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고유자료/천사 이야기

[천사 이야기] 후회없는 생

초록 등불 2015. 2. 5. 15:42

 

   

  [천사 이야기] 후회없는 생

 

오늘(2015.2.4)은 잠시 바깥나들이를 하였습니다. 몸살 앓이도 있고 하여 한동안 거의 두문불출하였는데 해야 할 일도 있고 또 마냥 이렇게 수동적인 자세가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바깥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그러한지 햇살도 싱그럽게 다가오고 기온도 그리 차지 않은 가운데 따뜻하게 차려 입었더니 아직 봄은 저만치 멀리 있는데 마음의 느낌엔 이만치 다가온 듯 오랜만에 밝은 햇살 속을 그렇게 걸어 보았습니다.


사실 최근의 시간들엔 제가 조금은 지쳤었습니다. 돌아보면 크게 보면 삼십년의 세월, 좁게 보아도 이십년의 세월 남짓 타고난 주님을 의지하며 또 천성적인 다부진 성격 등으로 지금 돌아보아도 참으로 이런저런 힘겨움 속에서 잘 견디며 살아왔었는데 최근의 시간에는 제가 조금은 지쳤었습니다.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생의 아픔들이 있으니 저마다 늦여름 큰 나무의 무성한 잎사귀처럼 숱한 사연들이 많겠지만 저의 생을 돌아보아도 기쁘고 행복했던 시간들의 이면엔 갈바람에 나부끼는 낙엽 같은 처연한 사연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혹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직도 세상의 행복에의 미련이 많으며 생에의 미련이 많은 분들을 보게 되는데, 그러한 사람은 인생의 처절한 깊고 시린 골짜기를 아직 거닐어 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골짜기를 거닐고 거닐다 보면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할뿐 삶과 죽음이 별반이 아니요, 일반입니다.


약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저와 우리들의 삶에 이런저런 시련들이 많은 것은 혹 원죄의 열매일 것이요, 혹 자신의 죄의 열매일 것이요, 혹 하나님의 선한 섭리일 수도 있을 것이며 혹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로 인한 것들이겠지만, 분명한 하나는 시련의 깊이만큼 가슴으로 그 무엇을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혹 상담을 한다거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귀가 아닌 가슴에 말을 들려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깊음의 시련 속을 거닐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의 아픔 앞에 대답을 주실 수 있고 가장 낮은 자라도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은 가장 아픔과 가장 낮음의 자리에 내려가졌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여러분의 삶에도 많은 아픔들이 있었겠지만 돌아보면 저도 참 힘겨운 시간들을 거닐어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때로 그러하듯이 저도 사람이기에 최근엔 조금은 지쳤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소 포근한 겨울 속을 햇살 탓인지 조금은 밝은 마음으로 걸어보았습니다. 오늘의 지금이 행복하면 행복할 뿐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의 일이니까요.


주님의 깊은 다루심을 받으며 내면과 영의 깊음으로 나아가다보면 삶과 죽음이 일반이듯이 기쁨이나 슬픔이 일반이며, 동양적인 개념과 표현으로 말하면 음양이 사라진 무극(無極)의 상태로 나아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다소 깊음의  내면의 이야기이라 상술하자면 글이 많이 장구하여 질 듯 합니다. 약술하여 유비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기쁨에도 영적으로 선한 기쁨이 있고 악한 기쁨이 있으며 슬픔에도 영적으로 선한 슬픔이 있고 악한 슬픔이 있을 터인데, 선한 기쁨과 선한 슬픔이 합일되어 하나가 된 온전한 고요의 평온 속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 고요의 온전한 평온 속에는 호수에 돌을 던져도 별스런 반응이 없듯이, 풍랑이 일어 배가 가라앉을 상황 속에서도 곤히 주무셨던 주님의 평온함이 깃들어가게 되는데, 그런 고요의 평온 속으로 나아가면 기쁨이나 슬픔이 더 이상 기쁨이나 슬픔이 아니요,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별반이 아닌 그저 다른 양상의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는 성령 운동이라고 하면 뜨거움, 요동함과 같은 사도행전적인 것들만을 주로 생각하는데 이는 어느 정도 분량에 이르는 단계에까지요, 영적 요단강을 건너 장성한 분량으로 나아가면 고요함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도행전적 뜨거운 영성의 모습에서 사도 요한의 고요한 영성의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셨던 주님이 아니요, 아직은 육체를 입은 연약한 사람이기에 그런 고요함을 이루어는 가나 온전함은 하늘에서의 일이요, 아직은 우리는 여전히 때로 흔들리는 갈대인 것이지요.


