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수필

[감동 영성수필] 성령에 매여 - 아름다운 삶을 사시다가 가신 사도바울, 믿음의 선조 그분을 기려봅니다.

초록 등불 2011. 8. 2. 20:20

 

※ 성령에 매여 ※

 

 

 

성경을 살펴보면 어제나 오늘이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진정한 영이신 하나님과 그 세계를 알지 못하고, 종교적인 전통과 가르침 그 의문의 죽은 것들에 매여서, 생명의 신앙이 아닌 관습적인 종교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원수된 노릇을 많이 하지요.


성경을 살펴보면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또 다른 편의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핍박을 받았으며,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결국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까지도 십자가에 못을 박고 말았지요. 뭇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다른 이방인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참 진리를 보는 빛을 달라고, 참 세계를 보는 눈을 보는 달라고 전심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정말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려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과 그 세계를 모르고 종교적인 전통과 관습과 사람들이 만든 유전으로 스스로 의문의 죽은 것들에 눈이 멀고 스스로 갇혀서 하나님을 위한다는 열심이 도리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처참하게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진정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참 진리를 보는 빛을 달라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참된 세계의 빛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빛과 진리와 성령을 잃지 않고 소멸하지 않도록 두려운 마음으로 주를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전에도 역사는 그러했거니와 악한 사단의 역사 아래 오늘날에도 거짓 선지자와 사상은 난무하니까요. 그러한 역설적인 잘못된 역사는 오늘날에도 내일에도 이어지고 이어져 갈 테니까요.


요한계시록을 보면 유대인의 모임을 일컬어 “사단의 회”라고 말을 하지요. 이처럼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과 그 영적 세계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단의 회 중에 든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그러한 잘못된 길을 가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지요. 자신이 자라면서 듣고 배운 바 유대인의 종교적인 전통과 관습적인 가르침 속에서는 예수라는 인물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특심하였기에, 하나님을 위한 뜨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죽이기에 또한 열심이 특심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 진정한 빛이신 주님을 만나고 그의 육의 눈이 일시 비늘이 씌워졌다가 벗겨져 다시 보게 되었듯이, 새 영안이 열려서 진정한 영이신 하나님과 그 세계를 보게 되었지요.


그로 말미암아 진정한 하나님을 위한 열심의 특심이 무엇인지 성령 안에서 죽기까지 충성하다가 하나님께로 아름답게 부름받은 고난은 많고 많았으나 한편 복된 인물이지요.


전에는 영이신 하나님과 그 영의 세계와 말씀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고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혹 좋아하였을지도 모를 사울이, 바울로 변하여 성령 안에서 생명까지 아끼지 아니하고 한 알의 썩는 밀알로 이방인에게 십자가와 생명의 도를 전하고 전하다가 아름답게 주님의 품에 순교로써 안긴 분이지요. 진정한 영 안의 아름다운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삶이 무엇인지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준 분이지요.


요즘은 제가 눈물이 참 많이 흘립니다. 때로는 성령 안에서 기뻐서 울고, 때로는 성령 안에서 부족해서 울고,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수없는 삶의 시련으로 성한 곳 없이 온통 상처 진 몸과 마음, 아픈 이들의 사연을 보면 그 아픔과 저의 아픔이 공명을 일으켜 또 울게 됩니다.


사도바울의 생과 여정이 많이 기록된 사도행전 20장을 보다가 또 그렇게 성령 안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20장 17절 이하를 보면, 사도바울은 성령님의 계시 곧 지식의 말씀 안에서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많은 고난을 받고 다시는 자신이 전도하고 세운 교회의 많은 성도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장로들을 초대하지요.


그러면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들어온 첫 날부터 지금까지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음모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겸손과 눈물로 주님을 섬겨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나는 무엇이나 주저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전했으며.. ..”


“내가 떠나고 나면 사나운 이리떼 같은 거짓 선생들이 여러분 가운데 들어와 양떼를 사정없이 해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3년 동안이나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십시요. 이제 내가 하나님과 그의 은혜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나와 내 일행이 필요한 모든 것을 벌어서 썼습니다. 이처럼 내가 모든 일에 모법을 보였으니 여러분도 열심히 일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우십시오”


그리고 와중에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고 고난을 받게 되고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전합니다.


지금 나는 성령님의 인도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어느 도시에서나 투옥과 고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성령께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께 받은바 소명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까운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여러분 가운데 거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 여러분이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고별사가 끝나자 그들은 함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서로 소리내어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서로 맞추며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된 사랑의 안타까운 나눔을 가집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 상황이 한편 너무도 아름답지만 또 한편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나고,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성령에 매여 순종하는 사도바울의 모습에서 성령 안에서 눈물이 흐르고 흘렀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는 여정 가운데 두로에 들러서도 마지막 작별의 인사, 그곳의 성도들과 함께 바닷가 해변에서 함께 무릎 꿇고 사랑과 아픔의 기도를 드리고는 배를 타고서 떠납니다.


