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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은사 (세부)

초록 등불 2011. 11. 4. 17:54

 

※ 예언의 은사(세부)※

 

 

 

목사님께서 산길을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산 속에서 샘을 만나서 그 물을 마시셨습니다.


오늘은 예언의 은사에 대하여 조금 더 알아보고자 합니다. 앞선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언의 은사는 우리가 자주 오해하듯이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들은 말하고 알아맞히는 것보다는 일반적으로 주 안의 지체 서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위하고 권면하고 덕을 세우는 것이 주요 기능입니다.


그러므로 샤머니즘적 신앙으로 마치 무속인을 찾아가 점을 치듯이 그렇게 예언의 은사를 이해하고 그것을 주된 기능으로 생각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고전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여 드리지만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들어오는 영적 신호는 하나님, 사단, 그리고 우리가 있는데, 그것을 분별해야 하는 우리의 마음의 렌즈가 죄나 강한 자신의 욕망이나 혹은 마음의 깊은 상처 등의 치유되지 않은 쓴뿌리가 있으면 렌즈가 굴곡 되어서 때때로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며 오류를 범할 수 있고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이든지 예언이나 모든 것들은 항상 그리고 반드시 분별하여야 하고 헤아려 좋은 것만을 취하여야 합니다.


참고적으로 자신의 어떤 강한 열망이 개입된 어떤 문제는 그 자신의 욕망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자신 내부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할 개연성이 많기 때문에 이른 경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를 의뢰하고 몇몇 사람들을 통하여 확증하고 검증하는 것도 지혜로운 한 방법입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의 음성이나 뜻이나 예언이나 이 모든 것들은 틀릴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항상 그리고 반드시 분별하여야 하며, 조금 때로는 긴 시간을 두고, 퍼즐조각 맞추기처럼 주의 깊게 살펴 헤아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두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계시는 부분적으로 오며 한번에 다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전5: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살전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고전13: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이러한 것을 명심하고 하나님의 음성, 예언 등의 오류로 인한 생의 큰 잘못된 선택으로 애매하고 어려운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예언의 또 다른 한 특성인 말 그대로 미리 될 일에 대하여 말하는 예언(豫言)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전에 제가 앞에서 쓴 한자가 성경의 예언을 말할 때의 예언은 제 기억 상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한자어 성경이 없어서 살펴보지 못하겠지만 본래의 예언의 기능상 이 한자어는 아닐 것입니다.


어쨌거나 예언의 은사의 한 특성 중, 그리고 성령의 역사 중 나중에 이루어질 장래 일을 알게 하시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 예언은 두 가지 특성으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절대적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확정된 사실에 대한 예언이요, 다른 하나는 조건부식 예언입니다.


절대적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은 가령 요한계시록과 같이 우주적인 큰 틀의 사건이거나 혹은 세례요한의 생에 대한 예언과 같이 개인적인 구체적인 일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다소 예외적이겠지요. 일반적으로는 조건부식 예언입니다. 순종하면 이러하고 불순종하면 이러하고 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하게 하는 의미가 담긴 예언이 주를 이루지요.


어쨌거나 성령은 우리에게 때로 장래 일을 알려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은사로 분류한다면 예언의 은사 범주에 넣어야 하겠지요.


행21: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행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현재의 어떤 사건이나 상황, 또는 미래의 어떤 일들에 대해서 알려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해보면 지식의 말씀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 나아가 지혜의 말씀의 은사 등 대부분 그 역사가 비슷합니다.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이나 직관적 느낌이나 생각, 성령의 내적증거, 방언 통변, 영적 전이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저희 지방에 참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예를 갖추기 위해서 그분의 병명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악화되면 생명을 잃는 병을 앓으셨지요. 존경하는 이유가 많지만, 그 중의 하나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욕심을 내려놓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님들 대부분이 교회를 담임하면 대부분 교회 건물을 크게 늘리고 교인수를 늘리고 자기 명성을 얻고자들 대부분 그러하신데, 이 분은 교회 재정의 많은 부분을 아니 대부분을 작고 어려운 교회나 선교사님들이나 구제사역에 거의 쓰십니다.


아마 그러한 일을 하지 않으셨으면 년 간 수억씩의 재정을 모았으면 크게 건물을 확장하고 대교회로도 발돋움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늘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시는 분이십니다. 저도 이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그 교회의 이런저런 사랑을 참 많이 받았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칫 악화되면 생명을 잃는 병을 앓으셨습니다.


받은 사랑은 많고 안타까워서 치유에 관한 책자를 사서 들고 목사님을 한번 찾아뵈었습니다. 찾아가니 목사님은 계시지 않고 사모님만 계셔서 책자만 전해드리고 왔지요.


그런데 전날 그 목사님을 위해 중보 하는 가운데, 내적 환상을 통하여 목사님이 치유되고 나을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환상을 보니 목사님이 산길을 걷고 계신데, 샘물을 발견하고는 물을 마시더군요.


