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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이야기] 천국의 향기

초록 등불 2014. 7. 1. 03:41

 

  [천사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천국의 향기

 

개인적인 특별한 주님의 위로의 영적 현상인 듯한 천사 이야기를 이어서 써 봅니다. 감사하게도 주님께서 부족한 우리를 위하여 섬기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보내주시는 천사들,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던 그 천사들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섬기며 돕고 있습니다.


마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한편 수고로움이 많은 우리네 삶, 우리의 아군이요, 지금도 그러하지만 훗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된다면 우리를 더욱 섬길 아름다운 영적 존재인 천사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을 따듯하고 훈훈하게 해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며 우리를 도우며 섬기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어제 집회에 오신 분들에게는 다소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한편 행복한 기억도 많지만 참으로 많은 아픔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행복한 기억은 감사하게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듯합니다. 제가 이런저런 상황, 가령 공부를 위해서 국내 유학생활을 하면서 하숙생활을 하던지, 또 교사로 재직을 할 당시든지, 어디를 가거나 언제나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뿌리를 찾아보면 결국은 30년에 약간 미치지 못하는 육체적 연약함과 아픔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보편적으로 누리는 그런 세상의 행복은 거의 누려보지 못하였습니다.


건강은 삶의 기본, 그것이 받쳐주지 못했으니 세상의 행복은 거의 누려보지도 못하였거니와 이제는 지천명의 나이, 정말 세상의 행복은 누리고 바라보려고 해도 이제는 젊고 푸른 시절도 거의 이울고, 이제는 그로 말미암아 한편은 감사하게도 더욱 하늘에만 소망을 두게 되고, 하늘만을 향하여 살아가게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사람, 이 세상의 삶의 행복은 거의 누려보지 못한 삶,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삶의 아픔, 가끔 너무도 아픔으로 다가와 남몰래 혼자 눈물지을 때도 곧잘 있지만,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 도리어 그러한 삶의 경험들을 통하여 이제는 땅이 아닌 오롯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곧 조금이나마 썩을 것을 추구하지 않고 썩지 아니할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시니 한편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이 땅의 삶아 아파 흘리는 눈물을 영광의 그날에는 주님께서 다 훔쳐 주시고 닦아 주시겠지요. 여러분도 이 소망으로 이 땅의 수고로움과 아픔을 믿음으로 함께 승리하면 좋겠습니다.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런데 방언의 은사 등이 열리기 시작할 때의 처음에는 그러한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단시 하는 경향이 많았듯이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하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지요. 그래서 저의 천사와 같은 이야기가 경험을 해 보지 못한 분은 어쩌면 다소 받아들이기도 힘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어제 집회 오신 분들에게 말씀드렸지만, 저는 저의 개인적인 열심과 의지가 아닌, 강권적인 하나님의 환경적 섭리로 일년이 넘게 거의 반 철야를 하면서 지내어 왔습니다. 그렇게도 기도와 말씀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게 하셨는데, 그리스도인들이 평범하게 경험하는 그냥 방언과 음성 듣기 수준에서 더 깊은 영적 세계가 열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도리어 이상한 것이지요.


우리가 만약에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기도하여도 방언이나 그리고 나아가 점점 어떤 깊은 영적인 현상들이 일어나지 않거나 경험하지 못한다면,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이 아무리 소리치고 부르짖어도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 않았던 바알처럼, 실상 하나님도 실존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만물의 근원이시요, 창조주이시기에 실상 영계와 현상계를 아우러 어떤 생명체나 존재보다 더욱 생생한 생명력을 가지신 분이시요, 역사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더욱 깊은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해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 것입니다. 그분은 관념과 이론의 허상의 하나님이 아니라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계시며,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고 계시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저의 아픔을 위로하시려는 듯한 천사의 이야기, 하나님께서 저를 특별히 여기셔서 이러한 영적 현상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환경적으로 그러한 상황에서 하게 되던지 의지를 발휘하여 하게 되던지 일년 가까운 세월, 반 철야의 기도생활에 충실 한다면 누구에게나 소명과 직임에 따라 다양한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되시겠지요. 이쯤에서 개인적인 천사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제가 몇 번 말씀드린 기억이 나지만 우리가 육체를 덧입고 있는 동안은 영의 몸이 아니기에, 육체를 입은 사람끼리 나누듯 영적 존재들과 직접 육체적인 행동으로 안고 포옹하고 입 맞추거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덧입고 있는 한은 영적인 존재들과는 결국 마음과 생각으로 나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유일한 통로는 아니지만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사모하고 부르면 그 존재가 임합니다. 유일한 통로가 아니라함은 우리의 행동이나 다른 요인으로도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마음과 생각으로 영의 세계와 많이 접촉하게 되는데, 주님과 성령님을 사모하고 부르면 성령이 임하시고, 무속인들이 그러하듯 악한 영을 부르면 악한 영이 다가옵니다. 반대로 우리가 악한 영을 생각으로 멀리하고 밀어내면 그들은 멀리 떠나갑니다. 이처럼 마음과 생각으로 그들과 교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곁에 있는 천사와도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어떤 것을 한다면 실제로 육체로 할 수 없으니 마음, 그리고 생각으로 나누게 되더군요.


