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설교

[주일설교] 나는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초록 등불 2011. 8. 22. 15:57

 

※나는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한 동안 내리던 여름 소낙비가 그치고 화안한 날씨, 오늘은 시원한 소낙비 소리 대신 저만치 시원한 매미소리가 창가로 들려옵니다.


이번 주일에는 “확고한 부활신앙”에 대한 감동을 주셔서, 또 말씀의 제목을 위해 기도하니 “나는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는 감동을 주셔서 조금 느낌 있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을 물질적으로 생각한다면 정신영역에 속한 것은 혼과 영이지요. 그런데 이 혼은 물질계를 상대하게끔 지어진 것이라 이성적이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들을 접하고 이해합니다. 반면에 영은 영계와의 교통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라 영의 세계, 곧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를 알게 해 줍니다.


이처럼 우리의 혼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검증되고 경험되어진 사실만을 받아들이려 하기에, 세상의 시작, 곧 우주의 시작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라던가, “진화하였을 것이라”던가 또한 잘 모르니 “우연히 생겼을 것이라”는 등으로 답을 합니다. 실제로 잘 모르겠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영에 속한 직관, 곧 내면의 본성은 이 세상의 만물과 우리가 창조되어지고 지어진 것임을 그냥 알게 되지요. 실상 누구나 그 내면 속에는 이러한 영의 느낌이 있습니다. 다만 혼이 강하여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것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요.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성경이 말하듯, 우리의 본성이 가르치듯, 세상의 만물과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시작이 있었다는 것은 곧 끝이 있다는 말이지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라는 평범한 진리는 우리의 일상과 자연의 모든 전반에 걸쳐 있지요. 하루의 시작이 있으면 또한 끝이 있으며, 한 달의 시작이 있으면 달의 끝이 있으며, 한 해의 시작이 있으면 또 한해의 끝이 있지요. 우리의 모든 삶의 모든 것들에 시작과 끝이 있지요.


그리고 참 가슴 아프게도 우리의 생명도 그러하지요. 태 울음으로 태어난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우리의 육신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창조된 피조세계의 물질세계는 창조된 것이며, 시작이 있었으니 끝이 있음은 마땅하나, 그렇지 않은 것이 본래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 부여받은 물질계에 속하지 아니한 하나님의 생기, 곧 영입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안에 계신 분이 아니시고,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차원에 계시는 전능자요, 영원자시지요.


그런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생기, 곧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생령이 된 우리는 본래 그 하나님의 생령으로 말미암아 죽지 않는 생명체였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영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맞게 되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준엄한 하나님의 형벌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육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육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죽을 수 없는 영체인 우리의 영도 하나님과 관계단절로 인하여 죽은 것은 아니나 죽음 같은 어두움의 음부에 거하게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런 우리를 자비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었던, 십자가, 곧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속하여 죽게 하심으로 우리는 다시금 본질적인 영의 영원한 생명,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이 생명, 곧 우리가 그토록 가슴 아파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은, 당신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시고 보여 주시려고, 이 땅을 거니시는 동안 죽은 사람을 일컬어 “잔다”라고 말씀하시고, 또한 살리시는 이적을 행하심으로 당신 안에 생명의 빛이 있음을 증거하셨지요.


요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특별히 정말 당신 안에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부러 지체하셔서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뒤에 도착 하셔서 그를 말씀으로 살리셨지요. 나아가 결정적으로 미리 제자들에게 수차례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믿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살아나실 것을 여러 번 말씀 하신 후, 말씀하신 그대로 부활하셔서 수백의 제자들에게 친히 나타나 보이셨지요.


그러한 예수님 안의 생명에 관하여 친히 보고 들은 바 된 제자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요일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번 주일설교를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은 다시금 우리가 이러한 확실한 부활신앙을 가지기 원하셨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수없이 경험하듯이 우리는 태어남의 시작과 더불어 죽음의 종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고 상벌의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심판과 상벌은 기초적으로 천국과 지옥의 운명을 결정짓게 됨을 말하며, 세부적으로는 우리를 위한 각각의 상이 다를 것 또한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부활의 확고한 신앙과 함께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사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며, 정말 그것이 지혜로운 생인 것입니다.


