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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발전기를 언제나 가동하라!

초록 등불 2011. 5. 23. 18:18

 

※ 영적 발전기를 언제나 가동하라! ※

 

 

 

작년에 건강으로 크게 어려움을 겪은 후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자전거를 하나 샀습니다.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직 운전도 배우지 못하고 차량을 운전하지 않는 저로서는 그런 분들이 가지는 자전거와는 다르게 제게는 애착이 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걷는 것과 그래도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과는 활동영역의 폭이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걸어서 1시간이 걸릴 거리도 10-20분이면 다녀올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특별한 의미는 없는 단어이지만, 좋아하는 초록색의 자전거를 그런 색을 표준어는 아니지만 포르스럼하다라고, 그리고 약간 이국적인 느낌의 포르쉐라고 이름도 지었었습니다. 그리고 야간에도 혹 운전할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충전용 자전거 후레쉬도 부착을 하였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차량이 우리 생활에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자전거는 제가 아주 어릴 적에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타고 다니곤 하였으니까요.


그런데 기억이 나는 것은 당시의 자전거 후레쉬입니다. 요즘에는 충전지를 이용하여 가정에서 충전하여 달고 다니면서 차량의 헤드라이트 못지않게 밝지만, 이전에는 자전거 앞에 꼬마전구를 단 후레쉬가 있고, 그것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는 바퀴에 달려 있었습니다.


장치는 누르면 자전거 바퀴에 회전하는 부분이 맞닿아 자전거가 이동하면 그것이 회전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내부의 자기장의 변화를 일으키게 된 장치, 곧 자전거용 작은 수동 발전기가 전류를 일으켜 그것으로 길을 밝혀서 가곤 하였지요.


그러니까 후레쉬가 필요 없는 낮이면 그것이 바퀴에 밀착되지 않게 떼어놓고, 후레쉬가 필요할 때면 수동 발전기의 회전하는 부분이 바퀴에 밀착되게 하여 전류를 발생하여 후레쉬 불빛으로 길을 가곤하였지요. 그래서 자전거 속도가 빠르면 빛이 좀 밝아지고 느리면 어두워지곤 하였습니다.


오늘 자전거 전등의 이야기를 제가 꺼낸 것은 어제 기도하는 가운데 이것과 관련한 어떤 영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 신앙생활이 이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른 것은 우리의 영적 신앙생활은 수동 발전기와 축전지 그리고 전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현대적으로 비교하면 자동차에 비교하는 것이 나을 것도 같습니다. 후레쉬나 시동을 걸기 위한 전류 저장소인 축전지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방언의 은사를 말씀드릴 때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라고 하였는데, 그 의미는 “건축하다” 혹은 “충전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고전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그 중 충전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영적인 생활을 살펴보면,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찬양을 드리고 영적인 생활을 할 때는 우리의 영혼에 성령이 충만해지는, 다른 말로 하면 축전지에 전류가 충전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연적인 영역에 전기가 있다면, 영적인 영역에는 성령이 있다”라고 말하며 성령을 비유하여 일컬어 “하늘의 전기”라고도 하였지요. 맞습니다. 성령은 비록 인격체이시지만 그 역사와 흐름을 보면 전류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충만 곧 충전이 되는 것도 그러하고, 충만해지고 소멸되는 곧 충전되고 방전되는 것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찬양을 드리면 마치 옛 자전거의 폐달을 밟으며 우리가 달리면 수동용 발전기가 회전하고 그로 인해서 전류가 생성되듯이, 우리가 그러한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 하늘의 전기, 곧 성령으로 충만함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나아가 방언기도는 “개인의 덕을 세운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는, 다시금 하늘의 전기로 충전시키는 강력한 영적인 은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가 있던지 없던지 기도하는 시간은 우리가 충만, 곧 충전함을 받는 시간입니다. 방언의 은사가 있어 방언으로 기도하면 더욱 효율적으로 충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있으면, 또는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으면, 우리가 느끼던지 못 느끼던지 간에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이와 아울러 축전지에 대해서 조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자전거에 부착하는 후레쉬를 꺼내어 전원버튼을 눌러보니 불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주 충만하게 충전해 두었는데 한 보름 쓰지 않고 그냥 두었으니 속의 전류가 다 방전이 되고 없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이와 비슷합니다. 특별히 죄를 범하거나 악을 행하면 성령께선 급격히 소멸됩니다. 전류에 비유하면 급격한 방전이 일어나버립니다. 그러나 말씀에 유의하는 삶을 살아가면 급격한 소멸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말씀대로 죄를 짓지 않고 지낸다고 하여도 기도하고 새롭게 충만함을 받는 시간을 매일 갖지 않으면, 자연방전으로 어느새 전원버튼을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 제 자전거의 충전지처럼 전류의 상태는 제로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매일, 그리고 매 순간, 우리는 새롭게 성령의 기름부으심, 곧 충만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악으로 가득한 우리의 생활환경 속에서 성령께서는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급격히 소멸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한편 영적인 삶을 살기 사모하는 사람은, 성령의 흐름에 민감하여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면 소멸되시고 어떤 일을 하면 충만하게 되시는지, 우리 속의 성령이 무엇을 원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또 하나님을 사모하는 진정한 우리, 곧 나의 속사람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민감하여야 합니다.


