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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진리] 말, 두려운 말의 능력

초록 등불 2011. 11. 21. 01:32

 

  [핵심진리] 말 (두려운 말의 능력)

 

영성생활과 영적 세계의 너무나도 중요한 기초가 되는 생각에 이어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나누어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와 보이는 현상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앞선 생각의 글에서 생각은 혼적 기능으로 비록 현상계와 영적인 세계와 다 영향을 주고받지만, 그 속성을 생각해보면 생각은 보이지 않는 것이므로 형체가 없는 것이므로 영적인 세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말은 역시 영적인 세계와 현상계에 다 영향을 미치지요. 가령 축사를 할 때 우리가 명령을 하거나 기도할 때 성령님을 초대하면 사단의 나라가 쫓겨 가거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니 역시 두 세계를 아우러지만, 말은 비록 형체는 없으나 우리의 육신이 들을 수 있으니 본질은 생각과는 달리 현상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렇게 생각과 말은 영계와 현상계 두 세계를 동시에 아우르고 영향을 주고받지만, 한편 생각은 정신계나 영계, 그리고 말은 현상계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생각은 영적인 세계의 실제요 변화를 가져온다면, 말은 현상계의 실제요 변화와 역사를 가져온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은 이것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온전한 구원을 받는 과정에 대해서 성경은 먼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이것은 영적인 세계의 변화와 실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며 마음에 믿으면 영적인 세계에서 의, 곧 영적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구원, 곧 영혼육의 온전한 구원을 이루려면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현상계의 구원을 위하여 입으로 시인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과 유사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씀이 또 있지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병을 치유받고 일생 그의 삶이자 마음의 실제였던 말씀, 마가복음 11장 23-24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와 같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막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가령 저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져질 것을 믿는 태산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결제가 떨어집니다. 이미 영적인 세계에서는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뭐라고 말합니까? “그 말하는 것이..”


다시 말씀드리면 그러한 믿음이 있더라도 그냥 마음의 믿음만으로는 아무런 역사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저 산아 들리어서 저 바다에 던지우라” 믿음으로 선포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말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과 내적 믿음은 영적인 세계에서 실제이고 변화를 가져오지만, 그것이 현상계에서 실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로 고백하고 말로 선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문제를 기도한다면 반드시 기도 중이거나 기도 후 선포하여야 합니다. 선포의 원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이처럼 말은 현상계에 어떤 역사를 이루거나 변화를 가져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진리의 핵심을 먼저 말씀드리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그리고 말하는 대로 인생이 대부분 흘러갑니다. 그처럼 생각과 말은 놀라운 긍정적인 창조와 축복, 그리고 반대로 부정적인 파괴와 저주를 일으키기도 하는 우리의 생을 결정짓는 한편 천국의 열쇠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약3: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약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마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12: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잠12:18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병을 고치느니라)


잠21: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이 모든 성경 말씀들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말이 너무나도 중요하며 생의 길을 결정적으로 결정짓는 열쇠요, 나아가 생명까지 죽거나 살리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에는 무서운 위력이 있음을 아셔야 필이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있으라 하신 즉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도 말에 창조와 파괴의 능력이 있습니다. 본시 창조물이므로 하나님과 같은 능력에는 미치지 못하였겠지만, 그리고 타락함으로 영력을 많이 상실하여 말의 위력이 많이 격감되기는 하였지만, 우리의 말에도 말대로 되는 놀라운 창조와 파괴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면서 우리에게 이러신 말씀에, 우리에게도 이러한 말의 능력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지요.


