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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 귀용] 믿는 자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

초록 등불 2011. 5. 10. 14:33

♣믿는 자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

(God’s Work in Believer)_ 잔느 귀용 


 당신이 극도의 사건들이나 커다란 시련들을 통하여 정화되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추구하시는 것은 당신이 어린아이와 같이 당신의 의지를 항상 그 분께 드릴 준비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본성적으로 자신의 사고 능력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종종 당신의 생각과 정반대 되는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의 의지에 관하여 어린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의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신의 의지를 그분의 의지 안으로 건네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와 같이 단순합니다. 당신의 의지는 당신의 외적 행동들을 통제하려 할 때에 뿐만 아니라, 내면의 욕구들과 연결될 때에도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중단합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본성을 온전히 마비시킬 수 있는 십자가의 내적 경험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아(self)가 믿는 자들의 삶 속에서 잘 다스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을 때에, 당신은 종교적 괴물이 어떻게 생성되어지는 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세속적인 것을 경멸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자아로 가득차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명백한 악이라고 간주하는 것들을 행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면에서는 여전히 본질적인 자아 본성이 강력하게 살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 분에게 온전히 복종하면 당신의 삶 속에서 온화하고 강력한 권위를 갖고 그 분의 뜻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 안에서 행하시는 그 분의 일에 동의할 때에, 당신은 따스하게 지탱해주는 그분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에게 동의하라고 당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 분은 당신이 심지어 위험한 벼랑을 가로질러서라도 그 분을 기쁘게 따를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알 때에, 당신은 그 분이 가는 곳은 어디라도 빨리 쫓아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기꺼이 그 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당신이 진보해 나가는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원하는 마음까지도 당신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분의 가르침과 인도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초창기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을 따르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점점 더 충만한 믿음을 가지고 걷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미지의 길들을 통과해 가는 동안 마치 시각 장애인인 것처럼 인도하시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 안으로 들어가게 해줍니다. 그 미지의 길을 걸어갈 때에, 당신은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살아가도록 내버려졌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생각에 반격할 수 있는 것으로써, 당신이 진정 그 분에게 속해 있다는 증언이 당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을 온전히 성숙한 길로 인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입니다. 당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일단 드리고 나면, 그 의지는 만족해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서야 당신의 의지가 올바른 장소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의지가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하며, 당신의 삶을 지배했던 이전의 곳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입니다. 때로 당신의 이성이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전적인 복종에 격렬한 반항을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놀라서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당신의 옛 자아가 가져다 주는 쓸데 없는 고난들을 경험한 후에는, 자신을 그 분의 사랑의 조류에 내맡기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후에는 더 이상의 갈등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올바른 장소, 즉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이 자연스러운 평안의 장소가 당신이 익숙해왔던 것과 매우 달라서 두려움이나 걱정을 경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하나님 안에서 한 피조물이 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경험할 때에, 당신은 어떤 단순함과 순결함과 성장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복종하였으므로, 다른 어떤 것도 당신에게 아무런 주장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원하지 않는 마음을 침범하거나, 믿는 자들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경험하는 혼란은 하나님께서 성취하고자 하시는 것에 대한 당신의 저항입니다.  그 분의 길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에, 당신은  그 분 안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것이 자아에 대한 죽음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사실 모순된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에 당신의 영은 큰 활기를 띠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영은 참 생명, 즉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당신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 안에 묻히게 될 때에, 당신은 여전히 목적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목적들은 하나님의 욕구들이며, 당신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영혼의 보좌에 앉으셔서 통치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속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그의 현존 안에서 녹아 버립니다. 하나님과의 더 깊은 연합으로 나아갈 때에, 당신은 그 분에 의하여 변화되어지고 변형되어집니다. 이것은 당신의 의지가 소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의지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점점 더 닮아감에 따라, 당신은 그 분의 마음을 취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과 같은 여정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 분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강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시냇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시냇물은 강이 흐르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하나님과도 같은 이 강은 모든 작은 강들(당신과 나)이 사랑이라는 대양에 잠기게 될 때까지 그것들 모두를 자신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각각의 시냇물은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그것들의 근원으로부터 흘러서 근원으로 흘러갑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당신의 진정한 목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 안에서의 하나됨”입니다.(요17:21)

 

이 진리 안에 어떤 실체가 담겨져 있습니까? 당신이 그것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참으로 축복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을 따라 걷고 있지만, 그 강물 안으로 뛰어들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강물 안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 안에서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내가 상상 속에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에 그 분의 마음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이러한 영광스러운 목적, 즉 그 분과 연합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마음을 황홀하게 하며, 영을 차고 넘치게 하는 빛이 있습니다. 그 분의 빛이 당신을 쫓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빛 안에서 더욱 깊이 걸어갈 때에, 그 빛이 서서히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을 당신의 모든 것으로 인정할 때에 그 분이 가르쳐 주시는 참 믿음,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지혜의 법칙입니다. 이것이 당신 안에 계신 주님의 방법입니다.

