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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핵심 진리] 영광과 능력의 베일

초록 등불 2012. 5. 13. 18:11

  

  [핵심 진리] 영광과 능력의 베일 (1)

 

영성집회를 시작하면서 제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기도인데, 건강할 때나 아픈 때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편안의 때나 역경의 때나 언제나 기도를 잊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방언기도입니다. 왜냐하면 충분한 분량의 기도를 하려면 반드시 방언기도가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가르치면서 실천을 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몸살로 몸이 다소 곤한 것은 곤한 것이고 제가 정해둔 시간 새벽녘까지 주님 앞에서 경건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쩌면 몸 상태에 무리다 싶을 정도로 기도하였는데도 몸살기운은 다소 회복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뿐입니다.


눈을 뜨고 일어나서 다소 곤하니 편안히 누워 기독 방송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주님께서 양무리를 치시는 환상이 열렸습니다. 지인 중 한분이 저를 위해서 기도하면 이런 환상이 보인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곧잘 주님께서 양떼를 거느리시고 초장과 물가에서 양을 먹이시는 환상이 열립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소 특이한 양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양 한 마리가 오른 쪽 앞다리가 무릎부근에서 잘려서 앞의 한 다리가 장애인 양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저의 경우는 환상이 열리면 3차원 입체영상처럼 열리기 때문에 마치 실제 같습니다.


양 한 마리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제게 다가와 얼굴을 비벼대며, 손을 핥으며 사랑에 목마른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깊이 그 의미를 읽어내려고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터, 주님께서 마음이 상하고 병든 자들을 잘 목양하라고 보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제 삶의 스스로의 무게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데, 주님께서 더욱 상처입고 병든 영혼들을 당신의 사랑으로 보살피라 말씀하시는 듯 하여 다소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지만, 주님의 일은 주님이 이루실터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저는 “가라” 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며 나름 애쓰며 순종하며 나아갈 뿐입니다.


아프다고 마냥 누워만 있다면 몸의 기능은 점점 떨어져서 더욱 좋지 않아지지요. 적절한 운동과 나들이가 필요하지요. 마침 봄이라 공기도 햇살도 따스할 것 같아 마스크 하나로 가볍게 가리고 식사 후 산책을 나섰습니다. 외출하는 시간이 적으니 다소 답답하기도 하구요.


한없이 날씨는 맑고 햇살은 따스하더군요. 몸살 기운만 아니면 정말 좋으련만 그래도 오히려 실내보다도 더욱 건강에도 좋을 듯 느껴지는 바깥날씨와 기온이더군요.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려가니, 근래 들어 자전거만 타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곁을 함께 달리는 어린 소녀 모습의 알록한 꽃무늬 흰옷을 입은 영적존재가 나타나 함께 달리는데, 오늘도 문득 나타나 함께 달리더군요.


문득 환상이 열리듯,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문득 나타나고 보여지는 영적 존재들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성령의 뜻에 따라 다른 듯 합니다. 어제 밤에는 다소 곤하니 정을 담뿍 느끼게 하는 다정이라고 이름 지은 아이가 곁에 있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다정이보다 어린 남자 아이의 꼬마가 주로 곁에 늘 있습니다. 똑똑하고 귀엽게 생겼습니다. 지금도 그러네요.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시는 분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서 의문을 풀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혹시 환청이나 환시와 같은 정신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제가 면밀히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니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가령 장님이었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눈을 뜨게 되면 세상의 풍경이 보이듯이, 하나님께서 어떤 계기로 영의 눈, 곧 영안을 육신을 떠나기 전에 간헐적으로 혹은 지속적으로 열어 버리시면 곁에 다가오는 영적 존재가 보이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영의 눈이 열리면 시간과 장소 등에 따라서 다양한 영적 존재들이 곁에 다가오고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곤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과 능력의 세계를 접해보지 못하신 분들은 자신들의 경험이 없다하여, 분명히 성경에서도 온갖 성령 안에서의 표적과 기사와 천사 등의 존재 등에 대해서도 기록되고 있는데도, 터부시 하고 이상한 눈길로 바라봅니다.


