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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원리] 회복의 순서

초록 등불 2011. 12. 7. 17:19

 

  [영의 원리] 회복의 순서

 

가끔 병원에 가보면 병원마다 사람들로 북적이며 대부분 꽉 차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복된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부러워하는 의사분들은 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힘겨움을 겪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눈만 뜨면 매일 아픈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니까요. 아마 그분들의 마음의 눈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아픈 사람처럼 보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성경도 세상에 수많은 아픔이 가득 찬 곳을 묘사한 곳이 있지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베데스다 연못가를 찾으셨는데, 그곳에 행각 다섯이 있었는데 각종 병들을 앓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요.


요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요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요5: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요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요5:5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죄인 중의 죄인처럼 부족한 종에게 극렬한 풀부물의 고난의 통과하게 하시며 깨어지지 않은 육성과 자아와 성품의 문제들을 다루시며 연단하시고 더불어 조금씩 영성과 은사능력의 세계를 열어 주셔서, 예언적 중보기도를 감당하게 하신 후 이런저런 분들로부터 종종 신앙상담이 들어옵니다.


보통 일상의 평범한 문제들이면 상담을 해 오진 않으시겠지요. 대부분 들어보면 기막히고 한계 상황적 아픔들을 가지고 상담을 해 옵니다. 사람들이 한두 분 자꾸만 늘어가니 저도 헷갈려서 상담노트를 만들어 놓고 기록을 살펴가며 지속적으로 상담을 해 가는데, 노트를 펼쳐보면 중환자 병동처럼 영적, 심적, 육적인 아픔들로 가득합니다. 저도 참 마음이 아픕니다.


가끔 성령께서 중보의 영으로 임하셔서 그들의 마음의 아픔을 느끼게 할 때면 정말 힘겨울 때도 많습니다.