 

잔느 귀용의 예수그리스도와의 친밀함 중에서…

 

 

 

♠자기포기와 계시_ 잔느 귀용

 

당신은 참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자신을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포기하여 드리기를 원하는가? 일단 선물로 드려지게 되면 이제 더 이상 그것은 주는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것은 하나의 방법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싸여 있는가 하나님께 소유되어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주님을 아는 일에 진보가 있으려면 자기 포기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실 자기를 포기한다고 하는 것은 내적인 성전(즉 주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으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열쇠, 즉 헤아릴 수 없이 깊은 단계로 나가는 문들을 여는 열쇠이다. 즉 자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적인 영적 생활에 이르는 열쇠인 것이다.

 

자기포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것이며, 미래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 버리는 것이고, 현재의 사안들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당신의 주님께 바쳐 드리는 것이다. 위대한 믿음은 위대한 자기포기를 낳는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뿐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당신의 반응까지도 주님께 맡겨 드리라.

 

어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전적으로 주님께 포기해 드린다면, 그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시를 전혀 받지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까?" 자기포기가 계시를 종결시키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와는 정반대로 자기포기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계시를 주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방법이다.

 

당신이 자기포기로써 받게 되는 계시는 단지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실체로서 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자기포기라는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당신이 누구에게 자신을 포기해 드리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당신 자신을 포기해 드리는 대상은 바로 주 예수님이시다. 당신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로 따르게 될 분도 바로 주님이시다. 또한 당신이 진리로 듣게 될 분도 바로 주님이시며, 당신이 생명을 받게 될 것도 바로 주님으로부터이다.(요 14:6)

 

당신에게 계시가 임하게 되면 다음의 일이 생겨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당신의 영혼에 친히 자신을 도장 찍으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에게로 오실 때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에게 주님 자신의 속성에 대하여 새롭고, 전과는 다른 흔적(도장)들을 남겨 두시게 된다.

 

곧 당신에게는 주님의 속성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들이 생겨나게 된다. 아마도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다양한 체험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체험을 당신 안에 지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생애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묵상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는 주님의 몸에 있는 고난의 흔적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바울은 자기의 몸에 주님에 대한 체험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바울의 이 말이 그러한 흔적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겠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신으로 바울에게 도장을 찍으셨던 것이다.

 

주님께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모든 것을 완전하게 포기하여드린 그리스도인을 찾아내시면 바로 그 사람에게 주님의 자신의 속성에 대한 특별한 계시를 주시려고 하신다. 만일 당신의 경험이 이러한 것이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계시를 받아 들이라. 주님께서 당신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신다고 해보자. 그에 대한 당신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주님께로부터 다른 모든 것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의 자세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에 대해서 어떤 계시를 주셨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 계시는 그들에게 수년 동안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환언하면 주님께서는 때때로 당신에게 친히 자신에 대하여 아주 힘있는 한 가지 계시, 즉 바로 한 가지 진리를 경험하는 것이 당신에게 여러 해 동안 큰 힘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아주 힘있는 계시를 주시기도 하실 것이다. 그러한 기간에는 당신이 내적으로 점점 더 하나님께로 이끌림을 받게 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당신은 그 계시가 계속되는 한 그 계시에 충실해야 한다.

 

계시의 문제에 있어서도 당신 자신을 포기해 드리라. 언제든지 주님의 뜻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당신 자신을 포기하고 완전히 맡겨 드릴 준비를 하고 있으라. 열정적으로 주님을 따라가고 언제나 주님과 함께 거하려는 마음 이외에는 어떤 소원도 가지지 말라. 당신의 주님 안에서 언제나 당신을 완전히 비운 상태로 내려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배우라.

 

연약함이든지 강함이든지, 혹은 단 것이든지 쓴 것이든지, 유혹이나 산란해짐, 고통, 피곤, 혹은 불확실함이나 축복이든지 모든 것을 주님의 손으로부터 오는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어느 것도  잠시라도 당신의 행진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계시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계시를 주시기도 하신다. 그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라.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저 주님을 사랑하기만 하라. 이러한 사랑에는 주님께 대한 모든 종류의 헌신이 다 포함된다.

