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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날에는 (시련극복)

초록 등불 2011. 10. 26. 20:53

 

 

※ 곤고한 날에는 ※

 

 

 

우리가 걸어가는 생의 길에는 참으로 이런저런 아픔과 어려운 문제들, 수고의 무거운 짐들이 참 많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러한 수고로운 생은 하나님 앞에 원죄를 범한 한편 생의 본질입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길에는 본시 아픔과 수고로움이 많다는 것을 먼저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만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길을 지나가는 누구를 잡고 물어보아도 힘들고 괴로운 일이 없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의 삶은 한편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삶인 것을 알아, 이곳에 영원한 소망과 마음을 두지 않고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구속하고 예비하신 소망의 나라에 눈과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닌 참 소망과 기쁨을 잃지 않는 비결이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걸어가는 생에는 이러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고난 외에 여러 가지 의미의 고난도 다가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릇되게 행하여 다가오는 징벌성 고난, 우리를 연단시키고 성숙시키려는 광야의 고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고난, 그리고 자연적인 고난 등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고난의 삶, 고난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 어려운 문제의 해결을 받으며, 또 고난의 시간 동안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고 지혜로운 신앙인의 자세인 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고난의 시간에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고 하나님 앞에 돌이켜 회개할 것들은 회개하십시요. 환경의 어려움만 바라보고 그곳에서만 벗어나려고 애쓰지 마시고 그 어려운 일들과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과 뜻을 분별하려고 애쓰십시요.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생의 길에서 만나는 고난 중 많은 것들은 하나님의 징계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보면 잘 나타나지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듣지 않습니다. 그러시면 하나님은 환경의 매를 드십니다. 그래서 극심한 고난을 당합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부르짖어 살려달라고 회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셔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그들은 또 다시 시간이 조금 지나면 범죄합니다. 또 매를 맞습니다. 또 부르짖습니다. 또 구원해 주십니다. 이런 역사의 순환이 성경이 보여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이지요.


이 말은 곧 우리의 생의 역사도 같은 순환의 반복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환경이 여유롭고 평안할 때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스스로 돌이키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다가 그래도 듣지 아니하면 징계의 매를 드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의 악순환을 우리 또한 수없이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다가오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고난의 시간에는 우선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함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릇되게 행하였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으면 회개하고 돌이키며 하나님 앞에서 겸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근원적인 고난 외에 우리 생에 다가오는 고난에는 여러 가지 성격의 것들이 있습니다. 징계성 고난, 연단과 성숙과 훈련을 위한 광야의 고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 자연적인 고난 등.


그러나 이 모든 고난을 다 모아서 함께 살펴보더라도 고난의 시기에는 그 환경적인 어려움 속에서만 벗어나려고 애쓰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유 없는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이르신 것입니다.


모든 일들은 먼저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다음에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영적인 세계, 곧 하늘에서 먼저 결정이 되고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이 우리의 현실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생의 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우연이란 없는 것입니다. 징계하고 돌이키시려는 뜻이시던지, 성숙과 연단을 위한 것이던지,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고난과 환란의 때에 어떻게 행하는 것이 옳은지 잘 보여주는 사람이 다윗이지요. 그는 우리야의 아내의 일로 인하여 징벌이 예언된 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어려운 시간을 걷게 됩니다.


그 때 사울의 집 족속인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왕을 저주하지요.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삼하16:7-8)


그 모습을 지켜본 신하 장수 아비새가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라고 고하지요.


이 때 다윗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라 말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게 내가 그릇 행하였으니 이러한 일이 내게 생겼다 회개하고 자숙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요셉의 고난도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지요.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애매한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충분히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고 너무도 억울하지만 그곳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끝끝내 있음을 믿었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혈족과 뭇민이 7년 큰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대한 일을 해 내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과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다윗과 더불어 더 위대한 교훈을 주는 인물이지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온 고난이 징벌의 고난이던지, 아니면 연단과 성숙을 위한 고난이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이던지, 아니면 사도 바울처럼 우리를 영적으로 더 강건하게 하려는 선한 가시이던지, 우리는 다윗처럼 또 요셉처럼 환경적이 어려움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분별하려 애쓰며,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면 회개하고, 연단의 의미라 느껴지면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며, 선한 가시라 분별되면 하늘 영광을 위하여 더 높은 하나님의 뜻이라 감사하며 언제나 믿음으로 나아가야하지요.


