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승리 문제해결

[영의 원리] 근광자백(近光者白), 근암자흑(近暗者黑)

초록 등불 2012. 3. 5. 16:28

 

  [영의 원리] 근광자백(近光者白), 근암자흑(近暗者黑)

 

오늘은 어려운 일과 문제들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거나 영적으로 무기력, 탈진하여 신앙생활의 기쁨과 성령 안에서의 생명을 잃은 분들을 위한 영적 원리의 글을 하나 써 봅니다.


사람이 몸에 병이 들면 여러 가지 특징들이 나타나지만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무기력입니다. 식욕도 없고 의욕도 없고 그래서 활동도 하기 싫어하게 되고 자리에 눕거나 쉬는 것을 좋아하게 되지요.


이러한 원리는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세계의 원리들을 성경, 기도, 그리고 영적인 자료들을 살펴보며 성령 안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연계의 원리와 참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령 성령님은 우리에게 열정과 거룩한 소망과 참 생명의 생동감을 가져다주니 ‘불’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불을 지닌 장작개비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불이 붙은 장작개비가 모이면 어떻게 될까요? 모이면 모일수록 더 뜨겁게 잘 타오르고 열기도 강해져 가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님들도 모이면 모일수록 그곳에 영적인 역사와 열기가 뜨거워져 갑니다. 이를 ‘무리의 법칙’이라 하지요.


그래서 믿음이 식고 신앙의 기력을 잃은 분들은 뜨거운 무리 속으로 들어가면, 무리의 법칙에 의하여 믿음의 고양되고 잃어버린 신앙의 기력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혼자의 힘으로 버티기 힘든 문제나 시련 앞에서는 무리 속으로 들어가서 무리의 법칙을 활용하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를 예배나 집회 시간이 활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가령 뜨거운 성도님들이나 중보기도자들을 앞자리에 가득 채우면 당연히 뜨거운 불길이 앞에서 활활 타오르니 집회나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나 강사에게 큰 도움이 되지요. 그래서 캐더린 쿨만 같은 여사는 집회 시 기도를 많이 하는 중보 기도자들을 항상 맨 앞자리에 앉혀서 그곳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앉지 못하게 하였지요.


목회자도 이렇게 영의 원리를 알면 예배나 집회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영적인 힘을 공급받고 싶으면 뜨거운 성도님들을 앞자리에, 그리고 자신이 아닌 교우 전체들이 영적으로 힘을 얻고 고루 영적 임파테이션의 효과를 노린다면 힘을 잃은 무기력한 신자 사이사이에 강력한 기도의 용사들을 고루 앉히면 되겠지요.


여러분도 집회 시간에 옆사람이 뜨겁게 기도하거나 참 은혜롭게 찬송이나 찬양을 하면 같이더불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신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영적인 원리를 안다면 가능하면 성령충만한 분들의 옆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영적인 세계도 배우고 익하며 가르치시는 성령 안에서 깨우침을 받고 보면, 이처럼 자연계의 원리나 영적인 세계의 원리나 참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결국 이 세계는 영적인 세계로부터 창조되었고, 그러므로 우리가 창조한 사이버 세계의 원리가 결국 우리 세상의 원리를 많이 본따 만들었듯이, 현상계 역시 영적 세계의 많은 부분을 담아 창조되었을 것이라고 추정이 가능한 것이지요.


이러한 원리의 비슷함이 육체의 건강과 영적인 건강의 원리에도 거의 동일하거니 비슷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이 병이 들면 여러 가지 특징 중 하나가 무기력입니다. 먹는 것이나 매사에 의욕이 없어지고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육신적으로 병이 들었을 때는 기력회복을 위하여 휴식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나가서 자꾸 몸도 움직여 주고 운동도 해 주어야 건강회복에 도움이 되는데, 병이 들면 점점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그러므로 더욱 소화력도 떨어지고 식욕도 떨어지고 혈액순환 등 모든 장기와 기능들이 더욱 쇠약해져서 점점 병은 더 악화되고 몸의 건강은 더욱 나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었어도 적절한 휴식과 함께 반드시 의지로 떨쳐 일어나 움직이고 활동하고 해야만 합니다. “앉으면 죽고 서면 삽니다”