가이사랴에 들려서 머무르는 동안에는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와서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발을 묶고 “예루살렘에 가면 이 띠의 주인을 유대인들이 묶어 이방인의 손에 넘겨 줄 것”을 예언하며, 아가보와 함께 그곳의 사람들은 눈물로 사도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왜 울면서 이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까. 나는 주님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묶이는 것 뿐만 아니라 죽임을 당하는 것도 가고하고 있습니다. 나는 성령에 매여서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혼은 언제나 편안하기를 원하고 안락하기를 원하고 수고롭지 않기를 원하나, 성령 안의 영은 언제나 주를 위해서 일하고 헌신하고 고난과 역경이라도 기꺼이 당하려 하기에, 부족한 저의 영도 사도바울의 모습을 본 받고 싶어서,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영 또한 그러한 진정 주님을 섬기는 희생의 길을 걷고 싶어서 눈물을 흘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와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도바울과 같이 성령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사도가 그러했듯이 성령 안에서 매인 바 되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시던 그 일을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어서 살아가려 하시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고 오셨기에 우리는 성령 안에서, 그리고 성령에 매여서 사도바울과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에 매여서 살아가는 삶, 곧 성령 안의 삶은 무엇을 말합니까. 성령은 곧 영이신 하나님이시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안에 거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도 그러한 계명을 지켜서 주님 안에, 아버지 안에,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순종하여야 하는 그러한 말씀들은 한편 보편적인 성경말씀이요, 한편 레마로 주시는 구체적인 개인적 말씀이요, 한편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며 이끄시며 인도하시는 영이신 하나님, 곧 성령의 음성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거하시는 동안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노라” 오직 “아버지께서 명하시고 말씀하시는 것”만 하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당신을 못 박으신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것, 곧 생명까지 드려서,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감당하는 삶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5:30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그 길은 성경이 말하듯 좁은 길입니다.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길입니다. 예수님처럼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섬김과 희생의 수고로운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그렇게 육은 힘들고 수고로운 길인지 모르나, 참된 영안의 생명을 누리는 길이요, 참 된 기쁨과 참된 영혼의 양식을 누리는 길이요, 영광과 능력의 길입니다. 이 땅에 우리의 육은 살고 있으나 영은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 하나님, 곧 권능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영광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에 올라가서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에 그분과 함께 부활하였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기록한 말씀도 모두가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이지만, 참 인상적이고 기억해야 할 만한 말씀을 하셨기에 “구어체”로 적어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은 성령 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의 삶은 장차 죽음 이후에 천국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너희가 자신을 십자가에 온전히 못 박기만 하면 부활의 영광 또한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하면서도 아무런 생명도 능력도 부활의 영광도 맛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단하고 우리의 정과 욕심을 사도바울과 같이 십자가에 온전히 못 박아 버리면, 이 땅에서 부활의 생명과 능력과 영광을 누렸던 사도바울처럼 우리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는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아시는 전지하신 그분은 우리를 가장 좋으신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생명과 평강의 열매를 먹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못 박히신 바 되고 죽은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면, 무른 그리스도인은 마땅이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으니 마땅히 그분의 영이신 성령에 매여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갈보리로 올라가셨듯이, 사도바울이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나는 성령에 매여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울먹이며 고백하였듯이, 우리 또한 그 길이 생명을 내어놓아야 하는 죽음의 길이라도 성령에 매여 순종하며 도리어 감사하며 가야 합니다.


기꺼이 우리에게 맡겨진 언약궤를 메고 벧세메스의 길로 뒤도 돌아보지 말고 올라가서 우리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기까지 하여야 합니다.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기독신앙은 절대 종교생활이 아닙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관념적이고 습관적인 종교생활이 아닙니다. 영이신 성령 안에서 생명의 법을 누리며, 그분이 이끄시고 역사하시는 대로 따르며 순종하며, 보이는 건물인 교회나 그러한 것들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불꽃이 되는 삶입니다.


곧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가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젖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는 나라, 곧 하나님 나라의 전사와 불꽃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11:6-7)


주의 성령이 임하셨으니 포로된 자가 자유를,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되는 나라, 그 분 곧 예수께서 찔리심으로 우리의 허물을 사함받고 그분이 상함으로 우리가 죄악을 사함 받고 그분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나라, 아름다운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성령에 매인 불꽃의 삶이 곧 그리스도인이요, 생명의 기독교인 것입니다. (사53:4-6)


우리를 위하여 그 몸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이제는 영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곧 그분의 영이신 성령님은 당신께서 역사하실 통로, 곧 자신을 정녕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고 당신의 신실한 일꾼이 되어,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어 보내어 달라 하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온전히 성령에 매인 바 되어 작은 예수로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려는 사람을 찾고 찾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부르심에 성령에 매여, “주여,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다이다” 응답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행20: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행20: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행20: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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