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고유자료/초록 핵심진리

[핵심 진리] 생 각 2

초록 등불 2012. 6. 11. 14:47

  

  [핵심 진리] 생 각 2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자가 한 마리 나타나 저를 향해서 달려옵니다. 그리고 맹수답게 으르렁거리며 잡아먹을 듯 한번 달려들기도 합니다. 워낙 무섭게 생긴 녀석이다 보니 제법 무섭습니다.


야단을 치며 순순히 따라 오라고 하니, 집에서 기른 잘 길들여진 사자처럼 순한 양이 되어 달리며 순순히 저를 따라옵니다.


주일 오후 시간을 내어 말씀 자료들을 좀 정리를 하고 있는데, 제가 송이라고 이름 지은 초등학교 4-5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귀엽고 살가운 여자 아이 모습, 꼭 딸처럼 여겨지는 천사가 나타나 바람도 쏘이고 나들이를 가자고 성화입니다.


가재는 게편이라더니 비둘기 형상으로 보이는 성령님도 날개를 펄럭이며 나가자고 성화입니다. “알았어요. 잠시만 일 좀 마무리 하구요”.


그렇게 이런저런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환상에 관한 자료가 보여서 가볍게 살펴보니, 지금 제게 일어나고 있는 영적 현상이 열린 환상이거나 혹은 외적인 환상에 속하는 것이더군요. 열린 환상 혹은 외적인 환상은 그냥 육의 눈을 통해서 영의 세계를 보는 것으로, 실제처럼 보이고 또 실제처럼 느끼게도 되는 영적 현상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거리 개념 등 다소 현상계와는 다른 면이 있으므로 움직이거나 하는 모습이 현상계와는 다소 다르게 보이지만, 그냥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거의 흡사합니다. 많은 경우 아슴하게 보이지만 선연하게 보이면 정말 똑 같습니다.


게다가 송이라고 이름 지은 천사는 정말 생긴 것도 옷도 그 모든 것을 우리와 똑 같이 입고 나타나기에, 정말 육의 눈으로 어린 딸을 보는 것과도 정말 같습니다. 영으로 보인다는 것 뿐 육신의 눈으로 어린 딸을 보는 것과 느낌이 거의 같습니다.


다소의 시간이 흘러서 영적 환상이나 존재들을 보는 것이 거의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송이 천사가 나들이 가자고 성화를 하는 것이 그냥 딸아이가 아빠한테 조르는 것과 꼭 같이 보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열린 환상이나 외적 환상은 그냥 영의 눈이 열려서 자연적인 우리의 눈으로 영적인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 눈을 감으면 안 보이고 눈을 떠야 보이나 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열린 혹은 외적 환상이 보인다는 것은 영의 눈이 열려 육신의 눈을 통하여 동시에 영의 세계와 존재들을 본다는 것인데, 이런 현상이 생긴 이후로 처음에는 납득이 되지 않는 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어떤 생각, 가령 토기 생각을 하면 제 눈에 토기가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고, 강아지 생각을 하면 강아지가 앞에 나타나보였습니다. 이런 현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어떤 생각을 하면 그것이 풍경이면 파노라마처럼 제 앞에 실제로 펼쳐지고, 어떤 존재나 물건이면 그것이 앞에 나타나 보였습니다.


물론 영분별로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것과 저의 생각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은 분별이 되고 구별이 되지요.


하지만 생각만 하면 그것이 제 앞에 나타나고 펼쳐지고 보이는 현상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제 뇌 속에 주님이 어떤 작용을 일으키셨나 하고 생각도 해 보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는데, 문득 성령께서 그러한 현상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영의 세계에서의 생각에 관한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앞선 “생각”이라는 글에서 다룬 것처럼, “생각은 영의 세계에서 실제이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풀이해서 설명을 해 드리면 이와 같습니다. 영안이 열렸다는 것은 영의 세계와 존재를 본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영의 세계에서는 생각이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어떤 생각을 하면 그것이 영적 세계에 존재하게 되고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제가 토끼를 생각하면 토끼가 생각의 세계, 곧 영의 세계에 머무르게 되므로 제 영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또 강아지를 생각하면 강아지가 생각의 세계, 곧 영의 세계에 머무르게 되므로 제 영의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마음으로 이미 형제를 미워하면, 곧 생각으로 미워하면 벌써 영적으로 형벌이 다가오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으면 곧 생각으로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제가 토끼를 생각하거나 강아지를 생각하거나 하였을 때 제 영의 눈에 보이는 토끼나 강아지는 영적 세계에서 실제 생명체를 가진 존재일까요? 그것은 아니지요. 만약 그렇다면 제가 영의 세계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창조주여야 할 테니까요. 그러므로 실제가 아닌 모형이지요.


마치 우리가 현상계의 세계에서 토끼나 강아지의 모형이나 인형이나 혹은 로봇을 만드는 것처럼 그런 모형인데, 영의 세계는 곧 생각의 세계, 생각으로 만들어낸 모형이지요. 그 모형을 영의 눈으로 보는 것이지요.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송이 천사 등과 함께 다녀오는 길에, 다소 심심하여 생각으로 사자를 달려오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자전거 뒤로 크나큰 숫 사자 한 마리가 따라 달려옵니다. 맹수답게 한번 달려드는 생각이 머리에 깃드니 생각대로 사자가 저를 향해서 달려듭니다.


생각으로 만들어낸 비록 모형에 속하는 존재겠지만 맹수인 사자다 보니 제법 무섭습니다. 그래서 순한 양처럼 생각을 바꾸니 이제는 순한 양처럼 그냥 달리며 따라옵니다. “영의 세계는 생각으로 교감하는 세계”, 송이를 생각으로 사자의 등에 태우니 또 그렇게 보입니다. 현상계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큰 사자 인형에 실제로 앉히는 것과 같은 원리이지요.