싫어하는 것을 하는 동안은 성령의 소멸이 있는 시간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 시간은 충전함을 받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경험해보니 우리는 보는 것과 듣는 것과 사람을 만나는 것과 그 모든 것들에서 성령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렇게 늘 민감하여 성령 안에서 우리가 복종하고 순종하면 늘 마음의 훈훈함, 곧 성령의 운행하심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혼으로 기도하고, 특별히 은사인 방언의 영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읊조리고,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면, 그러한 영적인 분위기가 성령의 소멸을 막아줄 뿐더러, 다시금 그리고 지속적으로 충만함, 곧 충전함을 받는 것입니다.


늘 그러한 충전함을 받는 심령은 뜨겁습니다. 적어도 따뜻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새로운 충만함, 곧 충전함을 오래 동안 받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엔진이 식어 가듯이 점점 식어져가고 나중에는 엔진의 시동을 걸기조차 어려워집니다.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대학시절 때때로 방학 때면 시골에 가서 농사일을 도와 드리곤 하였는데, 겨울철에는 경운기 시동을 켜려면 아주 애를 먹습니다. 요즘은 경운기에도 시동용 축전기가 대부분 있지만, 당시에는 수동으로 엔진 밸브를 열고 관성의 힘으로 시동이 걸리게 하였는데, 날씨가 너무 차가운 날씨에는 여간해서 엔진이 걸리지 않습니다.


또 시도하고 또 시도합니다. 그러면 잠시 펑!하며 불길이 있었기에 엔진이 조금 따뜻해집니다. 다시 시도하면 조금 더 따뜻해집니다.


그렇게 자꾸 반복하면 나중엔 결국 펑펑펑! 하면서 엔진이 돌아가고 엑셀을 올리면 아직 제대로 온도가 오르지 않아서 완전 연소가 잘 되지 않으므로 시꺼면 연기를 내 뿜으며 돌아갑니다. 그리고 온도가 가열되면 연기도 줄어들고 돌아감도 원활해집니다. 심한 경우에는 집단 등에 불을 붙여서 엔진 아래를 덥혀보기도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도 이와 비슷합니다. 기도하는 생활을 지속하는 그리스도인의 심령은 뜨겁습니다. 적어도 따듯합니다. 그러한 심령에는 비유컨대 다시금 영적인 전류를 일으키는 발전기를 가동시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경건한 삶을 게을리하다보면 겨울철의 엔진처럼 심령이 차갑고 굳어져버려서 한번 영적인 기운을 되살리려면 많은 고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뜻함을 녹게 하고 차가움은 굳게 합니다. 따뜻함이 식물을 자라게 하고 꽃을 피게 합니다. 차가움은 식물을 죽게 하고 꽃을 시들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안에서 따뜻해진 심령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차가워진 심령에는 미움과 원망, 불평과 어두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기도와 말씀으로 심령을 따뜻하게, 나아가 뜨겁게 불타오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 삶에는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있어서 참 쉽지 않네요”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지요. 맞습니다. 삶의 어려움이 때로는 가시덤불처럼 우리의 마음과 혼을 눌러서 그러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입니다.


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번개를 실험하는 장치를 보면, 전극과 전극을 떼어놓고 전압을 높이지요. 그러면 어느 순간 공기 속으로도 전류가 흐르며 불꽃을 일으킵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 앞에 놓인 삶의 어려움과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어도, 우리가 말씀을 읽으며 기도하고 기도하여 우리의 영적 전압이 높아지면, 우리가 말씀 안에서 점점 세워져 가면 하나씩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씩 더 높은 영역의 영적인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오히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뜨거운 불길의 심령들은 오히려 신앙생활에 극심한 핍박이 있었을 때라는 것은 신앙의 역설적 강력 아닙니까. 또한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문제도 차원이 점점 높아져 갈뿐 하늘나라에 이를 때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은 어려움이고, 문제는 문제입니다. 가령 그리스도인으로 하지 않으면 좋은 덕스럽지 못한 부분이 우리의 삶에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고 기도하며 영적인 전류를 늘 발생하여 우리의 영적 전압의 수위, 곧 속사람이 조금씩 강건하고 자라가면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빛은 증가하고 어둠은 조금씩 소멸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삶에 100% 빛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점점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 안에서 조금씩 세워져 가면서 우리의 삶에서 빛의 퍼센트가 올라가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기도하고 기도하여 영적 발전기의 수동엔진을 계속해서 돌리면 우리는 점점 세상이 아닌 하늘의 전기, 곧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게 되고, 영적 수위, 전류로 비유하면 전압은 점점 높아져서 하나씩 우리의 부족함과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능력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목회자로 살아온 지 어언 강산이 넘는 시간, 경험이나 영적인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 때 올곧은 영적인 삶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영적으로 세워짐이 결코 쉬운 일 아닙니다. 그리고 하루아침이나 몇 개월 만에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세례를 처음 받고 방언을 말하고 하면 다 된 것인 줄 생각도 하게 되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그것은 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광야에서 보내야 했는지, 그리고 그토록 영적인 능력의 사람인 사도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했는지의 이유입니다.


