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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옵니다

초록 등불 2012. 3. 1. 14:45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옵니다

 

 

봄이 왔습니다. 아직은 다 가시지 않은 겨울의 그림자에 봄 공주님이 성안에서 단장만 하고 있지만 곧 화사한 옷차림으로 나들이를 하겠지요. 산천 여기저기에 새싹이 돋고 꽃들이 곧 만발하겠지요.


봄이 온 첫날,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뜻 깊은 3.1절, 저도 조금은 쉴 겸 다소 가벼운 맘으로 좋아하는 시를 쓰듯, 수필을 쓰듯 영성의 글을 하나 써 봅니다.


돌아보면 어린시절에 저는 참 눈물이 많았습니다. 시골은 도회지와 달리 이웃사촌이라 다들 알고 지내고, 한 집에서 상을 당하면 동네 분들이 다 참여하고 도와드리곤 하였지요. 그런 곳에 혹여 가기라도 하면 상주가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같이 울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삶을 돌아보면 눈물이 난다는 것은 아직 마음의 깊은 상처를 받지 않았음을 말하더군요. 정말 시련에 시련을 거듭하고 혹독하고 모진 세월을 살다보면 마음도 마르고 그리고 눈물샘도 말라버립니다. 웃음도 잃고 눈물도 잃고 그저 아무런 감정도 마음도 없는 사람처럼 삭막한 마음이 자리 잡기도 하더군요. 그런 모진 세월도 살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 안에서 그 모진 세월의 영성적 의미와 그리고 주님의 위로를 깨닫고 받으며 지내다보니 이전처럼 다시금 눈물이 많아진 저를 보게 됩니다. 물론 어린시절에 흘리던 눈물과는 의미가 많이 다르겠지요.


하늘의 명과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초행에 들어선 나이에 남자가 무슨 눈물이 그리 많느냐라고 묻는다면 다소 부끄럽지만, 저로서는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이 서글픈 이유는 어린시절의 순수하던 마음을 잃는 것이라 늘 생각하는 바, 곧 육신이 아닌 마음이 굳어짐이라 생각하는 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과 눈물이 있음은 저로서는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도 또 다른 눈물이 많은 이유는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고초와 아픔을 많이 겪어보았기에, 텔레비전 드라마나 혹은 다양한 기사들 속에서 아픔을 당하는 분들의 극이나 이야기를 보거나 들으면, 그 아픔 속에서 저의 아픔이 되살아나 마치 조건반사나 혹은 무조건반사처럼 그들의 삶의 아픔 속에 저의 삶의 아픔이 함께 투영되어 그 아픔과 제 아픔을 아울러 그냥 눈물이 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가장 많이 눈물을 흘리며 본 드라마가 MBC에서 최근에 시작한 ‘무신’이라는 드라마입니다.


정말 시작부터 극심한 아픔의 이야기로 시작을 하지요. 게다가 월하로 나오는 탤런트 여성분의 눈물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눈물 곱하기 눈물, 보다가 한번 울고 보다가 한번 울고 하면서 본 기억이 납니다.


극 중의 이야기는 아직 초반이라 잘 모르겠지만 친 오라비와 여동생처럼 지내온 남자 주인공 김석과 월하라는 여자 주인공의 오누이와도 같은 정, 그리고 남녀간의 연정도 섞인 듯한 애틋한 사람의 정이, 삶의 큰 시련 앞에서 너무도 자신도 그리고 서로도 아파하는 과정을 지금은 그려내고 있지요.


두 사람 다 본시 신분이 노비라 다시금 노비로 팔려가서 고된 노역과 생활을 하게 되는데, 동생 겸 그리고 여인 겸 사랑하는 월하를 구해내기 위하여, 생사의 기로가 걸렸지만 통과하기만 하면 신분 상승과 함께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격구에 출천, 목숨을 건 도전을 하는 과정에 있지요.


그러니까 자신의 신분상승이나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사랑하는 동생과도 같고 연인과도 같은 월하를 구해내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지요.


어려운 상황에서 김석 오라버니와 월하라는 동생이 간간 만나는 장면도 나오는데 그 때마다 서로 눈물겨운 상봉을 하지요. 특히 월하로 나오는 여성분의 눈물 연기는 너무 리얼해서 볼 때마다 저도 눈물이 나곤 하더군요. 서로 그렇게 눈물로 마주하는 장면을 보다가 시감이 와서 시를 하나 적어 보았지요.


요즘은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그냥 드라마 등을 보다가 시감이 오면 즉흥적으로 쓰보곤 합니다.


사 랑


            단심 정소월 (=초록등불)



맑은 햇살 보면

생각 나는 것

봄비 내리면

생각 나는 것


소낙비 내리면

흠뻑 젖는 것

꽃을 보면

온 생각 나는 것


바라만 보아도

웃음꽃 피는 것

눈길만 마주해도

눈물이 나고 나는 것


온 가슴으로

오롯 생명을 거는 것

끝내 너를 위해 생명을 주고서야

영원한 미소 짓는 것



월하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김석을 보면서 이런 시감이 와서 적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극중의 흐름이 결국은 김석이 그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월하를 노비 신분에서 구해내고 극의 끝은 모르지만 중반의 흐름은 고진감래(苦盡甘來)의 흐름을 예상하게 하지요.


이를 보면서 문득 신앙이나 사랑이나 연단과 시련 후에 꽃을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시감이 와서 다른 시가를 하나 적어 보았지요.


사랑과 신앙


            단심 정소월 (=초록 등불)



폭우 속에서

젖고 또 젖고

폭풍 속에서

찢기고 낙엽이 되고

혹한의 칼바람 속

영혼마저 얼었다가!


