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등불/초록 영성수필

신앙편지, 깨어 있는 심령 - 읽어 보십시요. 다소 편하게 편지처럼 쓴 신앙의 글입니다.

초록 등불 2011. 9. 6. 02:05

 

※ 신앙편지, 깨어있는 심령 ※

 

 

 

오늘은 딱딱한 말씀이라기보다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서신서처럼 그냥 편하게 지체님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신앙에 관한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실은 오늘 제가 무척이나 공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바빴습니다.


공적으로는 제가 건강 등의 사정으로 오랫동안 목회자 정기 모임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뵙지도 인사드리지도 못한 듯 하여서 오늘은 한번 참여하여서 인사도 드리고 싶고 모두 뵙기도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이라 처음엔 다소 곤하긴 하였지만, 같이 예배드리고 지방의 일들을 의논하고 식사하는 시간 등이 오랜만의 나들이라 그런지 다녀오니 새롭고 다소 기분 전환도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오랜만에 갔는지, 크지도 않은 지방 교회 목회자님들 중 새로 부임해 오셔서 처음 뵙고 모르시는 분들도 상당수 되시더군요. 아무튼 만남의 반가움과 다소의 기분 전환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지금의 환경을 다들 아시니 지방의 일에 협력하지 못하거나 공적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도 다들 이해를 해 주시지만, 그래도 가끔은 들러서 인사도 드리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교회와 지방 목회자님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사랑을 참 많이 받았는데 늘 미안한 맘뿐이지요.


개인적으로는 며칠 전부터 조금 고민, 아니 고민이라기보다는 알아보아야 할 것이 있어 2-3일 그것을 좀 알아보느라고 다소 마음이 바쁘네요. 그래서 오늘은 인사를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또 내일은 적은 숫자가 오시더라도 예배모임이 있기에 그것도 다소 준비해야 하고, 이런 저런 일들로 지체님들에게 다소 소흘하였네요. 이해해 주십시요.


그래도 내일 예배 등으로 내일도 인사를 드리지 못하면 너무 소원한 듯 하여, 저녁 늦은 시간이지만, 주일에 나누었던 말씀을 간단히 전하며 인사를 드리고 자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말씀을 전하려면 다소 충분히 기도하고 제대로 기록해야 하는데, 하루의 일과 등으로 다소 곤하기도 하고, 그럴 경황이 지금 없어서 그냥 편하게 친구에게 쓰듯 말씀을 간단히 나누어 봅니다. 이해하세요.


주일날은 주님께서 “깨어 있는 심령”에 대해서 나누길 원하셨는데, 성경은 로마서 13장 11절-14절을 주 본문으로, 그리고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을 참고 본문으로 읽고 나누었습니다.


롬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롬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3장의 말씀은 성 어거스틴과 관련된 잘 알려지고 귀한 말씀이지요. “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 깨어라”, “어두움의 일을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편지의 형식이니 주일 설교의 주님의 감동하심의 대략을 편한 서술형으로 적어 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육과 혼과 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육은 우리로 하여금 본능을 느끼게 하지요. 식욕 수면욕 등과 같은 것을 느끼게 하지요. 그러므로 육은 우리의 본능과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둘째 혼은 심리학자들이 지, 정, 의의 세 가지로 그 기능을 말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이 혼은 이 세상, 곧 물질계와 현상계, 조금 더 나아가면 정신세계를 보고 판단하고 느끼는 그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영의 세계는 혼은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고전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위의 사도바울의 말처럼, 영의 일은 영으로라만 분별이 가능하고 인지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깨려면 가장 기초적인 것은 물과 성령과 피로 거듭나는 중생의 체험입니다. 초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살아나는 것이고, 조금 더 심화된 것을 말한다면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아 우리의 영이 그 충만한 성령의 역사 안에서 영적인 것을 성령 안에서 조명하심과 비췸을 받아서 배우고 깨달아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행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행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19: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행19: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행19: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행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19: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과 곧 성령 안에서 거듭나는 역사와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경험임을 알 수 있지요.


어쨌거나 우리가 깨어 있으려면 영이 거듭나야 하는 것이 기본이요, 또한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이 너무도 중요한 일이지요.


