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세계 영성은사/† 영성-용어이해

투사

초록 등불 2011. 7. 24. 00:18

우리는 흔히 자신의 생각이나 욕구나 감정 등을 타인의 것으로 지각하는 잘못을 범하면서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냅니다. 예를 들자면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타인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며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이 자기를 그렇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여 어떤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합니다. 남들이 자신을 과소평가한다고 늘 말하면서 주눅이 들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투사’(projec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현상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단점이나 무능을 스스로 인정하지만 결코 들어내놓고 시인하지 않으려고 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돌려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심리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 투사에는 ‘창조적 투사’‘병적인 투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새로운 상황에 처하여 그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 방편으로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사용하는 행위이며, 후자는 자신이 직면하기 힘든 내적인 욕구나 감정 등을 회피하기 위하여 무의식적이고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투사의 대상은 감정이나 욕구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각이나 가치관도 포함되며,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투나 분노 등과 같은 감정은 물론이고, 자신감이나 창조적 에너지 등도 투사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투사하는 이유는 자신의 욕구가 좌절되는 것보다 고통을 덜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자신이 소화하기 힘든 부분들을 부정하여 타인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정서적 부담을 덜고자 하는 자기 방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변명과 같은 것인데, 자신의 죄를 진솔하게 고백하기 보다는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변명함으로써 죄책감을 잊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함으로써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투사를 함으로써 자신의 억압된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공격성을 억압하고 타인에게 투사하는 경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공격성을 방어하는 동시에 타인을 매개로 하여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고 호메이는 주장합니다(K Homey, 'Unsere Inneren Konflikte, 1991).

이렇게 투사하는 사람은 대인관계에 갈등이 있으며, 이를 타인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점이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인정하기 보다는 자신 밖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학업성취도가 낮거나 젊은 시절 하고자 했던 일을 하지 못해서 그것이 마음의 응어리로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이나 앞의 글에서 다룬 내사가 이루어진 사람의 경우에 자신의 자녀를 통해서 그 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받습니다.

이 경우에 부모는 자녀에게 과도한 기대를 걸게 되며,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감수합니다.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꿈을 접어야 했거나 할 수 없었던 부모가 자녀를 통해서 그 일을 성취하고 싶어서 자녀에게 늘 공부하라고 다그치며, 어떤 희생을 치려서라도 자녀가 일류 대학에 가도록 뒷바라지를 합니다.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자녀를 통해서 그 욕구를 성취하기 위해서 역시 희생을 치릅니다. 과도한 지출을 상관하지 않으며, 자녀의 적성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욕구를 자녀를 통해서 이루려고 합니다. 이런 부모는 자녀에게 끊임없이 내사와 투사를 행함으로써 자녀를 힘들게 만듭니다.

이런 경우 자녀가 그 일에 흥미가 있고, 공부도 잘 한다면 그 투사는 창조적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 수미 씨는 그 어머니의 극성맞은 투사로 인해서 세계적인 가수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조 수미 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강요로 말미암아서 가수의 길을 갔고, 그녀도 또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기에 그것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그 일에 재주가 있다고 인식하고 행동하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었습니다. 특히 음악과 같은 예능 분야에서는 조기교육이 무척 중요한데, 이런 극성적인 어머니의 투사가 없으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장애인 피아노 연주가로 유명한 희아도 역시 비슷한 예입니다. 어머니의 끈질긴 가르침이 없었다면 오늘의 희아는 없었을 것입니다. 창조적인 투사는 이렇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들어내는 중요한 기능이 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병적 투사입니다. 부모의 헛된 기대로 인해서 자녀가 고통을 당하게 되며, 부모의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는 자녀에게 무리하게 요구함으로써 자녀의 잠재력마저 손상이 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다른 사람의 특정한 행동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여 심하게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에 투사가 반영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대학가에 온통 시위로 얼룩졌던 암울한 시대에 대학 새내기들은 선배들로부터 ‘의식화 교육’을 받습니다. 시위를 위해서 시국 강연이라는 이름으로 날마다 집회가 열렸고, 그 집회에서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강연만 듣습니다. 날마다 시국강연을 듣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했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내사로 인해서 억압되어서 할 수 없었던 욕구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 행위를 하는 것을 볼 때 자신은 기꺼이 그 일에 휘말리게 됩니다. 특히 사춘기를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자란 이른바 모범생들에게서 그런 증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청소년기를 오로지 공부에만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부으면서 부모와 교사들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법만 내사된 청소년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마주친 것이 시위였고, 기성세대에 대한 투쟁이었습니다. 이제껏 억압되어온 자신의 충동이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며, 이를 군중적인 시위로 발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 역시 그 동안 내사를 통해서 억압되어 온 욕구를 군중의 힘으로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타인이 하는 행동에 자극을 받아 자신의 내면에 억눌렸던 욕구를 풀어낼 수 있는 집단적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며 한 두 사람의 선동에 집단적으로 호응해서 시위에 가담하는 일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집단적 내사를 꾸준히 해 왔기 때문에 집단적인 투사가 쉽게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성들이 같은 옷을 입거나 같은 화장을 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 역시 투사에 기인합니다. 자신만이 돋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다른 여성이 같은 옷을 입었을 경우 그 여성이 자신보다 더 예쁘게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같은 옷을 입는 것을 거부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욕구나 행동 경향에 대해서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욕구나 행동경향에 대해서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여성에게서 더 민감하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예를 들면, 욕심장이는 다른 사람의 욕심을 쉽게 알아차리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타인의 그런 행동을 더 잘 읽어냅니다.

