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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예언, 지식이 없으면 망합니다.

초록 등불 2011. 12. 4. 19:08

 

  [예언] 지식이 없으면 망합니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샤워를 하면서 잠시 스치며 생각하듯 기도하는 가운데 예언의 말씀, 지식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이러이러한 것을 배우고 익혀서 이러이러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은사 중에서도 가장 예민하고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것이 예언의 은사이지요. 가장 큰 문제의 근원은 예언의 은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인식의 부족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언이라고 하면 미래의 일어날 일이나 그러한 것들과 관련된 것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예언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기능은 안위하고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고전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예언의 은사를 통하여 앞으로 될 일이나 알려고 하고, 문제해결의 무슨 뾰족한 방법만을 얻어내려고 합니다. 무속적 샤머니즘과 같이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언의 은사의 주된 기능은 결코 그러한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안위하고 권면하고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언의 기능 중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 등에 관한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이것도 실상 앞으로 그 일이 일어나느냐 아니냐의 문자적인 의미의 표현상의 문제가 아닌 그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려는 뜻이 강합니다. 그래서 예언과는 다르게 일이 실제적으로는 진행되기도 합니다.


“가령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의 사역에 축복해 줄 것이다”라는 예언의 말씀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역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더욱 고난과 시련이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하고 담대하게 만드시는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사역의 성공과 풍요로움만을 꿈꾸는 일반적인 자기사랑의 이기적인 꿈이 아닌 진정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헤아리는 가운데서 진정한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 곧 어떤 시련과 죽음마저도 견뎌낼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이 말씀하신 사역의 축복이라는 것이 인간적인 의미의 축복이 아니라, 사도바울과 같이 수많은 시련을 겪지만 어떤 시련에서도 견뎌내며 하지만 그 시련 가운데서도 자신의 삶과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음을 보여주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참된 일꾼으로 세워 가시려는 의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인간이기에 늘 현재의 아픔과 시련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앞서는 것을 보게 되지만, 신앙상담을 해보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역시 마찬가지로 그 고난과 시련 속에 숨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무당을 찾아가서 지금 그 고난과 시련을 금방 그리고 속히 벗어날 수 있는 무슨 뾰족한 묘수를 구하듯이 그렇게 신앙상담을 해 오는 것을 많이 봅니다. “이 고난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라고 대부분 질문을 하시고,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만을 위해서 대부분 기도 요청을 하시지, 그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마음은 거의 없음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늘 마음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도 회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분명 우리의 생각보다는 높고 선하고 아름답지만, 우리와 너무도 달라서 때로는 우리의 지성과 이해력으로는 이해하기 너무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이 없이 자신의 마음 편에서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다보면 갈등할 수밖에 없고, 신앙의 회의마저 들게 마련인 것입니다.


언젠가 예배모임을 인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너희는 항상 편안함을 추구하지만, 나는 너희의 영적인 성장을 원한다”말씀하셨지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때때로 신앙 안에서 스스로 고상한 척 하지만, 대부분의 관심은 급급한 현재의 문제 해결과 그리고 현세적인 축복이 실상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편에서 서서 왜 가나안 땅으로 빨리 들여보내지 않고 광야에만 이토록 오래 머물게 하시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진정 그 시련과 고난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속히 광야가 아닌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면, 내 마음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여야 합니다. 내게 왜 이런 고난과 시련을 주시는지 고민하고 생각하며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 편에서 행동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돌이키기 원하시는데, 그것은 생각하지 않고 자꾸만 문제해결만 받으려면 그 문제가 해결되겠는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영적 성장을 위한 목적으로 고난의 풀무불을 주셨는데, 그 마음을 헤아려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부지런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 수준에 이르기를 애쓰지 않고 문제해결에만 급급하고 답을 구하려 한다면 그 문제가 풀리겠는지요?