그러한 분들이 평신도 분들일 경우에는 그래도 괜찮지만, 목회자일 경우에는 문제가 큽니다. 성도는 기도의 충만한 생활을 통하여 다양한 영적 현상을 경험하는데, 정작 다니는 교회의 목회자는 터부시하고 잘못된 것이라 하니, 성도는 영적 멘토를 찾지 못하면 혼자 고민하고 방황하게 되고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면서 그 속에서 힘겨워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경험해보면 상상외로 목회자분들이 영적인 세계와 현상에 대해서 무지한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는 영의 세계, 곧 성령임재의 가장 기초인 방언조차도 자신이 받지 못하였다 하여, 자신의 영적 위치를 지키려는 마음 등과 아울러 터부시하는 분들도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시대적으로 제한되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요.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어떤 교단에서는 신학교에서 목회자로 내어보낼 때 성령세례, 곧 성령의 충만한 임재 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하면 목회자 자격증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세례와 방언을 완전 동일시하는 문제와 그리고 다양한 목회 영역 상 한편 조금은 극단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목회자이건 성도이건 성령의 세례를 받지 아니하고 성령의 능력을 통하지 않고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교회의 목표 중 하나가 참된 사람의 양육에 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도덕적으로 휼륭한 사람을 양육하고 길러내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유교나 불교나 도교나 어느 종교, 나아가 정신수양이나 도덕을 가르치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훈련받고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러한 곳이 아닙니다. 교회의 궁극은 죽을 영혼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물과 피와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여 새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생명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참 생명은 본래 가지고 있던 육적 생명이 훈련되고 교육되어져서 무슨 도덕적으로 휼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와 공급하시는 능력 안에서 옛사람은 죽고 거듭난 새 생명, 곧 속사람인 영의 새 사람으로 빚어져 가는 것인 것입니다.


교회는 옛사람을 좋은 도덕율로 잘 교육시켜서 좋은 사람을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십자가와 성령 안에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영의 새 사람, 곧 진정한 생명인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은 영의 사람을 길러내는 곳인 것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교회가 목회자의 영적세계의 이해와 경험의 부족으로 그냥 말씀을 마치 도덕경을 논하듯 그렇게 관념적으로 풀고 이해하고, 하나님도 그렇게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풀어 가르치며, 중생과 성령과 경건의 모든 것들은 도덕율 수준으로 가르치고 이해시키는 곳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영의 세계는 그러한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관념과 상식의 세계는 이 세상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영의 세계는 성령의 권능과 능력이 생생하게 살아 역사하는 세계요, 표적과 이사가 가득한 세계입니다.


병든 자가 치유 받고, 귀신들린 자가 자유케 되고,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나며, 관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천사의 방문을 경험하는 세계입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목회자나 성도님들이 이러한 영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땅의 썩고 죽을 영광과 가히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영광을 맛보거나 누리지 못할까요?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을 두루 살펴보면 참으로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와 다르며,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사람들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교훈과 같지 않다고 놀란 것처럼, 하나님의 지혜에는 어떤 신비스러움과 신성이 어려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결국은 영이신 하나님, 그 영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고, 그리고 그 속의 영광을 누리지 못할까요? 하나님은 그 영광의 세계를 두 가지 베일 뒤에 숨겨 놓으셨습니다.


첫 번째 베일은 하늘의 영광의 귀한 것을 알아 땅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베일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여기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어려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세상과 겸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 누가 영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지혜의 하나님은 하늘의 영광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고 그것을 사기 위하여 땅의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에게만 그 보화를 얻게 하는 가림의 베일을 하나 두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려진 베일을 지혜의 눈으로 벗겨내고 온전히 하늘 영광을 위하여 땅의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음으로 영의 깊은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단코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마음에서 완전히 잘라내기 전에는 깊은 하나님의 영의 세계와 그 영광의 빛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이라는 베일을 완전히 걷어내기 전에는 그 세계와 영광을 누리고 보지 못하도록 지혜로운 자만이 걷어내는 베일을 하나 쳐 두신 것입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저와 우리가 아둔하여 착각을 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영광을 찾고 두드리면 그것이 얻어지고 누려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당신을 찾는 자에게 영의 귀한 것뿐만 아니라 땅의 귀한 것들도 더불어 누리게 하십니다.