실상 신앙의 길의 정석은 어려운 역경의 길에서나 평탄한 순경의 길에서나 언제나 오롯이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지요.


평탄의 길에서나 역경의 길에서나, 징벌성 고난의 시간에나 광야에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연단과 성숙을 위한 그러한 시간 속에서나, 때로는 이해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요셉과 같은 시간 속에서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언제나 오롯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 말씀을 묵묵히 순종하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징벌을 하심도 실상 돌이켜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연단과 성숙을 위한 고난도 실상 우리에게 더 나은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선한 가시의 고난도 하나님의 사랑이며,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모든 고난은 실상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본질적인 수고로움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의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탄의 길도 역경의 길도, 평안의 시간도 어려움의 시간도 모두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어려움을 당할 때는 너무도 괴롭고 때로는 죽을 것만 같습니다. 앞이 캄캄합니다.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듯 모든 일들과 시간이 지나고 나면 때로는 즐거웠던 시간들이 고통으로 다가오고, 오히려 고난의 시간이 유익했던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죽을 것만 같고 두렵고 떨리며 힘들지언정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오롯이 지키며, 풍랑이 일고 바람이 일렁이며 환경이 어떠하던지 오롯이 하나님만을 신실하게 믿으며 사랑하며 경외하고 그 말씀에 오히려 더욱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순종하십시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지요. 하나님을 믿고 싶은데 자꾸만 불안하며 두려워하고 싶지 않은데 두려움이 다가오고, 원망하고 싶지 않은데 원망과 불평이 나오려 하고 마음과 생각이 마음대로 되지 않지요.


이 때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5:13)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의 때에는 그 깊이가 깊을수록 그 깊이만큼 더욱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그것을 이기고 견뎌내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킬 힘을 얻지 못합니다. 고난의 깊이만큼 더욱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믿음과 능력이 오는 것입니다. 위대한 옛 믿음의 선조들처럼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고 사자의 입을 봉하기도 하고, 구차히 목숨을 연명하기 보다는 더 나은 나라를 바라보며 기꺼이 주를 위해서 생명까지 아끼지 않았던 그러한 믿음과 능력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지켜야 할 너무도 중요한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첫째 생각입니다. 성경은 생명의 근원이 마음이므로 마음을 지킬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 곧 생각을 지키는 길이 우리의 신앙과 삶과 영적 전쟁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입니다. 모든 것들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되니까요.


때로는 우리의 어려운 환경의 배후에는 사단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아무런 역사를 하실 수 없듯이, 사단도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이는 중요한 영적인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으나 고향 땅에서는 아무런 능력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우리가 당신을 믿지 않을 때 아무런 일을 하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역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그 불신앙 가운데 염려, 불안, 두려움, 걱정, 근심 등에 휩싸여 갈수록 그 역사가 강력해지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 가운데 아무런 두려움이나 염려나 걱정을 하지 않으며 고요한 평강을 유지하면 사단을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영적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경과 고난의 시간에 더욱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이제는 끝난 것 같고 망한 것 같고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의지하여 물리치며 마음의 생각을 밝고 소망적이고 말씀 안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성경을 말합니다. 비록 죄를 범하여 징계를 받는다 할지라도, 또는 연단과 성숙을 위한 고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더불어 어떠한 경우에라도 말씀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때, 바라는 실상을 믿음 안에서 밝게 그릴 때 미래는 밝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언정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염려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면, 더욱 사단의 역사는 강해지고 문제는 꼬여지고 얽혀지고 해결의 실마리가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는 생각을 지키십시요. 그런데 그냥 지켜집니까?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면 마음과 생각을 지킬 힘과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둘째로, 말을 지키십시요. 성경이 곳곳에서 말씀하듯이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말하는대로 됩니다.