마21:19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마21: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마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마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우리의 말에는 놀라운 창조와 파괴의 능력이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일반인들의 말에도 그러한 능력이 있음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지요. 가령 물을 보고 “사랑한다”라고 말을 한 뒤에 그 분자구조를 들여다보면 너무도 아름다운 결정을 이루고 있지만, “미워한다”라던가 파괴적인 말을 하고 들여다보면 그 아름다운 결정체가 깨어져 있다고 하지요. 이처럼 말에는 창조와 파괴의 능력이 있습니다. 죽고 살리는 권세가 우리의 혀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를 지나가실 때 풍랑이 일어서 제자들이 놀라 당황할 때 주님은 일어나서 바람과 풍랑을 꾸짖으셨지요. 때때로 어떤 목사님들은 바람과 풍랑은 인격체가 아니므로 꾸짖을 수 없고 배후의 사단의 역사를 제압하신 것이라고 설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반드시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말은 자연계에도 그대로 역사합니다. “산아 들리어 바다에 던지워져라”라고 주님이 예를 들어 설명하실 때 산이 인격체라서 듣고 순종합니까? 이미 죽어버린 나사로인데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말을 하면 죽은 사람이 듣습니까? 아니지요. 무화과나무가 인격이 있어서 예수님의 저주를 알아듣고 말라갔습니까?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인격체가 아닌 물질계를 향하여 “..되라”하면 그대로 되었듯이, 우리의 말은 인격체 뿐만 아니라 자연의 현상계에도 창조와 파괴와 변화의 능력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물에게도 우리가 말하면 그것이 인격체이기 때문에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에는 비생명체인 환경이나 물질에도 역사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구약성경을 보면 더욱 말에 대한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한 후에 여호수아가 이런 말을 하지요.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수6:26)


여호수아가 이 말을 할 때에 특별히 성령에 감동되었다거나 그런 말씀도 없습니다. 그냥 영권이 있는 여호수아가 그 성령을 점령하고 다시는 건축되거나 세워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저주는 세대를 넘고 넘어서 500년후 아합왕 시대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왕상16: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이처럼 말은 무서운 것입니다. 저주의 말에는 저주가 역사합니다. 축복의 말에는 축복이 역사합니다.


이방 술사 발람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군 앞에 두려움을 느낀 모압 왕 발락은 술사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어이 발람이 저주를 하지 못하게 하시고 강권적으로 축복을 하게 하십니다.


자 생각해 봅니다. 만약 우리의 저주나 축복의 말에 창조와 파괴, 축복과 저주의 능력이 없다면 하나님이 왜 막으시겠습니까? 그냥 저주를 하더라도 당신께서 저주를 하지 않으시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말 못하는 당나귀를 통하여 발람을 가르치시고 죽이려고 위협하실 만큼 발람의 저주를 막으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말에는 역사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술사이니 영적인 일에 관련된 사람, 영적 세계를 알고 그 원리를 아는 이기 때문에 더욱 역사하는 말의 힘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어이 그의 입을 막으시고 저주를 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분노를 내는 경우가 없을까요? 아니지요. 예수님도 화가 나셔서 채찍을 들고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시기도 하셨지요. 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셨지요.


마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눅10: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충만함 안에서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라도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하는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룩한 분노로 혼적인 분노와는 색깔도 향기도 다르지요. 분노 중에도 거룩한 성령의 임재를 느낍니다. 거룩한 격분이요, 의분이지요.


제게 꼭 한번 그런 일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몰상식한 어떤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성령께서 거룩한 의분을 일으키시더군요. 그리고는 저의 입으로 저주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포된 대로 보름정도의 시간 후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저의 입을 통하여 성령께서 의분의 선포를 하신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의 말에는 역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연인은 물론이요, 그리스도인은 더욱 물론이요, 영권과 영력이 있는 사람의 말에는 더더욱 물론입니다. 엘리야는 말을 통하여 두려운 역사를 일으키지요.


아하시야 왕이 자신을 저주한 엘리야를 잡으러 병사들을 보냈을 때의 일이지요.


왕하1:9 이에 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저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서 본즉 산꼭대기에 앉았는지라 저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왕하1: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 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 인을 살랐더라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 아니지요. 그냥 엘리야가 그 입으로 선포한대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자신을 잡으로 온 아하시야 왕의 병사들을 불로 소멸하여 버리지요.


이처럼 우리의 말에는 놀라운 위력과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꼭 기억하여야 하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말 하나하나를 다 듣고 계신 다는 것입니다.


마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12: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민14: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14: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민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14: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민14: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말들을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말 하나하나는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말대로 흘러가는 이유는 하나님은 당신의 귀에 우리의 말이 들리는대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가령 몸이 아픈데, 하나님을 원망하며 “나는 죽을거야”라고 말하면 하나님은 그 말대로 죽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사랑과 감사의 고백을 드리며,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내 병을 담당하셨으니 나는 고침을 받을거야”라고 믿음의 고백을 드리면, 그 말대로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또한 그렇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중요한 말을 우리는 너무도 분별없이 생각없이 쏟아냅니다. 그리고 그 말로 인하여 스스로 삶의 불행을 자초합니다.


