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서 여러 동내를 다니면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았습니다. 이런 능력은 한 번 주어지면 거의 사라지지 않는 법입니다. 다만 때로는 약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실 때 후회함이 없기 때문입니다(롬 11:29).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시는데 이것이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약화되는 때가 있는데, 주의 제자들도 그런 경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일부 제자들과 함께 산으로 기도하려고 올라갔을 때 산 아래에서는 제자들이 사람들을 상대로 이야기도 하고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떤 귀신들린 아이를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데리고 와서 고쳐주기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 속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사람들은 그런 일로 흥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를 깨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마도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다 써보고 이 제자 저 제자가 번갈아가면서 도전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게 왠 망신입니까?
그래서 분위기가 아주 시끄럽고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 때 주님과 몇 제자들이 함께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주님께 가서 제자들이 자기 아이를 능히 치유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고쳐주시기를 청합니다. 주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고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표현된 ‘유’라는 말은 헬라어로 ‘게노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표준새번역은 ‘부류’라고 번역했고, 우리말 성경은 ‘이런 귀신’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 성경은 모두 ‘This kind’라고 적고 있습니다. ‘게노스’라는 헬라어는 우선 ‘가족’ ‘집단’ ‘국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손’ ‘후예’ 등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종류’라는 뜻이 생겨났습니다. 이 단어가 지니고 있는 원래의 뜻인 가족 민족 국가 자손 등과 같은 의미를 확대할 때 종류라는 의미가 부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래 의미하는 바는 종류라기보다는 세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마가는 이 단어를 사용했을 때 아마도 세대를 의식하고 채택했을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호 게네아 하피스토스!)라는 말씀으로 이미 세대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음이 없는 종류여!”라고 번역하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문맥으로 보아도 뒤의 ‘게노스’를 종류라고 번역할 필요가 없고 같은 의미인 세대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29절은 이렇게 번역해야 할 것입니다. 즉 “기도 외에는 이런 세대가 나갈 수 없다.”입니다.
주님은 귀신을 종종 세대로 간주할 때가 있었습니다. 군대귀신이 들린 사람에게 그 귀신은 ‘군대’라고 표현했습니다(눅 8:30). 여기서 사용되는 ‘레기온’(legion)은 로마 군대의 단위를 지칭하는 말인데, 5,000명에서 6,000명 정도의 사단급 집단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 레기온 역시 집단의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누가는 이렇게 많은 무리 즉 세대(게노스)를 표현할 때 ‘레기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레기온 역시 게노스와 같은 뜻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거라사 광인에게 들어있는 귀신은 ‘army’가 아니라 ‘generation’입니다. 레기온은 대단히 큰 규모의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지 결코 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개역성경을 비롯해서 모든 한글 성경이 군대라고 번역한 단어는 ‘집단’ 또는 ‘큰 무리’라고 번역해야 올바릅니다. 이렇듯이 귀신은 세대라고 하는 무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귀신의 특성은 ‘세대’를 이루어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듣는 ‘군중심리’라는 말을 볼 때 그 표현 속에서 귀신의 속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어떤 구호나 집단적인 행위에 휘말리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의미도 모르는 채 그 군중 속으로 휘말려 들어갑니다. 공산주의를 비롯해서 독제 정부가 이런 군중적 움직임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뜻을 관철하려고 하였습니다. 공산혁명, 문화대혁명, 인민재판 등과 같은 군중선무행위는 모두 군중의 이와 같은 측면을 이용한 것입니다. 히틀러의 광기는 사단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며, 이는 장차 있을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한 전조(typos)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단은 선동하는 것에 능숙하고 사람들은 그 선동에 쉽게 휘말리는 나약함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부정적인 생각을 강하게 퍼뜨리면 모든 사람들이 다 부정적인 생각에 물들어버려 거대한 부정적 집단(게노스 또는 레기온)이 됩니다. 같은 생각을 공유한 집단을 주님은 ‘세대’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에게 귀신들린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주님은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어릴 적부터 그랬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아버지는 아이가 오랜 세월동안 안타깝게도 간질병과 같은 증상을 보였기 때문에 아마도 유명하다는 의사들에게 다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수많은 의사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무당에게까지 가 보았을 것입니다. 용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디든지 찾아갔고, 그 결과는 고치지 못하여 낙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의 생각 속에는 ‘내 아들의 병은 도무지 고칠 수 없는 것인가 보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지만 그의 내면에는 ‘못 고칠거야’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그런 생각을 의식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오랜 세월동안 별별 치유를 다 받았지만 고침을 받지 못한 결과 그에게는 부정적인 생각이 틀을 잡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찰을 할 수 있는 배경은 아버지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충분하게 들어납니다. “하실 수 있으면...”(22절)이라는 그의 말에 이미 부정적 생각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말에 대해서 주님은 이렇게 대응하셨습니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23절)라면서 그의 부정적인 생각을 강하게 꾸짖습니다. 한 사람의 강한 부정적인 생각은 이미 세대를 형성했습니다. 이 강한 부정적인 사람을 배경으로 그 무리 전부를 부정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귀신입니다.
