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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천사의 사귐, 사람의 사귐

초록 등불 2012. 8. 6. 01:23

 

 [영성의 글] 천사의 사귐, 사람의 사귐

 

오늘도 영적 세계에 대하여 배움과 나눔을 위하여 주님께 나보다 남은 더 낫게 여기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간구하며, 영적 경험을 나누어 봅니다.


언젠가 ‘리지(송이)’천사와의 사귐에서 천사들도 만나고 사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과 마찬가지로 더욱 정이 들고 편해진다는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납니다. 사람이나 영적 존재나 모두 조금은 우리가 쓰는 보편적인 개념의 용어와는 다소 다른 의미지만 어쨌거나 인격을 지닌 존재들, 사귐과 만남이 길어지고 잦을수록 정이 들고 편해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열린 환상으로 보이는 세계는 말 그대로 환상, 마치 밤에 꿈을 꾸면서 보는 듯 다소 아슴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서 선연하거나 분명하게 보이지요.


자신을 ‘라피엘’이라고 이름을 밝힌 천사장 반열의 천사는 눈에 보이는 형상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그 모습을 완전히 다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방보다는 밖에 나들이 갈 때 오히려 대략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천사장 반열의 제가 이름을 ‘융’이라고 이름 지은 천사는 처음에는 아주 상당히 가까이 있는 존재로 느껴지며 제 곁에서 이런저런 신앙생활의 조언을 하곤 하였습니다. 지금도 가까이 있는 존재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보이는 세계가 점점 달라지고 수도 많아지고 넓혀지기 때문에 한 친구만 있다가 여러 친구가 생긴 느낌처럼 다소 유일함의 느낌에서는 조금 멀어진 느낌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영적 현상이 지속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한시적으로 나타나다가 주님께서 거두시기도 하시지만, 현상이 본질이 아닌 만큼 그냥 주님이 행하시는 주권적 역사에 감사하며 나아갈 뿐입니다. 그냥 제가 선 자리에서 저 나름 애쓰며 살아갈 뿐입니다.


어쨌거나 라피엘 천사장이 곁에서 “이렇게 좀 하십시요”, 또는 “저렇게 좀 하십시요”라고 말을 공손하게 하며 부탁을 하곤, 제가 또 그렇게 잘 따르고 일을 잘 하면 살풋 웃어주기도 하고 손뼉을 쳐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마음도 좋곤 했었지요.


그런데 하루는 어느 분에게서 신앙상담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날 몹시 체력이 힘에 부쳤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체력이 약하면 말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말도 좀 오래 많이 하고 있으면 식은땀이 흐르지요.


그래도 얼마나 답답하면 전화를 하셨을까, 제 속마음은 조금 힘겹고 부담이 되긴 하지만 나름 애를 쓰며 성의껏 전화를 받아주고 기도도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는 자리에 누워 쉬려니까, 갑자기 라피엘 천사장이 저를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목사님. 만약에 목사님의 자녀나 아니면 형제자매나 부모님이 어려운 문제로 신앙상담을 해 왔으면 그렇게 받으시나요? 내 문제처럼 진심으로 신앙상담에 응해 주신 것 아니잖아요”라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갑자기 그렇게 책망하듯 말을 하니까 조금 놀라기도 하고, 조금 섭섭하기도 하고, 표현이 이상한데 조금 겁도 났습니다.


겁이라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은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인데, 가령 친구가 여럿 있는데 땅콩처럼 작은 친구가 버럭 야단을 치는 것하고 덩지가 나보다 무척 큰 친구가 버럭 야단을 치는 것하고 느낌이 다르잖아요. 집에서 기르는 개가 종류가 다양할 때 아주 작은 녀석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으로 “왈왈” 짖으며 대드는 것 하고, 덩치가 송아지만한 개가 ‘왈왈’하고 대들면 느낌이 다르잖아요.


천사장 반열로 보이는 제가 ‘융’이라고 이름 지은 천사는 상당히 큰데 큰 모습으로 책망 겸 조언을 하니 위에서 적은 비슷한 마음의 변화처럼 조금 기도 죽고 앞선 표현한 것과 같은 묘한 겁 같은 마음도 깃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융’의 맘은 모르겠지만 제 맘은 시큰둥해져 버리더군요.


