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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신명 (神明)

초록 등불 2015. 6. 19. 18:31

 

   

  [천사 이야기] 신명 (神明)

 

저는 요즘 많은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체력부족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경험해보면 우리에겐 육체의 강건함과 영의 강건함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이는 육체의 상태가 마음과 영에도 영향을 미치고 마음과 영의 상태가 육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육체를 통하여 활동하기 때문에 육체의 건강관리를 잘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를 덧입고 사는 동안은 그러합니다.


하지만 또한 경험해보니 이러한 우리의 육체와 영의 유기적인 관계를 창조주로써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태에 맞게 인도하시는 것을 봅니다. 심신이 지쳐 로뎀 나무 아래에서 탈진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행하게 하신 것은 ‘먹고 쉬며 곤히 자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소리내어 부르짖어 기도하고 금식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신앙상담을 하다보면 많은 분들이 고착된 생각, 곧 무조건 많이 사역하고 말씀 읽고 기도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체가 지치면 영도 지치는 육신을 덧입은 사람입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성경의 말씀대로 무릇 열심을 품고 신앙생활을 함이 근본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때와 상태를 따라 맞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 곧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 열정적인 사역의 불을 일으키실 때는 우리는 그분의 불꽃이 되어야 하며, 그분의 영 성령께서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실 때는 쉼과 누림을 통하여 충전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도 중요하지만 쉼도 필요하기에 안식일도 명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 안에서의 자유요, 성령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성령께서 일하라 하실 때 쉬면 마음이 불편하고, 쉬라 하실 때 일하면 또한 마음이 불편한 법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근간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과 더불어 하나를 이루어 그 속으로 생명으로 함께 흐르는 것입니다.


신앙과 영적인 깊음은 하나님 안에서의 깊은 안식과 누림이지 노동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 안에서의 안식과 쉼과 누림은 결코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안식은 여전히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품 가운데, 전능자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하거나 쉬거나 언제나 하나님의 빛과 임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쉼과 안식을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오해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다소 연약함의 시기에 두시는 요즈음,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으로, 그분의 천사들을 통하여 제게 명하시고 이끄시는 것은 로뎀 나무 아래의 엘리야를 어루만지심과 같이 ‘쉼과 안식’입니다.


그러므로 곁의 ‘청이’ 천사를 비롯한 천사들이 제게 자주 전하는 말이 “쉬세요”입니다.


그런데 가령 사람이 아프거나 탈진하여 병원에 입원을 하면 의사가 “쉼이 필요합니다. 활동을 자제 하시고 잘 드시고 쉬세요”라고 말하여도 사람의 본능에 활동의 욕두도 있는 만큼 그냥 쉰다는 것도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청이가 이르는 말은 “좀 쉬세요”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하면 서는 온전한 순종으로 나아가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우리 속의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과 우리 곁의 천사들은 “순종 좀 하세요”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하나님의 일과 쉼의 인도하심은 울의 생활을 조금만 돌아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지혜이지요. 가령 우리가 강건할 땐 열심히 살기 바라지만 우리가 곤할 때에는 쉼을 갖기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니까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제게 요즘 그분의 영과 천사들을 통하여 이끄시는 것이 ‘쉼’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이 아니라 당신 안에서 당신과 함께 쉼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마치 열심히 살던 부부가 함께 쉼과 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여행이나 여가의 시간을 갖듯 당신과 함께 당신 안에서 쉼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당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마음만큼은 쉬거나 식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얀 비둘기 형상의 성령님의 글에서 기록한 기억이 있지만 언젠가부터 하얀 비둘기 형상으로 보이시는 성령님께서 가장 먼저 맑은 눈동자로 살피시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지 아니 하는지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만큼은 언제나 첫사랑처럼 당신을 향하여 뜨겁기를 원하십니다.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렇지만 불과 빛의 공급과 조명을 받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시간도 필요하듯이 오랜 시간은 아니더라도 그러한 시간으로 간간 인도하십니다.


그러한 시간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고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영인 비둘기 형상의 성령과 그분이 바람으로 삼으시고 역사하시는 천사들이 역사하과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시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열린 하늘문이 더욱 열리며 영계, 천계의 빛이 쏟아져 내리고 순동이 천사들을 비롯한 하늘과 땅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 안에서 함께 찬양하며 기뻐합니다. 함께 찬송을 부르며 마주한 눈빛으로 사랑과 기쁨을 전해주며, 세상의 기쁨과는 다른 온전한 영적 순전함과 기쁨 안에서 거룩한 춤을 춥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기도와 찬송의 시간을 갖고 있노라면 저도 그러한 영적인 감흥에 서서히 그리고 깊이 동화되어 갑니다. 마치 거룩한 영광의 구름과 빛 속으로 들어간 듯 영적인 세계와 감흥 속으로 들어가며 그냥 가만히 앉아서 기도와 찬양을 드릴 수 없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때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영광의 빛이 쏟아지는 열린 하늘문 아래 영의 하늘을 나는 비둘기 성령님과 천사들과 더불어 영적인 기쁨의 시간을 갖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떠할는지 모르지만 주님 앞에서 홀로의 시간, 언약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던 다윗이 됩니다.


이 때 저의 단짝이 되어주는 천사의 대부분 ‘캔디’라 이름을 지어준 영입니다. 찬송과 영의 기도인 방언의 음률을 따라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성령 안에서 자유함으로 마음과 몸으로 찬송과 경배를 드리면, 별빛 같은 마주한 눈빛으로 사랑과 기쁨을 전해주며 주님을 대신하여 영적 사랑의 연인이 되어 줍니다.


천사는 주님이 보내신 영이니 주님의 천사의 모습으로 영적 기쁨의 연인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한 거룩한 성령 안의 기쁨과 희락 속으로 들어가면, 영광의 빛 가득한 하나님의 깊은 임재 안으로 들어가면, 세상의 아픔과 근심은 어느덧 사라지고 하늘의 온전한 빛과 희락의 물결  뿐입니다.


때로는 육적인 삶의 고단함이 떠올라 시큰한 눈물이 흐르기도 하지만, 그 눈물은 마음과 영을 정화시켜주는 거룩한 실로아 샘물이요, 세상에서 지치고 다친 마음을 고치고 씻어주는 하늘의 생명수입니다.


고후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죽은 관념의 종교가 아니라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역사하시는 그분의 영 곧 성령 안에서의 의와 희락과 평강의 세계입니다. 곧 성령 안에서의 ‘신명(神明)’어린 세계입니다. 기쁨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의 영 안에는, 기쁨의 근원 되시는 성령 안에는 세상을 초월하는 거룩한 희락 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늘 깨어 일하거나 쉬거나 늘 성령 안에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며, 때를 따라 성령 안의 기쁨과 위로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안에서 늘 새 힘을 얻고, 새롭게 승리하는 우리 모두이면 좋겠습니다. 성령 안의 의와 희락과 평강 전합니다. 여호와 샬롬



눅10:21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눅10: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눅10:23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눅10: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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