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설교

[주일설교] 하늘의 생명양식 - 저 푸른 하늘을 향해서 하루하루 더 높이 날아오르면 싶습니다.

초록 등불 2011. 9. 18. 19:23

 

※ 하늘의 생명양식 ※

 

 

 

지난 주 개인적인 일로 다소 바쁘게 지내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 육체의 연약함이 있는 분들이 다소 어려움을 겪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그래선지 그 후유증으로 다소 곤한 일주일을 보내면서 영육간에 다소 어려움을 겪은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영성하면 영혼, 곧 영만을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영성은 쉬운 말로 영혼의 성질의 줄임말인데, 그 말 자체를 보면 육체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육체를 덧입고 있기에, 영성의 기초에는 건강한 육신도 한 기초가 됩니다.


가령 심한 두통이나 다른 질병 등으로 심한 앓이를 하고 있으면 당연히 기도와 말씀 생활에도 지장을 받게 되고, 건강한 때보다는 짜증이나 화도 자주 내게 마련이지요. 그럼으로 건강한 신앙생활, 영성생활을 위해서는 한편 육신의 건강도 잘 관리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것과 연관을 지어보면 우리가 기도를 드리거나 예배를 드리거나 혹은 집회에 참석하여서 은혜를 받는 것도, 육신이 건강하거나 상태가 좋으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나 예배 전에 스트레칭 등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도움이 되지요.


왜냐하면 결국 영적인 모든 일들은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혼, 마음인데 그것이 우리의 육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머리가 맑지 못한 때보다는 맑은 때에 영적인 것들을 더 쉽게 분별하고 은혜를 덧입기도 쉬운 법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거나 예배를 드리실 때 몸을 가볍게 스트레칭 하거나 움직여 몸의 상태를 좋게 하는 것이 작게나마 도움이 되겠지요.


그리고 가령 집회나 예배를 인도하는 사역자라면 성도님들끼리 피차 서로 안마도 해주고 몸을 풀어주게 하여 주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겠지요.


어쨌거나 이런저런 일들로 몸이 다소 곤하여 육적 생활에도 영적 생활에도 다소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주님과의 영적인 교통을 방해하는 요소에는 경험상 나태한 경건생활, 그리고 죄가 있겠지만, 마지막 하나는 육신의 건강입니다. 그중 쉽지 않은 것이 건강관리입니다.


죄는 회개하면 되고 경건생활은 새롭게 시작하면 곧 열리지만, 육신이 많이 아프면 쉽지 않습니다. 가령 머리가 많이 아프거나 맑지 못하면 교통에 장애가 되지요. 그러므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우리는 육을 입고 살아가기에 건강관리를 잘하여야 합니다. 모두 건강관리가 한편 영성생활의 관리임을 알아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회복되었지만 아직 다소 머리가 맑지 않아서 예배 후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조금 쏘이고 들어왔습니다.


제 맘처럼 시간이 아쉬운 듯 매미도 울음소리로 여름의 발목을 아직 잡고 있고, 햇살의 따사로움엔 짙어가는 가을내음의 아래 여름이 흐르고 있더군요.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어떤 땐 몸이 건강할 때보나 아플 때, 도리어 조용한 평화를 느껴본 적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건강하여 육신이 혈기왕성할 때보다 도리어 다소 육신이 곤하여 힘을 잃었을 때 때로 약간 흐린 날이 마음의 평안함을 안겨주듯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요.


오늘은 몸은 아직 다소 곤하지만, 그런 조용한 평화를 맛보며 지낸 주일이며 예배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 드려봅니다.


말씀을 기록하고 있으니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하여 몸과 손은 하늘의 불로 뜨겁건만, 하 세월 기도한 육신의 건강은 아직 실제를 누리고 있지 못하네요. 시련과 연단의 때가 끝나면 언젠가 정금같은 믿음과 함께 온전한 건강도 주시겠지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고 생명 주신 주 앞에서 무익한 종이라 할뿐이며 감사할 뿐입니다. 아멘!