이러한 원리는 영의 건강에도 마찬가지로 동일한데, 사람이 영적으로 병이 들면 나타나는 증상이 영적 무기력이나 탈진입니다. 심한 무기력이나 탈진의 경우에는 병든 사람에게 휴식과 쉼이 필요하듯이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처럼 휴식과 쉼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 해서는 아니됩니다. 의지를 발휘하여 떨쳐 일어나 기도와 말씀을 다시금 드리고 읽어야 하며, 무리의 법칙 등의 원리를 쫓아 예배나 기도회나 집회 등에도 자꾸 참여하고, 믿음의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움직이고 활동을 하고 소통을 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육신이 병든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물고기가 그냥 물에 떠내려가게 되듯이 그 무기력 속에서 점점 활동과 움직임을 하지 않게 되지요. 하지만 이것은 점점 더 나쁜 상황을 부르고 초래하게 되지요.


영적인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영적으로 무기력해져서 생명력을 잃고 물이 그냥 떠내려가는 물고기처럼 마냥 그러한 흐름에 자신을 맡기면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급기야는 탈진, 신앙을 잃어버리거나 실족할 수도 있습니다.


“앉으면 죽고 서면 산다”라는 건강의 원칙은 영적인 건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금 회복하려면 의지를 발휘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의지를 발휘하여 다시금 기도를 시작하고 다시금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다시금 예배나 기도회나 집회 등에 수시로 참여하여 무리의 법칙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경건하고 영적인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 상담도 하고 기도도 함께 드리고 하면서 자꾸만 힘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성경과 아울러 신앙서적도 읽고 하면서 신앙적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승리하고 이겨내었는지 도전도 받고 해야 합니다.


다른 글에서 쓴 기억이 나지만 생명은 흐름이며 순환입니다. 고여있는 물은 썩고 말듯이, 피가 순환하지 않으면 육체적 생명에도 치명적인 건강 이상이 오듯이,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다하여 혼자 방안에만 앉아 있거나 고독하게 지내면 더욱 무기력지고 점점 더 영적 상태도 나빠져 갑니다. 아픈 사람이 떨쳐 일어나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하면서 몸의 기력을 회복하고 식욕도 회복하고 해야 하듯이, 영적인 건강도 자신이 생각하여 좋지 아니하다 느낄 때면 더욱 소통과 흐름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영적인 예배모임이나 영적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소통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지 못하고 그냥 무기력한 물고기가 흘러가는 물에 떠내려 가듯이 그냥 무기력한 채로 떠내려갑니다. 점점 아래로 그리고 어둠 속으로 떠내려갑니다. 그렇게 되면 점점 영적인 상태도 나빠지고 더불어 문제와 환경도 어려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영적인 원리입니다.


자연계에서도 같은 종이나 같은 수준의 존재들끼리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개는 개를 만나면 반가워해서 다가서고 고양이는 고양이를 만나면 반가워 다가섭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다 지성적, 감성적, 영성적 차이와 수준이 있어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만나고 어울리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준이 차이가 나면 대화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건달은 건달끼리, 불량배는 불량배끼리 어울리게 되고 만나면 서로 편하고 좋은 법입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편하고 좋지, 불량한 사람을 만나면 서로 불편해집니다. 그것은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므로 대화가 통하지 않고 교감이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유상종의 원리는 어두움은 어두움을 부르고 밝은 것을 밝은 것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가 한자어로 근광자백(近光者白), 근암자흑(近暗者黑)이라고 이름지어본 것입니다. 곧 빛을 가까이 하면 밝아지고 어두움을 가까이 하면 어두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풀이하여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영적으로 사람이 탈진하거나 무기력해지면 마음에서 빛은 줄어들고 어두움이 자리 잡습니다. 그러면 빛의 세계의 성령이나 선한 천사들보다 어두움에 속한 사단이나 그 수하인 악한 영들이 그 냄새를 맡고서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미 자신의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빛보다는 어두움의 존재들이 주는 생각들과 마음이 받아들이기 편하고 좋습니다.


