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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진리] 생 각

초록 등불 2011. 11. 17. 16:30

 

  [핵심진리] 생 각

 

[인사] 오늘은 어젯밤 주님께서 하루 집에서 시간을 가지며 말씀 사역을 하고 조금은 쉬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소 쉼도 가지며 말씀 사역의 시간을 가집니다.


신앙상담을 가끔 하다보면 영적으로 너무도 기초적인 지식들을 모르셔서 제 맘에 조금은 빨리 이 부분을 정리하여 올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오늘은 영성과 영적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생각과 그 세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마음이 조금 바쁜 것은 이러한 영의 원리나 영성 은사에 관한 글들은 한편 영적 지식을 쌓아가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편 풍성한 영의 생명을 누리게 하는 데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질은 말씀사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꼭 필수적으로 전해주어야 하는 기초적인 지식이 아직 많아 그래서 다소 마음이 바쁩니다. 기초적인 영적 지식을 전해 드린 후에는 말씀 사역과 아울러 영의 원리나 영성이나 은사 세계에 대한 글을 겸하여 병행함으로써 균형을 이루고 싶습니다. 어쨌거나 오늘은 영성이나 영의 세계에서 기초적인 것이지만 너무도 소중하고 중요하고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과 그 세계에 대해서 다루고자 합니다. 너무도 중요한 지식이니 숙지하셔서 꼭 행하시기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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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크게 영적인 세계와 현상계로 구분하여 볼 수 있을 것인데, 그 중에 혼에 속한 마음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고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이 두 세계를 동시에 접하며 영향을 미칩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 속에 아름다운 느낌과 생각이 듭니다. 또 우리 속에 바닷가 예쁜 소라 껍질을 줍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 이것은 물질계 현상계와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지요.


하지만 영적인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 그 속성의 하나처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생각은 동시에 영적인 세계를 접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은 한편으로 하나님과 그 빛의 세계에 속한 성령과 선한 각양 영들을 접촉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단과 어두움에 속한 영들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세세히 논하자면 제게 그럴 지식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어쨌거나 생각과 마음과 혼은 같은 의미로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사람을 영,혼,육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삼분설도 있고, 영과 육으로 나누어 이분설로 설명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삼분설이 여러 가지를 설명하는 데는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삼분설로 보면 혼은 영과 육의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스스로 부여된 고유한 자유의지를 통하여 육을 선택하던지 영을 선택하던지 할 수 있는 자유와 기능이 주어져 있지요. 그러나 성경은 육을 선택하면 사망과 곤고함을, 그리고 영을 선택하면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롬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엄밀히 따지자면 다소 다를 수 있겠지만 넓은 의미로 혼이라고도 볼 수 있고 마음이라도 볼 수 있고 그리고 생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곳은 두 영적 세계를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곳이요, 두 영적 세계 측면에서 바라보면 차지하고 점령하고 싶은 영적 전쟁터인 곳이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두고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는 치열한 영적 전쟁을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나라를 선택하도록 영적인 영향력을 생각 속에 집어넣습니다.


가령 누군가 내게 누군가 화를 돋구는 일을 하면 성령은 “참아라, 용서하라” 감화하시지만, 사단은 “왜 참냐? 왜 일방적으로 당하느냐?”라고 속삭입니다. 실제로 영안이 열린 분들은 귓가에 앉아서 늘 속삭이며 유혹하는 사단에 속한 귀신들을 보기도 하지요.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라는 것입니다.


또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성령님은 우리에게 “평안하라, 하나님을 믿으라” 감화하시지만, 사단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던지 평안을 빼앗고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으로 묶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은 치열한 영적 전쟁터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에서 영적 지식으로 가장 핵심적이고 생명이라고 할 만큼 너무도 중요하고 소중한 핵심진리를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두 가지인데 첫째, 영의 세계에서 생각은 실제라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영의 세계에서 생각은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의 치열한 실제적인 영적 전쟁터라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요. 그러므로 이 두 가지를 분명하고 생생하게 늘 기억하십시요.