제자들을 포함해서 군중 전체는 이미 강력한 부정 속에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부정적 무리를 주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호 게네아 하피스토스!)라고 꾸짖습니다. 이 말을 더 쉽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이 믿음이 없는 무리들아!”입니다. 한 사람이 십여 년 이상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이 한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부정적인 생각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것이 ‘레기온’의 힘입니다. 군중을 선동하는 한 사람의 강력한 선무에 의해서 다수의 생각 없는 무리는 쉽게 동조하게 됩니다. 생각이 없는 무리들. 자기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무리들. 주체가 없는 무리들. 이들이 곧 ‘믿음이 없는 무리들’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는 말씀은 “생각이 없는 무리들아!”라는 말씀입니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이 멍청한 무리들아!”입니다. “이 멍청한 무리들아! 내가 얼마나 너희들과 함께 있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정신을 놓고 있으면 그 정신을 가로채는 것이 귀신입니다. 정신을 빼앗겨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휘말리는 어리석은 군중들입니다. 이리저리로 갈대처럼 쏠리고 바람결에 휘날리는 쓰레기처럼 그렇게 몰려다니는 군중들을 향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도가 없으면 이렇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주님과 항상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얼마나 너희들과 함께 있어야...”(19절)라는 말씀은 언젠가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날이 있을 것을 암시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수단이 기도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일깨워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귀신은 우리의 생각을 한 순간에 빼앗아 멍청이로 만들고 부정적인 생각을 확산시켜 거대한 군중(게노스 또는 레기온)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런 군중적인 휘말림에서 자신을 온전히 보존하는 수단이 기도 즉 주님과의 동행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귀신을 쫓을 때 잘 되지 않으면 이 성경 구절을 자주 인용해서 우리가 기도가 부족해서 귀신을 쫓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 이외에는 이런 세대가 나가지 않는다”라는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주님과의 교제가 없으면 귀신에게 생각을 빼앗길 수 있다”라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무리 가운데에서 빼어내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할 수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없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군중들을 지배하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꾸짖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자신을 빼어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무리가 어울려 달려오는 것을 보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 이 무리는 게노스가 아니라 ‘오클로스’(oxlos)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군중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무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을 말합니다. 바로 이 단순한 군중이 부정적인 생각의 지배를 받을 때는 힘을 발휘하는 ‘게노스’ 또는 ‘레기온’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집단이 될 수 있는 무리들이 몰려오는 것을 응시한 다음에 꾸짖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을 거품을 물고 쓰러져 나갔습니다. 귀신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배경은 아무런 주체도 없이 이리 저리 휘말리는 군중의 멍청함입니다. 이들 멍청한 무리들을 장악해서 자신의 생각으로 사로잡아 거대한 무리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군중 즉 세대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들이 결집하는 까닭은 같은 생각입니다. 생각이 같아지면 그것이 곧 세대인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해진 그 무리 속에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지배하는 그 부정적인 생각을 부수지 않고는 그 집단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귀신들린 아이와 그 아버지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케리그마가 선포되기 위해서는 먼저 게노스를 지배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무리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방해하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무리들 즉 세대가 있는 한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는 생각들을 집단 안에서 빼내는 작업부터 해야 합니다. 이것이 죄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막 9:24).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집단의 의식구조를 먼저 치유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환경이 바뀝니다. 생각을 지배하던 영적 주체가 바뀝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꿀 때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전환은 기도라고 하는 수단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을 주님은 분명하게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도란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일이 없이는 생각이 바뀌지 않습니다. 즉 말씀과 가까이하고, 예언을 사모하며, 깊은 영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 기도입니다. 주님과 친밀함이 이루어질 때 부정적인 생각으로 지배하던 힘이 사라집니다. 부정적이던 거대한 집단적 사고(collective thinking: 게네아)가 무너지면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출처: 영성이야기 (갓피플카페:healinghouse), 장봉운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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