이처럼 예언은 실상 안위하고 권면하고 덕을 세우는 것이 주된 기능이요, 때로 장래의 일들에 대한 말씀이라도 그것이 일반적으로 이해되어지는 문자적인 표현과는 다르게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하나님의 높은 다른 의미의 경륜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실상 맞고 틀리고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의 미래에 대한 예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개인적인 미래에 대한 예언은 조건부입니다. 순종의 조건부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씀하시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이루어질 일들에 대한 예언이 대부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나 예언 등 모든 영적인 것들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 만약 그 예언이 오류가 있는 예언이라면 ‘스스로 그 예언에 갇히게 되는 부정적 자기 내사(최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인 저의 미래에 대한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관심이 있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냐에 더 관심이 많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샤머니즘적인 무속 신앙에 젖어온 민족의 역사 때문인지, 자꾸만 예언을 무슨 장래 일이나 고난이나 시련에서 벗어나는 무슨 묘책을 발견하려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며, 자꾸만 무당을 찾아다니듯이 예언자를 찾아다니며 단순히 미래 일을 알려고 하고 또 고난을 벗어나고 축복을 받는 무슨 간단한 묘책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경고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예언의 은사를 이해하고 찾아다니다가는 반드시 그릇된 예언으로 인하여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은 그러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언은 안위하고 권면하고 덕을 세우며, 또 어떤 사건이나 시련의 구체적인 해결책이나 장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건과 시련 속에서, 또 예언을 통한 장래의 소망 가운데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시려는 의도가 예언의 주된 기능인 것입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장차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말하는 예언의 경우도 있지만, 예외적이고 이례적이며, 개인적인 것과 관련된 예언은 어떤 것을 족집게처럼 알아맞히고 어떻게 하면 그 문제에서 벗어나며 장차 반드시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절대적 사실의 예언과는 대부분 거리가 멉니다.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그 마음으로 시련과 연단의 시간을 잘 인내하면 실제적인 축복이 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의 노래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진정 헤아리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면,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영적으로 성숙하여 저 영광의 하늘의 높을 곳을 거닐면, 초가삼간도 고대궁궐과도 같고, 감옥이라도 찬송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영광의 장소인데, 곧 그 심령 천국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인데, 그것이 진정 미래에 대한 축복된 예언의 성취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언을 통하여 문제해결에 급급하고 미래의 일을 무당 찾아 알려고 하듯이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구하지 아니한 것들까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 것입니다.


나아가 다시 그리고 거듭 강조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들, 음성, 꿈, 환상, 예언, 지식의 말씀 등에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반드시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 어떤 것도 절대시 하지 마십시요.


오류가 있을 수 있기에 신중하여야 합니다. 일상적이거나 내면적인 어떤 것들에는 다소의 오류가 있다고 하여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소명이나 인생 전체가 걸린 문제에는 정말로 신중하며 헤아리며 분별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깊은 새김을 주기 위하여 다소 표현이 거칠게 말씀드립니다. 경고하지만 예언을 잘못 이해하고 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살피는 신중함이 없이 성급하게 어떤 한 가지로 결론을 내리면, 반드시 큰 불행을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책을 보니 어떤 사람은 “어느 섬으로 가라”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하여 가다가 추락하여 죽었더군요. 왜냐하면 그 섬은 전쟁 중이었거든요.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들은 것이거나 가령 가야 한다면 지금인지 언제인지 분별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지요.


이러므로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것들은 분별하고 헤아리며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성급하게 결론을 짓거나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더욱 인생의 큰 중대사가 걸린 경우야 두 말할 나위가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제가 앞의 예언의 글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하나님의 뜻을 여러 부분으로 모양으로 점검하고 확인하며 분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를 예를 들면 목회자로 인생을 전환하는 가운데 정말 심사숙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믿음이 없어 소심하다고 할 정도까지 분별하며 심사숙고하였습니다. 환경을 통한 말씀, 꿈을 통한 말씀,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 내적 소명의 점검, 예언을 통한 점검, 스스로의 기도를 통한 점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분별하며 심사숙고하였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다 끼워 맞추어보니 모든 것들이 한 지표, 곧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들은 헤아려 분별하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며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잘못 듣고 잘못 선택하여 인생을 망치는 경우를 피할 수 있습니다.


요즘엔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초대교회 등에는 예언 장로회가 있었지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인 모임이지요. 그리고 어떤 사안이 주어지면 그들이 기도하여서 각각 받은 바를 말하게 되고, 그리고 영분별의 은사 등을 통하여 서로 분별하여,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고 아닌 것은 버렸던 것입니다.


왜 한 사람이 아니고 예언 장로회를 두었을까요? 그것은 한 사람은 오류가 있을 수 있기에, 다수의 예언자들이 모여서 분별하며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렇듯이 하나님께로 오는 모든 것들은 헤아리고 분별하며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고 아닌 것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과 예언 등을 무슨 신탁처럼 절대화하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불행한 일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래 성경 구절이 예언 장로회 구성 등에 관하여 좋은 지침을 줍니다.


잠11:14 도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고후13: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니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우리는 곧잘 기도원 등의 원장님들이 걸핏하면 “당신은 사명자야! 목회를 해야 돼!”라는 식의 예언을 하여서, 때로는 그 일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로 인하여 가정불화 등으로 가정이 깨어지고 인생이 불행해진 사람들을 수없이 봅니다.


