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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윗 목사님]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잃지 않는 방법

초록 등불 2012. 2. 21. 11:29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잃지 않는 방법

   - 이다윗 목사 

 

 

 

 

 

  성령님께서 처음 7명의 성령사역자를 세우셨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저들을 세워야 하는지도 몰랐고 어떤 식으로 임명식을 거행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늘 하던 대로 성령님께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성령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내게 기름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기름을 거룩한 기름으로 성별을 하고 성령사역자 각자에게 기름병을 준비시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나는 기름을 준비했고 휴대할 수 있는 조그마한 기름병 7개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시간에 성령사역자를 앞에 부르고 임명식을 가졌습니다.

기름을 성별 했으며 성령사역자에게 기름병을 하나씩 나눠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성별 된 기름을 각자의 기름병에 채워주었습니다. 그런 뒤 성령님의 말씀대로 저들을 성별하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제사장들을 성별하라고 명하시면서 특별한 의식을 수행했습니다. 저들이 성막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저들을 성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별의식은 양의 피를 저들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발랐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씻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그 수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와 그 아들들의 오른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출 29:20)

 

또한 하나님께서는 문둥병자를 성별 할 때 제사장과는 약간 다른 부분을 첨가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름부음입니다. 제사장은 문둥병자에게 희생짐승의 피를 취하여 저들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감람유를 취하여 같은 장소에 발랐습니다.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은 자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 곧 속건제 희생의 피 위에 바를 것이며”(레 14:17)

 

하나님께서 저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기름을 바르게 하신 이유는 더 이상 세상의 소리를 듣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라는 뜻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저들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바른 이유는 더 이상 세상의 명예와 쾌락을 좇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엄지발가락에 바른 이유는 더 이상 세상과 동행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나는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신대로 성령사역자에게 그대로 행했습니다. 나는 저들에게 충만한 기름부음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나의 소원은 저들의 기름부음이 날이 갈수록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사실 저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비해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은사보다 적은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나의 은사가 저들보다 크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생각도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교만인지 알고 있습니다.)

저들이 성령사역자의 부름에 잘 수행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마음에 적잖은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성령님께 여쭸습니다. 그랬더니 성령님은 “저들은 네가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요한일서 2장 26절을 상기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성령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내가 영성훈련을 시작했을 때는 저들의 능력의 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일일이 가르쳐 주시고 또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성령님께서 나를 가르치신 것처럼 저들을 가르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저들의 스승이 될 수 없음을 압니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살릴만한 큰 능력이 있더라도 결코 저들의 스승이 될 수 없음을 압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나의 스승이 되시고 저들의 스승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셀 수도 없이 성령님은 내게 “앞서가지 말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내게 “만들지도 말고 세우지도 말고 조직하지도 말고 계획하지도 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네 가지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이 네가지 말씀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영성훈련 처음에 들은 말이었지만 언제나 계속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성령님을 앞서 가려고 할 때에도 이 말씀을 해 주셨으며 인간적인 방법으로 뭔가를 하려고 할 때에도 이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생각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해야 할 때에 바로 그 때에 성령님께 물을 뿐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너무도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성령님의 말씀은 내 어깨에 걸쳐 있는 무거운 짐을 벗겨 주셨으며 내 목을 조르고 있는 멍에를 벗겨 주시고 부러뜨리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내게 기름을 부으셨고 그 기름부음심으로 인해 나의 짐은 가벼워졌습니다. 할렐루야!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because of the anointing) 멍에가 부러지리라”(사 10:27)

 

내가 성령사역자들에 대한 염려로 마음에 짐을 지고 있을 때 차마 보지 못한 성령님께선 내게 “기름부음을 잃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모두 세 가지입니다.

 

첫째, 그릇이 깨끗해야 합니다. 성령사역자의 그릇이 금그릇이든지 나무그릇인지 상관이 없다 하시면서 중요한 것은 그 그릇이 깨끗이 비워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릇이 더럽거나 뭔가 다른 것으로 채워져 있으면 아무리 고귀한 성령님의 기름이 채워진다고 할지라도 그 기름은 더러워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릇이 더러운 것은 죄로 인해 더러워진 것입니다. 그릇에 뭔가 채워져 있는 것은 세상의 정욕을 말합니다. 그릇을 깨끗이 비운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정결하고 거룩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

 

둘째, 그릇에 틈이 없어야 합니다. 틈이 있으면 기름은 새고 맙니다. 아무리 좋은 기름이 부어진다고 할지라도 그릇에 틈이 있다면 금방 기름은 없어지고 말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틈’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마귀를 조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에게 조그마한 틈이 있다면 그 틈으로 마귀는 들어올 것이고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은 곧 새어질 것입니다.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7)

 

마귀가 노리는 틈은 생각보다 조그만한 것일 수도 있고 하찮게 여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부부싸움도 하찮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듯이 마귀에게 허용되는 틈도 이렇게 하찮은 것부터 시작됩니다.