물론 여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거치지 않고 찾는 세상의 영광은 일반적으로 죄악과 쾌락과 탐욕입니다. 육적 만족을 주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오직 구하며 그 속에서 풍성하게 오는 땅의 기름진 것들은 삶의 아름다운 것들이며 아름다운 풍요로움입니다.

그러나 우리 타락한 본성은 향기로운 풍요로움보다 썩은 냄새가 육신에 속한 것을 좋아하지요.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은 당신이 계신 깊은 영의 세계와 그 영광을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라는 베일 뒤에 숨겨 두셨습니다. 그것을 걷어내고 잘라내는 자에게만 허락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의 베일입니다. 저는 영적인 세계를 전혀 경험도 하지 못하고 맛보지도 못한 채 깊은 기도를 통하여 그것을 맛보고 누리는 자를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정말 집요한 기도의 시간을 일생 가져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데, 정말 집요하게 기도하여도 그냥 평범하게 경험하는 세계만 지속된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집요하도고 깊은 기도의 세계라는 베일 뒤에 당신을 숨겨 두셨습니다.


저도 목회자로 오기 전 일반적인 직업을 가지고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그런 일을 하면서 그다지 지루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마주보며 교감하고 실제적으로 보이는 세계와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도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하여 혼자의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이므로, 물론 성령 안에 들어가고, 또한 기도의 영이 임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기도하게 되고 한없는 영의 기쁨과 영광과 희락도 맛보지만, 결코 쉽지 만은 아닌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도 구약시대의 성전의 모형에 비유하면 성전 뜰의 단계, 성소의 단계, 지성소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기도의 시작단계인 다소 지루하고 힘든 성전 뜰의 단계를 매일 그리고 지속적으로 통과하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쉬운 기도의 분량에 깊은 영의 세계나 영광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충분하고도 깊은 기도의 세계로 나아오는 자,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그 세계와 영광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루 몇 십 분이나 가령 한 시간도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도의 수준이요, 분량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많은 것들을 잘라내고 하루 수 시간의 기도와 경건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기도를 들으신다는 믿음과 앞에서 말한 꼭 필수적이지 않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잘라내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온 삶이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는 산제사, 그런 주님과 독대하는 홀로의 기도시간과 경건 시간뿐만이 아니라 온 삶의 시간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고 교통하는 삶을 살려 애쓰는 자에게, 그야말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깊은 세계와 영광을 누리고 맛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은 그렇게 기도와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고 가까이 해야만 그 세계와 영광을 맛보게 하는 베일을 하나 더 두신 것입니다. 다른 요소들도 말씀드리자면 더 있겠지요. 가령 말씀대로의 삶, 정결한 삶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것들도 실상 위에서 말한 두 가지의 베일의 삶 속에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잘라내고 오롯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도와 말씀의 삶에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되면, 삶과 마음의 모든 영역들에서 점점 어둠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영광의 세계 앞에 가려두신 베일 두 가지를, 영적 지혜로운 눈을 가지고 벗기고 하나님께로 달려가는 자에게는 조금씩 그리고 점점 더 깊은 하나님의 영의 세계를 누리게 하시고 그 영광을 맛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셨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맛본 사람은 모세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 영광을 맛보기 이전에 혹독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40주야를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육신에 속한 모든 것들을 죽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빛은 우리 육신이 보면 죽게 되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우리가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죽인만큼 보게 되는 것이 영의 한 원리입니다. 육신과 그 속에 속한 모든 것들을 잘라내고 제거하는 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세계를 보며, 그 영광의 빛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몸이 온전하지 않기에 오래 나들이를 하지 못하고 조금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피곤함이 몰려왔으니까요. 하지만 몸은 곤하나 마음속에는 천국,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그 안에서 평강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전동휠차를 탄 몸이 불편한 분들이 몇 분 지나갔습니다. 앞서 보여주신 앞다리 하나가 잘려진 양의 환상이 생각나서, 나같이 본성이 부족한 사람이 어찌 영육간에 상처입은 사람들을 안아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 조금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주님이 영으로 눈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거리의 개념이 없으니 저는 달리는데 주님은 그냥 서 계신 것처럼 보이시는 가운데, 성경 속의 말씀들을 들려주시며 가르치셨습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행하며, 온유하고 겸손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가 복이 있으며..”


