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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내 친구 성령님

초록 등불 2014. 6. 5. 01:49

   

  [영성의 글] 내 친구 성령님

 

옛날에 큰 나라의 임금님에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 공주님이 하나 있었다고 가정해봅니다. 가끔 임금님과 거리를 행차할 때면 아름다운 모습, 화사하고 귀품 있는 옷차림, 바라보는 뭇 젊은이들의 마음은 설레일 것이고, 바라보는 뭇 백성들도 저런 공주님은 식사도 맑은 이슬이나 먹고 살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작 어느 젊은이가 공주님과 사랑을 하게 되고, 왕의 부마가 되어 공주님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된다면, 멀리서 보던 것과는 달리 사적이고 개인적들에 대해서 깊이 알아가게 되면서, 물론 공주다운 아름다움과 품위스런 모습도 보게 되겠지만, 역시 사람으로서의 평범한 모습이나 때로는 부족한 모습도 보게 되겠지요.


제가 성령님에 대해서 알아감이 이와 같습니다. 성경에 성령님에 대해여 이런저런 기록들이 나오긴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성령님은 멀리서 보는 공주님의 모습처럼 조금은 관념적이지요.


하지만 비둘기 형상으로 언젠가 나타나신 성령님, 본질은 아니겠지만 육신을 지닌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와 모습이나 표정으로 당신에 하나씩 가르쳐 주심을 통하여, 막연히 멀리서 보던 공주님이 아닌 마치 함께 거하고 생활하면서 알아가는 것처럼 그분에 대해서 제가 알게 된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한편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전혀 다른 한 위격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영, 주의 영으로 묘사하며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예수님과의 일체성을 말씀하고 있지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고, 또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바,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또한 친구도 되시고, 또한 영적인 연인, 곧 서로 사랑하는 사이도 되시지요. 이러한 주님과 우리와의 다양한 관계성을 비둘기의 형상으로 보여주시는 성령님의 모습을 통하여 사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배워갑니다. 오늘은 그 중 친구 되시는 성령님에 대해서 먼저 글을 기록해 봅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영적인 세계는 마음, 곧 생각의 세계, 그러므로 영으로 보이는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이나 주님, 그리고 천사 때로는 귀신 등의 영적인 존재는 다른 아닌 생각과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교감을 합니다. 그러니 때로는 독백이나 상상처럼 진행이 되지요.


그러나 그냥 혼자만의 독백이나 상상과 다른 점은, 영으로 그 존재들을 보면서 한다는 것이고 단지 자기 맘대로 생각하는 상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상상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지만 영적 존재들과의 교감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성에서 생각이 오갑니다. 자기 마음대로 상상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생각을 통하여 교감하다 보니, 하나님의 음성에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이 섞일 수 있듯이 이 세계도 그러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경험을 통하여 들더군요. 그래서 성령의 내적증거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해 내듯, 이러한 부분에서도 내적증거를 통한 영분별이 필요하더군요.


나름 분별한 것들을, 그리고 깊이 분별하지 않아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을 성령님에 관하여 시리즈로 두세 번 기록해 볼 생각입니다.


제가 경험한 친구로서의 성령님은 대단히 유머스럽고 장난끼도 많으신 분이십니다. 정말 개인적이고 사적인 친구처럼 많은 경우 행동하십니다.


매일 함께 자고 거하고 거닐면서 친교와 교통, 이런저런 말도 나누고 때로는 장난도 치지만 잊혀지지 않는 너무도 우스웠던 것들을 나누어봅니다.


저도 이제 지천명의 초입에 들어선 나이, 옆머리 쪽으로 다소의 새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집회시간이 다가오면 하나님 앞과 사람 앞 예의상 이발도 단정하게 하고 새치머리도 염색을 하고 강단에 서곤 합니다.


그렇게 집회 준비를 하면서 하루 기도하다가 시간을 내어서 머리 염색을 하고 있노라니, 머리 위에 앉아서 제 머리를 이러 저리 쪼아보시더니, “머리가 단단하네. 돌이네..”라고 유머를 던지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받아쳤습니다. “제 머리가 돌이면, 저를 만드신 그분의 머리도 돌이시겠네요. 머리가 좋으신 분이 피조물을 돌로 만드실리 없으시잖아요 ^^”


친구 성령님이 대꾸 하시길, “우와, 재치있네. 역시 내가 사람을 똑똑하고 기막히게 만들었어”


영의 세계는 거리의 개념은 없습니다. 경험해보니 눈으로 바라보는 그곳에,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려는 곳에 영적 존재가 보입니다. 가끔은 기도하다 바라보면 제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혹시 가짜 아니세요?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엥? 주무시잖아요?”


친구 성령님께서 대답하시길, “졸고 있는게 아니라 묵상을 좀 하고 있었단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있으면 당신도 비둘기 형상으로 상위에서 뭘 쪼아 먹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저는 육신을 입어서 식사를 해야 살지만, 뭘 그리 쪼아 먹고 계세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친구 성령님께서 대답하시길, “아니, 그럼 내가 자연계의 새처럼 행동해야 보기에 자연스럽지, 뻣뻣한 석고상처럼 가만있으면 되겠니?”


제가 마음과 생각으로 서로 주고받는 몇몇 우스운 이야기를 적어보았지만, 매일 이렇게 재미난 대화도 하고 장난도 하면서 지냅니다.