더욱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대부분 혼으로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세상이란 물질계, 곧 현상계이기에 혼이 대부분 활동하고 느끼고 인식하지요. 또한 세상은 이미 공중의 권세 잡은 사단에게 내어준 바 된 영역이라 더욱 우리는 영적인 것들보다는 혼적인 것들, 세속적인 것들, 죄악의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거듭나고 성령의 세례를 받음 위에서, 또한 날마다 영적 생명력을 공급 받으며 또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만 우리는 깨어 있을 수 있지요.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하지요. 기도로 쉬지 않고 영이 호흡할 수 있어야 하고, 말씀으로 날마다 영이 하늘의 만나를 공급받아야 하지요. 그래야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날마다 기도하고 날마다 말씀을 읽는 경건의 시간이 없다면, 호흡하지 않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우리의 육신이 죽듯이 우리의 영도 기력을 잃게 됩니다. 잠을 자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보지 않는다면 영은 잠들고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반드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니 참 쉽고도 참 어려운 길입니다. 참 쉽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그 능력과 기쁨을 누리게 되면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을 가벼움이니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참 쉬울 수도 있지만, 그러한 영적 성숙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육성을 죽이고 싸우는 과정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참 어렵기도 한 길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맞이함이 끝이 아닙니다. 또한 성령 세례를 받음이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입니다.


그것은 단지 애굽에서 막 나온 것에 불과합니다. 기다리는 것은 성숙을 위한 광야의 연단입니다. 그 과정을 주님 앞에서 온전한 감사와 겸손과 순종으로 잘 통과하면 영적 가나안의 삶을 살게 되지만,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듯이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광야에서 그 생을 많이 마감하기도 합니다.


그 자신의 애굽에서의 육성과 죄성을 죽이는 광야의 시간, 그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와 말씀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두 기두이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별히 기도하지 않는다면 엔진이 꺼져버린 차와 같으며, 중앙의 엔진이 멈춰버린 공장과도 같습니다. 기도하여야 합니다.


낮의 전도의 곤함에도 불구하시고 늘 혼자 산으로 올라가셔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도 기도없이 승리할 수 없으시기에 기도하셨는데 우리는 얼마나 더 기도하여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깨어 있는 심령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빛의 자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길 원하십니다.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밤에와 같이 방종하지 말고 낮에와 같이 단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선한 뜻을 분별하며, 의와 진리의 삶을 살아가며, 우리의 소명을 발견하고 깨달으며 감당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 1호,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곧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무리 반복되어도 지나치지 않음 같이, 회개하라는 말씀이 아무리 반복되어도 우리의 죄성 때문에 지나치지 않음 같이, 깨어 있으라는 말 역시 아무리 반복되어 말해져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과 혼이 너무도 강하고 둘러싼 모든 환경이 또한 그러하여 우리는 수시로 영적인 잠을 자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게 가장 빈번하게 이르시는 말씀 중의 하나가 바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군대에 가면 물론 초소를 지키는 파수병들도 깨어 있어야 하겠지만, 소대장과 같은 지휘관은 더욱 그러해야겠지요.


옛날 사극 등을 보면 성을 지켜야 할 성주나 장수가 술과 세상에 취하여 흥청거리다가 함락 당하고 망하는 것을 많이 보여주지요.


한편 우리는 영안이 열리지 않아서 저 영계의 수많은 하나님과 그 나라에 속한 아름다운 영들과 사단과 그 나라에 속한 악한 무수한 영들을 보지 못하여서 그렇지, 이 세상의 배후에는 우리를 두고 온통 영적 존재들의 치열한 전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유한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도 건드리시지 않습니다. 사단은 말할 것도 없구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사단과 그 나라의 악한 영들을 좇느냐는 결국 우리의 의지와 마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좇아 영으로 살면 생명과 평안을 얻고, 사단을 좇아 육으로 살면 사망과 곤고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치열한 영적 전쟁의 와중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 가운데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는 말씀처럼, 생명 같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길은, 늘 부르짖어 기도하고 묵상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늘 주님을 힘써 가까이 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이 세상의 신 곧 사단보다 크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무런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행19: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행19: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행19: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행19:16 악귀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세상보다 크신 그분이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가 영적으로 잠들고 죽으면 스게와의 일곱 아들처럼 세상의 신에게 지고 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신앙서적을 읽다가 본 기억이 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할머니 노파가 귀신이 들렀는데 몇 사람들이 그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다가 귀신을 쫓아내기는커녕 육신적으로 힘도 없는 할머니가 귀신의 힘을 덧입어 청년들을 무슨 베게처럼 하나씩 둘 씩 들고 돌려서 내팽개쳤다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많이들 다쳤겠지요.