영적인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 밤마다 심장이 “여호와를 송축하라”하는 소리가 들리는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원하십니까? 그렇게 세워지고 세워져서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결코 세상과 마귀가 흔들 수 없는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싶으십니까?


그러하다면, 우리는 기도하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하루가 아닙니다. 몇 개월이 아닙니다. 몇 년이 아닙니다. 순례자의 길을 걷는 동안 우리가 지속하여야 할 경건한 일입니다.


영적인 삶이 쉽게 이루어진다 생각하지 마십시요.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누림에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지불해야 하고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육신이 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들을 다하면서 하늘의 능력을 누릴 수 없으며 영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보고 싶은 텔레비전 다 보면서, 그다지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을 만나 무수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제 기도하고 언제 하나님 앞에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이 옛 선지자나 예언자들이 때로 광야에서 거했던 이유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진정한 하늘의 능력과 은사, 한정적인 9가지 은사 등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의 좋은 모든 선물들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잠시 기도하는 동안 주님은 “기도가 능력이다, 기도가 능력이다” 잘 아는 것을 아주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기도가 너희가 하나님께 나아가고 교통하는 유일한 길이다. 능력을 공급받는 전선과 같은 것이다” 감동하셨습니다. 또한 오늘의 주제와는 조금 다른 말씀이지만 “그러한 기도의 삶을 통하여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구하는 좋은 것들도 또한 받아 누리게 된다”라고 감동하셨습니다.


또한 참으로 공감되는 말씀을 이르셨는데, “너희 속에 성령의 조명하심 없이는 너희는 빛을 볼 수 없다”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때때로 심령의 빛을 잃듯이 목회자도 사람, 저도 시시때때로 소망의 빛을 잃습니다. 기쁨의 빛을 잃습니다. 때로 극한 어려움에 처하면 삶의 의미의 빛도 잃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새롭게 일어나게 되는 것은 심령에 성령이 임하시고 그분이 말씀하시고 비추어주시는 빛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기도하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때는 뭔가 눈빛에 생기가 돌고 살아 있는 것 같았는데, 교회 문 밖만 나서면 그냥 여름 햇살에 시들고 축 늘어진 풀잎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교회의 설교나 그러한 은혜의 시간을 통하여 공급받는 생수는 얼마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도 가능하면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기도의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전기, 곧 성령으로 다시금 충만과 충전을 입게 됩니다. 그 중에 방언은 그러한 영적 충전의 강력한 전류를 발생시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하고 귀한 은사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루 한 시간만 기도하라 입니까? 하루 두시간만 기도하라 입니까? 아니지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런데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합니까? 그것은 쉬지 않고 정좌하고 앉아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식사도 하지 못하겠지요. 그것은 생활 속에서도 간간 가능한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며 성령과 동행하며, 하나님 안에서 행하며, 성령의 운행하심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온 맘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살라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 어제 기도하는 가운데 문득 하나님께서 문득 영감으로 주신 오늘의 글과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영적인 삶에 대한 도전의 마음이 생기고, 진정 하루 반짝이었다가 그 다음날이면 유성처럼 사라지고 없는, 그런 맥없는 신앙생활의 반복이 아닌, 지속적인 영적 발전기인 기도의 페달을 밟고 밟아서 기도안에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더 높은 차원의 영적인 세계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쓰임받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면 충전됩니다. 성령으로 새로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특별히 방언으로 기도하면 더욱 강력한 전류의 발생으로 더욱 강력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듯 그렇게 세워지고 세워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기도하십시요.


그리하면 어느 시간이 흐른 후 이전과는 너무도 달라지고 성숙하고 영적으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자신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수고, 기도도 결코 쉽지 않지만, 영적인 삶, 영적인 능력의 삶을 원하신다면 기도의 페달은 밟고 밟고 또 밟고 멈추지 마십시요.


성령에 관하여 이르시는 성경 말씀 두 구절을 인용하며 오늘의 글과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도 또한 깨달음과 도전 받으십시요. 모두 승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싶습니다. 샬롬!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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