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세계 영성은사/† 영성-용어이해

융합

초록 등불 2011. 7. 24. 00:11

20대 후반의 미혼 여성인 자매는 외모는 가냘프고 창백합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지나칠 정도로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 같다는 사실을 근래에 와서 깨닫기 시작하면서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해주었고, 해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늘 학교까지 배웅해 주었고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교문 앞에서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는 그녀가 대학에 다닐 때까지 줄곧 머리를 빗어주고 옷을 골라주곤 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항상 함께 다녔고 마치 친구처럼 그렇게 친숙해서 서로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미팅을 하고 돌아오면 어머니는 그녀보다 더 흥분해서 꼬치꼬치 묻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최근에 자신이 남자 친구와 진지하게 사귀기 시작하자 무척 서운해 하였습니다. 마치 애인에게 버림을 받기나 한 것처럼 그렇게 침울해하면서 서운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여러 번 남자 친구를 사귀었지만 그 때마다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끝나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가 남자 친구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결코 그런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어머니를 배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말을 듣게 되면 어머니가 받을 충격을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자신의 사생활에 계속 간섭하는 일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불편을 느껴 최근에는 어머니와 자주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자매와 어머니의 관계는 심리학에서 ‘융합관계’(confluence)라고 부르는 일종의 ‘경계 혼란’입니다. 이는 두 밀접한 사람의 관계에서 사로의 차이점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합의함으로써 각각 다른 개인을 동일한 하나의 인격으로 오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는 주로 어머니와 자녀 관계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자신의 몸속에서 열 달을 길러내었기 때문에 자신의 몸의 일부라는 생각이 아버지보다 더 강합니다. 이것을 모성본능이라고도 하는데 병적으로 집착해서 자녀를 자신의 몸으로 계속 인정하려고 하는 태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 이런 융합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모든 여성은 어느 정도 이 모성 본능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어느 누구보다 더 강력한 집착을 가지게 됩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것이 어머니이지만 이 본능이 때로는 융합이라는 심각한 접촉 경계 혼란을 일으킬 때는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게 됩니다. 태아와 어머니는 한 몸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들이 우리라는 보호막 속에 있을 때 서로 안전하게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서로가 의존함으로써 두 객체가 하나로 인식되어 분리하는 것에 대해서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서로 균형을 깨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으며, 각자의 개성과 자유를 포기하고 그 대가로 얻은 안정을 유지하려고 하는 묵계적인 계약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깨는 일은 서로에게 분노와 짜증을 내게 만들며, 그런 관계를 깨는 사람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런 관계에서 죄책감이나 짜증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그 관계에 손상이 오고 있다는 증거라고 퍼얼스는 지적합니다. 죄책감은 관계를 깨는 사람에게 생기는 감정이고, 그 반대편은 짜증을 느끼게 됩니다. 독일어로 ‘죄책감’이라는 단어는 ‘Schuldgefühl’인데 이 단어는 Schuld라는 단어와 gefühl이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복합명사입니다. Schuld는 ‘빚’이라는 뜻이며 gefühl은 ‘느끼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부담을 느끼는 상태를 죄책으로 본 것입니다.

죄책감이 드는 것은 계약을 위반한 것인데, 위반한 쪽에서는 부담감을 느끼며, 반대로 짜증은 빚을 갚기를 요구하는 쪽의 분노감정입니다. 융합관계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도 없이 서로에게 의지해서 진부한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융합으로 인해서 각자가 가져야 할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갖지 못하고 자신들의 욕구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가면서 각자에게 미해결 과제만 쌓아가게 되며 언젠가는 이런 억압된 욕구가 표출될 때 서로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융합은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가장 흔히 일어나지만 사회적으로도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사이에 생깁니다. 권위자와 리더 등과 같은 사람과 그 지배를 받는 하위에 속한 사람 사이에 융합이 일어나면 하위자는 상관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되며, 그러면서 그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앞에서는 아부하지만 뒤에서는 공격하는 이중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융합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건강한 융합’과 ‘건강하지 못한 융합’이 있는데, 전자는 일시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동일시하여 하나가 되는 현상으로써 단체 경기나 두엣으로 노래하는 경우 두 사람이 경기나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서로가 호흡을 같이 해서 마치 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연예인 가운데 오랫동안 콤비로서 행동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경우가 건강한 융합에 해당하지만 후자의 경우 알아차림과 접촉이 결여되어 독립적인 개체로 체험되는 건강함이 없고 서로 의존하거나 지배하는 관계가 있을 뿐입니다.