먼저 영의 세계에서 생각은 실제라는 사실을 다루어 봅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율법과는 다른 신약의 영 안의 율법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 두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구약의 율법은 실제적인 행위가 나타나지 않으면 정죄를 당하지 않았지만 영의 새로운 율법, 성령의 법 안에서는 마음 곧 생각의 행위가 실제적인 죄에 해당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성을 보고 음욕을 품습니다. 하지만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현상계에서는 죄인취급을 받거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그는 이미 간음한 자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마음과 생각으로 미워하면 이미 살인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 음욕을 품거나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왜입니까? 이미 영적으로 죄를 지은 실제적인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먹구름이 하나님의 빛을 가리우고, 그 어두움은 어두움의 영들을 불려들여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빛에서 어둠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 이 생각을 확대시켜 봅니다. 아주 오래전에 주님께서 제게 감동하신 진리가 생각납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가 선해지고 좋아지면 우리 주변에 좋은 것들이 모여들고 좋은 일들이 생기지만, 우리가 악해지면 우리 주변에 악한 것들이 모여들고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감동하셨지요. 아주 아득한 몇 해 전에 이르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과 생각이 영의 세계에서는 실제라는 것과 결부시켜보겠습니다.


가령 현상계에서 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껄떡거리며 걸으면 한 눈에 불량학생들이 이 학생이 같은 부류의 친구인 것을 알아보고 다가옵니다. 유류상종이라고 비슷한 존재가 가까이 오는 것입니다. 노숙자가 낡고 남루한 옷을 입고 때 묻은 얼굴로 걸어가면 역시 비슷한 노숙자가 다가와서 친구하자고 하지요. 현상계도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일들이 일어납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어떤 사람을 보고 어떤 사람이 음욕을 품습니다. 그러면 영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실제이니 음란죄나 간음죄를 실제로 짓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두운 음란의 영이 친구하자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은 통하고 흐른다고 음란의 영이 흐르는 사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가오면 그러한 영과 사람들을 통하여 더욱 음란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인생을 불행하게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과 생각이 정결하고 거룩하면 그 빛 때문에 어두움에 속한 영들은 오려고 해도 오지 못합니다. 이는 노숙자가 깔끔한 신사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정결하고 거룩하면 그 세계에 속한 성령님과 선한 빛의 영들이 환한 빛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또한 그런 선한 영들을 소유하고 누리는 사람들이 다가옵니다. 우리의 주위로 영적으로나 현상계적으로나 좋은 영들과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합니까?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말이 현상계의 역사를 결정짓는 천국의 열쇠라면, 생각은 이처럼 영적인 실제를 결정짓는 중요한 천국의 열쇠인 것입니다.


내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가가 영적인 세계의 누림의 실제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깊이가 다르고 사람마다 영권과 영력이 다르듯이 말씀 안에서 더욱 고결하고 정결하고 거룩한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갈수록 우리는 점점 더 높은 영의 세계, 하나님의 보좌에 더 가까이 이르게 되며 더욱 하나님의 영광, 쉐카이나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은 우리를 둘러싼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영적인 실제적인 세계를 결정짓는 핵심이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이 생각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거룩한 영들과 사단의 나라에 속한 영들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영적 전쟁을 벌이는데, 우리는 성령을 좇아 하나님 나라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가령 누가 나를 화나게 하는 일을 합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연적으로 화가 납니다. 그러나 실상 영적으로 보면 화를 내게 하는 것은 어둠의 영들이지,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라면 화를 내지 않습니다.


“목사님, 누가 나를 화나게 하면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닙니까?”라고 물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럽다는 말은 자연적 상태의 사람, 곧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단절이 된 물과 피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연적인 상태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단에 속한 상태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누가 화를 나게 하면 자연적으로 화가 나는 것은 깊은 의미에서 사단에 속한 생각을 받아들인 행동인 것입니다.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성령에 속한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지요. 전혀 자연적인 상태의 본성과는 다른 말씀이지요.


마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마5: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마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러한 말씀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화가 나고 염려가 되고 불안해지고 하는 것들은 결국 사단에 속한 어두움의 영들의 영향을 받아들인 것이고 그들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인 것인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이를 깨닫게 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계셨지요. 그런데 갑자기 큰 놀이 일어나 잘못하며 배가 뒤집어 지고 물에 빠져 죽을 위태로운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런 상태라면 생명의 위협 앞에서 누구나 두려워하고 놀라고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는 것이 자연적인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만약 이것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심리적 상태라면 주님이 결코 나무라시면 안되지요.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을 꾸짖지요.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이러한 주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어떤 환경에서든지 어떤 이유에서든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의와 희락과 평강이 아닌 다른 생각들, 미움, 시기, 질투, 염려, 걱정, 불안함, 두려움 등이 찾아오는 것은 사단과 어두움의 영들이 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화가 난다거나 염려와 불안이나 두려움이 마음에 깃든다면 이것은 사단이 주는 생각이요 그 영의 영향임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다른 사람이 또한 그러하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아닌 뒤에서 역사하는 어두움에 속한 영들의 역사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 말씀하신 것이지요.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성령에 사로잡힌 다윗은 자연인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해야 하는 골리앗을 볼 때 자신이 쳐 죽인 동물들 중의 하나처럼 작게 보였습니다. 두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사도바울은 자연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고 심지어 심각한 공포로 떨릴 수도 있는 사형의 집행을 앞에 두고도 기뻐하고 기뻐하며 도리어 자신이 섬기던 성도들을 향하여 기뻐하라라고 권면합니다.