별스레 고민하지 않아도 될 환상의 내용,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훈련과 연단을 의미함이요, 물을 마심은 생명을 얻음이지요. 그래서 목사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인생을 배우며 신앙의 연단을 위한 병이요, 결국 물을 마시게 됨으로써 병이 낫게 될 것임을 저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모님께 그 말씀도 드렸지요. “목사님은 반드시 치유될 것입니다”


그런데 다소 주님의 보여주신 환상이 또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은 찾아간 날 목사님은 산행을 가셔서 아니 계시고 그래서 사모님만 만난 것이지요.


그러니 제가 본 환상은 찾아간 날 목사님이 뭘 하고 계실 것인가의 현실적인 내용과 영적인 연단과 그리고 결국은 치유될 것이라는 이중적 의미심장한 환상을 주님이 보여 주신 것이지요. 보여주신 대로 목사님은 후유증은 좀 안았지만 완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제 제게 어떤 분이 대화신청을 하셔서 “목사님,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곤 하면 몸에 진동이 와요”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성령의 임재의 역사이니 그냥 기뻐하시고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지요.


앞으로 한번 성령의 역사와 육체의 현상들, 예언이나 말씀을 받는 다양한 방법과 육체의 성향과 기질에 대한 글을 한 번 쓸 생각인데, 간단히 말씀드리면 동일한 계시를 받아도 그 통로는 일반적으로 기질이나 성향과 많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가령 성격이 조용하고 감성적이며 분위기를 잘 타는 그런 사람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호제’라는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환상으로 보는 계시를 자주 받는 성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적이거나 다소 열정적이거나 적극적인 부르짖는 기도를 좋아하는 경향의 사람은 때때로 그런 실제적으로 보이는 환상도 베드로와 같이 경험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음성이나 소리를 질러 예언을 하는 ‘나바’형태의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아도 눈에 실제적으로 보이는 그런 환상이 아니라 심령의 눈으로 보는 내적환상을 봅니다.


그것은 실제적 환상을 보려면 일종의 몽환의 상태, 비몽사몽의 황홀경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가령 유명한 가수가 와서 노래를 하면 어떤 분들은 때로 실신을 하곤 하듯이 그렇게 분위기를 잘 타야 하는데, 지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은 대부분 혼이 또렷하고 의식이 분명하여 그런 환상을 볼 수 있는 몽환의 황홀경 속으로 잘 들어가지 못하는 뇌의 구조적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상이던 저런 환상이던 다 성경이 말하는 환상이고 의미와 무게와 깨달음도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다음에 다시 논하겠습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은 그 목사님의 일의 경우는 환상을 통하여 장래 일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험상 일반적으로는 대부분 직관으로 그냥 압니다. 그렇게 추정할만한 아무런 근거나 자료가 없는데 그냥 그렇게 느껴집니다. 성령의 역사는 비추론적으로 그냥 알게 됩니다.


그런 일을 자주 경험하게 되면 때로는 내 느낌으로 놀랄 때도 있습니다. 자꾸만 그냥 알아지고 느껴지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다보면 때로는 내 느낌으로 어떤 불길한 느낌이 스치면 “혹시..정말로..”라는 마음 조금은 염스러워지곤 합니다.

하지만 몇 번 거쳐서 기도하면서 확인하고 확인하면 나름대로 내 생각이나 느낌과 성령 안에서 알게 되는 것과는 구분이 나름 됩니다. 물론 언제나 오류의 개연성은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성숙한 예언자가 된다는 것은 오류를 줄이고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정보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경험과 지식을 쌓아간다는 것이지 결코 완전하고 무결한 예언은 없습니다.


어느 날 제 혈육 중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건강에 붉은 등이 켜진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혈육이니 다소 염려스러웠지요. 아마도 내 생각일거야 하며 넘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반복되는 내적인 증거, 괜스레 말했다가 틀리면 병원진료비만 들텐데라는 생각에 망설이다가, 아니되겠다 싶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요즘 기도하면 어떤 것이 느껴지는데...”라고 말을 하는데 오늘은 바빠서 통화를 하기 어렵다더군요.


그래서 며칠 뒤에 직접 찾아갈 일이 있어서 찾아 갔습니다. 가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지요. “건강에 조금 적신호가 보이는데 아마도 간장쪽인 거 같어”