사단과 귀신은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 안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고 힘도 쓰지 못하고 순종하고 복종하지만, 결코 단순한 육신의 우리보다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애굽의 술사들이 각종 이적을 모세를 따라 행하였듯이 사단도 영적 존재이며 나름의 악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만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세상보다 크신 그분이 참되이 거하시면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매맞은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며 쫓겨가는 초라한 존재가 맙니다.


제가 신학을 두고 고민하며 기도할 때 주님이 보여주신 꿈을 몇 번 말씀드린 기억이 납니다. 제는 목회자의 길에 자신이 없어서 고난 가운데서 많이 주저하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꿈을 통하여 깨우침을 주셨었지요.


아주 배운 것도 없고 여러 가지로 인간적으로 부족한 면이 많은 목회자 한 사람이 강물이 흘러가는 곳에 서 있었습니다. 영의 세계는 그냥 압니다. 그냥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이 꿈속에서 느껴지고 알아지더군요.


그런데 그가 강물에서 뱀을 한 마리 집어 올리더니 머리부터 꼬리까지 손으로 훑어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강물에서 또 원숭이 한 마리를 집어 올리더니 마찬가지로 죽여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강둑에서 염소가 울고 있는데 손으로 그 혀를 뽑아 버렸습니다.


그러더니 그 목사님이 저를 보고 “이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러시더군요.


그 꿈속에서 뱀과 염소는 마귀의 상징으로 나오니 그렇게 이해했지만, 원숭이가 참 궁금했는데, 영적 전쟁에 대한 글들을 보니 사단과 귀신이 원숭이의 형상, 개구리의 형상, 또는 파리떼 등의 형상으로 많이 나오더군요. 그러한 글들 속에서 원숭이 또한 사단과 귀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가되었지요.


마지막으로 위글스워스 목사님과 관련된 한 이야기를 하고 편지와 같은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내일 모임을 위해서 다소 기도하고 자야지요.


위글스워스 목사님께 한 통의 편지가 찾아옵니다. 그것은 어떤 한 가정에서 한 사람이 귀신이 들려서 오셔서 축사를 해 달라는 애절한 요청의 편지였답니다. 하나님의 사람, 위글스워스 목사님은 오라는 곳마다 다 가실 수는 없었지만 ‘가라’는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으면 거리에 관계없이 순종하셨다고 합니다.


위글스워서 목사님이 그 집에 들어가니 벌써 귀신이 알아차리고, 귀신들린 자가 섬뜩한 뱀의 눈으로 다가와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는 “너는 나를 쫓아낼 수 없어!”라고 위협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의 눈빛은 사악합니다. 사악함으로 빛이 납니다. 마치 죽음의 위협에 몰린 고양이의 눈처럼 기이하고 사악한 눈빛을 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섬뜩하고 무섭지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 그 믿음 안에서 강하고 담대했던 하나님의 사람 위글스워스 목사님은 눈 하나 꿈적하지 않으시고 “내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시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라!명하니, 독사의 눈으로 달려들던 큰 무리의 귀신이 꼬리를 축 내리고 하나하나 자기의 이름으로 대고 낑낑거리는 강아지처럼 쫓겨나갔다더군요. 할렐루야!


저의 꿈을 통해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처럼, 위글스워스 목사님의 간증,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심령에 권능으로 내주하고 계시면, 우리가 자아를 쳐서 복종시켜서 그분이 역사하시게만 하면, 우리를 통해 예수님과 같은 동일한 권세와 능력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능히 세상과 속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놓는 비결은, 우리를 통하여 그러한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비결은, 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과 성령 안에서 우리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자고 있다면 스스로 흔들어 일깨우는 것입니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어둠의 일들을 버리고 낮에와 같이 단정한 삶을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으며, 이제는 우리의 소망이고 소망을 둔 바 하늘을 품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서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기도하십시요. 늘 깨어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요. 늘 잠자려 하는 영을 말씀과 기도로 일깨우고, 때로는 울부짖고 통곡하는 해산의 기도로 죄성과 육성의 여리고를 무너 뜨려 버리십시요. 부르짖을 때 여리고가 무너졌듯이 우리의 육성이 무너집니다. 외칠 때 여리고가 무너졌듯이 하나님을 향하여 소리 높여 부르짖어 기도하고 찬양할 때 사단의 견고한 진도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편지 형식으로 쓰다보니 다소 두서가 없지만, 말씀이 작은 깨달음이 되어서 이제는 밤의 일,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며, 밤과 같이 방탕하지 말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맡겨진 바 소명과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고, 의와 진리의 파수꾼이요, 전파자로써의 복되고 생명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면 참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롬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롬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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