물론 그러한 예언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가정이 깨어지고 인생이 불행해지고 급기야는 목회도 세상일도 하지 못하는 속칭 백수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예언하는 사람도 너무도 예언에 관하여 무지하거니와 듣는 사람도 너무도 무지하여서 스스로 인생을 망치게 하고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주의 일을 해야 한다는 감동이 오면 무조건 목회자로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주의 일에 목회자만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일이 주의 일인 것입니다. 어떤 기도원 원장님들은 사람만 보면 사명자야 하는 분도 계시다더군요. 정말로 예언을 할 줄도 모르고 또 들을 귀도 없어서 예언자 자신도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큰 책망과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또한 들을 귀가 없어서 선택을 잘못함으로써 인생을 망치는 많은 분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제가 경험한 한 예를 통하여 그릇된 예언과 바른 예언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저는 주말과 주일엔 쉬는데, 그 날은 월요일에 예배모임이 있어서 주일날 말씀을 기록하고 보낼 준비를 다 마치느라 곤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분으로부터 신앙상담요청이 들어오기에 어차피 기도해봐야 분별이 가능한 터 제가 간단히 메일로 그 말씀을 전해달라 부탁하였습니다.


예배인도와 종일 일한 곤한 몸, 저녁시간에 샤워를 하면서 “아마 그분께서 신앙상담 메일을 보내셨겠지..” 그래도 내일 예배모임 준비를 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 오늘은 기도하기 힘들겠다 생각하며 샤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제 저의 이런 바쁜 사정을 주님께서 아셨는지, 순간적으로 그분이 신앙상담을 해온 자녀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라면 예언의 말씀이고, 지식의 말씀이라면 지식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이 아이는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어떤 것을 전공하여 배워서 어떤 봉사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주님께로부터 지식의 말씀이나 예언의 말씀이 오지 않고, 기도로 성령 안으로 들어가야 주어지기 때문에, “이상한 일이네. 그냥 내 생각일까. 나중에 다시 기도로 분별하여 보아야겠다..” 생각하고는 몸을 씻고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잠시 카페에 들러 인사글을 남기려고 접속을 하니 그분께서 벌써 메일을 보내셨더군요. 그 메일을 읽다가 감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상담을 해온 분의 자녀의 꿈꾸는 바가 제가 순간적으로 받은 바 말씀과 완전히 일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받은 예언을 겸하여 적어 놓으셨는데, 첫 번째 예언에는 제가 받은바 말씀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 째 받은 예언의 말씀으로 내려가니 내용이 바뀌어서,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고, 그리고는 결국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신학교로 입학하여야 한다고 예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놀라고 어이가 없었던 것은 “한 아이의 장래를 두고 한 예언이 심사숙고하고 헤아리고 분별하는 과정을 거친 숙성된 예언이 아니라 공개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주어진 즉흥성 예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때로 그것이 정확한 하나님의 음성인지 스스로도 의구심이 가며 분별이 어렵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실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으신 분들도 예언도 무슨 특별한 방법이 아닌 내적 음성과 마음의 감동과 직관적 생각과 느낌, 혹은 환상 등으로 오는 것임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분별이 필요하고 오류가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아이의 장래가 달린 문제를, 품고 분별하며 숙성하는 과정도 없이 즉흥적 예언을 하며, 또 진정 바른 예언이라면 그토록 뛰어난 아이, 가령 목회자의 길을 권유하더라도 아이 실력에 걸맞은 좋은 신학교를 권면할 것이지 어떻게 예언이 결국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신학교로 오라는 식의 예언이 나올 수 있습니까?


제가 영 안에서 분별하여 본 결과 첫 번째 예언은 어느 정도 맞았다고 볼 수 있으나, 두 번째 세 번째로 내려가면서 자신들의 학교 운영 등을 생각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끼여든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이가 없고 놀랬던 것은, 과거와 달리 어느 정도 바른 예언이 무엇이며, 어떻게 예언해야 하는지 많이 알려진 시대, 그런대도 아직도 그렇게 한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예언을 그렇게 즉흥성으로 하는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와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참된 예언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고 듣는 것이며, 저의 말도 절대시 하지 말며, 여러 가지를 깊이 고려하고 숙고하여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뜻을 살펴 아이의 장래를 결정하라 권면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무도 보기 드문 신앙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휼륭한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릇된 예언의 내사로부터 벗어나서 자유한 가운데 스스로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길을 선택하며 걷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인지, 제게는 거의 강권적으로 본래 아이가 가졌던 꿈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임을 강력한 감동으로 확증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받은바 감동일 뿐, 참고로 하시고 한번 뿐인 자녀의 스스로의 인생, 누구의 예언 몇 마디에 흔들리지 말고 심사숙고 하며, 가족이 함께 기도하며 스스로의 확증을 통하여 행하시라 수 시간에 걸쳐 설명 드리며 말씀을 드렸지요.