“그렇다면 일종의 정신작용이나 혼자만의 상상이 아닐까요?”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앞글에서 밝혔듯이 성령을 소멸하고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흐려져 가고 보이지 않아지게 되는 경험 등을 통하여 면밀히 살펴본 결과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영적 실재인 것을 말씀 드렸지요.


요즈음은 늘 곁에 계신 주님과 함께 천사도 보이지만, 이 무렵에는 주님은 보이지 않고 제가 ‘사랑이’로 이름 지은 편안함과 따뜻함과 위로를 전해주는 느낌의 사랑이 천사와만 늘 함께 있었습니다. 언제나 곁에 있는 것이 느껴지고 보려하면 보이고 어디로 가든지 항상 곁에 있었습니다.


기도할 때 기대어 있기도 하고, 찬송을 부르면 따라 하기도 하고, 가끔은 찬양을 하면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 주곤 하였습니다. 때로는 영과 마음으로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어 보기도 하고, 꼭 세상으로 치면 연인처럼 그렇게 영 안의 거룩한 사랑과 교제를 나누며 지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천사들은 우리와 같은 고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는데, 제가 어린아이를 좋아하고 어린 아이와 같은 성정이 많으니 주님께서 늘 어린 아이 모습으로 천사들을 나타나게 하시고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간간 주님이 보일 때에도 대부분 제게는 어린아이와 함께 나타나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랑이는 대략 10 여살 가량으로 보이는 소녀천사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고 있으니 늘 곁에 있는 이 천사가 제게는 말벗이요, 동무입니다. 기도하다가 쉬거나 혼자 조용히 쉴 때는 영과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어 보기도 하고, 영으로 함께 대화도 나누며 산책도 해 보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기도하다가 곤하여 누워서 꼭 사랑하는 연인들이 무릎에 베고 누워서 쉬듯이 그렇게 사랑이에게 기대여 쉰다고 영으로 마음으로 생각하며 교통하며 누워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모습으로 저를 받아줍니다.


그렇게 쉬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향기가 풍겨왔습니다. 아니 사랑이의 품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풍겨왔습니다. 물론 육신으로 맡는 냄새가 아니라 영으로 맡는 냄새지요. 비록 사랑이의 품을 통하여 맡아지는 향기인 듯하지만 땅의 향취가 아닌 하늘나라의 향취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책들을 보면 그런 향기를 맡는 경험들이 간간 기록된 것을 본 적이 있었고, 다소 미미하게 그런 경험을 한 듯도 하였지만, 이처럼 강렬하게 땅이 아닌 천상의 향취를 맡게 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땅의 것이 아닌 향취, 너무나도 거룩하고 청아하고 아름다운 향취,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윽한 천상의 향기가 풍겨왔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굳이 말로 표현한다면 강산이 변할 10여년의 시간이 넘도록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이나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다가 만났을 때 그 품에 안겼을 때 풍겨오는 고운 분내음이나 향기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너무도 기쁘면 눈물이 나오지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천상의 기묘한 향기, 말로 표현할 수없이 밀려드는 행복감 앞에서 누워 쉬는 두 눈에 잔잔히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리고 찬송가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저 묘한 화초 향기는 바람에 불려 오는데..”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보니, “아! 이 찬송가를 지으신 분도, 그냥 지으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경험을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좋은 낙원 이르니 내 기쁨 한이 없도다. 저 묘한 화초 향기는 바람에 불려 오는데...”


그래서 일어나서 반주기로 그 찬송가를 켜고 불러보며 그날밤 주님 안에서 홀로 한없이 행복하고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그 찬송가의 내용을 보면 그 찬송시를 지으신 분은 어쩌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림을 받아 그런 향기뿐만 아니라 천국의 아름다운 화초도 보았으며 천상의 청아한 음악소리도 들어보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처음으로 접해본 땅이 아닌 천상의 향기, 그 향기만도 이토록 눈물겹도록 향기로운데 그 영광을 과연 어떨까 홀로 가슴 설레이였던 밤이었습니다.


먼저는 이런저런 영적인 현상 등으로 저의 아픔을 위로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고개 숙여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정녕 하나님과 그 나라가 실체임을 가슴으로 더욱 깊이 알아, 우리 모두 정말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와 궁극적으로 썩고 쇠할 땅이 아닌 썩지 아니할 영광의 나라를 사모하며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면 정말 좋겠습니다. 샬롬!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놀랍도록 아름답고 황홀한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신 성삼위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송하고 경배하여 영광 돌립니다. 세세토록 영광을 홀로 받으소서. 할렐루야! 아멘!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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