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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영성의 글] 사랑, 그 아름다운 향기 - 사랑의 향기 가득한 우리면 싶습니다.

초록 등불 2011. 9. 2. 18:06

 

※ 사랑, 그 아름다운 향기 ※

 

 

 

어느 여름날 도로 곁 보도블록을 걷고 있었습니다. 마침 도로변 울타리에 넝쿨장미가 고혹히 붉은 색으로 아름답게 피어 있더군요. 그 색과 모양이 너무 예뻐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다가가서 장미에 얼굴을 묻고 그 향을 맡아보았습니다. 훅훅한 장미의 향이 풍겨오더군요. 뭐랄까요.. 마치 고향의 따뜻한 언덕이나 어머니의 품처럼 행복함을 안겨주는 그런 향이었습니다. 참 행복했었습니다.


요즘은 거의 혼자 지내면서 많은 시간을 주님과 보내다보니, 기도를 드려도 그다지 오고 가는 말이 많지 않습니다. 아니 그다지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가령 사랑하는 연인이 오래간만에 만난 것이 아닌 매일의 시간을 같이 보낸다면 처음에는 오가는 말이 많겠지만, 점점 그다지 많은 말이 필요 없겠지요. 말이 없지만 그냥 서로 안에서 행복해하고 맘의 쉼을 누리겠지요. 그런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습니다.


그냥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거나 감사하는 시간이거나 혹은 그냥 주님 앞에서 제 영이 쉬고 놀고 안식하는 시간이 대분입니다. 그리고 주님도 많은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일종의 화두처럼, 간단한 물음이나 말씀을 던지시곤 세세히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실 때가 많습니다. 아니 그냥 제가 많은 말씀을 들으려 굳이 애쓰지 않습니다. 말씀하지 않아도 주님의 맘 아니까요.


그 화두처럼 던지시는 말씀 중 가장 많은 것이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거나 “사랑하라” 등의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네가 사랑하느냐?”라고 주님께서 물어 보실 때는 언제나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결국 이끄시고 궁극적으로 강조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삶으로 저를 이끄시려 하시는 것을 봅니다.


인간적인 남녀 간의 에로스 사랑이나, 혈육 간의 스톨케 사랑이나 친구간의 필로스 사랑이 아닌, 성령 안에서의 진정한 아가페의 사랑으로 이끄시려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아가페 사랑의 삶에선 아직 저는 어린아이이지요.


어쨌거나 주님이 가르치시고 원하시고 이끄시려는 삶이 사랑의 삶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신앙이던 그냥 삶이던 본질이고 생명임을 가르치시려 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성경이 말하는 궁극이 사랑이고 성경이 말하는바 궁극이 결국은 사랑이니까요.


하루 기도하고 있는데 그냥 주님 안에서 영이 쉬며 놀고 있는데, 잔잔한 심령의 눈에 두루마리 하나가 보입니다. 두루마리가 보이길래 에스겔처럼 그것을 먹고 배에 넣으며 창자에 채우라고 하시려나.. 그런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겔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그런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두루마리가 펼쳐지는데 글씨가 보입니다. 그리고 너무도 낯익은 성경 구절이 보입니다.


두루마리의 처음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주님은 기도 중 사랑에 대한 가르치심을 위하여 음성과 말씀이 아닌 생각이 아닌 이미지와 영상, 곧 내적환상을 이용하신 것이지요. 두루마리는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고 첫 머리에 하나님 사랑에 대한 말씀이 나온 것은 모든 신앙과 삶의 근본이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비롯됨을 가르치시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사랑의 삶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은 크고 높고 깊고 넓은 4차원의 사랑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아이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젖멎이의 신앙의 삶을 살아가다가 성령과 말씀 안에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를 구속하시고 생명을 주셨는지, 그 놀라운 4차원의 사랑의 깨닫고 한없이 통곡하고 우리 자신이 그 사랑 안에서 자아가 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삶을 걷게 됩니다.


