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수필

[꼭! 읽어보세요] 알라 무어, 말씀으로 살 것이라!

초록 등불 2011. 2. 22. 10:34

 알라 무어, 말씀으로 살 것이라!


[찬찬히 읽어보세요. 정말 생명이 되는 말씀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그 일이 끝날 때까지 다른 일을 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상식과 가치관을 바꾸어버린 상대성 이론의 등속도 운동에 한정된 영역의 특수상대성 이론을 연구할 무렵 그는 일주일 동안인가 한 잠도 자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마쳐졌을 때 또 쉬지 않고 삼일밤낮을 잤다고 읽은 기억이 어렴풋 납니다. 저처럼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여러분에겐 조금 어려운 이야기이겠지만,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일정하다” 그리고 “정지 상대와 등속도 상태는 구분할 수 없다”라는 단순한 명제에서 시작한 그의 연구가, 간단한 고등학교 미적분 정도의 수학으로, 시간과 질량과 무게와 에너지의 모든 개념이 바뀌는 놀라운 결과가 도출되는 상황에서 그분이 잠이 왔겠는지요?


오늘날 인류의 에너지원에 큰 공헌을 하는 원자력과 한편 위협이 되는 핵분열과 융합을 이용한 원자폭탄은 그가 일주일 동안 잠 못 자며 밝혀낸 에너지 질량 등가원리에서 비롯되었지요. 어려운 이야기는 그만둘까요?


아인슈타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저도 그와 같은 비슷한 성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면 그것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기까지는 잠도 잘 못자고, 마음의 안정도 잘 못 찾고 아무튼 시작한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야 마음을 추스르고, 일을 시작하면 그 일에 푹 빠져 버립니다.


지금 현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 문서사역의 성장과 확대를 위한 개인적인 구상을 시행하면서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고민하고 기획해야 할 것도 많더군요. 그래서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마음도 안정도 찾지 못하고 어제 하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종일 일에 빠졌다가, 해질 무렵 어느 선에서 중단하고, 하루의 경건 시간을 갖지 못했으니 곤하여 누워서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기도론에서 말씀드리겠지만, 기도의 시작은 언제나 회개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장 15절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저는 기도할 때에 항상 죄에 대한 회개부터 시작을 합니다. 우리는 시간시간 알고 모르고 죄를 짓기 때문이지요. 생각나는 죄, 모르고 지은 죄가 있는지에 대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께 오늘의 삶 속에 무엇이 잘못되었고 주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물어봅니다.


주님께서 두 가지를 말씀하시더군요. 하나는 “무엇을 하던지, 어떤 일을 하던지 나를 마음 속에서 잊지 말아라. 오늘 너는 일로 인하여 나를 잊고 잃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욕심으로 너무 자아적으로 일하지 말라. 내게 맡기고 네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라” 이르시더군요.


첫 번째 말씀은 하루의 삶에 대한 저의 주님의 섭섭했던 마음을 말씀하신 것이고, 두 번째는 저를 깨우치는 말씀이었지요.


첫 번째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제가 그러했고 잘못했고 그렇게도 할 수 있었는데 싶더군요.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정말 한시라도 그 사람을 잊는지요? 무엇을 하던지 마음 한 켠엔 언제나 그 사람이 존재하지요. 하나님을 우리가 정녕 사랑한다면 그 사랑 또한 그러해야하는 것이지요.


주님에 대한 하루의 삶의 돌아봄과 회개를 끝낼 무렵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간구하니, 주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으라” 말씀하시며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더군요.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기독교는 점잖고 도덕적이고 지적이고 이성적인 그러한 인간의 철학이나 유교나 도교와 같은 사람이 만들어낸 수양의 종교가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여 거룩한 술에 취하여 살았던 제자들과 사도들처럼, 곧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과 역사하심이 있는 신들림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술 취한 사람처럼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주님이 말씀하시길 시작하니, 잔잔히 나오던 영의 방언 기도가 격렬해지고 음성 또한 격해지더군요. 그 안에서 저의 영은 주님의 영의 세계 속으로 조금씩 깊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경험해보아도 또한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신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아도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지만 불이나 전기와 같은 한편 그러한 성질도 있습니다. 보통 임하면 몸에 전류의 흐름이나 열감을 느끼게 되지요. 그래서 기도할 때는 더워져서 보통 중간에 전기난방용 기구의 온도를 낮추게 됩니다. 온도를 최저로 낮추었습니다.


그렇게 성령의 이끄심 속에서 의식은 영 안으로 조금씩 깊이 들어가고, 그리고 주님의 가르치심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이 네 안에서 생명이 되게 하라. 말씀을 묵상하고 품으라! 말씀이 진리이니 말씀을 믿어라. 천하 만물은 말씀으로 지어진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동안 히브리서 11장 3절의 말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는 말씀이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성경의 한 구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는 마태복음 4장 4절의 의미를 새롭게 영으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깨닫게 하신 것은, 우리가 먹는 쌀과 고기와 야채와 과일은 육의 양식입니다. 그런데 위 성경 구절이 말하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는 의미는 앞의 떡은 육신의 양식을 말하지만, 말씀은 곧 영의 양식이라는 것이지요.


