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수필

자줏빛 크로버 - 읽어보십시요. 아름다운 영성의 수필글입니다.

초록 등불 2011. 7. 7. 16:55

 

※ 자줏빛 크로버 ※

 

 

 

여름비가 조락조락 내리는 하루입니다. 6월말부터 한 달 가량 장마철이 지속되니 끝나려면 아직 조금 기다려야 하겠지요.


지난주에도 비가 많이 왔었지요. 그러지 않아도 낮 시간엔 일을 하려다보면 운동이나 산책을 위한 나들이 시간을 갖기 힘든데, 저녁나절에 잠시 나가서 운동을 하곤 하는데 비가 연일 내리니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금요일 밤, 정확히 말하면 토요일 새벽 주님 앞에서 기도하니, “오늘은 오후에 밖에 나가서 운동을 좀 하여라” 조용히 내적증거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토요일 오후는 날씨가 좋았겠지요. 오후에 밖을 내어다보니 햇살이 있다가는 다소 구름이 가리곤 하는 어쩌면 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갈 때 구름기둥으로 가려주시던 날씨와 비슷한 날씨였습니다.


자동차도 없거니와 아직 여러 환경으로 운전면허도 없는 제게는“포르쉐”라고 자칭 이름붙인, 전혀 연료비도 들지 않고 무공해인, 저만의 소중한 초록색 자가용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집에 있을 때야 가끔 물건을 옮기거나 혹은 집안 청소 등을 할 때도 있지만, 그런 움직임은 그다지 심한 움직임은 아니지요. 그래서 집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밖으로 나와서 자전거와 함께 조금 걸으니 오랜 만엔 나온 외출이라 다소 눈도 부시고, 아직 체력회복이 다 되지 않아서 그런지 시야의 색번짐이 잠시 느껴지더군요.


시야의 색번짐은 잠시 느껴지더니 곧 괜찮아졌습니다. 작년 이 맘 때쯤은 색번짐이 너무 심해서 길을 못 다닐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물이 제대로 분간이 잘 되지 않았었지요. 이만큼 회복시켜 주신 주님께 감사드려야지요.


하지만 조금만 걸어도 힘이 들고 숨이 차고, 왜 주님께서 운동을 좀 하라 하셨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운동이라기보다도 나들이겸 산책을 하는 동안에도 조금 더 운동에 관심을 가지라고 감동을 주시더군요.


어쨌거나 자전거를 타고 도로 옆에 자리 잡은 숲길을 따라 내려가니 약간 덥기는 하지만, 오랜만의 화창한 날씨도 그러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도 밝아지더군요.


그렇게 한 동안 내려가다가는 반대편으로 잠시 올라가다가 등받이가 없는 벤치가 보이 길래 누워서 좀 쉬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운동이 늘 부족한데 이어지는 장마비로 밖에 전혀 나오지 않고 거의 운동할 시간을 갖지 못했더니 아니 그래도 부족한 체력에 더욱 체력이 떨어져서 숨이 몹시 차더군요.


그래도 주차도 별로 어렵지 않은 포르쉐 자가용을 옆에 세워두고 벤치에 편안히 누우니, 무성하게 우거진 나뭇잎, 그 틈틈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초록의 자연품에 안겨 있으니 편안하고 좋더군요.


그렇게 한 동안 누워있었습니다. 자전거 타고 솔솔 내려와서는 운동은 안하고 누워만 있으니 “일어나서 운동 좀 하라”는 주님의 감동이 있더군요.


운동하러 왔으니 운동을 좀 해야 하는데 곤해서 조금 더 누워 있으면서, “주님, 윗길로 갈까요? 아랫길로 갈까요?”라고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아래쪽으로 가는데 두 갈래 중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은 갈래 쪽으로 가보라고 감동하시더군요. 이런 감동은 음성으로 하시는 게 아니라 느낌으로 전해줍니다.


운동하러 왔으니 주님의 말씀대로 따라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니, 좁은 숲 속 길 같은 공원길을 따라 간간 피어 있는 들국화들 사이로, 생전 처음 보는 옅은 자주색 꽃들이 만발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사진기라도 있으면 찍고 싶은데 그날은 가지고 오지 않아서 아쉽더군요.


속에서 주님께서 느낌으로 말씀하시더군요. “이 꽃들을 보여 주고 싶어서 아래 이 길로 가라 하였다”


“아, 그러셨어요. 그렇다면 저 꽃들 다 따서 한 아름 안겨 주세요..” 웃으며 마음으로 저도 대답을 하였지요.


“그래, 그러마..” 주님께서 느낌으로 마음을 전해주시더군요. 그리고는 육체가 없으신 영이시니 실제로 따주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한 아름 안겨주셨습니다.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일로 꽃들을 받아본 기억도 있지만, 한 사람으로부터 가슴에 안기 버거울 만큼 한 아름 받아본 적은 없는데, 비록 마음으로 안겨주시는 것이지만 행복하더군요.


그런 행복한 마음으로 아래를 내려가니 길의 끝, 마침 건널목에 아주머니 한 분이 서 계셔서 “아주머니, 이 꽃 이름이 뭘까요? 생전 처음 보는 꽃인데 참 아름답네요..”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마치 클로버처럼 생겼으니 일종의 클로버 아닐까요?”그러시더군요.


