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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움을 겪고 있으십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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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길고 어찌 보면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아침 안개와도 쉬 사라지는 생의 길을 가면서 우리의 삶에 아픔과 수고로움, 어려운 일들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옛 선조들이 인생을 고해라고 표현했듯이, 또한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10) 말씀하듯이 우리의 생에는 본질적으로 아픔과 수고로움이 많습니다. 그리고 가장 절망적인 죽음이 궁극적으로 또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아는 바 성경이 말한,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으로 인한 죄의 결과입니다. 그 결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다스리게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았던 우리는 이 땅과 하늘의 권세를 사단에게 내어주게 되었고,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라는 하나님의 형벌의 말씀과 공중의 권세잡은 바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사단의 공격 속에서 우리는 형벌의 삶을 한편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아픔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모습을 긍휼히 보신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가 아는 바,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우리를 대신하여 대속의 죽음의 희생을 치루게 하시고, 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서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고, 어쩌면 눈물과 한숨뿐인 이 땅과 하늘이 아닌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죄를 그 후손인 우리에게까지 전가시키시는가? 또 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이 땅과 하늘의 권세가 사단에게 넘어갔는가? 우리는 여러 가지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듯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그 높은 경륜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또 영적인 세계의 질서나 그러한 부분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시고, 성령 안에서 우리가 또한 영으로 확증 받은 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선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 안에서 아무런 우리 스스로의 잘못은 없지만 우리를 죄인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또한 우리의 아무런 의도 없지만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시고 구원과 영생을 주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수없는 사람 중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은 전도서 8장 16절에서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하는 노고를 보고자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혼적 생각과 지식으로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알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성령의 비추임을 받아, 믿음으로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계시하신 것들에 대해서만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 안에서 감동받은바 받았던 믿음의 사람들, 선조들이 고백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하였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라고 우리를 훈계하고 있으니, 또한 우리 속에도 거하시는 성령의 내적증거로 말미암아 우리도 믿음으로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와 생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도 많지만, 성령의 조명하심 속에서 우리의 영이 그것이 생명의 길이요, 복된 길이요, 평안의 길임을 내적으로 확증하기에, 지식과 이해의 뿌리에서가 아니라 우리는 영적 믿음으로 아멘! 화답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픔과 수고로움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당신의 말씀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우리에게 수고와 사망의 형벌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에게 수고와 사망의 형벌을 주셨기에, 그 신실함 속에서 우리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영생과 영광의 기업을 믿음으로 또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졌고 또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면도 있지만, 우리는 사도바울과 고백처럼 이 땅과 하늘, 곧 이 틈과 저 틈에서 아직은 선한 싸움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주셨지만, 그 가나안을 싸워 취하는 일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시험과 환란에서의 싸워야 하는 선한 싸움인 것입니다. 어제 한 지체님께로부터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신앙 상담의 글을 받아보았습니다. 저 역시 힘들고 어려운 생을 살아온 사람이라 삶의 어려움이라면 이모저모 아는 바, 마음이 아프더군요. 그러나 믿음의 선한 싸움에는 무슨 뾰족한 비결이나 방법은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하는 무슨 뾰족한 방법이 없나라고 고민했던 것과 같은 것이지요. 구약시대에는 아시다시피 세 부류의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곧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였지요. 어떤 사람은 왕으로, 어떤 사람은 제사장으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유형의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은 목회자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그래서 말씀, 곧 설교의 기름부음이 있음은 여러분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 아직 선지자로서의 기름부음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선지자는 적어도 이러한 은사들이 현저히 나타나야 합니다. 