바다 속 상어는 먼먼 거리의 피 냄새도 잘도 맡고 찾아온다고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거리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바다 속 상어보다도 사람의 마음이 어두워져 피 냄새를 풍기면, 사단과 그 나라에 속한 악한 영들이 바로 찾아 날아듭니다. 그리고 자신도 이미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러한 영들이 주는 생각과 마음을 쉬이 잘 수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 좌절과 낙심, 낮은 자존감 등의 생각을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른 채 아무런 분별력 없이 다 수용합니다. 그리고 수용한 만큼 자신의 영은 더욱 어두워져 갑니다. 그리고 어두워지면 더 어두워진 만큼 더 나쁜 상태의 어둡고 악한 것들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원망과 불평, 좌절과 낙심 등의 수준에서 마음은 더욱 어두워져서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으로 악화되고 점점 심해지면 생의 의미를 잃고 의욕도 잃고 극단적인 행동으로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적인 흐름과 원리를 알아, 병이 들면 때로 휴식도 필요하지만 나가서 운동도 하고 햇볕도 쪼이고 소통과 순환을 하여야 병을 이기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듯이, 영적으로도 자신이 병이 들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어두움이 아닌 빛의 세계로 올라가기 위하여 힘쓰고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앉으면 죽고 서면 사는 원리가 여기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타락한 본성적 흐름에 자신을 아무 생각없이 생각과 몸을 맡기면 위의 말씀처럼 점점 어두움으로 떨어지고 어두움의 세력이 다가오고, 어두움의 세력은 결국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는 것이 목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들과 상황은 자꾸만 꼬이고 발생하고, 점점 영적 상태도 현실적인 삶도 점점 어두워지고 나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계의 일들은 실상 현상계의 일과 원인으로서 일어나는 것들이 대부분 아닙니다. 그 배후에 영적인 원인가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밝은 상태를 유지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성령과 천사들이 우리의 곁에 찾아들고 또한 우리도 그들이 주는 생각과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어서 영적 상태는 더욱 좋아지게 되고, 영적 상태가 좋아지면 일반적으로 좋은 일들과 환경적으로 여러 가지가 풀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과 말이 긍정적이고 믿음 안에서 행하게 되니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두움의 상태가 유유상종의 원리에 따라 어두움의 세력을 부르고 어두움의 세력은 곧 우리에게 불행과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의 영적 어두운 상태를 아무런 애씀도 없이 그냥 어두움의 바다로 자꾸만 떠내려가게 되면 점점 더 영적으로 더 어두워지고 일들과 환경들은 더욱 꼬이고 나빠지게 되고 불행한 일들이 다가올 가능성이 커져 가는 것입니다. 말과 생각도 부정적이고 어둡게 바뀌게 되니,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영의 원리에 따라서 모든 것들이 더욱 악화되고 어두워져 가는 것입니다.