두 사람이 거의 십 년이 넘도록 서로 다정하게 지냈습니다. 한 사람(갑)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다른 사람(을)은 넉넉하지 못해서 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호의로 받아들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갑은 여전히 을을 도와주는 것으로 삶의 기쁨을 삼았습니다. 을은 그런 갑의 호의를 거부하는 것은 갑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속 도움을 받으면서 두 사람은 즐겁게 어울렸습니다. 갑이 가자고 하면 을은 다소 싫어도 참고 응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갑에게 예속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관계를 정리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갑이 받을 충격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나이가 들어서 건강도 좋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없는 것이 을로 하여금 괴로움이 되고 있습니다.

융합은 경계선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런 사람은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모든 것을 다 조달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기에 앞서서 부모님이 다 알아서 채워주었기 때문입니다. 경계선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지를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융합함으로써 살아가려는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새로운 일에 개입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에 무척 두려움이 많거나 서툴러서 관계 형성을 다양하게 할 줄 모릅니다.

어떤 남자는 오랫동안 어머니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는 혼자 아들을 기르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꽤 많은 돈을 벌었고, 아들이 자신의 분신이며 아들을 위해서 자신은 어떤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자신이 번 돈을 아들이 쓰는 것에 무척 만족감을 느낍니다. 자신은 버는 어려움을 겪었고 돈이 없으면 생존조차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늘 느끼기 때문에 돈을 버는 일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면서 살고 있지만 아들이 돈을 쓰는 것은 오히려 즐거운 일로 받아들여져서 아들로 하여금 돈을 쓰도록 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온갖 필요한 것 모두를 공급받으면서 자랐고 어머니의 요구에 따라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혼 생활이 의미가 없습니다. 돈을 쓰는 것이 이외에는 다른 것에 의미를 두지 못합니다. 결혼도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 준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그에게는 어머니와 돈만이 중요하지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내사를 받았고 그것이 융합이라는 단계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원하는 일을 거부할 수 없었고, 어머니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며 그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어머니의 요구로 인해서 결혼을 했지만 어머니로부터 독립해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어머니를 배신하는 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감당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장성한 아들은 어머니를 보호하는 일이 바로 어머니의 요구를 따르는 것이며, 그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어머니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들 부부는 끝내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고 결국 이혼하게 되고 말았는데 이와 같은 경계선 혼란을 겪는 사람들은 융합이라는 또 다른 건강하지 못한 관계성 속에 휘말려 문제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독립적인 행동을 선택하는 일을 가지고 부모를 배신하는 행위로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이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융합으로 받아들이거나 병적으로 모성에 집착하는 편집증적 성향을 지닌 어머니와 그로부터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자녀 사이에서 융합이 나타납니다.

고생하면서 자신만을 바라보고 사신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일을 죄책감으로 여깁니다. 겉보기에는 효부 효자 같은 이들에게 나타나는 이런 융합은 결국 건강한 삶을 해치게 됩니다. 집착이 심한 경우에 결혼한 아들 부부를 시기함으로써 며느리가 아들을 훔쳐간 도적으로 여겨 공격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융합은 고부간의 갈등의 원인이 되어 사사 건건 며느리를 괴롭게 함으로써 아들을 잃은 데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융합이란 결국 건강한 개체로서 살아가야 할 관계를 서로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서로의 삶을 불행하게 합니다.

 

출처: 영성이야기 (갓피플카페:healinghouse), 장봉운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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