예언의 은사와 영분별의 은사와 지식과 지혜의 말씀들 등등이 현저하게 나타나야 선지자로써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말하지 않은 숨은 비밀과 상황을 알고 죄를 알고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등에 대한 계시 등의 그러한 것들을 말하지요. 선지자로 기름부음 받은 사람도 모든 것들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조명해 주시는 것만 알게 되지요. 제게는 얕은 수준의 그러한 은사가 때로 역사하기는 하지만 현저히 나타나지는 않으므로 선지자로서는 아직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은사를 경험하지 못하신 분은 그게 신기하지만, 경험해보면 그냥 알게 되는 것을 압니다. 속에서 성령께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얕게나마 경험해보니 신기한 것이 아니라 가르쳐 주시니까 그냥 알게 되더군요. 그냥 알게 됩니다. 가령 누군가 말하면 그 소리가 우리를 귀에서 뇌로 전달되어서 알지요. 그러나 성령의 한 부류의 음성은 들어보면 그냥 그러한 전달과정이 없을 뿐, 실제 누군가의 소리를 듣는 듯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아는 것입니다. 또는 내적인 감동으로도 알곤 하지요. 어쨌거나 저는 얕은 수준의 일반적 수준의 그러한 은사가 가끔 역사하기는 하지만, 선지자로서 소명을 받은 만큼의 그러한 은사의 기름부음은 아직 받지 못하였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께서 내주내재 하시면 각 은사는 모두 일반적인 수준에서 필요한 상황에 따라 모두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은사가 나타난다고 하여도 사명으로나 소명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사명으로나 소명으로 주시는 은사는 두드러지고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그러한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제게는 아직 일반적인 수준에서 그러한 은사가 가끔 나타나지만 현저하고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음으로 아직 선지자로서의 기름부으심은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은사는 사역에서, 자신과 또한 성도님들을 위해서도 유익하므로 개인적으로 또한 사모하며, 더 깊은 영적 세계의 이해와 은사를 위해서 기도하라 말씀하셔서 개인적으로 더 깊은 영적인 세계의 경험을 위해서 사모하는 기도는 늘 드립니다. “은사 능력은 오직 기도!”라 말씀하시며 오직 기도하라 명하시더군요. 여러분도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함 가운데 더 많은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고 쓰임 받으십시요. 그런데 은사론에 대하여 살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선지자의 사역과 관련된 것들은 한편 참으로 분별이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도 많아 조심스럽게 분별되어지고 살펴져야 하는 부분들이 참 많지요. 그것과 관련된 사역에서 참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하구요. 정말 조심스럽고 헤아려 분별하여 취하여야 하는 사역의 영역이 선지자의 영역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아직 현저한 그러한 은사들의 나타남, 곧 선지자로서의 기름부으심은 아직 없기에, 신앙상담을 해 오시면,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여야 한다던 지의 답변은 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니까요. 다만 일반적인 권면의 예언 수준에서 주신 바 말씀은 전해드릴 수 있지요.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상담을 해 오신 분이나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러한 것들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는 무슨 뾰족한 비결이나 방법은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하는 무슨 뾰족한 방법이 없나라고 고민했던 것과 같은 것이지요. 신앙의 선한 싸움은 성경에서 어떻게 하라고 하였나요. 오직 기도와 말씀에 힘쓰며, 힘 주시고 역사하시는 성령 안에서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도 힘을 다하여 싸우는 것”이지요. 상담해 오신 분을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그러러한 선한 싸움을 위한 권면 수준의 예언의 주신 말씀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상담을 해 오신 분이나 어려움을 당하고 계신 분들이나 저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함께 새기어 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마음에 행복과 기쁨을 먼저 회복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더러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성경은 무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것을 명하는 책이니까요. 역으로 말씀드리면, 성경은 진리, 우리가 애쓰고 힘쓰면 이것은 가능하기에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던지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성령의 빛을 받고 기쁨과 행복을 먼저 회복하여야 우리의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둘째,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라 이르셨습니다. 이 부분은 잘 아시지요? 불어오는 풍랑과 바람은 우리에게 언제나 있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건강한 자나 병든 자나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환경이 아닌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셋째, 찬송을 매일 부르라 명하셨습니다. 누군가 언제 제게 “목사님은 어떻게 그런 좋은 말씀들을 많이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더군요. 저는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책을 통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 요즈음은 책을 좀 읽습니다만 - 성령께서 알게 해 주시는 것들이었습니다. 우리 속에는 우리를 가르치시는 기름부음, 곧 성령께서 거하신다고 성경이 말씀하시고 있지 않는지요? 여러분도 참된 스승은 교회의 목사나 교리가 아닙니다. 속에 거하시는 성령, 곧 기름부으심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요. 얼마 전에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주신 멋진 명언의 문장이 있습니다. 적어 나누어 볼까요? 성령께서 감동하시며 “하나님 사랑에 생명이 있고, 기도에 능력이 있으며, 찬송에 기쁨이 있고, 순종에 평안이 있다. 나아가 이웃 사랑에 화평이 있으며, 섬김이 존귀의 비결이며, 희생이 열매의 비결이다”이르시더군요. 멋진 명언이라 할 만하죠? 주님이 감동하신 이 말씀 속에, 어디에 기쁨이 있다 했습니까? 찬송! 찬송!입니다. 어려움을 겪으시면 매일 찬송을 드리십시요.