이처럼 성령의 임재와 다스림을 받으면 어떤 환경이나 어떤 일 앞에서도 화를 내거나 염려나 불안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의와 희락과 화평이 있으면 성령의 임재와 다스림을 받는 상태요, 불안과 두려움과 미움과 염려와 걱정이 엄습한다면 이는 어두움의 영이 주는 생각들이요 영향인 것이므로, 우리는 이를 말씀으로 대적하고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일 앞에서나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면 의와 희락과 평강을 잃지 않습니다. 가령 자녀가 죽어가도 다소 놀라기는 하겠지만 불안에 떨거나 염려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도리어 강하고 담대하여 죽이려는 악한 영들을 향하여 강하게 대적하고 주님께 믿음으로 기도하고 맡기며 비록 마음을 아플 수 있겠지만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에는 사로잡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인 이상 가령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이 죽으면 슬퍼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우리의 본성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와 걱정이나 두려움이나 이런 것들은 자연스러운 들이 아니라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적하고 쫓아내고 하나님의 영의 임재와 다스림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축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깊이 논하여야 하겠지만, 간단한 축사의 원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우선 그 상황에 적용되는 말씀을 찾아서 그 말씀의 검을 어두운 영 앞에 들이대며 선포하여 쫓는 것이지요.


가령 근심과 우울이 찾아오면, “말씀에 기록되었으니 항상 기뻐하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울하게 하고 근심과 염려를 하게 하는 악한 영은 내게서 떠날지어다”라고 선포하는 것이지요. 이런 자기 축사와 가족들을 위한 축사는 수시로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끝임 없이 사단은 우리의 생각을 통하여 공격을 해 오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서 한번 말씀의 글에서 드린 기억이 나는 중요한 영적 진리를 다시 새겨봅니다.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께서는 능히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쫓으셨으나 꼭 한 곳 자신의 고향에서는 큰 기적을 행하시지 못하셨지요. 그것은 평소 자신을 잘 알던 사람들이 바라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그냥 잘 알던 동네의 한 청년이요, 목수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름부음을 받았고 능력을 행한다고 알려졌지만 그런 선입견 속에서 믿음이 생기기 어려웠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곳에서는 아무런 일을 행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원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믿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으며 역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능력 곱하기 우리의 믿음의 수치가 역사하는 능력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이 아무리 무한대로 크도 우리의 믿음이 제로이면 그 값은 제로이지요. 전혀 하나님의 능력이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같은 영적인 세계, 사단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단의 나라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과 불안 등의 어두움의 생각이 클수록 크게 역사하는 반대적인 성향이 있는 것입니다. 염려하면 할수록, 불안해하면 할수록, 두려워하면 할수록 사단의 능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평안을 누리며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으면 사단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어두움의 능력과 역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 그 나라에 속한 밝은 생각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것은 우리 주변에 영적인 세계 속에서나 현상계에서나 좋은 것들, 행복한 일들은 가까이 부르는 영적 실제적인 행위요, 반대로 어두운 생각을 받아들이면 반대로 어두움의 역사를 강하게 부르는 영적 자살행위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 안에서 평강과 믿음을 지키는 것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 살아 역사하게 하는 것이요, 어두움에 속한 염려와 불안과 걱정과 공포를 받아 들이는 것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사단에게 힘을 실어주고 능력을 실어주어 죽음의 역사를 불러들인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요.


이런 원리에서 마음의 평안과 믿음을 유지하는 길은 겪는 어려움에서 속히 벗어나게 되는 한 비결입니다. 염려와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힘은 점점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얽히게 되는 영적인 세계의 한 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전혀 부정적인 생각이나 어두움의 생각들을 받아들이지도 말고 하지도 마십시요. 들어오면 말씀과 기도와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내십시요. 마음을 지키십시요. 생각을 말씀 안에서 지키십시요. 어떤 상황이던 일이던 생각과 마음을 믿음 안에서 지키십시요.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을 합니까? 무릇 지킬만한 것 가운데 네 마음을 지키라고 이르며 그것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런데 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 쉽습니까? 결코 아니지요. 염려하지 않으려 해도 염려가 되고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해도 불안해지고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해도 두려워져 버리지요.