이와 같은 투사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예민해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을 받는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투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전단계에 나타나는 우리 내면의 감성작용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이 많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여아가 아침마다 옷 때문에 한 바탕 전쟁을 치릅니다. 옷을 이것저것 입었다 벗었다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등교해야 할 시간이 임박해서야 겨우 마무리를 합니다. 이 초등학생의 경우 타인과 비교하고 타인의 시선을 너무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내면의 창조적인 힘을 타인에게 투사하여 외부 대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경우 자신의 투사행위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타인과 비교해서 그것을 능가하려고 하기 보다는 피하려고 하는 소극성이 생기게 된다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비교하고 판단하는 일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자신을 열등한 위치에 놓고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면 소극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을 압도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행동하는 경우에 이를 부정적인 투사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정치, 종교, 사회, 경제,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납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삶이 복잡하고 다양하게 되는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종교적인 부분에서 죄의 문제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에서 칼 융과 같은 사람들은 이를 투사작용으로 간주했습니다. 특히 니체와 같은 사람은 인간의 내부 인격을 하나님과 사단으로 구분해 놓고 선한 것은 하나님으로 악한 것은 사단으로 나누어놓고 싸움으로써 내전상태에 빠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우리 내부에 있는 악한 요소들을 ‘내면에 있는 야수’(das innere Vieh) 혹은 ‘그림자’(Schatten)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의 본성 가운데 야성이 있으며, 이는 오히려 창조적인 힘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야성으로 인해서 탐험이나 도전이 가능해지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을 제공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이 내면의 감정을 두 극단으로 분열시켜 놓음으로써 스스로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설명했으며, 타 종교는 이런 내면의 야수를 종교활동이나 예술활동과 동일시함으로써 승화시겼으나 기독교는 이를 통제하거나 외부로 투사시킴으로써 우리의 내면세계를 분열시겼다고 비판했습니다(Nietzsche,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Jenseits von Gut und Böse’ 1969).

융 역시 니체의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며, 특히 ‘그림자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개체로서 수용되지 않은 인격의 부분을 ‘그림자’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투사는 개인으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견해를 흐리게 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저해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개인은 그림자를 외부로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의 한 부분은 적대적인 쪽에 남게 되며, 이렇게 소외된 그림자는 마침내 자신을 괴롭히는 적이 되어 자신을 끊임없이 학대하게 만든다고 정의하면서 따라서 이것을 깨닫고 받아들여서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프로이드는 ‘에고’라고 표현했는데 그의 책 ‘순수이성비판’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다루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밖으로 투사함으로써 죄에 대한 책임 회피를 해 왔고, 융은 포이에르바흐가 주장하는 대로 ‘최고선’(das höchste Gut)으로서의 하나님도 우리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외부로 투사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최고선과 최고 악을 밖에 투사해버린다면 우리 영혼에는 무엇이 남겠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한 까닭은 이들이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에 대한 깊은 인식이 없었고, 영적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영적 존재의 악과 선은 투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영적 실체로서의 작용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답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존재로서의 영의 실체를 그들은 인식하지 못했으며 포이에르바흐 역시 독일 근대 사변철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늘날과 같은 영적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오류를 낳았던 것입니다. 투사는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 생각과 내 욕구로 상대방을 평가는 그릇된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투사를 오랫동안 행하여 온 사람의 경우 하나님에 대한 인식 역시 투사로 인해서 그릇될 수 있으며,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으로 오인함으로써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문제는 무척 복잡해질 것입니다.

출처: 영성이야기 (갓피플카페:healinghouse), 장봉운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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