성령사역자는 매일 영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루라도 쉬는 날에는 금방 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성령사역자는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매일 하는 것입니다. 영의 기도를 쉴 때 마귀는 그것을 틈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서 사자처럼 당신을 잡아 먹으려고 달려 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아예 판단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늘 남의 좋은 점만 얘기 해야 합니다. 하지만 늘 우리는 말에 실수가 있고 혀를 제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우리의 혀는 그 동안 쌓아 놓은 신뢰를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고 말 것입니다.

 

셋째, 그릇에 고인 기름은 썩습니다. 성령님은 한번 받은 기름은 늘 사용하여서 새로운 기름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기름이 고여있으면 썩어 냄새가 납니다. 아무리 능력의 기름부으심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기름은 썩고 말 것입니다. 또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그릇은 늘 채워져 있어서 새로운 기름이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큰 호수가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와 사해라고 불리는 호수입니다. 크기는 사해가 훨씬 큽니다. <죽음의 바다>라고 해서 사해라 불리고 있습니다. 갈리리 호수는 넓고 수심이 깊어 고기들이 많이 삽니다. 하지만 사해는 고기가 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물이 너무 짜기 때문입니다. 염분이 높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단강을 타고 내려온 물고기들이 사해의 물을 만나면 견디지 못해서 물 밖으로 튀어 오른다고 합니다.

사해의 물이 짜게 된 이유는 물이 고여있기 때문입니다. 흘러 들어온 물이 방출되지 않기 때문에 짜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물이 들어왔다가 빠지지 않으면 물이 짜게 되고 물고기가 살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성전으로부터 생수가 흘러 나와 그것이 바다를 소성시키겠고 그곳에 많은 고기가 있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영적 부흥을 말합니다. 그런데 영적 부흥의 뒷면에 죽음의 그림자가 놓여져 있습니다. 그 부분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겔 47:8-12)

 

진펄과 개펄입니다. 진펄은 <늪, 습지, 수렁>을 말하며 개펄은 <수조, 물웅덩이>를 가르킵니다. 진펄과 개펄은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방출하지 못합니다.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펄은 언제나 진펄이며 개펄도 언제나 개펄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진펄과 개펄 같은 마음이 되지 마십시오.

누군들 진펄과 개펄 같은 마음을 갖고 싶어 그리 되겠습니까? 진펄과 개펄이 되지 않으려면 끊임 없이 흘러 들어온 기름을 방출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름을 방출할 수 있습니까? 기름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이(impartation)의 방식이어도 좋고 병을 치료하는 사역이어도 좋습니다. 어떤 모양이든지 가지고 있는 기름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 그것이 방출입니다. 강이 바다를 소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들어온 기름을 바다로 흘려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살고 바다를 살렸던 것입니다.

실제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손을 얹고 성령의 기름을 전할 때 나에게서 기름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많이 체험합니다. 손이 저리거나 얼얼한 것도 기름이 방출되는 증상입니다. 바늘같이 콕콕 찌르는 느낌도 기름이 방출되는 것입니다. 피부가 파도처럼 물결치는 느낌을 느끼는 것도 기름이 방출되는 증상입니다. 손 주위에 뜨거운 불기운이 맴도는 것도 기름이 방출되고 있는 것이며 바람 같은 것이 손가락 끝에서 빠져 나가는 것도 기름이 방출되는 증상입니다.

나의 몸을 통해 성령의 기름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머리에서 기름이 온몸으로 흘러 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뜨거운 기운이나 뜨거운 빛이 내려오는 느낌을 받았으며 또 어떤 사람은 강한 전류가 몸 전체를 자극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느낌은 그 사람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있는 증상입니다. 이것은 곧 성령의 불을 받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며 영광 중에 강한 권능을 받을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강에서 흘러 들어온 생수로 인해 바다가 소성되듯이 더럽고 악한 영들이 떠나가고 새롭고 충만한 영이 들어와 저들의 영혼육을 소성시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성령사역자들을 보았습니다. 저들의 놀라운 능력행함도 보았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저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저들의 능력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도대체 왜 저렇게 되었을까 궁금했습니다.

 

나는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언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환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의 삶에는 기쁨이 없고 오히려 평번한 기독교인보다 훨씬 못한 영적상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살아가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씩 깨우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들의 기름이 없어지고 저들에게 충만한 기쁨이 없는 것은 저들의 그릇에 뭔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들의 그릇에 이미 뭔가 채워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기름을 부으셨을 때 그 기름이 퇴색되고 더러워지고 제 기능을 못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저들의 그릇에 틈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능력을 받고 나서 땅의 것을 사모하게 된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틈을 만들었고 안목의 정욕으로 틈을 만들었으며 세상의 자랑으로 틈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의 기름이 새어나간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저들이 진펄과 개펄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값진 것을 남에게 나눠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에서 사해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귀한 것을 혼자서 먹으려고 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았던 종이 주인에게 꾸지람을 듣고 가지고 있던 돈 마저 있는 자에게 빼앗기고 만 예수님의 비유를 기억하십니까?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쌔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5:14~30)

 

예수님의 이 비유는 우리 성령사역자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있는 자를 더 있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의 말씀을 자세히 드려다 보시면 은혜 위에 은혜가 임하며, 능력 위에 능력이 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믿음 위에 믿음이 더하고 은사 위에 은사가 더 생겨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게으르고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악한 종에게는 가지고 있는 것도 빼앗길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