어제도 중보기도를 하는 가운데 두 분을 위해서 기도하니 각각 이런저런 삶의 상처 가운데 성격이 다른 악한 두 영들이 배후에 역사하는 가운데 이런저런 아픔을 겪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을 위하여 어떤 영인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통화를 하여보면 기도 속에서 분별된 것과 같은 영의 흐름 가운데 그런 느낌과 감정의 지배를 받으면서 지내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목회자는 물론 일반 그리스도인의 대다수가 영적 전쟁에 대해서 거의 무지합니다. 그러나 제가 열어주신 영적 세계 속에서 경험하고, 또한 그러한 영적 전쟁에 관하여 사역을 하신 분들의 여러 글들을 참고해볼 때 영적 전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치열하고 격렬하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생각하듯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주님께서 십자가에 모든 죄의 권세를 멸하시고, 모든 사단의 권세를 합법적으로 무력화하여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전파를 우리에게 명하셔서 우리가 복음의 불모지로 들어가서 피를 흘리는 고난의 십자가가 남아 있듯이 죄와 싸우고 사단과 싸워야 하는 남은 영적 싸움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일반적으로 그러한 세계에 대해서 경험하지 못하셨거나 알지 못하시고 상식선에서 알고 있는 분들의 생각처럼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성경구절은 우리의 승리가 확정되었고 우리가 능히 이기며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요일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이러한 구절들을 보면 사단과 그 나라에 속한 귀신들은 우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고 그냥 단순하게 명령하거나 기도하면 다 쉽게 쫓겨나가는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절대로 한 면만 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세상의 모든 일들을 이끄신다는 그러한 의미의 말씀이 있는가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의 자유의지로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씀하는 곳도 있습니다. 어떤 곳은 그냥 예수님만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을 쉽게 얻는 것처럼 말씀하는 곳도 있지만, 어떤 곳은 행함이 없으면 헛된 믿음이며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이처럼 다양한 면을 말씀하는데, 여기서 깊은 신학적인 논의를 하기는 그러하고, 어쨌거나 하나님의 역사는 이런 면과 저런 면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음으로 어떤 성경의 한 본문만을 취하면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고 극단으로 치우치게 되고 심화되면 이단으로 흐르게 되지요. 예를 들어 귀신론에 심취해서 “모든 병은 귀신이 준다”라고 해 버리면 극단이요, 잘못된 신학적 오류로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균형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위에서 사단이나 귀신이나 아주 쉽게 우리가 쫓아내고 지배할 수 있는 것처럼, 영적 전쟁은 너무도 싱거운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본문이 있는 반면에 결코 그러하지 아니함을 보여주는 본문도 있지요. 바로 에베소서의 영적 무장에 관한 말씀과 베드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엡6: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이러한 본문은 결코 영적 전쟁의 쉽지 않다는 또한 보여 줍니다. 대적 마귀를 우는 사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자는 맹수 중의 맹수요, 폭군 중의 폭군인 맹수입니다. 배고파 울부짖으며 다니는 맹수 중의 맹수처럼, 폭군 중의 폭군처럼 사단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마귀를 우는 사자에 비유한 것은 자신의 영적인 사역에서 그 전쟁의 격렬함을 경험하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사도바울도 그 싸움이 쉽지 않기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온 몸을 튼튼히 무장을 하고, 전쟁 중인 군인처럼 깨어 경성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우리가 능히 그들을 이길 수 있으며 이길 수 있는 모든 권한과 능력을 주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우리 자신만 두고 보면 어쩌면 두려운 존재일 수 있으나 예수 안에서는 궁극적으로 능히 대적하고도 남는 이미 패배한 영적 원수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가지가지의 술책과 거짓과 현혹과 그리고 우리의 기질적 약점을 알아서 끈질기고 집요하게 공격을 하여 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영적 권한과 능력의 분배가 있듯이 사단의 나라에서도 능력이 강한 존재와 약한 존재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믿음의 사도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글을 보면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은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그러한 것들도 권위와 능력의 질서가 있어서 어떤 것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이며 어떤 것들은 상대적으로 강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다루시는 최상위의 악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사단과 그 나라에 속한 존재들도 상대적으로 능력이 약한 것들에서부터 상대적으로 강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상대하기 쉬우나 어떤 것들은 자신이 상대하기 어렵고 상대해서는 안 되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영적 전쟁을 많이 치르신 분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자신이 다룰 수 없는 더 강한 존재의 어둠의 존재는 느끼지 못하게도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사역자나 성도를 지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지요.


가령 우리가 사는 집에 족제비가 한 마리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족제비는 우리가 능히 잡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놈이 교묘하여 우리가 잘 때 와서 깨물고 도망을 쳐 버리거나 가지가지 교활한 술책으로 괴롭혀 오면 잡기도 상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사단과 귀신을 상대함에 있어서 우리가 경성하고 무장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사단의 교활함과 집요함이 첫 째 이유입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요, 죽이려고 오는 도둑처럼 교활하며 집요합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이유는 앞에서도 보여드린 것처럼 아주 쉽게 모든 사단과 그 나라에 속한 존재를 다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존재는 강하여 더 강한 영적 권세와 능력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다룰 수 없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목사님, 성경이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능히 이길 것을 말씀하는 본문이 많은데 영적 전쟁이 그리 어렵고 때로는 능력없이 권세만으로 이길 수 없나요?”라고 물어보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을 잘 보십시요. “우리 안에 계신이”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는 자라면 능히 모든 사단을 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너무 가벼운 의미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본문을 보면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으리라”라고 분명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무조건 낫던가요? 대부분 어떤 병에서든지 한순간에 치유되던가요? 아니지요.


성경을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무엇이든지 구하면 대부분 즉시로 주시던가요? 아니지요?