주님은 몇 가지를 간단히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우리가 이 부활과 그 영원한 생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슴에 품고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 세상의 삶은 궁극적으로 절망입니다. 아무리 부요하고 풍요로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궁극은 죽음이며 절망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을 향하여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결국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을 품고 사는 사람, 부활과 그 생명에 대한 영원한 소망을 가슴에 지닌 사람은 이 세상의 삶의 형편이 어떠하던지 흔들리지 아니하며, 늘 주 안의 생명과 소망으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며 생동하는 생명력을 보이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다 가진 자가 되고, 귀한 자리에 앉지 않아도 귀한 자가 되고, 잡힌 자가 되어도 자유합니다. 그 누구도 그 소망과 기쁨을 앗아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나 성령과 물과 피로써 확증되는 이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실한 소망과 믿음을 가슴에 품고, 생동하는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우리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주님은 우리가 하늘을 향하여 사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물론 우리가 이 땅에서 육신을 덧입고 살아가기에 먹는 것과 입는 것들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풍요롭게 많이 누릴수록 어쩌면 삶에서 만족감을 더 얻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그러한 것에서 오지 않음을 우리가 경험으로 압니다.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땅을 향하여 사는 사람은 편안함은 누리고 살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행복인 마음의 평강을 누리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향하여 사는 삶에는, 육신이 아닌 성령을 좇아 사는 삶에는 평강과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의 생이 저물어 이 땅의 소풍을 끝내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에 아무런 후회와 회한이 없으며, 사도바울과 같이 “장차 후로는 나를 위하여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리라”라고 담대히 외치며,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사랑하는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을 뵈러 기쁘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구원이 아니라 빛난 생명의 면류관을 향하여 저 하늘로 하늘로 기쁘게 날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향하여 살지 마십시요. 그것은 결국 헛되고 후회스런 삶이 될 뿐입니다. 하늘을 위하여 사십시요. 하늘을 향하여 사십시요.


셋째로, 주님은 이 기쁜 구원과 참 생명의 복음을 전하라 감동 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거니시던 그 때는 그분은 우리처럼 육신의 몸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분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다만 영, 곧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실 뿐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몸을 필요로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몸입니다. 머리가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할 수 없듯이,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에 관하여도 우리와 더불어 사역하시게끔 그렇게 경륜을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하지 아니하면 복음을 사람들은 듣지 못하게 됩니다.


저도 구원해야 할 일가친척들이 있습니다. 하루는 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니 “네가 직접 전하여라, 복음전파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너희들이 움직여야 한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영안이 열리지 않아서 보지 못해서 그러하지 오늘도 이 시간도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시는 구원이 없고 다시는 생명이 없고 영원한 저주와 사망의 두려운 불못으로 가고 있습니다.


가령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질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가 그 치료법을 알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만약 그 소식을 알리고 전하지 아니하면 어쩌면 이것은 죄악 아니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겔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말씀을 받은 에스겔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고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우리의 생을 마감하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전도가 마냥 쉬운 것은 아니지만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그리고 또 오늘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전도의 능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 아름다운 소식 곧 복음을 힘을 다하여 전하는 복된 발을 주옵소서. 아멘!


넷째로, 주님은 “충성하라,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앞에서도 잠시 말씀 드렸지만,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물 한 그릇도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생활의 한 족각 조각 모든 것들이 상과 그리고 형벌과 관련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이면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합시다. 그리하면 주님은 더 큰 일을 맡겨 주실 것입니다. 맡은 일이 중하면 더 큰 소명감을 가지고 충성합시다. 주님은 결단코 잊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게 상 주실 것입니다.


마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지막 다섯 번째로,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할 때 늘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시며 강하고 담대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사단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에 세상이 우리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능력 주시는 주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더불어, 우리의 믿음으로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주님은 이번 주일 설교를 통하여 우리가 다시 한번 부활의 확고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참되고 참된 소망 가운데서 우리가 하늘을 향해 사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길 원하셨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듯,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듯 우리는 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면 상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분명한 인식, 그리고 심판에 대한 분명한 인식,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이미 있음을 가슴으로 아는 확고한 소망 가운데서 이 땅이 아닌 정녕 하늘을 향하여 살아가는 지혜로운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손 모아 기도해봅니다.


말씀의 마무리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영혼의 지성소가 우렁 울리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전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전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전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15: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고전15: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15: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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