누가 내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도 돌려대고 싶은데 화가 불쑥 나서 같이 때리게 되지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라 더 심한 보복을 하고 싶어지지요. 그래서 제가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는데,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장수가 성을 지키는 것보다 어렵다는 그런 말씀인지 이야기가 있지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인 줄을 알지만 우리의 자연적인 상태의 모습이나 사단의 영향아래 놓여 있다면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엔 생각이 사로잡히고 다음엔 마음이 사로잡히고 다음엔 행동이 사로잡혀서 온갖 중독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술중독, 담배중독, 음란중독, 게임중독, 도박중독, 인터넷중독 등 우리가 바라보았을 때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갇히고 얽매인 모든 중독들은 이렇게 우리가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하는데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점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자면 해답은 우리의 영이 강건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인의 모습으로는 타락한 본성 결국 사단이 주는 생각과 마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성령의 공급하시는 능력과 말씀과 기도 안에서 우리의 영이 강건해지지 않으면 생각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하며 말씀의 거울로 우리 마음을 날마다 닦아 내야 합니다.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 우리의 속사람, 곧 영을 강건하게 하여야 합니다. 나아가 깊이 있는 회개를 통하여 더렵혀진 마음,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은 죄성과 습관과 상처 등 모든 것의 사함과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과 말씀 안에서 생각과 마음의 고침과 회복을 덧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를 통하여 마음과 상처의 생각을 주님의 보혈로 씻어내고 정결케 하고 내적 상처의 치유를 받으십시요. 그리고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이고 먹이십시요. 나아가 예수 이름의 권세와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생각들과 그 영들을 쫓아내십시요.


누군가 미우십니까? 회개하고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 이름으로 그 미움의 영을 대적하고 쫓아내십시요. 마음에 자꾸만 음란이 깃드십니까? 맑고 청정한 마음이 아니라고 느껴지십니까? 회개하고 예수 이름으로 그 악한 영을 대적하고 강력하게 예수 이름으로 꾸짖고 내 쫓으십시요. 여타의 중독과 감정들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으십니까? 기도하고 믿음과 담대함으로 강력한 선포로 악한 영들과 그러한 생각들은 끊어내고 잘라내십시요. 말씀에 믿음을 더하여 불의 능력으로 강력하게 선포하고 또 선포하여 악한 영들과 그들의 흔적을 쫓아내십시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평소에 잘 알고 있던터라 기도할 필요가 없었지만 글을 쓰기 위해 잠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은 우리의 신앙생활, 곧 영성 생활은 결국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성생활이란 곧 우리의 생각으로부터 우리의 말과 행동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니 곧 우리의 마음을 닦고 생각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지요.


나아가 몇 말씀 간단히 감동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즘에는 주님께 특별히 많은 말씀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간단히 핵심만 간구하게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감동으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나는 말씀이다. 너희 생각과 마음을 말씀으로 채우라. 그것이 곧 나로 채우는 것이다. 그것이 너로 생명을 누리게 하며, 너와 네게 속한 것들을 보전하게 하며, 네 육체의 건강도 될 것이다” 이 말씀을 들으니 성경의 한 본문이 스쳐갔습니다.


잠4: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잠4: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잠4: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나아가 가슴을 깊이 파고드는 음성으로 “기억하라! 생각을 지키라. 그것이 생명을 누리는 길이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에 힘쓰며 마음을 정결케 하라”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정결케 된 마음에는 어린아이가 본성적으로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듯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깃든다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듯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사랑이 있으십니까? 만약 그러하다면 이는 물과 피와 성령으로 씻겨져 맑갛게 된 깨끗한 마음과 생각의 상태인 것입니다.

만약 그러하지 못하다면 곧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를 통하여 물과 피로 씻음을 받으십시요. 상처의 치유도 받으십시요. 그리고 생명의 영, 생명의 생기 성령으로 그리고 말씀으로 마음과 생각을 채워나가십시요. 그것이 우리의 영과 혼과 육과 우리의 삶에 생명과 빛을 줄 것입니다. 생각을 지키십시요. 그것이 영적으로 가장 중요한 진리 중의 하나이며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놀라운 지혜 중의 하나입니다. 아멘! 샬롬 !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출처 및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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