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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글] 날선 검 - 우리는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초록 등불 2011. 8. 29. 15:35

 

※ 날선 검 ※

 

 

 

마음으로 기도하며 집안의 일을 조금 하고 있는데 날이 선 시퍼런 칼날이 심령으로 보입니다. 굳이 기도하지 않아도 영의 직관으로 전해지는 의미, 깨어 있는 지금 현재의 시각, 저의 영적 상태가 날선 검의 상태라는 것이지요.


어떤 연장의 의미를 지닌 시간이 아닌 시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시시각각 우리의 영적 상태는 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 다른 기질과 특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에서처럼 활동적이고 용감하고 다소 나쁘게 말하면 거친 성격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야곱처럼 내성적이고 비활동적이고 다소 조용한 그런 성격도 있습니다. 그냥 간단히 예를 든 것이지만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어쩌면 성향도 다양하겠지요.


하나지만 아이를 하나 길러보니, 경험상 제가 얻은 결론은 후천적인 것보다는 선척적인 것인 참 본질적인 것이요, 많은 것을 결정하더군요.


제 아이는 태어날 때 그 모습부터 순둥이였습니다. 그리고 마음도 행동도 순둥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려도 아주 용감하고 돌발적인 아이도 많은데, 쇠창살로 안전망이 된 창가에라도 잠시 올려두면 아빠가 바로 곁에 서 있는데도 몹시 겁을 내곤하였습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어울리다보면 나이가 7살인데도 3살짜리 아이에게 맞고 울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덩치도 크고 이길 것은 아는데, 때리면 아이가 상할까 천성적으로 순하니 때리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맞고만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태어난 천성에 따라 어떤 사람은 착하고 순한 사람도 있고, 다소 강하고 나쁜 의미에서 이기적이고 다소 거칠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것을 하나 알려드리면, 아이의 성향이나 아니면 지금 자신의 성향을 어느 정도 알면 부족한 성향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느낌의 이름을 지어줌이 참 좋다는 것입니다.


강하고 튼튼한 느낌을 주는 이름을 마음이 여리고 천성이 착한 아이에게 지어주면 남들이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그 이름을 듣고 볼 때마다 마음에 그러한 강한 이미지나 정체성이 형성되어서 타고난 다소 여린 성격을 보충해주니까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런데 강한 성격의 아이에게 이름마저 강하게 지어놓으면 너무 강하여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아이에게는 다소 부드러운 느낌의 이름을 지어줄 필요가 있겠지요.


이름이란 참 중요한 것입니다. 몸이 보이는 자기라면 이름은 보이지 않는 자기인 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주고 자기도 몰래 마음속에 어떤 강한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때때로 이름을 바꾸어주시곤 하지요. 이름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것과 같은 류의 자기 관리법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미지지요. 가령 자신이 조금 유약하고 약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늘 마음속에 강한 맹호나 사자나 독수리 같은 이미지를 자꾸만 떠올리면, 방이나 거실 등에 그러한 그림이나 액자를 걸어두고 볼 때마다 “나는 맹호 같은 사람이다”등으로 이미지를 마음속에 형성하면 다소 강한 성정의 사람이 될 수 있겠지요.


성정이 차분하지 못한 사람은 조용한 호수 같은 이미지를 자주 떠올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되겠지요. 너무 강하고 격한 사람은 순한 양과 같은 이미지가 좋겠구요.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릴까요? 그것은 아래의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한 사전 지식차원에서 전한 것이지요.


에베소서 6장을 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기에 사도바울은 군사의 무장을 예를 들어서 영적으로 능히 원수 사단을 멸할 수 있는 상태를 견지하라고 하지요.


곧 그것들은 구원의 투구를 쓰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고,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를 붙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것이지요.


저는 가끔 이 이미지, 곧 옛날에 전장에 나가던 장수의 완전 무장한 모습을 종종 마음에 그려보곤 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 앞에 부름 받은 군사이지만 특별히 목회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전장의 최전선에 서는 선봉장의 장군의 이미지나 현대적 군인의 의미로 보면 대장, 중장, 소장과 같이 멀리 있어 지휘하는 자가 아닌 직접 최전방 현장에서 전투를 벌이는 소대장의 이미지를 그려보곤 합니다. 나태해지려하면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보며 스스로를 채찍질 합니다.