약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약3: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저는 요즘 말 한마디 내 마음대로 잘 하지 않습니다. 아니 성령께서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한 마디도 제 뜻대로 잘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말의 무서운 위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말에 무서운 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에는 창조력이 있습니다. 파괴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미래를 보려면 그 사람의 말을 보면 압니다.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은 생각하고 믿는 대로 그리고 말하는 대로 생이 대부분 흘러갑니다.


아이를 향해서 화가 나서 무심코 하는 저주의 욕설, 누군가를 향해서 화가 나서 무심코 뱉는 저주의 말, 그러한 것들이 아이나 이웃이나 나아가 자신에게 결국 화로 돌아오는 무서운 말의 세계를 사람들을 잘 모릅니다.


생각이나 말에 대한 것들은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논하고 싶지만, 어쨌거나 입술의 말을 지키십시요.


아무런 상황이 암담하고 어려워보여도 부정적인 말, 원망의 말, 남을 저주하는 말, 정죄하고 판단하는 말, 시기하고 질투하는 말, 어쨌든 성경이 금하는 말들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요. 한 우물에서 단물과 쓴물이 날 수 없듯이, 언제나 은혜와 덕스러운 말, 감사와 믿음의 말, 기쁨과 찬미의 말을 하시며 입술을 지키십시요.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오늘을 비록 빗속을 거니나 내일을 태양을 보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감사와 믿음과 소망의 고백을 드리십시요. 우리의 많은 미래가 우리의 말에 달려 있습니다.


“나는 죽을 거야”, “망할거야”, “이런 젠장” 이런 식의 하나님을 향한 것이던 아니던 부정적인 말과 생각은 사단과 어두움의 세력을 그 마음과 자신의 환경으로 불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옥중에 있었으나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였던 바울과 실라처럼 입술의 말을 지키십시요. 소망과 믿음의 말, 은혜와 감사의 말,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하십시요. 사람의 말에는 말대로 되게 하는 무서운 창조력과 파괴력이 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대로 됩니까?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요. 그렇게 기도할 때 마음을 지키고 생각을 지키고 말을 지킬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너무도 기초적인 말 같지만, 행동을 지키십시요.


성경이 제시하는 중요한 영적 진리 중의 하나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당하는 불행이나 아픔은 연단이나 등등 많은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편 어제 내가 심은 악한 씨앗의 열매를 거두는 것인지 모릅니다.


다윗은 한 때의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너무나 쓰디쓴 동일한 아픔을 다름도 아닌 자식들로부터 당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후궁을 품에 품어 버리는 수치와 후욕을 당하고 가족 간에 살인이 일어나고 반란이 일어나는 뼈아픈 열매를 먹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어려운 시간을 거닐고 계시던지, 아니면 평탄한 시간을 걷고 계시던지,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선과 행복의 씨앗을 심으십시요.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그리고 열매는 씨보다 훨씬 많고 큽니다.


남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면 자신은 피눈물을 흘리게 되는 상처로 반드시 돌아옵니다. 남을 빙그레 미소 짓게 사랑의 씨앗을 뿌리면 자신은 언젠가 박장대소할 수 있는 축복의 열매가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지금 어떤 시간을 거닐고 계시던지, 특히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거니신다면 더욱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고 종요하게 행하십시요. 그것이 징계의 고난이던지, 연단의 고난이던지 어떤 고난이던지 그 시간을 줄이는 것입니다. 광야를 떠나 가나안으로 속히 들어가게 되는 영적 비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음대로 됩니까. 생각을 지키고 말을 지키고 행동을 삼가 말씀대로 행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됩니까. 너무도 깊은 고난에 정신도 못차리겠고 차라리 죽고만 싶은데 그것이 됩니까.