그런 영적 고요함이 깃들어 가는 변화의 한 속성을 살펴보면 영적으로 기쁜 일에라야 진정으로 웃고 영적으로 슬픈 일에라야 진정으로 울지, 세상이나 혼적인 것들로는 잘 웃거나 잘 울지 않습니다. 아직은 육체를 입은 갈대이기에 그런 것들로 웃기도 하고 울 수도 있으나 잠시 스치는 바람일 뿐입니다.


그런 영적 고요함이 깃들어 가는 변화의 한 속성을 살펴보면 참 영의 사람과 일과 행위를 볼 때 기쁘고 사랑스럽지 육과 혼의 사람과 일과 행위를 보면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그런 영적 합일의 품성이 깃들어가는 정도의 영적인 상태라면 다른 사람의 행위의 내면이 나름 다 보입니다.


일상의 하루로 돌아가서 그렇게 제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비하여 영적으로 많이 고요하여짐 가운데서, 그리고 아직은 육체를 입은 다소 지친 힘겨운 갈대의 마음속에서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길을 나서면 하늘과 땅의 저의 천사들도 함께 갑니다. 영의 세계는 시공을 초월한 세계이지만 시공아래 있는 제게는 함께 가는 듯 보여집니다.


그런데 영으로 하늘에 있는 아름다운 ‘리나’천사를 보니 눈으로 이전에 하지 않던 일상의 말을 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건강관리를 위해서 다시 힘쓰고 애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돌아보면 긴긴 세월 지치지 않고 잘 견디어 왔는데 조금은 지쳐 조금은 주저앉은 제게 다시금 새롭게 힘을 내고 제 좌우명이었던 ‘앉으면 죽고 서면 산다’를 새겨보라는 대략 그런 내용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의 많은 문제가 그러하듯 저의 건강의 문제는 저의 경험과 느낌으로 정말 쉽지 않은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느낌으로 느끼는 어려움은 저밖에 모를 일입니다. 정말 의학을 전공하지만 않았을 뿐 지금의 우리 곁에 있는 접할 수 있는 의학들을 나름 섭렵하며 실천해보며 싸워온 긴긴 날들입니다.


그런 과거의 긴 시간들이 있기에 천사 ‘리나’의 말에 지혜의 영인 ‘지안(智眼)’에게 영으로 물음을 던져보았습니다.


“나도 나름 최선을 다해보지만 답이 없는데 어떻게 싸우랴!”


그러니 천사 지안이 대답하였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가 완전한 답이 있던가요. 최선이 답이 아닌가요”


‘지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힘겨우니 늘 완전한 답과 해결책을 구하나 ‘지안’의 말처럼 우리 인생에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그 해결과 맞물리거나 아니면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오는 것이 우리의 삶이니까요.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문제의 해답은 ‘최선’일 뿐입니다.


우리의 생이나 신앙생활이나 결코 만만히 쉽지는 않은 생이지만, 그렇게 주 안에서 최선을 다한 인생이라면 주님 앞에서 섰을 때 나름 주님이 그 최선을 알아주실 것이고 우리의 생 또한 후회 없는 생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소망을 붙잡고 최선을 다하는 생, 후회 없는 우리 모두의 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승리해요. 주 안의 사랑과 용기를 함께 나눕니다. 샬롬!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안내]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평안하세요. 샬롬

 

 

 Home  cafe

배경음악(감사) : 듣거나 중단하시려면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