그랬더니, “나는 네가 전화할 때 아마도 그 말을 할 줄 알았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몰랐지만 혈육인 그 분도 평소 그곳이 좋지 않아서 조금만 무리하면 이상이 오곤 해서 제가 그것을 말하려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를 채었다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이나 예언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이나 이러한 것들이 특별한 꿈과 환상이나 신비적인 방법으로만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일반적으로는 대부분 생각과 느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령의 내적증거로 옵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그러면 우리가 하거나 드는 생각이 모두 지식의 말씀이나거 하나님의 음성이거나 예언의 증거입니까? 아니지요. 키워드는 “성령 안에서”의 생각과 느낌과 직관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라는 말의 의미는 말이나 글로는 다소 설명을 할 수 있지만 이것은 경험적으로 알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생각은 어디에 속한 기능입니까? 그것은 곧 마음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마음이 듣고 분별하기 때문에 그 마음의 상태가 맑고 정결하며 온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속사람이 건강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성장하지 못하였거나 약하거나 깨끗하지 못하면 듣지도 알아내지도 못할 뿐더러, 들어도 잘못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와 말씀에 힘쓰고 거룩하고 정결한 삶에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에 애쓰다보면 예언의 말씀이던지, 지식의 말씀이던지, 지혜의 말씀이던지 영이 성장하고 맑아져서 그냥 알게 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은사라기보다는 그냥 영이 성장하고 맑아지면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때로 오류와 실수도 있지만, 가령 그냥 내일의 날씨가 어떨 것인지 느껴집니다. 그냥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아닌지 알아집니다.


요즘은 제법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는데 이러저러한 문제로 기도요청을 합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기도하다보면 그냥 압니다. 그러면 그 기도는 당분간 중지하지요. 하지만 맘 아플까봐 직접 말씀은 못하지요.


안타깝게도 어떤 분은 영적으로 보면 복된 일이지만 하나님이 무너뜨리는 작업을 하시고 계심을 봅니다. 내적증거로도 보고 가끔은 환상으로도 봅니다. 겪어야 할 참담한 시간을 봅니다. 지체님들이 아닌 많은 사람들도 위하여 기도하기 때문에 중보기도를 요청하신 분들 중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가끔 "저 아닌가요?" 그런 전화를 받으면 지나치게 염려하시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는 결국은 영적으로 복된 일이 될 것이나 겪을 동안에는 너무도 아픈 생의 고난, 그것을 알기에 말을 못하고 침묵하지만 참 마음이 아픕니다. 그 쓰라린 시간이 지나고 “고난 받은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 사람이 말하는 시간 때까지는 품고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럴 때마다 저나 여러분이나 평탄하고 형통할 때 더욱 주를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해집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얼마 전에 제가 다소 평균적인 후원이 적어서 지체님들께 다소 후원협력에 관한 송구한 말씀을 메일로 드린 적이 있지요.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이번 달은 다소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그냥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주 연락하는 분에게 “이번 달은 다소 어려울 거 같아요. 물질에 대한 연단 같습니다” 아는 분이기에 말씀 드렸지요.


보통 그런 메일을 드리면 그래도 몇 분은 참여 해 주시는데, 이번 달은 조금 특이하게 없다면 없고 있다면 꼭 한분 작은 사랑이 있었지요.


이 말씀은 부담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아지고 느껴지는 것에 대한 이해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아!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가운데 있구나. 때로 다소 어렵던지 때로 다소 여유롭던지 주님께 맡기는 법을 배우시길 원하시는구나” 그러한 것을 배워가는 것이지요.


여러분 중에서도 이미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계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기도와 말씀에 애쓰시다보면 점점 많은 것들을 또한 성령 안에서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은 예언의 보편적인 특성인 권면과 안위와 위로가 아닌 한 부분적 특성인 장래의 일을 알려주심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절대적으로 일어날 것에 대한 절대적 예언은 특별한 경우이고 소수이며 예외입니다. 대부분 조건부나 혹은 미리 알려 주심으로 그 상황에 대처하거나 인내하라는 주님의 사랑이며 배려입니다.


가령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을 때 이사야 선지가가 가서 “왕이시여, 집을 정리하십시요. 죽고 살지 못할 것입니다” 미래의 사실을 전했지만, 히스기야 왕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뜻을 돌이키셨지요.


왕하20: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왕하20: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왕하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왕하20: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왕하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왕하20:6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이처럼 장차 이루어질 일에 대한 예언도, 꼭 반드시 그것이 일어 난다기 보다는, 미리 대비하고 또는 기도하여 그 미래의 상황을 바꾸거나 하여 우리의 생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배려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예언이란 반드시 맞고 틀리냐에 초점이 있지 않는 것입니다.


심판과 파멸을 작정하셨을지라도 하나님은 니느웨성처럼 우리가 진심으로 눈물로 회개하면 뜻을 돌이키시니까요.


어쨌거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들은 우리를 사랑하심이요, 또한 유익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사도바울은 은사장인 고린도 전서 13-14장에 걸쳐서, 모든 은사 중에 특별히 예언을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고전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수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든 은사는 역사합니다. 하지만 더욱 더 기도와 말씀에 힘쓰며, 무엇보다도 본질은 은사가 아닌 내면의 영성 곧 사랑임을 분명히 중심에 기억함과 동시에, 더불어 우리 자신의 세움과 더불어 사단을 능히 대적할 수 있는 겉사람에 덧입혀 주시는 권능인 은사의 깊이도 깊어져서 든든하고 굳건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이면 싶습니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아들과 함께 모든 좋은 것들을 넘치도록 주시는 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따름입니다. 할레루야! 아멘!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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