오늘은 일일의 경건생활, 곧 매일의 경건생활에 대한 말씀을 주셔서 출애굽기 16장 12-21절의 말씀으로 “하늘의 생명양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곤하여 말씀의 제목과 본문만 생각해 두었을 뿐 세세한 말씀은 예배 시간에 주님과 교통하며 조용하고 잔잔하게 드린 예배였던 것 같습니다. 먼저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출16: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출16: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출16: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출16: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출1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출16: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출16: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출16: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출16:20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출16:21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그냥 직설적으로 말씀드려서 설교의 주제는 우리의 육신이 매일 생활하려면 매일 육의 양식을 공급받아야 하듯이, 우리의 영도 마찬가지이며 이론이 아니라 실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은 영의 양식이요, 기도는 영의 호흡이라고 자주 말하며 또한 듣습니다. 그러나 이론과 관념으로만 인식하지 실제로 인식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이 아닌 오랜 신앙의 역사 속에서 경험적으로 체득되어진 실제입니다. 말씀을 먹고 기도로 호흡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은 무기력해지고 오래 방치하면 죽습니다.


설교의 핵심은 이러하지만, 주님께서 소 대지로 주신 것들을 하나씩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그러므로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공궤되는 것들로 살아감을 말씀하셨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우리가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항 속에 금붕어나 예쁜 물고기를 넣어서 기른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하면 그것을 꾸민 우리가 먹이를 넣어주고 또 전기로 물 속에 산소를 공급하고 때때로 물갈이를 해주어야 그것들이 살아가지요. 생명을 누리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근원적으로 이 세상만물과 우리를 창조하신 우리는 하나님의 공궤하심을 입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하여 사시사철 과일과 곡식이 열매를 맺고 때때로 비가 내리고 맑은 햇살이 비추어서 우리가 먹는 음식들을 우리가 먹고 누리지만, 그래서 때로는 그냥 자연이 우리를 먹이고 공궤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실상 그 배후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의 공궤하심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물 한 모금, 풀 한포기 자라기 않는 광야를 거닐게 하시며,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시고 반석의 물로 마시우게 해 주신 것이지요.


사람이 떡으로, 곧 자연의 어떤 것들이나 우리의 힘과 지혜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공궤하심으로 살아감을 깨닫게 배우게 하려 하심이었지요.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는 먹는 것들과 마시는 것들이 자연이 그냥 주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메마른 광야를 거닐면서 그들은 진정 인간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만물을 기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배우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사는 존재임을 배우게 된 것이지요.


둘째로 주님은 우리는 영과 육의 필요의 공급을 모두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육 곧 흙으로만 지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사람은 흙과 하나님의 생기, 곧 땅에 속한 것과 하늘에 속한 영으로 지어진 존재이지요. 그러므로 사람은 육적인 필요가 있는 반면에 또한 영적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육적 생명을 위해서는 땅에 속한 식물 등의 육적인 것이 필요하며, 영적 생명을 위해서는 하늘에 속한 영적인 것들이 생명을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은 신약의 모형,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의 만나는 육적양식이지만, 상징적으로 하늘의 영적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는 15절의 말씀처럼, 만나 곧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하여 먹게 하신 양식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라는 말은 관념이 아닌 실제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구요?


생명이 있는 것은 움직입니다. 느낍니다.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우리의 영이 살아 있으며 그 생명력을 우리가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영이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태아속 아이처럼 우리가 분명하고도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영이 살아 있을 때는 하나님과 그분께 속한 것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지만, 어둠 곧 사단에 속한 것들을 우리가 행할 때는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이 살아 있다면 이러한 영적인 반응, 생명이 충만할수록 예민하고 섬세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만 기도하지 않고 조금만 말씀을 듣지 않거나 읽지 않아 보십시요. 그러한 영적인 생명의 움직임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그것은 영이 호흡하지 못하고, 양식을 먹지 못하여 힘을 잃고 지쳐 쓰러졌기 때문입니다.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실제의 경험은 말씀이 영의 양식이며 기도가 영의 호흡이라는 말이 관념이 아니라 실제임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확신하고 단언하여 말씀드릴 수 있건대, 우리가 만약 기도하는 삶을 중단하였거나 말씀을 읽고 듣는 삶을 중단하였다면, 영적으로 잠을 자는 성도입니다. 예수님이 홀연 강림하신다면 깨어 등불을 예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아니라 버림을 받게 될 어리석은 처녀들 중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요. 말씀을 읽으십시요. 매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햇살이 강하게 쏘이면 스러져 없어져 버리기에 하늘의 만나를 주워 먹으려 아침 일찍 수로롭지만 나갔듯이, 우리의 경건생활에도 힘이 듭니다.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의 양식을 먹고 영이 강건해지는 법입니다.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신앙생활에도 왕도는 없습니다. 기도와 말씀이 왕도입니다. 언제나 그리고 매일 성실한 기도와 말씀의 생활의 영적 건강과 생명의 왕도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요. 말씀을 읽으십시요.