우리는 그 성경의 한 본문만이 아니라 여러 본문들을 총체적으로 살펴,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시게 하는 모든 영적인 원리들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것들이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떠난 삶 등을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본문을 보면 다른 영적 요소들이 충족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지요. 곧 진정으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단서이지요.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러므로 병든 자를 치유하거나 혹은 사단과 귀신에 억눌림을 당할 때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간단히 손을 얹으면 모두 낫거나 혹은 간단한 명령만으로 쉽게 떠나는 등의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다양한 원인과 이유로 병들이 발생하기에 다양한 영적인 진단과 그에 알맞은 처방을 하고, 또 성령 안에서 능력을 받고, 특별히 신유의 은사의 강한 기름부음을 받을 때 더욱 강력하게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단과 귀신도 그냥 영향을 주고 구속을 하고 나아가 완전히 장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통로가 되는 죄나 상처 등의 쓴뿌리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한 다양한 원인들을 분석하고 또 영분별의 은사 등으로 귀신의 정체를 밝혀내어야 하고 영향을 끼치고 있는 어두움의 영들의 존재와 능력 정도에 따라서 다양하게 우리가 대응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권세 차원으로 다룰 수 있는 약한 낮은 차원의 귀신들이 아닌 경우, 그들을 상대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영분별의 은사와 그리고 능력행함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들을 세워서 아무리 악한 영이라도 능히 좇아낼 수 있는 하늘의 영권을 직임과 소명에 따라서 부어주시는 것이지요.


기도를 통하여 영적 의식세계로 들어가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단과 귀신의 능력 정도에 따라서 저항을 해 오는 힘의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어떤 것들은 정말 거세게 저항을 해 옵니다. 마치 해일이 덮치듯이 저항을 해옵니다. 이런 경우는 여러 사역자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축사하고 중보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영적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성경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실상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능력을 누리지 못하고 역사를 거의 맛보지 못하는 것처럼, 한편 성경에서는 사단과 귀신과의 영적 전쟁이 너무도 쉽게 표현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치열한 전쟁으로 표현하고 있듯이 실제적으로는 그리 간단하고 쉬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와 능력과 강력한 영권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찰스 프랜시스 헌터 부부의 책을 보면 어떤 귀신들린 할머니와 영적 전쟁을 벌이던 젊은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귀신이 주는 초자연적인 힘으로 폭력을 행하는 할머니에게 이러저리 던져지고 다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할머니가 장사처럼 청년들을 베게를 잡아 돌리다가 던져버리듯이 던져버립니다. 그래서 많이 다친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러한 청년들 중에는 방언을 말하며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예들을 볼 때 정말 심각하게 귀신들린 사람의 축사의 경우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한 귀신들림의 경우 축사는 혼자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서 많이 다루어본 경험자와 팀을 이루어 함께 축사를 하며 축사의 원리와 경험을 쌓아야 하는 것입니다. 방언 등의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다 가능한 것도 아니며, 진정한 축사를 하려면 영분별의 은사와 아울러 강력한 능력행함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원수 사단마귀와 그 세계는 우리가 결코 두려워할 존재는 아닙니다. 다만 그 싸움이 생각처럼 단순하고 쉽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영계와 현상계를 아우러 지존자이며 절대자이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기름부으심을 받고 함께 힘을 모으면 그 어떤 사단의 진도 혁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의 치열함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다보니, 다소 곁길의 말씀이 길어졌습니다. 영적 전쟁과 축사에 관한 글들은 다음에 더욱 상세하게 설명드릴 기회가 오겠지요.


다시 오늘의 주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어제도 중보기도를 하는 가운데 두 분을 위해서 기도하니 각각 이런저런 삶의 상처 가운데 성격이 다른 악한 두 영들이 배후에 역사하는 가운데 이런저런 아픔을 겪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지혜의 말씀으로 이런 경우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가야하고 어떻게 회복하여야 하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이런저런 어두움의 요인으로 침체에 빠져버린 영적 생명을 회복하려면 첫째는 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지은 죄가 있다면 철저히 회개를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면 십자가 사랑 앞으로 나아가서 철저히 치유와 회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악한 영이 각 다른 수준으로 영향을 주고 있을 때는 축사를 하여야 합니다. 먼저 이러한 일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영이 자유함을 얻고 빛을 얻고 해맑은 미소를 찾아서 성령의 기름부으심 가운데 영광의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죄와 상처를 다루어야 하는 것은 이것이 사단에 속한 존재들이 들어오고 영향을 주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루지 아니하면 사단의 영향을 계속 받게 되므로 이것을 다루면서 동시에 축사를 하여 악한 영을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짓고 있는 죄를 여전히 범하면서 축사하려고 해도 귀신은 나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죄가 합법적으로 그에게 역사할 수 있는 권리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철저하게 다루고 회개하고 떠나야 합니다.