두루마리의 첫 머리에 적혔던 말씀,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셨던 말씀, 저와 여러분 모두 기억할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사랑입니까? 세상도 적당히 사랑하고 하나님도 적당히 사랑하는 그런 이중적인 사랑입니까? 아니라면 그보다 세상은 조금만 사랑하고 하나님은 더 많이 사랑하는 그런 사랑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온전하고 순전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방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이성에게 다소의 사랑을 나누어 준다면 행복하시겠습니까?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니지요.


사랑의 속성은 그 대상을 향하여 전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 힘과 온 뜻을 다하여 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귀중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을 씻겨드렸듯이, 우리도 겉사람인 자아의 껍질을 깨뜨려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 방해되는 것들 우리의 모든 것을 깨드려 버리고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우리의 진정을 주님 앞에 쏟아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전한 나드로 그분의 발을 씻겨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 속한 다른 것을 사랑할 때, 우리를 향하여 간음하는 여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 속한 그 어떠한 것들을 하나님보다 혹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한다면 그것은 영적인 간음이라는 것이지요.


만약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또 다른 사랑을 한다면 그 마음에 질투의 불이 일어나듯이,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혹은 하나님보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한다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요, 소멸하시는 불이 되심을 성경을 말씀하지요.


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신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사랑은 그 대상이 둘이 아니요,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온전하여야 합니다.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마치 한 나라의 공주나 왕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그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오직 그 사람만을 갈망하고 사모하는 것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오직 구하고 사모하고 사랑하는 분은 하나님 그분이어야 합니다. 그분 만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랑이 아니라면 그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명까지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은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나 연인이나, 부모나 자식이나, 그 모든 것들을 주 안에서 사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이며, 주님께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마저도 주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아니 됩니다.


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마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그러한 온전한 사랑, 하나님 외에 이제껏 사랑하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결단이 없이는 결코 주님과의 온전한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님의 깊고 깊은 임재와 영광을 맛볼 수 없습니다. 진정한 하나님과의 사랑의 행복과 영광을 누리지 못합니다.


사람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한 사람이 아니 두 사람이나 그 이상을 사랑한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요, 행복도 없으며, 마음에 갈등과 고뇌만이 찾아올 뿐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부르심을 받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깨달음을 통하여 일찍 하나님 아닌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잘라버리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추구합니다. 가령 하나님 안에서의 마음의 기쁨이나 세상의 축복이나 때로는 은사나 능력이나 등을 추구합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나 그것이 전부라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사랑하여야 하는 것은 하나님, 그리고 주님 자신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먹고 마실 때만 하늘의 생명을 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을 주는 참 떡이요, 참 음료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하나님 보다, 혹은 하나님과 겸하여 사랑하고 있다면 결코 하나님의 깊은 임재나 그 영광을 맛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아닌 그 안의 축복이나 무슨 은사나 능력이나 구하고 있다면 온전한 생명의 합일의 비밀한 영생을 결코 맛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이 아닌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마음에서 다 끌어 모아서 내어다 버리십시오. 모조리 모아다가 불태워 버리십시오. 결단하고 던져 버리십시오. 그리하면 땅이 아닌 하늘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사랑의 물결이 그분이 임재와 영광 안에서 밀물처럼 밀려올 것입니다. 임할 것입니다.


주님은 또 이웃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너희 원수도 사랑하고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타락한 본성을 지닌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연약한 본성의 우리가 어떻게 변하여 이러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가능하며 말미암습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신은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그 분의 임재 가운데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그분의 깊은 기름부으심이 임하고 그 기름부으심 안에 우리가 잠길 때 우리가 아닌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고 흘러나와야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글의 서두에 넝쿨장미 이야기를 잠시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눈 것은 주님께서 이웃사랑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비유로 심령으로 장미를 보여주시며 언젠가 제가 길을 가다가 보고 맡았던 그 향을 기억나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미의 향은 정말 훅훅하며 포근함과 편안함과 행복함을 안겨주는 향이더군요.


