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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교수님] 사랑이 제일 큰 은사인가?

초록 등불 2011. 4. 15. 13:03

사랑이 제일 큰 은사인가(고전 12:31)

 

성령은 한 분이지만 성령의 역사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전자는 신자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으로서 사랑이 대표적인 것이고(갈 5:22-23 참조), 후자는 신자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역을 하기 위한 것으로서 성령의 은사가 대표적인 것이다(고전 12:1-11 참조).

 

그렇다면 양자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은 성령과 악령에서처럼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삶에서 가정과 친구에서처럼 어떤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동차의 앞바퀴와 뒷바퀴처럼 다 있어야 온전한 것인가?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을 고린도전서 12:31과 14:1에서 얻을 수 있다.

 

1. 사랑은 제일 큰 은사인가?
이것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사람들은 흔히 사랑과 은사를 우선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사랑이 가장 큰 은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 본문으로 흔히 사용되는 것은 고린도전서 12:31이다.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고 이어서 사랑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바울은 사랑을 가장 큰 은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바울은 사랑을 가장 큰 은사로서 제시하지 않는다.

바울은 12장에서 신령한(성령의) 은사를 논의하고 그 결론으로 은사를 더욱 더 많이 사모하라고 한다(12:31a).

여기서 바울은 문자적으로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하지만, 의미적으로는 은사가 교회에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을 사모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12장에서 바울이 힘주어 주장한 것은 은사에는 우열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사는 아무리 하찮게 보이더라도 필요 없는 것이 없으며 모두 하나님이 그 뜻대로 나누어 주시는 고귀한 선물이라고 바울은 주장한다.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 후에 바울은 은사가 사용되어야 하는 가장 좋은 길(방법)로써 사랑을 제시한다(12:31b).

즉 바울이 이 구절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제일 큰 은사라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사용하는 최선의 길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31절은 은사를 사모하라는 12장의 결론 부분(31a절)과 은사와 사랑의 관계를 다룬 부분(31b절)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문맥을 구별하는 대부분의 현대어 성경에는 앞부분은 12장에 걸리고 뒷부분은 13장에 연결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2. 은사와 사랑은 영원한 동지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인 사랑은 적이 아니라 영원한 동지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과 14장을 연결하는 구절인 14:1에서도 사랑과 은사를 양자택일해야 한다든가, 하나가 다른 하나에 예속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추구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말함으로써 신자 안에서 양자는 동반자로서 자리매김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은사와 사랑의 관계를 다룬 13장에서도 바울은 이 둘 중에 하나를 희생하여 다른 하나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여기서 은사를 사모하라는 기본 가르침을 말하면서 이 은사가 사랑 없이 사용되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한 것이다(13:1-3).

 

은사는 사랑이라는 길을 통해 갈 때에만 그 능력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은사 없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은사를 무시 하거나 소극적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은사는 사랑을 따라서 적극적으로 사모해야 한다(고전 12:31; 14:1).

 

김동수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