지난 일 여년이 넘는 시간 하나님이 제게 철저하게 다루신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말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말을 많이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설교와 친교를 할 때에는 물론 말을 많이 하지만 집에 오면 거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말들도 마음에 영으로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아직 그 부분에 깊은 다루심을 받지 못한 가족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영으로 분별하여 보면 쓸데없는 말들이 거의 대분이이요, 영적으로 나쁜 에너지와 기운이 흐르는 말들이 참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듣기가 참 힘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옛날 수도원의 영성이나 또 다른 여타의 종교에서도 영성훈련의 일종으로 침묵 훈련을 하지요. 우리도 성령의 다림줄 안에서 이 말에 대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말을 합니다. 너무도 생각 없이 떠들어 댑니다. 그리고 그 말이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말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생각에서 나오지요. 생각은 또 어디에서 나옵니까? 궁극적으로 영적인 세계의 흐름에서 나오지요. 성령 안의 사람에게서는 성령의 흐름이 있는 생명의 말이 나올 것이요, 악한 영의 사람에게서는 악한 영의 흐름이 있는 사망의 말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창조와 파괴의 역사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서 다 듣고 그 말대로 행하시는 무서운 것임과 동시에, 또 영의 흐름이 동반되기 때문에 그 흐름을 통하여 상대방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입니다.


가령 상대방으로부터 우리가 어떤 말을 들으면 힘이 솟고 용기가 나지만, 어떤 말은 심한 상처를 주고 우리의 마음에서 기쁨을 앗아가 버립니다. 그것은 왜 입니까? 말에는 영적인 생명의 흐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 뿐 아니라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별히 말은 생각과 마음과 영 안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생명의 흐름은 강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생명을 지키고 영의 강건함을 지키려면 말을 가려서 해야 합니다. 가려 사람을 만나며 듣는 말을 조심하여야 하고, 악한 말의 흐름은 기도와 예수 이름의 권세로 차단하어야 합니다. 악한 말을 들었다면 바로 주님의 보혈로 영이 치료되고 성령으로 회복되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하지 아니하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영이 생명을 잃어서 집에 돌아오면 괜스레 마음이 공허해지고 허무해지게도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모든 것들에는 영적인 생명의 에너지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에는 영적인 전쟁이 있습니다. 거라사의 광인과 같은 사람과의 싸움만이 영적 전쟁이 아닙니다.


일상의 친구를 만나서 대화하는 가운데서도 그 대화를 통하여 악한 영은 우리의 영적 생명을 앗아가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려 만나고 가려 듣고 모든 것에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며, 특별히 말은 더더욱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침묵하십시오. 그리 많은 말을 하지 마십시오. 가족들에게도 다 믿는 가정이라면 그렇게 훈련해 나가십시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에 가족들의 영적 생명의 풍성해짐과 소멸이 있음을 알고 가려 분별하여 늘 성령 안에서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그리고 항상 은혜와 덕을 끼치는 말들만 하십시요. 저의 경우 주님은 사투리도 못 쓰게 하시고 저속어도 못 쓰게 하시고 자기 비하의 말도 못하게 하십니다. 하려고 하면 바로 제동이 들어옵니다.


왜냐하면 말이 바르고 단정하고 고요하면 영혼육 에너지 교류의 원리에 의하여 우리의 마음도 바르고 단정해지고 고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영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이 부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지요.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이 본문을 보면 말에 이어서 성령의 근심에 대하여 나오지요. 그것은 우리가 더러운 말을 하게 되면 성령이 소멸되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더욱 유의하여야 하는 것은 축복과 저주의 말입니다. 자연인의 축복과 저주도 역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축복과 저주의 말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의 영권이 강력해져 갈수록 축복과 저주의 말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거룩하고 정결한 삶 속에서 주님과 깊은 친말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면 우리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영권의 세계에도 들어가게 됩니다.


어쨌거나 축복과 저주의 말은 실상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화가 나면 이웃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자신들의 가족과 때로는 스스로를 향하여 저주의 말을 하곤 하지요. 이것은 타인을 향한 영적 살인이요, 가족을 향한 영적 살인이요, 또 스스로를 향한 영적 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축복의 말과 저주는 실제로 약하게든지 강하게든지 역사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간간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이 저주를 잘라내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피로 명하노니, 어떤 타인이 나를 향하여 저주한 말의 저주는 끊어질지어다. 무력하게 될지어다”라고 선포하십시요.


