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말씀영해

[말씀 영해] 오병 이어

초록 등불 2014. 2. 24. 02:41

 

  [말씀 영해] 오병 이어

 

목회자로 살아보니 가장 필요한 능력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도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 초년시절이 그러하지만 처음에는 말씀 선포의 두려움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정녕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그냥 평소에 자신이 생각하던 신앙관이나 선배들의 설교를 참고로 선포를 하곤 합니다.


아니면 신학에서 배운 지식이나 혹은 성경 원어를 참고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제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씀 선포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이 다가왔습니다. 문득 “내가 하는 설교가 정녕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니면 나의 말일 뿐인가?”라는 경건한 두려움이 다가왔습니다. 그 이후로 말씀 선포에 대하여 조금은 신중하여 졌던 기억이 납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자는 반드시 말씀 선포에 대한 깊은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이론과 사상과 생각과 지식을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입술에 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바른 지식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2: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말2:6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말2:7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말2:8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선포는 한편 영광이자, 동시에 심히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바른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선포한 사람은 많은 생명을 살리기에 주님의 날에 영광과 면류관이 되겠지만, 그릇된 말씀의 선포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죽이기에 주님의 날에 그 많은 생명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것입니다.


영의 세계를 열어 주셔서 그 세계를 배워가고 영의 세계를 탐구해보니, 역시나 목회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참된 말씀의 증거 능력입니다. 결코 무슨 신령한 은사나 능력이 선행적인 것이 아닙니다. 은사나 능력이 말씀 선포를 위한 도구라면, 말씀 선포는 본질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깨달음 앞에 제게 하나의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 말씀의 참 도를 깨닫게 해 주십시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보화로 감추어진 진리의 빛을 보게 해 달라는 목마름입니다.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신 여호와여, 제게 그러한 신으로 강림하셔서 말씀의 참 빛을 보게 하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사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런 기도를 드리며 살아가는 삶의 와중에 어느 날 집회 설교 준비를 하는데, 오병이어의 본문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하나님께서 이 본문을 새롭게 조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한번도 깨닫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영적 진리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졌습니다.


일찍이 말씀의 그 그림을 보신 분들은 어쩌면 평범한 내용일지 모르지만, 제게는 저의 목마름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작은 구름이었습니다. 비의 내림을 간구하던 엘리야가 보았던 손만한 작은 구름이었습니다. 그 작은 구름이 큰 구름이 되고 말씀 속의 참 진리와 생명의 큰 비를 내리게 해 주시길 여전히 그리고 간절히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해 봅니다.


왕상18: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제 요한복음 6장 1-15절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본문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새롭게 보여주신 말씀의 한 폭의 그림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큰 그림은 하나님께서 주셨고 작은 조각들은 약간의 자료를 찾아 제가 첨부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은 71절까지 이어지는 긴 내용인데, 사실은 앞의 오병이어의 표적 속에 그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1-15절의 말씀을 두고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열어주신 말씀의 키(key)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드린 아이가 곧 예수님을 상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눈을 열어 주시자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풀렸습니다.


4절을 보면 이 표적이 행하여진 시기는 유월절이 가까운 시기입니다. 곧 어린 양의 희생을 상징하는 시간이지요.


요6: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그렇게 유월절이 가까워진 시간, 큰 무리가 예수님께로 옵니다. 그 큰 무리는 이 세상의 인류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빌립에게 물어보신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라는 질문 앞에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는 빌립의 대답은, 떡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한 것, 곧 이 큰 무리 곧 온 인류를 위하여 지불하여야 할 대가지불의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라는 말씀입니다.


광야와도 같은 산에 배고픔을 앉고 있는 큰 무리들, 곧 영적으로 죄와 사망의 그늘에 앉은 인류에게는 스스로 생명의 떡을 위한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한 작은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 놓습니다. 한 아이라 함은 그 온 무리의 배고픔의 대가를 지불하기에는 작고 연약한 사람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육체의 몸을 입으셨기에 예수님도 역시 인류를 위한 희생을 감당하기에는 힘겨운 인자임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일컬어 ‘어린 양’이라 합니다.