너무 머리로 잘 알고 계셔서 실망스러운 지식인가요? 그러나 주님이 가르치시는 깊은 영적 의식 세계 속의 가르침은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더 깊은 의미, 말씀은 영의 양식이라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우리의 혼이 아니라, 말씀을 우리의 영안에 넣어야 진정한 양식이 되고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머리의 지식이나 혼의 생각이 아닌, 그 말씀이 정녕 우리의 가슴 속으로 들어와서 정말로 믿어지고, 지식이나 생각이 아닌 온 삶을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언젠가도 말씀드린 기억이 나지만, 때때로 어떤 사실에 대하여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이 새롭고 지식이나 생각이 아닌 가슴 속에서 생명이 되고 실재가 되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주일학교 때부터 너무도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머리의 지식으로 그리고 생각으로만 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과 선하심을 맛보고 그분의 사랑어린 음성을 듣고 나면 그 말씀이 가슴에 들어와 실재가 되고 생명이 되지요.


그처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성경 말씀을 겉핥기식으로 읽고 머리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읽고 새기고 묵상하여 영 안으로 넣어야 생명이 되고 실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죽음 뒤에 부활이 있다”라거나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든가 “나누어 주고 구제해야 더 풍성해진다”던가, 하나님의 말씀들은 우리의 혼적 상식과 상반되거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참된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묵상하며 그것이 영 안으로 들어가 정녕 영의 양식이 되고 생명이 되게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구한 즉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참으로 믿지 못하며, 그냥 기도하고 잊어버리고 또 구하고 잊어버리고 또 구하고 잊어버리고, 그냥 습관적인 의미없는 말의 반복적인 기도를 많이 드립니다. 그러나 이건 성경적이 아닌 것이지요.


성경이 응답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는 경우, 가령 정욕을 위하여 구한다거나 등의 경우가 아니라면, 구했으면 반드시 그대로 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정녕 믿음으로 간구했으면 그 말씀을 믿어야 하고, 가령 다음에 기도한다면 또 같은 말로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가 이전에 그것을 구했으니 그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그것이 실재가 되게 해 주십시요라고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지요.


이러한 믿음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믿음이 적거나 없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듣고, 새기고 또 새기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주님은 저 깊은 영적 의식 세계 속으로 저의 영을 더 이끄시고, 말씀에 대한 영적진리를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생명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말씀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데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영적인 느낌!! 그 잠잠하고 고요한 가운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알라 무어” “알라 무어” “알라 무어”.......................


영의 언어인 방언으로 계속되는 이 말씀, 그리고 그 속에서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혼의 언어로 들려오는 음성.


“나는 곧 말씀이니라”, “나는 곧 말씀이니라”, “나는 곧 말씀이니라.......”


깊은 영적 의식 세계 속에서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씀의 생명과 실재를 그냥 주님은, “나는 곧 말씀이니라”라고만 반복해서 저의 영의 깊은 곳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이르시기를 “말씀 안에서 생각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하고 말씀을 믿고 행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말씀이 네 속에서 역사하게 하라” 이르셨습니다. 그 말씀에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기도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너 자신을 부인하여라” 감동하시더군요.


나아가 제 개인을 향한 이러저러한 말씀들을 이르셨습니다. 그러한 주님의 감동 속에서 영은 감격하며, “주님, 당신을 위하여 제가 무엇을 해 드리면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과의 교통은 적어두지 않으면 잊어 버리기에 급히 노트에 응답을 듣기전 빨리 쓰려고 영어로 이렇게 썼습니다. “What do u want to me?"...


주님은 말씀하시길, “내 안에, 단지 내 안에 있으라”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저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주님은 내 안에, 저는 주님 안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저의 영은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 그냥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영적 감각 속에서 하염없이 감사와 기쁨의 눈물로 울고만 있었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배에서 흘러 강같이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성경에는 없지만 육신적인 느낌으로는 성령이, 곧 주님의 영이 신체의 어느 부위에 계신지가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위와 가슴뼈의 가운데 오목한 곳의 중간쯤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냥 제 느낌이었으니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정말 위에서 말한 위와 가슴뼈 오목한 곳의 중간쯤 되는 곳, 곧 배에서 주님이 영으로 계시고 말씀하시고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러한 느낌 가운데, 주님은 마지막으로..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 사랑의 삶에 대한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늦은 오후, 곤하여 누워서 드린 기도 속에서 주님과의 교통은 끝이 났습니다.


이런저런 저의 삶의 얘기 속, 오늘의 글을 통하여 제가 말씀드리고 주님이 깨닫게 하신 것의 핵심과 요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고 영의 양식이 되게 영 안에 넣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듣고 보고 읽는 것들에서 사고와 생각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가서, 육신이 떡으로 말미암아 살듯이,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묵상하므로 그 의미를 되새기고 깊이 생각해보며, 또 듣고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 안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서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이 아닌 마음과 가슴의 실재가 될 때, “알 라 무어, 나는 곧 말씀이니라”하신 하나님, 곧 말씀이 살아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이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피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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