그 자녀의 아버님의 말씀 가운데 만약 목회자가 하나님의 뜻이면 불순종하면 재난을 겪게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령 우리가 만약 그러한 삶에 대한 서원 등을 하였거나 하면 영적으로 무게감있고 깊은 통찰이 주 안에서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어떤 것들도 없이 우리의 인생길을 가는데 있어서 매사에 하나님께 묻고 행해여야 하는지요?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는지요? 그렇다면 모든 학생들은 다음 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직장을 잡을 때마다 기도하고 예언의 은사자를 찾아다니며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기계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와 같습니다. 가령 부모는 이것을 하기 원하는데 자녀는 다른 뜻을 품고 “아버지, 어머니,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응낙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를 주신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길에 있어서 무슨 성경의 말씀에 의하여 얽매인 바가 없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여 사는 것”이 정답인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물론 하나님은 각 사람을 향한 뜻과 경륜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변론하여 자신이 더 살고 싶은 길을 걸어갈 수도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방법은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우리 안에 깊은 소원을 주셔서 예언 등에 의지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당신의 뜻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하고 영 안에서 분별한 바로는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의 마음속에 이미 당신의 섭리와 경륜을 소원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그 아이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즉흥성의 분별없는 예언으로 인하여 온 가족이 방황하고 갈등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어디까지나 제가 분별하고 받은 것일 뿐, 자신의 인생, 가족들이 스스로 기도하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통로의 여러 면에서 살펴 올바른 길을 선택하길 바랄 뿐입니다.


물론 순종의 조건부지만 제가 성령 안에서 분별한 바로는 너무도 신앙 안에서 아름다운 섬김의 삶을 살아갈 아이였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그릇된 예언의 내사(최면)로부터 자유함을 주시기 위하여 제게 특별한 경험을 주신 듯싶었습니다.

스치듯 주신 지식의 말씀과 예언의 말씀, 너무도 아이의 소원과 일치하여 저 스스로도 놀란 일이었지요. 어쨌거나 지혜와 계시의 영을 그 아이와 부모님들에게 주셔서 잘 헤아려 분별하고 좋은 것을 취하여 한번 뿐인 인생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에게 유익함을 주는 길을 걸어갔으면 싶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은 우리의 연약함으로 오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헤아리고 분별하여야 합니다.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여야 하고, 어떤 하나를 절대시하지 말며 다양한 방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모자이크 조각을 맞추듯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하나 맞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숙한 예언자는 대부분 신앙일반에 관한 것이면 모르겠지만, 물론 특별한 성령의 이례적인 역사가 있으면 그렇게 즉흥적으로 예언할 수도 있겠지만, 가지가지 인생의 문제가 걸린 인생사는 그렇게 즉흥적으로 예언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도 품고 고민하고 분별하려 애쓰며 신령한 척 기묘한 동작이나 즉흥성의 예언은 하지 않으며 자신이 영 안에서 받은바 예언과 지식의 말씀, 그리고 지혜의 말씀과 더불어 피상담자와 자연스럽게 대화형식을 통하여 하나씩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나가려 합니다.

대화 형식을 통하여 자신이 받은 것 중에서도 스스로 헤아려 아닌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을 취하여 상담을 의뢰해온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어가며 가능하면 스스로 길을 찾도록 권면하며 자연스럽게 유도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인생의 길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말을 절대시 하는 예언자를 조심하십시요. 신령한 척 특별한 척 하는 예언자를 조심하십시요. 말로 겁박하거나 재물을 탐하는 예언자를 조심하십시요.  


이 아이의 경우는 이미 다른 예언으로 인하여 혼란을 겪고 있었기에 제 역시 받은바 감동을 직설적으로 말했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영적으로 조언하며 스스로 결정하도록 유도하였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너무도 무책임합니다. 경종의 차원에서 격하게 말씀 드려서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그냥 순간의 영적 느낌과 생각대로 말해버립니다. 그리고는 불행한 일이 생기면 책임은 상담을 해온 사람들에게 전가해 버립니다.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당신 믿음이 부족해서야!” “당신이 순종하지 않아서야!”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까요.