마음으로 기도하며 집안의 일을 조금 하고 있는데 날이 선 시퍼런 칼날이 심령으로 보입니다. 굳이 기도하지 않아도 영의 직관으로 전해지는 의미, 깨어 있는 현재의 지금 저의 영적 상태가 날선 검의 상태라는 것이지요.


성령 안에서 심령으로 제가 본 날선 검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그 칼의 날이 예리하게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다른 군장도 다 좋지만 우리에게 있는 어떤 사단의 견고한 진도 파하는 강력인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입니다.


그 칼이 녹슬어 있거나 날이 무디어져 있거나 혹 잃어버렸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편 영적인 전쟁인 우리의 삶 속에서, 패배하고 있으며 이미 패배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그 칼날을 예리하게 늘 세워둘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검이 아니라 성령의 검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사용하는 검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검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각 시험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이긴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하여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그 전에 이미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마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이긴 것은 당신께서 이미 성령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 예수님이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한량없이 거하시던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육체와 입술을 통하여 나타나신바 되어 능력의 검으로 사단을 무찌른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을 예리하게 날을 세우는 것은 일차적으로 말씀을 읽어야 하겠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우리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과 권능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사단의 견곤한 진도 파하는 능력의 검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루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심령으로 파아란 새싹이 돋아나는 것이 보입니다.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겠지만, 기도할 때 물과 피로 죄 씻음을 받으며 성령께서 새롭게 충만히 임하시며 우리의 영적 생명이 새로워지고 돋아남을 말씀하는 것이지요.


또 다른 것이 보입니다. 주님께서 뭔가를 보여주시려고 하는데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저게 무엇일까 가만히 성령 안에서 들여다보고 있으니 물이 동하여 돌고 있는 호수입니다. 물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를 칩니다. 성령 안에서 내적증거를 통하여 이는 베데스다 연못을 의미하는 것이라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의 의미하는 바는 베데스다 연못의 물을 천사가 동하게 할 때에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게 되는 자가 치유함을 받았듯이, 기도하는 시간이 영이 치유되고 마음이 치유되고 육신이 치유되고 여러 가지 우리가 응답받아야 하는 것들이 회복되어지는 시간임을 알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에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으며, 성령으로 새롭게 채움을 받으며, 동시에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새롭게 치유와 회복함을 받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와 환경 속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실은 이것이 주님께서 가장 먼저 보여주신 것인데, 그것은 숫돌에 칼날을 갈고 있는 모습입니다. 가장 먼저 심령으로 보게 하셨지만 가장 나중에 말씀드리는 것은 가장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리스도인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의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이기에, 투구부터 신발까지 영적으로 완전무장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사단의 어떠한 견고한 진도 파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을 날을 예리하게 세워두어야 합니다.


살짝 스치기만 하여도 능히 베고 자를 수 있게 그 칼날을 매일, 그리고 시간시간 갈아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칼이 있어야 싸울 수 있으니 무엇보다 늘 말씀을 읽고 읽으며 가까이 함으로 성령의 검인 말씀을 우리 심령 안에 간직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나아가 그 칼날에 능력을 부여하고 예리하게 세우는 길은 주님께서 제게 심령으로 보게 하신 것처럼, 그것은 기도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과 같은 새로운 생명력을 공급 받습니다. 기도할 때 베데스다 연못의 물이 동하여 내적 외적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의 날이 예리하게 세워져 어떤 사단의 궤계와 진도 베어버릴 수 있는 능력의 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도하십시요. 기도하고 기도하십시요. 기도는 아무리 강조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미 영적으로 죽어가거나 죽은 사람입니다. 사단에게 이기기는커녕 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요.


거룩한 두 손을 들어 그 팔이 내려오지 않게 기도하십시요. 그리하여야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고 올리어져 있을 때 아말렉을 쳐서 파한 것처럼 우리는 영적인 신앙의 여정에서 능히 우리 자신과 죄와 사단을 능히 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언제나 기도하고 늘 기도하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기도하십시요. 아멘! 할렐루야!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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