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 사단과 그 나라에 속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한편 성경은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우리를 돕는 아군인 천사의 이야기로 또한 가득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단이나 그 나라에 속한 존재의 이야기는 주로 하고 또한 말하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도리어 더욱 그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군이요, 빛의 존재인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다소 이상하게 여기고 도외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서 사단과 그 나라에 속한 존재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에 속한 그 수가 천천이요, 만만인 우리의 아군이요, 한편 돕는 자요, 우리를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천사의 이야기도 이제는 활발히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천사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다소 도외시 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 글은 쓰지 않으려다가 이제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별로 좋지도 않은 사단과 그 무리의 이야기만 나눌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의 아군이요, 돕고 섬기는 빛의 존재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여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일컬어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만군은 하나님 아래 천사들의 수없이 많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성경을 연구한 성경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천사들의 무리 중 1/3이 타락하여 사단과 그 무리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천사의 수는 그들보다 갑절인 셈이지요. 또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그 이후에도 수없는 천사를 또 다시 지으셨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요. 어쨌거나 우리와 함께 하는 빛의 존재들인 천사들이 사단과 그 무리들보다 더욱 많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노리며 우리를 공격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항상 우리 곁에서 기회를 엿보는 사단과 그 무리들도 있지만, 한편 우리를 돕고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천사들도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가 더욱 많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단과 그 무리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빛의 존재들이 더욱 우리 곁에 많음입니다.
지금부터 쓰는 이 글은 저의 특별한 경험이요,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객관화나 공론화 하지는 마시고, 그냥 한편 아픔 많은 삶을 살아온 주님의 특별한 위로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적인 경험이 그러한바 오류의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간간 영적인 존재들을 보게 하신 이후로 사단과 그 무리의 형상도 보이지만 한편 천사라고 성령 안에서 지각되는 존재들의 임재도 수시로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형상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으로 들어본 날 환상 가운데 천국의 백성과 무리들의 환송을 받는 듯한 한 소녀 천사가 꽃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날 저는 그것이 그냥 환상, 곧 하나의 상징인 그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천사 소녀의 존재가 제 곁에 와 있음이 느껴지고 간간 보였습니다. 어떻게 보이는지 예를 들어 설명을 해 드리자만 그냥 제 앞에 얇은 물로 된 막이 있는데 무슨 사물의 풍경이 엷게 비취듯 그렇게 보였습니다. 3차원 입체 홀로그램 영상처럼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 어린 소녀 천사의 모습은 사랑과 포근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깊고 따뜻한 눈빛과 모습, 그리고 아이보리색의 부담스럽지 않은 색깔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있습니다. 아주 성정도 조용하고 고요하며 그냥 곁에 있으면 따뜻함과 마음의 포근함이 전해져 옵니다.
개인적인 삶의 아픔이라 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저의 생의 아픔을 간결하게 표현하면 두 가지,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고 깊은 아픔입니다.
이러한 이 소녀 천사의 경험은 그 두 가지 중 하나인 언제나 혼자인 깊은 외로움을 달래주시기 위한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인 깊은 아픔도 달래 주시기 위하여 또한 행하셨는데 이는 조금 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 안에서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주님은 때때로 성령을 부어 주셔서 새 힘을 주시기도 하시고, 또한 사람을 통하여 위로도 하시지만, 때로 극한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는 주님의 특별한 방법으로 위로하시기도 하십니다.
사도바울을 죄수로 실어가던 배가 파선하였을 때 주님은 그 어려움 속에서 바울이 견뎌낼 수 있도록 천사를 보내어 위로하였습니다. 그리고 옥중에서 사도들을 천사들을 보내어 이끌어 내시기도 하시고, 로뎀나무 아래 엘리야에게도 천사를 보내어 위로하시고 새 힘을 얻게도 하셨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때에도 그러하셨지요. 이렇듯 성경은 곳곳에 주님의 특별한 방법의 방법 중의 하나인 천사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제게 일어난 이러한 경험도 아마도 한편 아픔 많은 저의 삶을 위로하시려는 주님의 배려라고 생각이 됩니다. 주님께 감사 드릴 뿐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처음이라 혹시 나의 상상이나 그런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분별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로 나의 상상이 아닌, 영적 세계의 실제임을 결론지었습니다.
그것은 첫째 성령을 소멸하거나 죄를 지으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며 사라집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다시 돌이켜 기름부으심을 받으면 다시 보입니다.
아마도 곁에 여전히 천상의 존재는 있으나 저의 영이 어두워져서 보이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험으로 더불어 영적인 세계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려면 무엇보다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둘째 상상이라면 눈을 감으면 더 잘 될 텐데,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아 정말 지금까지 본 모습을 상상해서 그려내야 하고, 눈을 떠야 보입니다.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아 정말 상상을 해야 하고 눈을 떠야만 보이니 결코 상상은 아닌 것이지요.
셋째 상상이라면 내가 상상하고 생각하는데로 움직이거나 행동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천사니 하늘은 당연히 날겠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모습을 보려고 해도, 이 천사는 날지는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대로 그 모습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영의 세계는 거리의 개념은 없는지 보려고 마음먹고 영으로 바라보면 바라보는 그곳에 언제나 보입니다. 하지만 천사는 동시에 여러 곳에 있을 수 없는지 여러 곳에서 동시에 있지는 않습니다. 한 곳에서만 보입니다. 그러나 이 천사는 언제나 제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천상의 존재가 주는 느낌은 세상의 존재가 주는 느낌과는 다릅니다. 거룩함과 정갈함과 고요함과 온유함과 따뜻함과 사랑을 전해줍니다. 세상의 불의하고 더러운 그런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세상의 나이로 치면 12살 가령으로 보이는 소녀 천사지만, 가볍게 많이 웃지도 않으며 말도 그리 많지 않으며 언제나 고요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저의 영과 마음에 따뜻함과 포근함을 전해 줍니다.