주님께서 장미를 보여주시고 연상시켜 주신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될 때에 우리의 이웃들에게 그러한 훅훅하고 행복한 향기를 안겨주는 장미과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지요.


인지상정, 저와 여러분도 다 그렇겠지만 우리의 주변에 그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만날 때 마다 아름다운 장미의 훅훅한 향기와 같은 사랑을 안겨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면 세상과 삶이 얼마나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지겠습니까?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분과 깊은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면, 그분의 깊은 임재와 영광을 맛보면, 우리 속에 신령하고 거룩한 성전이 온전히 세워지고 영의 지성소에 주님이 진정으로 거하시게 되면, 우리는 변하여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곧 이웃을 향한 사랑, 자연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향한 거룩하고 질서있는 사랑으로 흘러나오게 됩니다.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용서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이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아직 미움과 용서하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온전한 빛에 거하지 못하고 어두움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요일2: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사랑 안에서 이웃과 더불어 자연을 향하여 까지도 온전한 사랑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그러한 온전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임재와 영광과 생명을 누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누군가를 마음속에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위하여 용서하십시오.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아 그 받은 기억이 아직도 남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로 나아가 그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도 치유를 받으십시오. 그래야만 우리는 하나님의 더 깊은 임재와 영광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도 경험해 보아 알지만 용서가 결코 쉽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나 용서하십시오. 십자가 앞에 나가서 주님의 사랑 앞에서 자신을 깨뜨려 타인을 용서하고 자신도 치유를 받으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마음에 어두움이 물러가고 온전한 빛이 임합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 드리는 사랑은 이 세상의 사랑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사랑, 거룩하고 너무도 아름답고 고결한 사랑, 곧 아가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가 사랑의 삶을 사는 정도로만 하나님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의 삶을 사는 정도로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누리며 맛보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사랑의 삶의 수준이 우리의 영적인 삶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성경이 말하는 영적인 삶이란, 은사와 능력의 삶도 좋지만, 결국은 진정한 초자연적 아가페의 사랑의 삶으로의 요청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한 초자연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과 임재로부터 말미암습니다. 곧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주님께 이 깊은 사랑의 진리에 대하여 몇 말씀을 간구하자, 다소 그 의미가 깊어 새기고 새기어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가르침을 주시더군요.


주님께서 감동하시며 가르치시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나도 사랑이다. 사랑이 성경이 말하는 본질이요, 모든 것들의 본질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으며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도 계시느니라. 존재하는 이 모든 것들은 사랑이라. 사랑 안에서 모든 것들은 하나이니라”


“깊은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비밀한 장막 안에 거하게 된다. 그분의 영광과 임재, 그분의 얼굴을 마주보듯 보게 되리라”


“사랑이 하나님의 비밀한 장막에 들어가는 열쇠이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늘 상고하고 묵상하며 이를 행하여라. 그리하면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이 모든 것들의 본질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이웃 사랑의 방법에 관하여 간구하니,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내가 먼저 행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주님의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또 그 사랑 안에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갑니다. 사랑은 둘이 아닌 하나이니, 하나님과 사랑 안에서 생명의 연합을 이루어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본질이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흐르고 나타나십니다. 우리의 이웃을 향하여 흐릅니다.


그 참된 사랑,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까지 주는 아가페의 하나님 사랑엔 때때로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한 삶엔 눈물도 있습니다. 고난과 겟세마뇌의 고뇌의 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많은 열매가 맺듯이, 그러한 삶에 풍성한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눈물과 고난과 아픔과 역경의 삶 같으니 하나님의 비밀한 장막에 거하며 누리는 기쁨과 영생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러한 진정한 사랑의 삶으로 한걸음씩 한걸음씩 나아가고 나아가는 사람들이면 참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성경이 말하는 궁극의 본질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삶입니다. 샬롬!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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