이정도 말씀드리면,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아시겠지요. 그것은 곧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영적인 무기력 등을 그대로 타락한 본성의 흐름을 좇아 떠내려가면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육체적 건강이나 영적 건강이나 “앉으면 죽고 서면 삽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어두워지고 무기력해지고 탈진되고 있다면, 더욱 애써 의지를 발휘하고 노력과 애씀을 통하여 영적 상태를 빛의 세계로 올려놓아야 하고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기력한 흐름을 따라 점점 기도와 말씀을 하지 않고 예배 등에도 소홀히 하고 혼자 고독한 세계 속으로 갇혀 가면 점점 어두움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점점 더 모든 일들은 꼬여지고 불행한 일만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의지를 발휘하여 말씀과 기도로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 어두움의 충분히 몰아내도록 빛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악된 삶을 통하여 마음이 어두워지고 영적으로 무기력해졌다면, 죄는 어두움과 사단의 통로, 즉시 회개하고 말씀의 토대 위에 삶을 다시금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영적 상태가 나빠졌다면 무리의 법칙, 경건한 무리 속으로 들어가서 활동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을 만나서 상담도 하고 기도를 통하여 힘을 공급받기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두움에 속한 것들을 다소 멀리하고 영적인 것들, 빛의 것들을 가까이하며 어두움을 벗어나 빛의 나라로 올라가기 위하여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빛의 나라로 올라가면 유유상종, 어두움의 존재들은 눈부신 빛에 다가오지 못하고, 좋은 사람들 그리고 빛 된 영적인 존재들이 다가서고, 그로 말미암아 겪고 있는 문제들도 해결의 실마리가 열리고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다가설 가능성이 커져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중의 하나는 이런 원리나 사실을 알고도 전혀 변함이 없으며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과 어두움의 마음에 자신을 그냥 방치하려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단언컨대 이러한 분들의 생은 어둡고 불행하며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듯 우리의 생은 운명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결정되고, 복과 저주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신11:26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신11: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신11: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단언컨대 어두움 속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애씀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그냥 무력한 본성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분들의 생은 어둡고 불행하며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언컨대 더욱 심하여 육체의 타락한 본성과 소욕대로의 죄악 된 삶의 흐름에 자신을 마냥 방치하는 경우 반드시 어두움으로 떨어져 결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사랑하시거나 긍휼히 여기신다면,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건지시는 방법은 반드시 환경의 풀무불이 다가옵니다. 자신의 의지를 조절하지 못하니 환경으로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조정하시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시는 환경의 회초리는 사람의 징계나 회초리와는 달리 많은 경우 혹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의 매이므로 참으로 감사한 경우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행하시는 환경의 징계는 정말로 아픕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의지를 발휘하여 속히 빛 된 삶을 회복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의지가 약해서 극복이 어렵다고들 말씀하시는 경우를 봅니다. 저도 인간, 이해합니다.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서라도 이겨내야 합니다. 가령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무서운 법령”이 공포되어도 이겨내지 못할까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많은 경우, 그냥 그대로 어두움 속에서 살고 싶은 핑계일 뿐, 정작 의지를 발휘하고 노력하기 싫기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알고 저도 알겠지만 인생은 고독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여겨 생각하고 울어주는 분은 아마도 부모님 외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님도 나이가 드시면 어렵습니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이겨내야 합니다. 자신이 이겨내면 자신이 사는 것이고 자신이 주저앉으면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은 긴 듯 하여도 참으로 짧습니다. 그 짧은 생에서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요? 우리의 생은 얼마나 되고 얼마나 남았을까요?


그러한 측면에서 바라볼 때 많은 분들이 의지를 발휘하고 애씀과 힘씀이 없이 그저 연약하고 타락한 본성의 흐름을 따라 어두움에서 더 깊은 어두움으로 빠져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유유상종, 어두움으로 빠져들어 가면 갈수록 더 깊은 어두움과 어두움의 세력이 다가오고 생과 환경은 비참해지고 어려워져만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지를 발휘하십시요. 힘을 내십시요. 노력하고 애쓰십시요.


기도로 주님을 찾고 말씀을 읽으며 마음을 새롭게 하고 밝게 하고 믿음을 새롭게 하십시요. 세상 모든 사람은 돕지 않을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그 모든 어두움을 이길 수 있는 법적인 모든 근거를 마련해 두셨고, 또한 우리가 어두움을 이겨내고 빛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혜사 생명의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손을 내밀고 문을 열지 않으시면 하나님은 아무런 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여야 합니다.


“주여, 나를 도와 주소서”라고 풍랑을 바라보다가 바다 속에 빠진 베드로처럼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생명의 음성인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혼자 힘들면 무리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소통하고 생명의 순환의 흐름을 타야합니다.


아무쪼록 영적 유유상종, 근광자백(近光者白) 근암자흑(近暗者黑)의 이러한 원리를 깨달아,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곧 힘쓰고 애써 빛의 영역으로 늘 다시금 새롭게 날개치며 올라가 사단과 어두움의 세력과는 관계없는, 하나님과 그 나라에 속한 존재들을 도우심 가운데 언제나 빛되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를 위하여 언제나 기도생활에 승리하십시요. 샬롬 !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시50: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시50: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시50: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시50: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시50: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시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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