠의 세력을 제압하는 실제적인 화력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실상 권세와 능력은 비행기의 양 날개와 같아서 동시에 소유하고 공존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경찰관이나 군인이 효율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잘 감당하려면 부여받는 신분적 위치인 권세도 필요하지만, 또한 신분에 걸맞은 화력도 소지를 해야만 하니까요.


권세는 신분과 위치와 관련된 것으로 선포의 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곧 말의 권세이며 선포의 권세이지요. 왕의 선포와 장군의 선포와 천부장의 선포와 백부장의 선포가 다른 것은 신분적 위치, 곧 권세의 차이인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러한 선포에 불응하고 덤비는 사람이나 무리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제압하기 위하여 권세에 따르는 능력을 실제적으로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세와 능력은 동시에 다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두 가지로 사역을 하셨고 제자들에게 이 두 가지를 다 덧입혀 주시며 사역을 하라 명하셨지요.


눅4: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눅9: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요? 두 가지 다 필요하다는 것은 맞지만 정작 중요한 본질적인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권세입니다. 이는 경찰관이 무기를 소지하기 이전에 먼저 경찰관이라는 합법적인 계급장을 달아야 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있어서 거꾸로 많이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에서 비롯되는 영성적 차원의 권세는 소홀히 하고, 오직 은사 능력만을 추구하는 경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다운, 말씀대로 살아가는 제대로 된 삶의 모습과 격리된 은사와 능력은, 마치 군인이나 경찰관이 그 신분을 상실하였는데도 여전히 무기를 가지고 사용하는 것과 같은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나님의 자녀 된 하늘 왕자와 공주로서의 신분에 걸맞은 삶을 살지는 않으며, 도리어 주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정과 욕심의 육을 좇아 그 능력을 그릇되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무서운 경종의 말씀이지요. 많은 것을 맡긴 자에게 많은 것을 찾으려 하실 테인데,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남기지 못하고 도리어 불법을 행하였다면 받을 형벌의 엄함은 어떠하겠습니까?

성경은 놀랍게도 우리에게 정말 가공하다고 표현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권세와 능력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신 주님의 권세와 능력이 어떠하였습니까? 군대 귀신도 말씀 한 마디로 내어 쫓으시고, 바람과 풍랑도 말없이 순종하는 권세였으며, 병든자는 물론이고 죽은 자도 살리셨으며, 그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는 능력이 온 몸에서 흘러 나오셨고, 오병이어의 기적과 물 위로 걸으시는 능력 등 얼마나 놀라운 권세와 능력을 삶을 사셨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말씀 안에, 하나님 안에 거하면 이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당신의 권세가 곧 우리가 권세가 될 것이며,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저와 여러분 더욱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려고 애쓰며 기도와 말씀의 성실한 경건의 삶을 통하여 이러한 권세와 능력을 부여받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쓰임받는 귀한 그릇들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늘은 권세와 능력에 대하여 나름 부족한 저의 견해로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바 권세와 능력에 대한 더 깊은 이해는 스스로 더욱 찾아 살펴 가시며 배워 가시고, 많은 사람들이 본질이며 영성적 차원인 권세는 다소 등한시 하고, 은사와 능력만을 추구하는 것이 그릇된 것이며, 불법을 행하는 자리에 떨어질 수 있음을 알아,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직임을 효율적으로 감당하려면 성령의 은사와 능력도 사모하여야 하지만, 늘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하는 권세가 더욱 본질이요, 근원적인 것을 우리 모두 가슴 깊이 기억하고 행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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