그 어린 양으로 상징되는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 놓습니다. 합하면 숫자 7입니다. 7은 성경적으로 완전한 숫자, 곧 어린 양 되신 예수께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은 다 내어 놓으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땀과 물과 피와 그 모든 것을 인류를 위한 생명의 떡으로 내어 놓으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요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그리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는 또 다른 영적 비유가 숨어 있습니다. 떡은 먹이요, 물고기는 생물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에 보리떡 다섯 개는 생명체가 먹기에 너무도 충분한 양의 생명의 떡입니다. 성경은 본문에서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에는 보리떡과 밀떡이 있는데, 보리떡은 더 값이 싼 떡입니다. 이는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모두가 먹을 수 있는 떡이 되어 주신다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곧 예수님은 생명체인 온 인류에게 누구나 자신을 믿기만 하면 넘치도록 생명의 떡이 되어 주실 수 있다는 영적인 유비입니다. 훗날 그리스도인이 물고기라는 글자로 연결된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지요.


그리고 오병 이어의 가장 핵심적인 본문과 주제는 다음에 나옵니다. 바로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둔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됩니다.


이것의 영적인 비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 그리고 그 육신을 생명의 떡으로 주신 예수님, 그 생명의 떡인 예수님을 먹고, 말씀으로 성체를 이루고 이제는 역으로 육신이 말씀이 된 자, 곧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행위를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채워져 육신이 말씀이 된 자, 그들은 하나도 버림이 없이 온전히 거두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곧 세상을 좇아 살지 아니하고 말씀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정결하게 지킨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흰 옷을 입은 자들을 상징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열 두 광주리에 거두신 것은 떡을 먹은 사람이 아닌, 떡입니다. 곧 말씀으로 거룩한 몸, 성체를 이룬 자, 흰옷을 입은 자들을 하나도 버림 없이 구원하시겠다는 영적 말씀인 것입니다.


계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리고 열 두 광주리는 그렇게 구원 받게 될 영적 이스라엘, 곧 영적 열 두 지파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에게 있어 12라는 숫자의 한 가지 의미는 당신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우리가 들어갈 새 예루살렘에는 각 편에 세 개의 문, 합하여 열 두 진주문이 있는 것입니다.


계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계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영적으로 열 두 지파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영적인 지파의 반열에 따라 장차 새 예루살렘 성의 진주 문을 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 계시록에 일반 이천 명씩 간 지파를 따라 합산한 수인 십사만 사천명은 영적으로 이스라엘 된 그리스도인의 충만하고 완전한 구원받을 수를 말하는 것이지, 문자적인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계14: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말씀의 빛에 대하여 작은 구름으로 풀어주신 본문, 우리 모두 말씀이 육신이 되어주신 예수님의 떡을 충만히 그리고 배불이 먹고, 말씀으로 거룩한 몸을 이루고 말씀의 떡이 되어, 하나도 버리지 아니하고 온전히 거두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열두 광주리에 남기는 복된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로 들어가는 자, 하나님의 나라에서 세세토록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계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출처 및 저작권 :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샬롬]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을 인용하시거나 원본을 그대로 게제하실 경우는, 출판을 염두에 둔 글과 말씀들이니 출처 부분을 남기셔서 저작권을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규칙 상 스크렙 및 링크가 허락되지 아니한 게시판에 부지 중 올렸다면 먼저 죄송한 맘 전합니다. 소식 주시면 글올림을 삼가거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페운영에 어려움 주지 않기 위하여 저작권 유의 배경음악과 그림자료 살펴 조심하고 있습니다 / 감사 드립니다. 늘 평안하세요. 샬롬..

 

 Home  cafe

 

 

배경음악(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