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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원리] 호흡, 한편 영의 통로입니다

초록 등불 2012. 2. 8. 17:49

 

  [영의 원리] 호흡, 한편 영의 통로입니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 바지를 입는 것처럼, 나는 다시 내 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몸 밖으로 나갔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는데, 그것은 입을 통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2:7)


위의 두 가지 중 위의 언급된 글은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나는 환상을 믿습니다”라는 책에서 죽음과 회생을 거듭 경험하며 어떻게 영이 자신의 몸에 들어가고 나가는지에 대하여 쓰신 글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글은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 창조에 대한 기사이지요.


그리고 이와 비슷한 기사가 신약 성경에서도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만나시고 그 앞에서 행하신 일과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20:22)


여기서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의 생기란 곧 우리에게 영을 부어주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숨을 내쉬면서 말씀하신 성령도 곧 영이시고, 해긴 목사님의 경험에서 육체를 벗어났다 덧입는 과정을 겪은 것도 영일진대, 영의 통로는 곧 코와 입, 즉 우리의 호흡의 통로가 물론 호흡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영의 통로인 것을 어느 정도의 확신으로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나아가 많은 분들이 경험하시겠지만 우리가 기도하다가 우리 속에서 나쁜 영이나 기운이 빠져나갈 때의 가장 흔한 육체적 현상이 구토, 기침 등의 현상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릴 때 구토 등의 증상이 일어나면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악한 영에 눌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현상들도 한편 호흡이 영의 통로인 것을 말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쉼 쉬는 호흡은 단순히 공기를 들이마시거나 내 쉬는 것 이상의 작용이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분명 자연적인 것은 아닌데 몸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영적인 어떤 힘과 에너지의 흐름을 기(氣)로 명명하였는데, 그 기를 받아들이고 쌓는 것 또한 단전호흡이라고 하는 호흡법을 이용하지요. 이러한 것도 호흡이 단순히 호흡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영적인 에너지의 통로가 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한편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단전호흡을 통한 기 수련은 그 뿌리가 선도사상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식으로 재 소화나 구성을 하지 않고 수련을 한다면 무지 중에 악한 영의 흐름과 접촉하기 때문에 삼가야 하는 점은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의하여야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아주 어린아이가 물에 빠지거나 혹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을 모르고 발을 내딛어도 빠지거나 떨어져 어려움을 겪듯이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모르고 접하여도 그곳이나 그것이 배후에 악한 영의 역사나 뿌리를 둔 것이라면 부지중에 우리는 그것의 영향을 받게 되고, 때로는 그러한 것으로 인하여 악한 영의 들림의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는 말씀처럼 영에 관한 일에도 우리는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하지만 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도 더 귀중한 영적생명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호흡 그 자체가 영의 통로가 무조건 될까요? 우리는 언제나 자연적으로 숨을 들이 마시고 내 쉽니다. 그러면 언제나 우리는 영을 마시고 내어 보내는 영의 통로로써 호흡이 한편 이용하고 있을까요?


물론 그러한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예배 시간에 자꾸 하품이 나오거나 집회 시간 때 구토나 하품 등이 빈번히 나오는 것은 무의식 중 영의 세력충돌로 인하여 악한 영이 나가는 현상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호흡이 무의식 중 영의 통로가 되는 셈이지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호흡이 영의 통로가 되게 하려면 조건은 우리가 그것을 영의 통로로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영의 세계는 보이지 믿음의 세계, 마음의 세계, 곧 생각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믿음, 곧 마음을 실을 때에 그 말씀이 생명이 되고 역사를 하게 되듯이, 내가 마음으로 주를 사랑하면 영적 세계에서는 그것이 실상이 되듯이, 호흡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호흡이 영의 통로라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합할 때 진정한 영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생기는 히브리어로 “루아흐”라고 하는데 그 뜻이 바로 “호흡”, “바람”, “기운”, “영”등의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이것은 헬라어로 번역된 것이 우리가 자주 듣는 “프뉴마”라는 용어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거듭남에 관한 대화 가운데 “바람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할 때의 바람은 구약의 “루아흐”와 신약의 동의어인 “프뉴마”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바람을 의미하는 헬라더 단어인 “아네모스”라는 다른 의미, 곧 자연적인 바람이 아닌 영적인 바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이러한 영의 거듭남을 주님이 설명하실 때 자연적인 바람이 아닌 “루아흐”적 개념인 “프뉴마”의 의미로 사용하신 것도, 영은 곧 숨결이며 호흡과 통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호흡이라는 것 자체가 영의 흐름과 본래 연관이 깊은 것을 우리는 여러 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그 자체가 그러할진대 그곳에 영의 통로라는 우리의 마음을 실어서 호흡을 한다면 더욱 강한 영의 통로가 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호흡하면 좋을까요?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그것의 이치는 단순합니다. 호흡을 통하여 몸에 유익한 산소는 들이마시고 나쁜 이산화탄소 등을 내뿜어 버리듯이, 좋은 영은 들이 마시고 나쁜 영은 내어보내는 마음으로 숨을 쉰다면 되겠지요.