웃어도 조용히 웃으며 가끔 제가 많이 아파할 때는 조용히 눈물을 한 두 방울 흘리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루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에 “너는 하늘의 존재인 천사인데 아픔이 무엇인지 아니?”라고 물어보니 “아픔이 무엇인지 안다”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그래서 가만 성경을 생각해보니 이 땅에서 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천사들과 함께 기뻐하신다는 말씀, 비록 이 땅에서의 기쁨과 슬픔과는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닌 영적 차원의 것이겠지만, 하나님도 그리고 그 나라에 속한 존재들도 기쁨과 슬픔은 느끼고 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 언제나 홀로였으며 홀로인 삶, 때로 깊은 고독과 외로움의 차가운 냇물이 가슴골을 흐르면, 이 천사를 바라보며 영으로 꼬옥 안고 있거나 가만히 기대어 있으면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따뜻함과 포근함이 조금씩 전해져와 마음이 조금씩 회복이 되고 치유가 됩니다. 이 때 저는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 곁에서 등을 기대고 있거나 조용히 있습니다. 그래서 무료하거나 심심하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보니 “영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것은 없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영적 세계에서는 무료하거나 심심하거나 그런 것은 없나 봅니다.
물론 이 천사는 모습과 함께 보일 뿐, 기도를 하다보면 다른 영적인 존재들의 임재, 곧 어린 소녀의 천사가 아닌 사람으로 치면 장성한 어른 같은 천사의 임재나 때로는 주님의 임재가 영으로 지각되고 느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모습이 온전히 보이는 천사는 이 소녀천사를 비롯해서 다른 네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 중에 셋은 다 아이의 모습이고, 한 천사만 장성한 청년의 모습이었습니다. 차차 하나씩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한편 성정이 아이 같은 면이 많아서 그런지 환상 가운데서나 항상 어린 아이의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오래 전 청년시절에 주님께서 환상을 통하여 저를 부르실 때 온 천사도 아기천사 셋이었습니다. 늘 어린아이나 어린 소년 소녀 천사들의 모습이 주로 보입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천사의 경험, 특별이 이 소녀천사를 통한 경험은 언제나 홀로였고 혼자인 저의 깊은 고독과 외로운 삶의 위로하시려는 주님의 특별한 위로같이 지금은 생각되고 그렇게 알고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언제나 곁에서 따뜻함과 포근감과 위로를 전해 줍니다. 모습도 그러하고 행동도 그러하고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름을 “사랑이”로 지었습니다. 가끔은 기도하고 있으면 장미처럼 보이는 꽃송이를 얼굴 앞으로 가져와 위로를 전해 주기도 합니다.
하루는 목욕을 하고 있는데 뭔가를 줍니다. 그래서 “비누니?”라고 물어보니 도리도리! “사랑”이라고만 간단히 이야기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아이와는 행동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릅니다. 언제나 잔잔하고 고요하고 평화롭고 온유한 모습입니다.
제가 본 이 소녀 천사의 가장 예쁜 모습은, 나들이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하다가 어느 사거리 신호등에서 쉬고 있는데, 이 소녀 천사가 아이보리색 옷 대신에 연분홍의 옷을 입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냥 연분홍 옷이 아니라 형광의 빛이 발하는 진달래빛 연분홍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한번 이러한 옷은 상상이라도 해 보셨나요? 저도 한번도 상상도 해 본적이 없는 모습, 연분홍 형광의 빛이 발하는 천상의 옷을 입은 것이 보였는데, 너무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습니다. 너무도 예쁠 뿐만 아니라 환상의 세계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이와 같을 것이요, 더욱 아름답겠지요.
오늘은 이쯤에서 ‘주님의 특별한 위로, 천사 이야기’ 일편을 마무리 합니다. 다 쓰려면 너무도 길어지니까요. 가끔 하나씩 이어가며 말씀드리겠습니다.
설명절 무슨 말씀을 전할까 생각하다가, “그래, 그래도 한가위와 아울러 우리네 큰 명절인 설날, 우리 곁에 빛의 존재인 천사들이 가득함을 말씀드리자. 명절의 기쁨과 함께 마음의 또한 기쁨이 될게야” 라는 마음에서 천사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만 조금은 망설였지요. 왜냐하면 이상하게도 성경 속에서는 천사의 이야기가 가득한데, 그리고 그 수도 더욱 많은데, 사단과 그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하면서도 천사의 이야기만 하면 조금은 도외시하니까요.
다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의 개인적인 깊은 아픈 상황을 위로하시고 어루만져 주시려는 주님의 개인적인 위로인 듯 하니 공론화하거나 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단과 그 무리들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우리 곁을 맴도나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빛의 존재들인 천사 또한 우리를 돕고 섬기며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한편 우리 곁에 수없이 있습니다. 우리 곁에는 늘 하나님의 천사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지요.
마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 나라에 속한 빛의 존재들을 바라보며 항상 기뻐하십시요. 감사하십시요. 그리고 사단과 그 무리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그들은 이미 패한 무리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 이토록 아름다운 빛의 존재인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를 위로하기까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언제나 기뻐하고 기뻐하십시요. 샬롬 !
마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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