그리고 축복과 저주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품으십시오. 가령 우리가 누군가를 향하여 축복하는데 그 사람이 그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으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고 하고 있지요. 그리고 저주를 하였는데 만약 그 사람이 그 저주를 받을만한 일을 하지 않았으면 역시 돌아오겠지요.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축복의 말씀은 선한 욕심에서라도 많이 하시되 결단코 저주의 말은 삼가십시요. 왜냐하면 자신에게 그대로 반향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입에서 나간 말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입에서 나오면 아무런 역사도 없이 그냥 돌아가지 않듯이 우리의 말도 그러합니다.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가령 내가 어떤 사람에게 화를 내면 사망의 에너지가 흘러갑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또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게 됩니다. 이렇게 흘러갑니다. 그 중간에 누군가가 그 사망의 에너지를 거룩한 생명의 에너지로 소멸시키는 십자가의 희생을 치루어야만 그 영적 에너지의 흐름이 중단되는 것입니다.


자연계에도 에너지는 보존된다는 에너지 보존법칙이 있습니다.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서 나가는 생명과 빛의 영적 에너지의 흐름은 세상을 더욱 풍성하고 빛으로 가득차게 하며 아름답게 합니다. 하지만 어두움의 에너지의 흐름은 세상을 더욱 더 어둠과 곤고와 사망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도 중요한 말,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위력과 우리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한 입으로 축복과 저주, 은혜와 덕의 말과 더러운 말을 쏟아내는 그러한 입술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약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약3: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말을 줄이십시요. 침묵의 훈련을 받으십시요. 그리고 모든 하는 말에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십시요. 그리고 가려서 사람을 사귀므로 가려서 듣고, 방송을 가려 봄으로 가려서 들으십시요. 그 매양의 사건들 속에서 우리의 영은 생명을 얻기도하고 사망을 얻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앞의 글 생각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의 이 말도 우리가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말을 능히 다스리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겠습니까?


약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이처럼 말도 결코 쉽게 다스려 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강력한 다스림과 간섭하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은 어디서 나옵니까?


막7: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막7: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막7: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위의 말씀처럼 우리의 말은 곧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것인데, 이 마음을 기도와 말씀의 삶에 성실함으로 성령 안에서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성령의 능력 안에서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에 충실하고 말씀의 삶에 충실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꽉! 채워서 말에 의한 실수를 조금씩 줄여 나가고 은혜와 덕과 생명의 말을 통하여 스스로와 타인과 세상에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우리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나름 길게 말에 대하여 이모저모를 살펴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말은 우리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무서운 위력을 가진 현상계의 실제입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믿는 대로 이루어지고, 현상계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말은 우리의 복된 생을 위하여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부분입니다. 생의 축복과 저주, 영원한 생명과 사망을 결정짓는 천국의 열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믿음 안에서 긍정의 말을 하십시요.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던지 항상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드리십시요. 자신을 향해서나 타인을 향해서나 은혜와 덕을 끼치는 말과 축복의 말을 하십시요.


마음이 어두우십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이라도 “예수님 안에서 나는 기뻐다”라고 고백하십시요. 그러면 그렇게 됩니다. 몸이 아프십니까? 일년이 걸리던 십년이 걸리던 눈만 뜨면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라고 수도 없이 고백하십시요.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자리에 누운 채로 “할렐루야!”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내 생이 얼마나 기쁘며, 예수 안에서 나는 결국 강건해 질 것이며, 오늘과 저의 생에 좋은 것들과 생명의 것들로 안겨주실 것을 믿음으로 감사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에도 항상 영광과 감사의 고백을 드림으로 하루를 마름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십시요. 아침에 눈을 뜰 때뿐만 아니라 수시로 삶 속에서, 무시로 생활 속에서 감사와 영광의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요. 극복하고 해결받아야할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감사를 드리십시요.


그렇게 우리의 입술을 성령 안에서 지키며 늘 은혜와 덕과 믿음과 생명과 축복의 말을 수없이 고백하며 살아갈 때 시간 안에서 그 말대로 되어지고 놀라운 것들을 누리는 축복을 직접 확인하며 누리게 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 주님 범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할레루야! 세세토록 주께만 영광! 영광! 할렐루야!!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12: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출처 및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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