간단하게 말하면 성령을 들이마신다고 생각하고 사모하며 숨을 들이 마시고,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이나 감정들이나 상처 등은 내어 보낸다고 생각하면서 숨을 쉬면 실제적으로 그러한 영적인 흐름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흡이 영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는 것과 호흡처럼 쉬지 말고 기도하자는 방법이 결합되어서 오랫동안 하나의 영성수련법으로 전해져 온 것이 우리가 자주 듣는 호흡기도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기원이 5세기 경일만큼 뿌리가 깊습니다.


그러던 이것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러시아의 한 무명 청년이 어떻게 하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사람의 생명활동 중 쉬지 않고 하는 것이 호흡임에 착안, 간단한 기도문을 호흡을 할 때마다 쉬지 않고 하면서 한없는 영적인 생명과 은혜를 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기도문을 호흡의 리듬에 맞추어서 하루 몇 천 번씩 되뇌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내면서 점점 횟수를 늘려가게 되고 마침내는 완전히 몸에 익고 젖고 배여서, 의식하지 않아도 마음이 저절로 기도하는 경지에 도달, 그 가운데 한없는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고 누리면서 알려지게 된 것이 호흡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쉼과 충전을 위한 음적 묵상형의 기도 중에서 제가 따로 이 호흡과 관련된 기도를 따로 작성한 것은 호흡은 그 자체가 영의 흐름이라는 자체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산책을 자주 하는 사람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도하면서 “걸음기도”라고 이름 지어 부를 수도 있고, 운전이 직업인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기도한다면 “운전기도”라고 이름을 지어 부를 수 있겠지만, 호흡과 관련되어 호흡기도라고 이름 붙여진 기도가 그런 류와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호흡자체가 영의흐름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 청년처럼 간단한 자신만의 기도문, 가령 “성령 충만”, “사랑 충만”, “주님 사랑” 등 다양하게 단순한 문장으로 호흡을 하면서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 해 보셔도 좋겠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면 때때로 침묵형의 기도를 드리고 싶을 때 편안하게 자리에 누워서 호흡의 리듬에 맞추어서 기도하면서 호흡을 들이킬 때는 좋은 영, 곧 성령을 마신다는 마음과 사모함으로 들이마시고, 숨을 내쉴 때는 악한 영과 나쁜 생각과 감정 등을 내어 보내신다는 마음을 담아서 하시면 한층 효과적인 기도가 되며, 또 한편 육체의 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축사사역이나 또는 개인적으로 자신이나 마음속에서 악한 영이나 부정적인 감정이나 상처 등을 내어보내고 싶을 때는 기도하면서 숨을 길게 내어보내는 마음으로 내쉬면 도움이 됩니다. 영성은사 사역원 등에서 많이 활용하는 방법이지요.


앞서 설명 드린 영혼육의 상호 에너지 교류 원리에서 육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하면 마음도 영도 밝아지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듯이 호흡도 감정이나 기분의 여하에 따라서, 가령 침체되고 우울할 때는 운동도 하여 몸도 활성화 하시고 기도할 때도 호흡도 다소 강하게 하시면 도움이 될 것이고, 피곤하거나 흥분되었을 때는 휴식을 취하시면서 고요하고 잔잔하게 호흡하여 응용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호흡자체에 마음을 실어서 성령을 사모하며 들이마시고 악한 기운과 상한 감정과 상처 등은 내어보낸다는 생각으로 호흡을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호흡법 자체만 두고 생각하면 가능하면 오랫동안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또 완전히 숨을 내 뿜어 주는 것이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폐의 공간까지 다 활용하게 하여 건강에 좋다고 하며, 일반적인 흉식 호흡이 아닌 배로 하는 복식 호흡이 좋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 좋은 호흡법은 태식호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태식호흡이란 태아가 배꼽으로 숨을 쉬듯 하복부를 이용해 느리고 길게 숨을 쉬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회음부에 힘을 주고 코끝에 털을 가져다가 놓아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고요하고 잔잔하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인데, 다소간의 연습이 되지 않으면 쉽지는 않겠지요. 또 숨이 들이쉬고 마실 때 잠깐 멈추어보라는 등 많은 이론들이 있는데, 전 그냥 편하게 가벼운 복식 호흡을 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누워 쉬곤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그냥 나가서 뛰고 걷고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양적인 기도에 속하는 부르짖는 기도와 구성기도와 방언 기도, 그리고 음적인 묵상형 기도에 속하는 다양한 묵상, 관상, 집중, 이미지, 고요의 기도, 그리고 호흡기도 등을 통하여, 기도는 영의 호흡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언제나 기도 생활에 성실하여 믿음과 경건의 삶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이면 싶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겔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출처 및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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