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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실제] 영 안

초록 등불 2012. 1. 31. 22:00

 

  [영의 실제] 영 안

 

우리 사람들은 소위 오감이라고 불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그리고 촉감으로 세상의 사물들을 인식하며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소중하지만 그래도 무게감을 둔다면 아마도 보는 것이 가장 우선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그런데 경험해보며 또한 앞서가신 신앙의 선배들, 그리고 성경을 살펴볼 때 영의 세계도 육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오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은 성경에 너무도 비일비재하게 나오니 하나하나 예를 들어 논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흔하지 않은 맛을 본 이야기는 에스겔 선지자의 경험에서 나오지요.


겔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에스겔 선지자는 이 경험을 영 안에서 한 것이지 육신의 영역에서 한 것이 아니지요. 이처럼 영도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 맡으며 맛도 보는 것을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똑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영으로 냄새를 맡거나 영으로 맛을 보는 것은 성경에 그리 자주 등장하지 않고 다소 흔하지 않은 경험이니 다소 이해가 되지만, 보는 것 곧 우리 육신의 삶에 비추어보면 가장 중요한 눈으로 보는 것, 곧 영의 눈으로 환상을 보거나 영적 실체를 보는 것에 대해서는 왜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수용하지 못할까요?


환상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도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환상이 아닌 마치 실제적인 육신의 사람을 대하듯 천사나 주님의 임재를 경험한 기록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도 영으로 나타나셔서 제자들을 만나시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육신의 삶에서 너무도 중요하고 가장 기초가 되는 보는 것, 만약 우리가 죽어 육신을 벗고 영이 된다면 역시 영의 세계에서도 보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교통과 교감의 통로 중 하나일진대, 또 한편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영의 세계란 상상만 해도 답답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삶의 경험에서 이토록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보는 것, 하지만 영으로 보는 것 곧 환상이나 주님의 임재나 천사 등의 만남에 대해서 우리는 다소 거리감과 거부감을 느끼게 될까요? 그것은 아마도 흔한 일과 일상적인 경험이 아닌 다소 드문 현상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듯이 그리스도인 다수가 대부분 경험을 한다면 아마 이런 영의 눈, 곧 영안으로 영적 세계나 그 존재들을 보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음성처럼 자연스럽게 대부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영으로 보는 것, 곧 영안이 열려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서 다소 이질감이랄까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일상적이고 흔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사료됩니다.


저 역시도 이전에는 그러한 생각의 경향성이 있었던 듯 생각되니까요. 누군가 천사를 보았다거나 주님의 임재를 보았다거나 하면 약간의 물음표를 머리에 가지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주님의 은혜로 다소 그러한 일을 경험해보니,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일이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오감 중 가장 중요하고 기초가 되는 것이 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영으로 보는 것에 대한 수많은 말씀과 증거가 즐비하니 이러한 부분에 대한 이해도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일반화 된 것처럼, 환상과 또 영안이 열려서 영적인 존재들과 주님을 만나는 일들 또한 일반화 되어져 가고 이해의 폭이 넓혀져 가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육신의 감각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고 중요한 보는 것, 영의 일에 있어서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영으로 보는 것들에 대한 경험들이 많아져 가고, 상식과 일반적인 수준에서 논하여 지고 이해되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한편 누구나 쉽게 합니다. 그것은 많은 부분 글자를 읽고 익히는 자연적인 영역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과 그 세계를 알아가는 것은 그것처럼 쉽지는 않지요. 왜냐하면 그곳에는 기도 등의 많은 애씀과 노력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영의 일은 세상적인 일과는 달리 확연하게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고 성경에서 부분적으로 계시가 되어져 있기는 하나, 또 한편 많은 부분이 비밀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또 성경이 말하듯 보이는 현상계는 보이지 않는 본질인 영적인 세계에서 온 것, 영의 세계가 보이는 현상계의 근원이라면 아마도 영적인 세계가 보이는 현상계보다 어쩌면 더 다양하고 복잡하겠지요.