얼마나 그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해야 하는지, 성경은 말씀을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로 삼기까지 하라고 말씀합니다.


출13:9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


신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앙에 대해 조금 알아갈수록, 목회자의 길을 걸어갈수록, 말씀을 읽어볼수록, 우리의 신앙생활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미지근하여서는 토하여 내침을 당하게 됨을 알게 됩니다. 뜨거워야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어떤 일에 골몰하여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이 아니라면 우리의 마음 속엔 언제가 말씀과 기도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골몰한 시간마져도 말씀과 기도를 유지하는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하지 아니하면, 결코 진정 영적인 승리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결코 영적인 가나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과 그 영광을 맛보거나 누리지 못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온갖 궤계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단과 그 나라를 능히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말씀을 사모하십시요.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요. 그것만이 우리가 영적건강과 생명을 누리는 길입니다.


신앙에 대해 조금 알아갈수록, 목회자의 길을 걸어갈수록, 말씀을 읽어볼수록, 우리의 신앙생활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의 길임을 알게 됩니다. 세상과 더불어, 세상과 짝하여 겸하여 사랑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엔 한없는 기쁨과 평강과 능력이 있으나 또한 한없는 자기부인의 죽음의 고통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아의 죽음과 포기의 고통과 댓가를 지불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진정한 그리스도인, 이름과 무늬만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려면, 정말 기도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매 순간 호흡하듯 기도하며, 매일 세끼 양식을 먹듯이 그렇게 말씀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영적인 것이 더 본질이라” 이 주제와 관련하여 주님은 설교 도중 감동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을 거니실 때도 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물론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기에 세상을 살아가려면 육신의 건강이 중요합니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고 끝날 생명입니다. 그러나 영적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말씀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으나 실상 우리의 삶을 어떠합니까? 건강을 위하여는 가지가지 좋은 약과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며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진정한 생명인 영을 위하여서는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합니까? 하루에 얼마의 시간을 내어 영의 건강을 위하여 애를 쓰십니까. 영적 생명을 위하여 애쓰는 지혜로운 마음을 가진 저와 여러분이면 싶습니다.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셋째로 경건한 삶을 육을 거스려 싸우는 우리의 애씀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선악과로 인하여 타락하기 전에는 우리 인간은 영 안에서 모든 것들이 질서를 지키며 갈등과 분열이 아닌 하나이었습니다. 온전히 영이 하나님 안에서 혼과 육을 조화롭게 다스리게 지음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후로는 주도권을 혼이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혼은 영을 좇기보다는 본성상 육을 좇아 살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육과 땅을 좇아 사는 삶은 별스런 애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가령 가만있어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게 됩니다. 누가 나를 때리면 자연스레 같이 때리게 되고 욕설과 화를 내게 됩니다. 이는 타락한 본성의 자연스러운 물결의 흐름입니다.


그러나 영을 좇아 사는 삶, 원수를 사랑하고 주리거든 먹이고 헐벗으면 입혀야 하는 삶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과 혼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육과 혼은 영에 반하기에 우리의 육과 혼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바울의 고백에서 보여지는 죽음, 과연 이 죽음이 쉬운 것입니까? 죽는다는 것이 쉬운 것입니까? 누가 내 오른 뺨을 때리는데 참는 것이 쉬운 것입니까?


죽음이란 죽을만큼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는 것이며, 죽을만큼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쳐서 자기를 부인하며 죽어야 하는 영적인 삶을 결코 쉬운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애씀과 힘씀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경건한 기도와 말씀의 시간을 결단코 잃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승리하는 영적 생활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조들도 때로는 넘어지고 쓰러진 것들에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영이 강건하고 강건하여도 한 순간의 유혹에 빠지고 넘어질 수 있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러할진대 하루의 경건의 시간을 잃어버리면 영은 그 만큼 약해지고 더욱 승리하기가 힘들어져서 결국은 무기력하고 죽은 듯한 상태로 떨어져버리는 것이 다반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중 십중팔구는 영적으로 시들었거나 잠들은 무기력한, 죄와 유혹 앞에서 한없이 약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와 말씀에 힘써 늘 성령으로 충만하여야 할 뿐 아니라 우리도 힘껏 의지를 발휘하여 애써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제하는 영적 세계와의 엄연하고도 분명한 실제의 영적전쟁인 것입니다.