과연 자신의 전생과 관련된 문제도 그렇게 즉흥적으로 기도하고 결정할까요? 만약 자신의 자녀라면 그렇게 무책임하게 즉흥적으로 예언하고 결정할까요?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구약시대에도 참 선지자나 예언자보다는 거짓예언자가 훨씬 많았습니다. 참 선지자의 글들은 대부분 성경에 실렸지요. 몇 사람이나 됩니까? 수많은 예언자가 있었을 터인데, 물론 성경을 기록하지 않고 활동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처럼 과거나 지금이나 거짓 예언자나 목자는 수도 없이 많은 것입니다.


얼마나 거짓된 예언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물질을 탈취하며, 때로 겁박하는 그릇된 예언자들을 많이 봅니까? 그러므로 스스로 헤아려 분별할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이던 예언이던 스스로 들을 귀를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나 지금이나 참 선지자나 예언자보다는 거짓 선지자나 예언자가 많은 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지킬 지식은 스스로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오늘날에 스스로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시는 분들은 그 예언에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은 틀리게 예언하면 때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생명을 걸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말씀이 임하면 때로는 두고두고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품고 스스로도 한없이 고민하고 분별하며 확증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거쳤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처럼 성경이 있던 시대도 아니요, 자신의 말이 곧 성경의 말과 같으며, 한 민족의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거나 하는 등의 너무나도 막중한 책임,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약시대라 하여 선지자나 예언자들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완전히 분별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신중하게 분별하고 스스로 확증하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예언의 성격이 다소 변하였지만,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지녔던 마음의 진정성은 여전히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잘못 예언하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정말 상담을 해 오는 분들의 인생이 자신이나 자신의 자녀인 것인 냥, 얽히고설킨 결코 쉽지 않은 세상사, 그렇게 즉흥적이며 단정적으로 예언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처럼 지금 이 땅에서는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도 많아 돌에 맞아 죽지는 않겠지만, 하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는 그릇되고 분별없는 예언으로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친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땅의 돌이 아니라 더 아픈 하늘의 영원한 사망의 하늘의 죽음의 돌을 맞게 될 것입니다.


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리고 예언을 하시는 분들이나 예언을 받는 사람이나 예언이 무엇이며, 성숙한 예언이 무엇인지 할 줄도 알아야 하며, 또한 들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배워야 합니다. 영적 세계의 지식을 갖추어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이 없으면 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주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잔혹한 행위를 하였는지 아십니까? 처참하게 살해하며 마녀 사냥을 하였는지 아십니까? 이처럼 모르면 주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게 되며, 주의 이름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 곧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가 아닌 영의 세계만큼 혼란스럽고 분별이 필요한 곳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익히고 배우십시요. 그리고 가능하면 스스로 문제를 고민하고 파악하고 해결해 가십시요.


물론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영적인 혜안을 가진 분들의 조언이 때로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이례적입니다. 예언 등에 중독 되어서 습관처럼 무당을 찾아다니듯 하지 마십시요. 그런 분들은 매사에 그렇게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불행을 자초합니다.


스스로 기도하시며 주님이 주시는 음성에 귀기울이고, 다른 모든 것들은 참고사항으로 삼으십시요. 그리고 자신이 주님 앞에서 기도하며 스스로 검증하고 확증한 뒤에 누구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불행을 당한 뒤에 원망하지 말며, 스스로 책임있게 행하십시요.


목회자도, 어떤 예언자도 믿지 말며, 설교이든 무슨 권면이든 늘 분별하고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십시요. 성경에 위반되는 것이면 따르지 마십시요. 오직 주님과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요.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성경을 말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심령의 거룩함과 정결함을 잃지 마십시요. 심령은 하나님의 음성과 뜻을 비추어주는 등불이며 거울입니다. 그것이 죄로 얼룩지거나 정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음성과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늘 기도와 말씀에 성실하여 거룩하고 정결한 심령을 유지하면, 하나님은 참된 스승 되시는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하여 맑은 샘은 그 바닥이 환히 보이듯이 우리에게 행할 길을 본성적으로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설교든, 예언이든, 그 어떤 것이던 항상 분별하며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스스로 맑고 정결한 심령 가운데 참된 스승이요, 빛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행하십시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듭 말씀드립니다. 영적인 세계의 일들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십시요. 모르면 속는 것이 세상입니다. 영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면 속고 지식이 없으면 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늘 읽고 묵상함이 분별의 기초요, 그리고 검증된 영적인 분들의 책을 통하여 영적 지식을 또한 쌓아나가십시요. 그래서 혼미한 시대요, 더욱 혼미한 영적 세계의 일 스스로 분별력과 지식을 갖추십십시요. 지식이 없으면 망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 주셔서 참된 길과 빛을 언제나 보게 하옵소서. 아멘. 할렐루야!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고전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살전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출처 및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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