하지만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과 제가 생각하는 것에는 분명한 분별과 구별이 되고, 제가 생각으로 만들어낸 영적 모형은 생각의 힘을 지속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립니다. 계속 정신력을 소모하며 생각을 그렇게 해야 그 형상이 지속되지요. 생각이 사라지면 영적 세계에서도 그것이 사라지게 되니까 사라지는 것이지요.


다소 그런 생각으로 재밌게 하다가 피곤해서 생각을 놓아버렸지요. 그러면 그 순간 모형은 사라집니다. 송이만 함께 달리게 되지요. 주님이 성령 안에서 보여주시는 환상이나 영적 존재들만 남고는 다 사라져 버리지요.


어쨌거나 이런 영적 현상과 또 어느 날 아침 문득 이런 현상에 대한 성령의 조명하심 가운데,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며, 또 다시금 “생각은 영의 세계에서 실제이다”라는 진리를 다시금 새롭게 새기게 되었지요.


저도 경험하거니와 많은 분들이 생각의 다스림이 어렵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제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의 세계는 생각의 세계와 일매 상통하고 그러므로 그 생각이라는 장(field)이 곧 하나님과 사단의 세력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영적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 나라에 속한 각양 좋은 영들은 선하고 좋은 생각들을 넣어주려 하지만, 사단과 어둠에 속한 악한 영들은 또 수없이 악하고 더러운 생각들을 넣어 주려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본성이 타락하고 삶의 수고로움이 적지 않다보니, 우리들 대부분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전해져오는 사랑과 희락과 평강과 감사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미움과 우울과 슬픔, 그리고 두려움과 원망과 불평, 그리고 온갖 육신의 정욕에 속한 더러운 생각들을 받아들이기 쉽게 되고, 또 실상 그렇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자신의 마음, 곧 생각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말씀하며,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잘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잠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러면 이렇게 지키기 어렵지만 또한 생명의 근원이기에 지키지 아니할 수 없는 마음, 곧 생각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그러자면 생각을 놓고 치열하게 일어나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힘, 내적인 힘, 곧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야 하겠지요.


왜냐하면 우리의 겉사람인 육은 사망의 법을 좋아하지만, 우리의 속사람인 영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좋아하니까요.


롬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결론적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을진대, 이는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이지요.


엡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 등의 경건생활에 힘쓰며 늘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기 위하여 힘써야 하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소멸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가리고 살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란 무엇을 읽고 듣는가에 따라서 많이 좌우되는 바, 하나님의 주신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물들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잠4: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잠4: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잠4: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하며,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에 아른거릴 정도로 늘 떠나지 않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에 품고 간직하며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영적 생명이 되며, 더불어 온 육체의 건강 또한 되는 것입니다.


거듭해서 말씀드리지만, 영의 세계 곧 우리의 신앙생활과 삶의 전반에 걸쳐서 가장 기초적이며 중요한 것이 생각입니다. 그 생각의 장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이사를 가서 집을 새롭게 꾸민다면, 꾸미기 전에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 생각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의 현실이 되지요. 물론 우리의 삶에서 이렇게 100% 생각처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비유처럼 우리의 영육간의 삶은 “생각하는 대로” 그리고 생각은 곧 말로 표현되는 바,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고 중요한 영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생각을 지키셔야 합니다. 생각이라는 장(field) 앞에 영분별의 필터를 두십시요.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오는 것들, 곧 선하고 아름다우며 의와 진리와 기쁨과 생명과 소망의 생각들만 받아 들이십시요.


그리고 사단의 나라, 곧 어두움의 악한 영들에게서 오는 생각들은 철저하게 걸러내고 대적하십시요. 악하고 더럽고 추한 생각들, 불의와 슬픔과 우울과 낙담과 좌절과 무기력, 나아가 상념과 무의미 등의 모든 우리를 속이고 죽이고 무기력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는 모든 생각들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물리치십시요.


그리고 아무런 계획이나 목표 없이 무의미, 곧 아무런 생각없이 살지 마십시요.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허탄한데 두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소명을 발견하십시요. 삶의 목적과 의미를 주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발견하십시요.


굳이 이런 성경의 원리가 아니어도, 세상의 이치로도 아무런 생각없이 사는 사람과 구체적이고 분명한 지혜로운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의 삶의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가 엄청날 진대,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생각을 새롭게 하며 사는 사람과 마냥 아무런 생각없이 사는 사람의 삶의 차이는 말할 필요가 있겠는지요?


인간의 자의적 신념이나 용기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기반, 곧 진정한 믿음 안에서 강하고 담대하며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을 하며 살아가십시요.


모든 사람의 눈에는 골리앗이 두려운 존재로 보였지만, 다윗이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골리앗의 거구가 오히려 자신의 물맷돌로 맞히기 너무도 쉬운 상대로 보였지요. 이처럼 자연적인 눈과 믿음의 눈은 다른 것입니다. 자연적인 생각과 믿음의 생각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결언적으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무릇 생각을 지키십시요. 저의 경험과 여러 말씀의 논증을 통하여 말씀드린 바, “영의 세계에서 생각은 실제이며, 실제이기 때문에 그대로 역사합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 안에서 무릇 생각을 지키십시요. 생명과 모든 것들의 근원이 생각이며 생각에서 모든 것들이 시작됩니다. 샬롬!


잠4: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잠4: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잠4: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샬롬]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을 인용하시거나 원본을 그대로 게제하실 경우는, 출판을 염두에 둔 글과 말씀들이니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 감사 드립니다. 늘 평안하십시요. 샬롬..

 

 Home  cafe

 

 배경음악(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