눈물로 비로소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이 피는 것


혹한의 겨울 너머

봄이 오는 것


마침내 땅을 버리고

훨훨 하늘을 나는 것



마지막 “마침내 땅을 버리고 훨훨 하늘 나는 것”이라는 표현은, 땅에서 숱한 고초와 또한 행복을 우리는 거듭 당하고 맛보고 살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땅의 삶의 부질없음을 알아가고 진정한 안식과 평화는 하늘에서 찾는, 사랑이던 신앙이던 진정한 세계는 땅의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 정말 정신적 고결함의 사랑, 그리고 땅이 아닌 하늘을 품는 신앙으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글귀입니다.


다만 드라마를 보면서 아쉬운 것은, 사극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의 옛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종교적인 배경들이 불교나 무속적인 그러한 부분이 많지요.


이러한 부분은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에는 영의 흐름, 곧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냥 무심코 보다보면 우리의 영이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나쁜 영의 흐름은 차단한다”는 생각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영에 속한 것과 육에 속한 것,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과 어둠의 세력에 속한 것을 영분별하게 되고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차단하게 되지요. 생각한다는 것은 곧 영분별을 하는 의식상태를 말하니까요.


드라마나 이런 부분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이런 깬 의식으로 살아가면, 나쁜 영의 흐름으로 인한 영의 상처를 받지 않거나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영이 상처를 받았다 싶은 느낌이 들면, 가령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심하게 욕설하는 소리를 듣고 생각과 마음에 그런 어두움이 스며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곧 바로 성령과 피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기도하시면 됩니다. 이런 것들은 체질화 되고 습관이 되어서 무의식적으로 행할 정도로 습관화하시면 영적인 삶에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영은 세상이 온통 어두움이기에 실상 대부분의 시간 속에서 상처를 받고 빛을 잃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의 영의 건강을 지키는 좋은 습관이 악한 영들의 흐름을 차단하고 즉시로 치유 회복하는 기도를 드리는 습관입니다.


어쨌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적은 사랑과 신앙이라는 시가에서 보듯이, 우리의 삶이나 사랑이나 신앙이나 대부분 시련과 역경을 통하여 성숙해져 가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또 봄이 가면 또 겨울이 다가오는 것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에는 시련과 또 행복의 시간이 맑은 날씨와 궂은 날씨가 순환하듯이 그렇게 순환하게 되어 있지요. 하지만 그런 순환이 아무런 의미없는 무의미 순환이 아니라 그 순환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생각과 가치관이 성숙해 가고, 궁극에는 이기적이던 사랑에서 참된 사랑의 세계로, 땅을 향하던 신앙에서 진정 하늘을 품는 신앙으로 성숙해져 가고 생각과 삶이 승화되어 가지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삶의 시련도 대부분 이러한 목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것이 징계적 차원이던, 연단을 위한 섭리적 차원이던, 아니면 본시 생의 수고로움이던, 이러한 고난과 연단의 세월을 통해서 우리는 생을 더 알아가고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며, 마침내는 땅을 붙잡고 연연해 하던 마음에 하늘이 조금씩 자리잡게 되고 더욱 그 지평을 넓혀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삶의 시련과 고난은 대부분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마냥 육신의 삶에 행복을 주면 결코 우리의 시선이나 가치관이 하늘을 향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처음에는 육의 사람으로 시작하나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영의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무슨 일에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감사하십시요. 고난도 지나고 보면 훗날 축복이며, 장차 주님 앞에서 섰을 때 그 고난을 통하여 썩고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위하여 살도록 가치관을 바꾸어 주신 주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니까요.


그래도 무신 사극 드라마를 보면 훈훈한 장면도 나오지요. 그것은 최우 장군의 딸이 노비 신분의 김석과 월하 등에게 훈훈한 정과 사랑을 베푸는 장면이지요. 어쩜 그 탤런트 배우도 그 역할에 맞게 여장부다운 연기를 잘할까요? 그 훈훈한 사랑에 또 시감이 와서 다른 시가를 하나 적어 보았습니다. 제목은 소안(笑眼)인데, 미소의 눈, 꽃 웃음어린 눈, 사랑의 눈이라는 의미입니다.


신분의 차이를 초월해서 훈훈한 정 안에서 하나되는 모습을 그려본 시가입니다.



소 안 (笑 眼)


               단심 정소월 (=초록 등불)



웃으며 바라보면

하늘과 땅도

설령 물과 불도

너도 나도 하나가 되네


웃으며 바라보면

하늘도 땅도

산과 바다도 구별이 없고

너와 나도 하나일 뿐이네



봄이 왔습니다. 삶의 어려운 시간을 걷고 계신가요? 겨울 뒤에 봄이 오듯 또한 봄날도 올 것입니다. 어차피 이 땅에서야 다시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오는 순환이 계속 되겠지만, 다시는 어둠이 없고 영원한 빛의 나라에 이르면 그곳엔 화사한 영광의 봄날만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야 계절의 순환 속에서 신록들도 몸 앓이를 거듭하고 우리들 또한 그러하겠지만, 의미없는 순환이 아니라 깨달음과 성숙의 나이테가 하나씩 많아지고 자라는 과정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도리어 불시험을 만나거든 기뻐하라라고 역설적인 말씀도 전하는 것이지요.


봄이 왔습니다. 삶의 어떤 길을 걷고 계시던, 마음에 기지개도 한번 켜 보시고 마음에 소망도 새롭게 하시고 용기도 새롭게 가져 보십시요.


그리고 잃었던 미소도 한번 되찾아 보십시요. 그 미소 속에서 실상은 고난과 행복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하나이며, 너와 내가 또한 하나이며, 하늘과 땅이 하나 곧 주님과 우리가 또한 하나임을 가슴으로 느껴 보십시요. 좋은 봄날 되십시요. 샬롬!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아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아2: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아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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