됩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해도 안되던데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죽기 살기로 기도해 보십시요. 됩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고난이 깊으면 상처가 깊으면 환난이 깊으면 그 깊이만큼 더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참으로 이러저러한 생의 수고로움과 어려움으로 신음하여 신앙상담과 기도요청을 해 오시는 분을 많이 봅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생의 어려움, 저도 역시 한편 겪으며 살아가고 또 겪어본 것들도 많기에, 겪어본 아픔이라면 더욱 지체님들의 아픔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모든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돌아보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성숙해야 할 것은 성숙하려 애쓰고, 오롯이 하나님을 믿으며 사랑하며 순종하고 경외하는 길이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벗어나 평안의 시간으로 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모든 고난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도 없고, 또 그 원인을 알 수도 없습니다. 다만 고난의 길에서나 순경의 길에서나 생사화복은 주권은 하나님께 있기에, 요셉처럼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순종하는 것이 고난의 시간을 축복의 시간으로, 어려운 사건을 복된 사건으로 바꾸는 비결인 것입니다.


또 사도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더 선한 뜻 가운데서 평생 거두시지 않는 가시를 주신들, 비록 우리는 이해하고 용납하기 힘들지언정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하는데, 믿음으로 아멘으로 순종하고 순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썩고 죽을 이 땅의 복이 아닌 쇠하지 않을 하늘 영광의 더욱 값진 것을 주실 것이니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눈과 마음을 가져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육신의 편안함과 행복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성숙과 영혼의 생명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 영혼의 생명을 위하여 육을 멸하여 버리십니다. 재물을 멸하여 버리십니다. 명예를 멸하여 버리십니다. 그리고 더 차원이 높은 영적 성숙과 하늘을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고전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나 하나님의 눈과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딪혀오는 환경의 풍랑만 보며 당황하고 그것만 벗어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행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묵상해보며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에는 실상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실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의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역경의 때이던지 순경의 때이던지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으며, 사랑임을 믿으며, 죄에 대한 징계라고 분별이 되면 회개하고, 성숙을 위한 연단이라고 분별되면 인내함으로 온전함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의 가시라면 아파도 하나님의 높은 경륜과 사랑을 믿으며 품고 살아가야 하겠지요.


우리의 생에는 실상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맡기고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실상 가장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조차도 영원한 새 나라, 새 생명으로의 길임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엊그제 영성 집회 예배를 인도하려고 하는데, 예배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실상 연약인 인간인 저는 때로 두렵습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참석하시는 분들에게 영적인 은혜와 양식을 누리게 하겠습니까. 더욱 의례적으로 드리는 일반예배가 아닌 영성 집회 형식이라 다가올 때마다 마음의 부담이 적지 않지요.


그 때 제게 이르신 주님의 한 말씀을 나누며 글을 마칩니다. 예배를 위하여 다소 염려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 앞에 주님은 몇 말씀 이르셨는데 “네가 할 일은 네가 하고, 내가 할 일은 내게 맡겨라”고 이르셨습니다. 듣고 보니 참 이치에 맞고 용기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예배를 위해서, 오시는 분들의 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기도로 준비하고 말씀을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픈 분들이 오면 기도해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며 제가 할 일이니까요. 나머지 성령의 역사나 치유의 역사는 하나님 그분께서 행할 일이니 그분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안고 끙끙거릴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생의 길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어디 하나라도 있습니까. 그러므로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우리의 할 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믿고 순종하며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일은 하늘의 일은 하늘에 믿음으로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담에도 하늘을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고 했으니,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성을 다할 때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에게 최선을 주시겠지요. 저와 여러분 모두 언제나 기도함으로 역경에서나 순경에서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과 경외와 순종을 잃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최선의 생의 길을 함께 걸어갔으면 참 기뻐겠습니다. 아멘! 아멘!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글쓴이: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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