아주머니의 말씀처럼 정말 생긴 모양새는 클로버처럼 생겼었습니다. 그런데 키가 다소 크고 꽃의 색깔이 하얀색이 아니고 옅은 자주색이나 분홍색을 띄고 있더군요.


아주머니랑 대화를 나눈 곳이 자전거로 갈만한 길의 끝이라 되돌아 올라오면서 마침 주말이라 “주님, 집으로 돌아가서 만약 지체님들에게 주말 편지를 쓴다면 뭘 전해 줄까요?”마음으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간단하게 두 글자로 된 “기쁨”이라고만 감동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한 아름 안겨주신 한 아름 꽃의 기쁨을 이제는 가서 나누어 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의 그 감동하심을 받고 보면, 얼마 전에 기도하는 가운데 제게 이르신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루는 저녁에 기도하는데 “목회자의 할 일이란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해주는 것이다”이르셨습니다.


기쁨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기쁨은 어디에서 옵니까?


기쁨은 곧 생명이지요. 생명에는 기쁨이 있지요. 아이가 태어나거나 신록의 새싹이 움트거나 꽃이 피어나는 생명은 우리로 하여금 아름다움과 기쁨을 안겨 줍니다.


그러나 죽음은 슬픔과 아픔을 안겨 줍니다. 시들어가는 꽃과 가을의 떨어지는 낙엽들, 세상만물의 죽어 감은 우리에게 슬픔과 아픔을 안겨 줍니다.


그러므로 기쁨이란 곧 생명을 전해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은 목회자의 할 이란 하늘의 참 생명력을 공급하고 전해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생명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주님이 하신 그 말씀은 비단 목회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망의 그늘에 앉아 신음하는 뭇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의 삶으로 하나님의 생명과 기쁨을 전해주어야 할 사람들이지요.


그렇다면 이 기쁨은 어디에서 옵니까? 이 생명은 어디에서 옵니까? 우리가 먼저 기쁨, 곧 생명을 누리고 그리고 누릴 뿐만 아니라 흘러 넘쳐야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의하면 썩고 부패한 본성의 육신의 생명이 아닌 그 아름답고도 영원한 참 생명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죽고 말았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피와 성령으로 거듭나면 다시금 그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분을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사람들이었던 제자들이 일컬어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신, 예수님 안에 그 생명이 있지요.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 생명을 얻으려면 먼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참되이 믿는 가운데, 물과 피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한 심령에는 주님이 다시금 목마름이 없는 생명의 생수가 솟는 샘물이 있을 것이며, 나아가 생수의 강이 되어서 흘러넘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요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나아가 우리가 그러한 생명을 지속적으로 누리려면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생명의 누림이 아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과의 생명의 연합된 상태가 매일 지속되어져야 하겠지요.


그러한 생명의 연합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내 안에,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 필요한 것인데, 주님은 이에 관하여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좇아 살 것을 말씀하셨지요. 그것이 생명 연합의 비결이요, 비밀이지요.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주님은 이어서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참 생명의 근원이신 당신으로부터 우리가 충만한 기쁨, 곧 충만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을 직접 말씀하셨지요.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목회자가 할 일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해주는 것이다”라고 감동하시면서 주님께서 마음의 심상으로 그려주신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너무도 잘 익고 향기로운 풋풋한 과일이요, 둘째는 봄날 길 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서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꽃들이요, 셋째는 숲 속에서 예쁘게 울어대는 새였습니다.


단물을 함박 머금은 복숭아와 같이 잘 익은 과일은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과 생기를 줍니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살랑이며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꽃들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향기를 안겨 줍니다.


초록의 숲 속에서 “쪼로롱~” 예쁘게 울어예는 새들의 소리는 마음에 청량감과 신선한 기쁨을 안겨 줍니다.


주님은 그러한 심상을 통하여 목회자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존재로 살아가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것은 비단 목회자만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를 성경에서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고후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주님은 다른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달”의 심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서 스스로는 빛을 발할 수 없는 존재, 곧 태양의 빛을 받아 세상에 빛을 비추이는 달처럼 우리는 생명과 기쁨을 누리려면 포도나무 되신 주님께 연합되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 따라 저와 여러분, 직임의 여하를 떠나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 먼저는 물과 피와 성령으로 거듭나며 나아가 언제나 주님과 생명의 연합, 곧 하나 됨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하기 위해 애쓰며, 가지된 우리가 나무 된 주님 안에 거할 때 자연스레 누리게 되는 풍성한 생명력과 기쁨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면 싶습니다.


도시에서 살다보니 잘 보지 못하지만, 시골 고향에 머물 때면 가끔 밤길을 거닐어 갈 때 하늘에서 보름달이 조요로히 비추이면 달과 그 아래의 자연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기억이 납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렇게 주님의 빛을 받아서 아름답게 어두운 세상을 비추이는 빛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로,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가는 뭇 사람들에게 생명과 그리고 그 안의 기쁨을 전해주어야 하는 한편 소명자들인 것입니다.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샬롬] 혹 말씀을 가져가신다면 불편하시면 아래링크는 삭제하시더라도 글쓴이는 남겨주셔서 저작권은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늘 평안하시고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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