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하고 하나님을 높일 때 옥문이 열리고 매인 착고가 풀어졌듯이 때로는 기도보다 찬송이 능력이 있습니다. 기쁨과 능력과 역사와 응답을 위하여 하나님을 매일 찬송하십시요. 넷째, 기도와 예수 이름의 선포로 역사하는 악한 영들을 묶으라 명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으로 여러분의 삶을 힘들고 어렵게 하는 것들을 결박하십시요. 그 배후에는 악한 영들의 숨은 역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을 위하여 “악한 영의 역사를 묶으라” 명하셔서, 이 부분을 위해서 기도할 때 제 입에서 대 축사 방언이 너무나도 강하고 격렬하게 나왔습니다. 밖에서 누가 들었다면 안에 있는 분이 정신이 이상해졌나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술에 빠져 지낸다면 배후에 술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시며 결박하고 묶으십시요. 떠나게 하십시요. 도박이나 게임이나 각종 중독이나 육신의 정욕에 빠짐 그 모든 것들의 배후에는 악한 영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 이름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었으되...” 선포하시며 대적하시고 쫓아내십시요. 다섯째,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염려와 불평하지 말고 오직 기도, 기도하라 이르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에서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지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또 5장에서는 이와 같이 이르고 있지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염려는 아무런 유익이 없는 백해무익한 것이요,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축복을 떠나가게 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고, 그분을 기뻐하고 찬양하고 높이십시요. 그리고 감사함으로 필요를 아뢰십시요. 염려하고 근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감사와 믿음으로 인내하고 견디며 기도하십시요. 약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위의 말씀처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또한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십시요. 그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렇게 될 것입니다. 막11: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막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들의 삶 속에 힘든 부분 중의 하나가 사람들과의 관계성이지요. 여러가지 일들로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면 어느새 미움이 싹트고 우리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쓴 뿌리가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 받아 기도와 말씀으로 그러한 쓴뿌리를 씻어내고 마음에 사랑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 속에 사랑이 회복되어야 사람들과의 관계성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의 생에 언제 문제가 없었던 시간이 있었던가요? 생, 곧 살아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엇과의 투쟁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꿈과 이상이나 믿음의 삶이나 그러한 것들을 향한 선한 싸움이 곧 생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의 꿈와 이상을 위하여 한편 아름다운 싸움을 하지만, 우리는 믿음 안에서 영원한 향한 거룩한 싸움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언젠가 주님께서 “선한 싸움 없이 무슨 상급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므로 위에서 주신 주님의 감동하신 말씀들을 생각하고 묵상하며, 오직 기도, 오직 말씀, 오직 찬송, 오직 성령의 권능 안에서 우리를 멸하려고 달려드는 악한 마귀의 궤계를 다 무너뜨리고, 이미 주께서 이겨놓으신 싸움, 믿음의 선한 싸움 안에서 그 승리를 매일 맛보며, 연단과 시련을 다 통과한 후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 풍성하고 의미있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름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리스도인이 믿음 안에서 또한 승리하는 방법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따라 행하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의 길을 걸어와 보셔서 아시겠지만, 생의 싸움이나 믿음의 선한 싸움이나 누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옆의 사람이 무슨 치명적인 병으로 고통 받거나 혹은 생명이 시들어가더라도 우리들이 잘 느끼지 못하듯,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싸워주지 않습니다. 내가 싸우고 내가 이겨야 합니다. 제가 종종 인용하듯이 “앉으면 죽고 서면 삽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에는 원죄로 인한 본질적인 고난이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가 가운데 허락되어지는 고난도 때로 있으며, 때로는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한 고난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붙잡고 기도함으로 승리한다면 “고난 받은 것이 내게 유익이라” 오히려 고난을 통하여 성숙과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새롭게 하고 굳게 하고 약한 무릎과 연약한 마음을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며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십시요.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피 흘리기까지 하면서 시련과 고난의 불을 통과하며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에서 “시련을 겪은 순수한 믿음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될 것이라”(벧전1:7)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십시요. 약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의 말씀으로 상담을 해 오신 지체님과 어려움을 겪고 계신 모든 분들과 그리고 한편 저 자신을 위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자비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어려움에서 능히 건져 주시는 주님의 권능의 손이 늘 우리에게 함께 하시길 기원 드려봅니다. 여호와 닛시! 아멘! 할렐루야! | |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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