상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상처가 있게 되면 보통 미움, 원망, 부정적인 생각, 염세적 슬픔, 우울 등이 마음에 가득한데, 그러한 마음이 지속되는 한 악한 영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상처의 깊이만큼 나아가서 아픈 만큼 울고 울며 주님의 어루만지심 가운데 회복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유는 원천적으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기 위함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어떤 내면의 상처도 다루시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같이 상상해 볼까요? 만약 사람들이 우리 자신을 붙잡아 옷을 모두 벗긴 채로 사거리 대로에 묶어두면 받는 수치와 모욕감과 경멸감이 얼마나 심할까요? 수치스러워죽겠는데 가령 남자라면 여자분들이 낄낄거리며 지나갈 것이고 여성분이면 남성들이 야유하며 지나갈 텐데 얼마나 수치스러울까요? 철없는 아이들과 사람들은 별소리를 다하겠지요.

또 가령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길을 건너다가 차에 부딪혀서 팔다리가 부러졌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그것을 보고 우습다고 웃으며 조롱하면 얼마나 화가 치밀어 오를까요?


우리를 향하여 침을 뱉으면 어떨까요? 도무지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극한의 극렬한 통증의 십자가에 못박힘 가운데 있는데, “네가 그리스도냐? 그러면 스스로 구원하고 내려와보라!”라고 조롱한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겪으신 내적인 상처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어떤 내적인 상처보다 더 깊고 아프며 아프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에게 도무지 견디지 못할 내적인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 십자가 앞으로 상처의 깊이만큼 눈물로 나아가 아뢰며 주님의 음성과 어루만지심을 받으면 다소 시간을 걸릴지언정 치유받지 못할 내적 상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침체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첫째 죄와 상처를 다루어야 합니다. 그것에 억눌리고 있는 한 회복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하여 악한 사단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죄는 회개 하고 버리십시요. 그리고 상처는 십자가 앞에서 온전히 치유를 받으십시요.


그 십자가 앞에 나가서 자신의 정과 욕심을 함께 못 박아 버리십시요. 그리하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고, 원망할 사람도 다 없어지며, 오직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죄와 상처를 철저하게 다루십시요. 그리고 더불어 축사를 하십시요. 악한 영의 정도가 심하여 자신이 스스로 통제가 어렵고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면 강력한 집회 등에 참여하시거나 영성 사역자를 찾아서 도움을 요청하십시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스스로 죄와 상처의 문제를 해결해가며 지속적으로 그리고 수시로 축사를 하십시요.


이렇게 명령하십시요. “나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기를 원하며 모든 죄를 버린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지 아니한 악하고 더러운 영들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게서 떠나가라. 나는 내게 네가 역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 나는 하나님께 순복하며 다만 그분을 사랑하며 섬길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떠나갈지어다” 등등의 표현으로 자유롭게 선포하십시요. 강력하게 선포하십시요.


신앙상담을 해 오신 분들을 보면 세상에 참으로 많은 기막힌 아픔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더불어 우리의 참된 소망은 이 땅이 아닌 저 푸른 하늘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아픔이 적지 않은 이 땅의 나그네 삶이지만, 주님께서 스스로 오신 이유를 말씀하신 이사야서의 말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라는 말씀처럼!


영적으로 회복되는 이러한 원리를 알아 죄의 문제를 극복하고 상처의 문제를 극복하고 이미 무너진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성령 안에서 자유와 기쁨과 웃음과 빛을 예수 안에서 더욱 많이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해 봅니다. 여호와 닛시! 주님, 우리에게 승리를 허락하소서! 아멘! 아멘!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출처 및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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