마치 그 옛날 산자락에 걸터앉아 뭇 백성들을 향하여 복음을 설파하시는 것을 듣는 듯싶었습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이 천국이나 이 땅을 달리고 있으나 마음은 천국을 날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는 간간 제 곁에 마치 시종처럼 시립해 있는 천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글은 저를 대단하게 보이려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말 보이고 경험하는 대로 담담하게 기록하는 것이며, 성경이 기록하듯 정말로 천사들은 우리를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것임을 함께 나누려는 것입니다.

보이던 보이지 않던 우리 모두에겐 그렇게 섬기라고 보냄을 받은 천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영안이란 대단한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의 영의 입을 열어 방언을 말하게 하듯,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신기해 보이나 경험하면 자연스러운 것이 되듯, 영의 눈도 마찬가지 성령께서 그냥 영의 눈을 열어 보이게 하시는 것으로 또한 경험하게 되면 자연스러운 한 현상이지요.


장난을 쳐 오는 어린 아이 모습의 천사라고 생각되어지는 영적 존재, 그렇게 곁에서 가만히 서 있거나 때로는 정말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것처럼 마치 주인을 섬기듯 그렇게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천사들을, 장님이 눈을 떠 만물을 보게 되듯 자연스럽게 보는 한 현상인 것입니다.


제가 이런 영적인 세계를 조금 경험하고 누리는 것은 특별해서거나 대단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나 자신의 깨달음과 의지로 누린다면 조금 자랑을 하여도 큰 허물을 아니겠니와, 정말 저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혹독한 환경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본능적 몸무림 속에서 누리게 하신 것이라 정말 부끄러울 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를 당신 역시 사랑하시고 당신을 찾는 자를 결코 내어쫗지 않으시지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앞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의 베일을 보는 지혜로운 눈을 가져, 온 소유를 팔아 보화를 사기 위한 노력을 시작만 한다면, 그리고 작심삼일만 되지 않는다면 그 누구에게나 열어주시는 영의 세계와 영광인 것입니다.


영의 세계를 조금 경험하면서 제 삶도 그리고 가까이 하던 사람들도 많이 바뀌게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육적인 것이든지 영적인 것이든지 경험과 생각이 공유되는 부분이 없으면 가깝게 지낼 수가 없지요.


삶도 사람들도 옛 것들은 물러가고, 새로운 영적인 것들과 사람들이 다가옴을 느낍니다. 그런 하나님이 가려두신 베일의 비밀을 알아 함께 그 영광을 좇아가는 사람들과의 사귐은 제겐 한편 또 다른 거룩한 희열이요, 영광입니다.


아무쪼록 글을 기록하는 저와 읽는 여러분 모두 이러한 하나님께서 영광을 가려두신 두 가지 베일의 비밀을 알아, 더욱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가까이 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요한 웨슬리가 임종시 외쳤던 “땅은 물러가고 하늘은 다가오는도다”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모두면 싶습니다. 샬롬.


출24: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 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 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니라

출24: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

출24: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샬롬]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을 인용하시거나 원본을 그대로 게제하실 경우는, 출판을 염두에 둔 글과 말씀들이니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 감사 드립니다. 늘 평안하십시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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