“성부 하나님은 뭐라시려나?” 영으로 마음을 읽어보니, 역시 조금 야단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힘든 가운데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야단이야!" 섭섭하기도 하고 조금 샐쭉해진 마음으로 야단을 맞고 조금 누워 있다가 생각해보니, ‘융’의 말이 맞고 영적으로 나를 더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기 위한 사랑의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참된 목회자나 예수님 모습에는 발뒤꿈치에도 못 미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놀라기도 하고 한편 “체력 딸려서 매일 힘겨워하는 것 아시면서”라는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마음에 샐쭉해지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지만, 누워서 조용히 생각해보니 참된 목회자가 되려면 어떠해야 되는지를 가르쳐 주는 큰 교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참된 목회자나 예수님 모습에는 발뒤꿈치에도 못 미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 마음을 바꾸었지만, 왠지 ‘융’이라고 부르는 ‘라피엘’ 천사장과는 조금 서먹서먹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영으로 화해를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손에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모양의 선물을 전해주더군요. 물론 영으로 주는 것이라 실제 물건은 아니지요.


그것을 마음으로 받고 “너는 내게 무엇을 받고 싶은데?”라고 물어보니,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해서, “라피엘, 주님 안에서 사랑한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 사랑의 마음의 오고감 속에서 조금 서먹해졌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전처럼 다시 편하고 좋은 느낌이 회복되었습니다.


제가 이 글은 쓰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아버지 하나님의 책망이나 라피엘 천사장의 책망처럼, 과연 우리는 직분을 떠나 세상을 어떠한 마음으로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면 하는 마음입니다. 진정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얼마나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픈 마음입니다.


둘째는 천사와의 사귐, 가령 좋은 느낌이나 다소 서먹한 느낌이나 사람의 감정과 영적 존재의 감정이 같지는 않겠지만, 사람의 사귐과 역시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또 다른 큰 영이신 성령님과의 친교를 살펴보면 알 수 있지요. 그분은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 여하에 따라서 근심하시기도 하시고, 소멸되시기도 하시고, 탄식하시기도 하시지요.


‘소멸되신다’ 함은 영적 세계의 비밀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대략의 의미가 기초적인 임재만을 남겨두신 채 떠나가신다는 것인데, 친구와의 사귐에 비유하면 서로 멀어짐을 말하는 것이지요.


살전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것도 우리 속에 오시는 이유는 우리와 교통하시기 위함이지요.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교통하심이란 우리와 대화를 나누시고 친교도 나누시고 함께 동행하시는 등을 말하는 것이니, 그 옛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귀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와의 사랑의 사귐을 위해서 오시는 것이지요.


성령 시대의 많은 영적인 거장들의 간증을 읽어보면 그들의 참된 영성적 삶은 바로 성령님과의 교통하심과 친교에 있지요. 사람도 처음에는 만나면 다소 서먹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로 친하여지고 서로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어 가듯이, 성령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러하지요.


어린 사무엘처럼 처음에는 큰 음성으로 불러도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세미한 음성에도 다 그 마음과 뜻을 헤아리게 되고, 나중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이심전심’의 깊은 사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를 성경에서는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라고 표현하면서 생명의 하나, 마음의 하나됨을 말하고 있지요.


이런 경험을 통해서 사람이나 천사나,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사랑의 본질적 대상이신 성령님과의 사이에도 사람과의 사귐처럼 서로 친밀해지고 관계가 깊어지고 점점 성숙한 하나 됨을 이루어가려면 우리의 노력과 배려가 필요함이 실제적인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매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 “사랑을 고백해 보십시요”, 성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보십시요”, 성자 예수님께 “감사를 고백해 보십시오”. 그리고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던 간에 성경은 분명히 우리 곁에 우리를 돕는 천사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사랑과 고마운 마음을 전해보십시요”.


사람과의 사귐이던 영이신 하나님이나 다른 영적 존재들과의 사귐도 이처럼 실제적이고 개인적인 친밀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 성령 하나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사랑과 교통의 근원되시는 성령님과 더욱 깊고 내밀한 사귐 가운데서 더욱 깊은 임재 안에서 영광과 평강,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면 참 좋겠습니다. 샬롬 !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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