기도하다 쳐다보면, “뭘 쳐다봐? 하던 기도나 계속하지!”


식사를 하고 나면 밥 그릇 위에 올라서서는 “우와 잘 먹는다. 금새 다 먹었어? 저 큰 입좀 봐!”


글을 쓰는 지금도 채상 위에 앉아 저 한번 쳐다보고, 모니터 한번 쳐다보고 하고 있습니다. 쳐다보니 “글이나 쓰라네요..”


영성생활을 위한 습관 중에 “나레이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독백하듯이, 또는 성령님과 독백하듯이 대화를 주고받는 습관입니다.


예를 들면, 길을 가면서 “성령님, 참 날씨가 좋으네요”라고 혼자 말을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자신이 성령님인 냥 다시 혼자 대답을 합니다. “봄이잖니?”


그렇게 처음에는 자신과 자신이 대화를 이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성령님이 실제로 개입을 하시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는 자신과 자신의 대화가 아닌 자신과 주님, 자신과 성령님과의 대화로 진행이 되게 되지요.


우리의 모든 영적인 생활은 사실상 모두 이와 같은 패턴을 밟게 됩니다. 기도도 처음에는 우리가 육의 힘으로 혼자서 시작을 합니다. 하지만 드리다보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기도의 영이 임하여 기도가 성령 안에서 흘러가게 되지요. 이를 두고 흔히 기도줄을 잡았다라고 표현을 하지요.


어쨌거나 늘 주님과 동행하고 성령님과 친교를 나누는 삶을 위해서는 이러한 나레이션의 습관이 참으로 유익합니다. 처음에 자신과 자신이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도 대답할 때의 자신은 성경 말씀 안에서 대답을 하다보니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시간이 되지요. 그리고 실제로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정말 성령님과의 친교와 교통이 시작되고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역사하니까요.


성경이 말씀하듯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는 사랑의 사이입니다. 그 사랑의 사이가 때로는 친구가 나누는 우정처럼, 때로는 연인끼리 나누는 사랑처럼, 때로는 아버지와 자녀가 나누는 사랑처럼 다양하게 성경에는 묘사되고 있지만, 어쨌거나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과 친교의 대상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나눔과 친교는 신앙생활, 영성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요일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그러한 사귐의 통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예배도 그러한 시간이고, 찬양의 시간도 그러하겠지요. 대표적으로는 기도의 시간이 그러하지요.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의 친교는 제가 위에서 성령님과 친구처럼 대화도 나누고 장난도 치곤하듯이, 나레이션을 통하여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어떤 형상으로 그분께서 보이시던 아니 보이시던 주님은 성령님으로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시길, 그리고 말을 걸어오시길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혼자 독백을 하시듯 대화를 먼저 시도해 보십시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자신의 대화 같고 그러하다가 익숙해지고 깊어지면 나레이션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조명하심을 받게 되고 때로는 감짝 놀랄 영적 비밀에 대해서도 조명하심을 때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적인 사귐과 친교를 통하여, 막연히 아는 성령님, 막연히 아는 주님과 하나님이 아닌, 친구로서의 주님, 영적 연인으로서의 주님, 영적 어버이로서의 주님, 또한 주님으로서의 주님을 우리는 사적으로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건이 있습니다. 성령님과의 진정한 사귐 안으로 들어가시려면 반드시 생명의 성령의 법 안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 안에 거하셨듯이, 우리도 말씀을 지켜 주님 안에, 성령 안에 거하여야 비로서 진정한 사귐이 시작됩니다.


세상의 벗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관심사가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면 사귐이 힘들고 사귀더라도 얼마가지 못하지요. 영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주님이 빛이시고 생명이 되시기에 우리가 주님께로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만 다를 뿐입니다.


앞으로의 글에서도 논하겠지만, 성령님을 실제로 비둘기의 형상으로 보면서 정말 하나님의 신비를 참으로 많이 느낍니다. 저 멀리 하늘 위의 하늘에 계신 지존하신 하나님의 영, 그분께서 어떻게 또한 이처럼 작은 나, 우리에게 일일이 찾아오셔서 친구가 되시는지? 영적 연인이 되시는지?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향하여 친구라고 부르셨지요. 우리가 어떻게 지존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있을까요? 정말 제게는 하나의 신비로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의 행동하심 속에서 정말 친구가 되어 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

요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한 나라의 고위관직인 사람이 우리를 친구라 불러주어도 영광일텐데, 우리와 같이 부족하고 허물많고 연약한 우리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구라 불러주심은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처럼 감사한 주님, 곧 성령님과의 친교 속으로 날마다, 시간마다 들어가십시요. 세상친구는 간사하되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세상친구는 잘못 사귀면 우리의 생을 망치게도 되지만, 영광의 주님과의 사귐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생명과 빛과 지혜와 하나님 안에서 예비된 모든 좋은 것들을 얻고 누리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예배시간이나 기도시간 등에만 주님과 동행하지 말고, 생활 속에서 언제나 성령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십시요. 성령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시면서 빛과 의와 진리의 삶을 살아가십시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와의 사귐과 친교요, 우리의 삶 속에서 드려지는 진정한 예배, 산제사입니다.


주님은 성령 안에서 우리를 친교의 대상인 당신의 친구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진정 화답하여 세상이 아닌 주님을 참 벗으로 삼는 자에게, 비록 이 땅을 거닐고 있으나 당신과 하늘을 함께 걷는 영광을 누리게도 하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요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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