 

당신이 하나님께,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당신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맡겨 드렸다면,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속성의 모든 충만함으로 당신에게 나타나시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다.

 

주님께 대한 계시의 어떤 것의 의미는 매우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시의 다른 어떤 부분들의 의미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모두 똑같은 자세로 받아들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하나님께 속해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당신은 이해하는 계시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계시에 대해서도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을 포기한 상태로 행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 그러한 삶의 궁극적인 결과는 경건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포기하고 맡겨 드리기를 배워 가고, 또한 주님께 완전히 포기하고 맡겨진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최고 수준의 경건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시기할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을 주님께 포기하고 맡긴 성도를 사랑하신다. 성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하라. 그리고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당신이 사랑하기를 배운다면 당신이 사랑하는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일을 할 마음도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잔느 귀용_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기 중에서… (pg 58-62)

 

 

♡기도… (Prayer)_ 잔느 귀용

 

하나님께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드린 후에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그 헌신 안에서 걸어가는 것뿐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의 왕에게 드림으로써 그 분 안에서 쉼을 얻으십시오.

 

당신은 어떤 중대하고 특별한 헌신의 행위를 그 분에게 드리는 것이 필요한지 알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이 정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하나님은 당신에게 그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우 단순하게 기도하십시오.

 

어떤 요구가 당신의 영으로부터 흘러나올 때에, 그것은 아무런 말 없이도 충분한 기도로서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당신의 영이 말을 한 셈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쉽게 드려집니다. 당신 안에 있는 성령님이 당신이 하는 기도에 증인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협력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기도하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있는 자기(self)의 자리를 차지하실 때에, 성령님은 그분이 뜻하시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기도를 만들어 내거나, 하나님께 말할 어떤 영리한 것들을 생각해내고자 하는 욕구를 잃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잠잠하고 싶어 질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그러한 것입니다. 나는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잠잠한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잔느 귀용의 예수그리스도와의 친밀함 중에서…

 

 

 

↑↓영적 진보(Spiritual Progress)_ 잔느 귀용

 

내가 진보라 말함은 더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에 짐을 실을 때에 더 많은 물건을 실으면 실을수록, 배는 점점 더 물 아래로 가라앉게 되듯이, 당신이 당신 안에 더 많은 사랑을 가지면 가질수록 당신의 옛 자아는 더 아래로 가라앉게 됩니다.

 


저울을 생각해보세요. 점점 더 가벼워지는 쪽이 비워져 가는 옛 자아라면, 점점 더 무거워지는 쪽은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어거스틴은 “사랑이 우리의 무게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로 인하여 당신의 자아가 가라앉게 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을 정화하기 위해 필요한 모욕과 고통을 짊어질 준비를 하십시오.

 

당신의 자아가 가라앉을 때에, 당신은 사실 당신이 높아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 가장 작은 자가 가장 위대한 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낮추신 그 분의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이 얼마나 무거운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그렇게 먼 곳에서부터 즉, 하늘에서 땅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에 의해서만 알려지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십시오.

 

잔느 귀용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함 중에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Do not Give in to Discouragement)_ 잔느 귀용

 

당신의 진보가 느리게 보일 때에도 낙담하지 하십시오. 자아 사랑(self love)이 너무도 강력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죽는 과정은 오랜 시간을 요합니다. 자아(self)는 숨을 장소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자아는 당신의 본성과 깊이 엮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오랜 동안 당신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옴으로써 자아가 강하게 자라도록 했습니다.

 

즉시 변화되어질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인내하면서 그 일이 한 번에 조금씩 성취되어지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진보는 직접적인 노력을 통해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 자신의 노력을 포기하고, 잠잠히 기다리며, 혼자서는 그것을 이루려 노력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의 깊은 연합으로 들어가는 일이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쉽다면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그렇게 하려 할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먼저 많은 죽음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죽음은 자아에 대한 죽음입니다. 이렇게 오랜 시일에 걸쳐 옛 자아에 대해 죽는 동안 당신의 내면 안에서는 많은 고통이 야기될 것입니다.

 

자아에 대해 기꺼이 온전히 죽으려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장 높은 은혜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큰 배를 정박지로부터 진수시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배가 일단 대양 위에 뜨기만 하면, 쉽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자아 본성이 인내를 통하여 정복되어지기만 하면, 당신은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풍성한 은혜의 강물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하실 수 있도록 당신이 준비되어지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분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잔느 귀용의 예수그리스도와의 친밀함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