골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그렇게 매일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며 빛 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성령의 권능과 불을 받을 때, 우리는 그 빛 속에서 길과 진리를 잃어버리지 않으며, 죄와 사단을 이기며 능히 주님 안에서 왕노롯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너무도 많은 것을 포기하여 합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주어지는 하늘의 영광은 땅의 것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장차 영원히 누리게 될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맛보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오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오는 것들은 아무리 먹고 마셔도 목마르지만 하늘로부터 오는 것은 이와 같지 않습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충만 위에 충만한 기쁨이요, 평안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충만 위의 충만한 생명이요, 영광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듯 장차 누리게 될 영원한 천국이던지,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이던지 성경은 일컬어 보화라고 말씀합니다. 온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사야하고 사게 되는 보화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 말씀처럼 이 땅에서 하늘의 영광, 곧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그 속에서의 참된 생명, 곧 영생의 기쁨과 평안과 영광을 맛본 사람은, 그 보화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그 보화를 소유하기 위하여 모든 것들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그 보화를 잃어버리면 생명을 잃은 것과 같은 침통함에 빠지고 울부짖으며 다시금 그것을 회복하려 몸부림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을 바라보며 살아가지 마십시요. 위엣 것을 찾으며 하늘을 향하여 사십시요. 이 땅에도 우리의 혼이 즐거워하고 기뻐한 것들이 적지 않으나 그것은 한편 그늘이 있는 행복이요, 기쁨이며, 곧 다시 목마르게 되는 것들이지만 하나님의 영광 속에 감추어진 기쁨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거나 더 이상의 충만이 필요없는 충만 위의 충만입니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넷째로 주님은 복의 순서와 원리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영이 먼저요, 우선이며 그 다음이 육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영적인 복 안에서 누리거나 얻지 아니한 세상과 땅에 속한 복의 허무함을 잘 보게 됩니다. 그 결과의 비참함을 잘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 안에서 누리거나 얻지 아니한 땅의 세속적인 복들은 본질적인 면에서 바라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거지 나사로가 나은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함”이 옳은 복의 순서요, 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때때로 이러한 진정한 복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삶을 광야로 내어 모십시요. 시련과 고난의 풀무불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적인 훈련 장소로는 광야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영이 새롭게 거듭나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로 하여금 고생시켜시려 함이 아니라, 진정한 축복의 영역 곧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려 하심이며, 마침내 복을 주려하심인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늘나라의 영원하고도 참된 복락을 누리게 하려 하심인 것입니다.


신8: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신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므로 이러한 참된 복의 원리와 순서를 알아, 언제나 참된 복을 받아 누리십시요. 가령 당장에 금전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하여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장사나 사업을 한다면 이는 결국 영과 혼이 다 멸망을 당하게 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인 것입니다.


언제나 영을 앞세우십시요. 그것이 먼저입니다. 말씀을 앞세우십시요. 그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을 앞세우고 그분을 청종하십시요. 그것이 진정 기름진 것을 먹고 누리게 되는 비결입니다.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마지막 다섯 번째로 이 모든 것들은 근원은 결국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들 다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삶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신앙생활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육으로만 살아가려면 실상 불가능합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도 때로는 넘어질 수도 있는 어쩌면 힘겨운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게 된다면, 비록 매일 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하는 육의 수고로움이 있을지언정, 이 땅의 사랑이 아닌, 영원한 본질적인 하나님과의 사랑 안에서 한편 말할 수 없는 사랑의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거룩한 영광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형인 구약의 만나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매일매일의 경건의 시간과 삶, 그곳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매일 경건한 삶에 애쓰고 힘써, 우리의 영에 자양분과 물과 햇살을 주면, 신록이 싹을 내고 자라 장성한 나무가 되어 무성한 숲을 이루고 열매를 맺게 되듯이 우리의 영적인 삶도 그렇게 풍성한 열매와 영광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찾고 구하라. 그분이 너희의 생명이며, 행복이니라. 경외하고 청종하며 순종하여라. 너희 삶에 풍성함과 생명과 참된 즐거움이 있으리라” 주님은 마지막으로 묻는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오늘의 말씀을 마름합니다. 아무쪼록 영적인 매일의 삶에 승리하여 하나님 안에서 더욱 더 깊은 은혜의 샘으로 나아가고, 그 안에서 하늘의 생명과 풍성함을 나날이 더욱 누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해 봅니다. 아멘!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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