그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영의 세계가 성경에도 부분적으로 큰 줄기 밖에 계시가 되어 있지 않고 많은 부분이 한편 가려져 있으니, 각 개인의 영적인 경험들이 너무도 다양하고 그래서 판단하기 어려우니, 그래서 더욱 우리로 하여금 접근을 어렵게 하고,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들은 비록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으나 우리로 하여금 거리감을 두게 만드는 경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하면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다면, 검증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하고 성경에도 부분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영으로 맛보거나 냄새를 맛는 등의 감각도 알아가고 이해해가려 애써야 할 것이고, 너무도 다양하게 기록되어져 있는 영안의 현상들, 곧 영으로 보는 것에 대하여서는 이제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이나 다른 모든 영적인 현상들이 개인에 따라 다소 다른 특이성과 개별성을 가지듯, 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도 다소 개인적인 경험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다양성이나 영적인 세계의 일들의 다양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분의 책을 보니 주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 주신 후 이분은 눈을 뜨면 육의 세계만 보이고, 눈을 감으면 육의 세계와 영적인 존재가 보인다고 기록하고 계시더군요. 그 한 때 나타난 현상인지 지속적으로 그렇게 보이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경험 속에서는 그렇게 적고 계시더군요.


저의 경우는 이와는 다르게 오히려 눈을 뜨고 있어야 보입니다. 혹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면 그러한 현상이 안개가 끼여 가는 것처럼 조금씩 희미해져 가거나 잠잠해져 가고, 다시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은 덧입은 거룩함을 유지하면 맑은 물에 사물이 비치거나 그 아래가 보이듯이 그렇게 조금씩 영적인 세계의 것들이 밝아져 갑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영의 눈으로 영적인 세계를 보려면 거룩하고 정결한 삶이 참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구나 하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갑니다.


많은 분들의 경험을 살펴보거나 듣지 못해서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현상을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저의 경험과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하신 소수의 분들의 경험을 살펴 조심스럽게 글을 써봅니다.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은 저를 자랑하려 함도 아니요, 다만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너무나도 중요한 보는 것, 성경에서도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에게서도 기록되고 나타났던 검증된 성경 안의 역사, 성령 안의 역사, 그래서 앞으로 이런 경험들을 새롭게 시작하실 많은 분들이 계실 것이기에 작게라도 현상의 이해에 대한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조심스레 글을 쓰는 것입니다.


한편 음성을 듣는 것처럼 보는 것에 대해서도 인식을 보편화 시켜야 하고 그 현상에 대한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와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하는 신앙공동체의 책임있는 목회자, 곧 지도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나름 따끔할 시선들을 의식하면서도 용기내어 글을 써 보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다양한 경험을 살핀 것이 아닌 저와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현상을 살펴 조심스럽게 기록하는 것이니, 너무 객관성과 절대성은 부여하지 마십시요. 오류가 있을 개연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분들의 여러 현상을 살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들에 대한 어느 정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이나 원리가 이제는 알려졌듯이 보는 것, 곧 영으로 보는 이 부분에 대한 것도 그러한 폭넓은 이해나 원리가 밝혀지고 공론화 되고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써 봅니다.


저의 경우는 어느 날 갑자기 보였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한데, 갑자기 삼차원 홀로그래피 영상처럼 눈앞이라면 눈앞이고 가슴 앞이라면 가슴 앞에 영적인 존재가 보였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 정신없이 그런 존재들이 보였습니다. 생각만 해도 보이고 기도만 하면 보이고 그랬습니다. 앞서 경험한 분들께 조심스레 말씀을 드려보니 일반적으로 초기에는 그렇게 다소 정신없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소 잠잠해지고 필요와 때를 따라 보인다고 합니다. 한편 귀 기울여 새겨둔 조언입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의 경우는 먼저 보이기 전에 영적 느낌으로 영적 존재의 임재를 간간 느끼곤 하다가 실제로 보게 되는 과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우리가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가 뒤에 서 있으면 어떤 느낌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하지만 육적이고 현상계의 일은 눈으로 확실하게 보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촉감도 느끼기에 검증이 가능하지만, 또 뒤에 누군가 서 있다고 느껴지면 돌아다보면 있는지 없는지 즉시 확인이 가능하지만, 영의 세계의 일은 그렇게 확연하게 검증이 가능한 세계가 아니라 한편 거짓과 미혹의 영역도 있는 곳이라, 나름 조심스럽고 신중하고도 조심스런 분별도 필요한 세계라 하나님의 음성도 그러하지만 특별히 이런 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도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런 접근과 영의 분별이 필요한 듯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한편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하는 부분은 이러한 현상과 역사 등에만 몰입하면 그것이 사단의 통로가 되어 잘못된 영의 미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종의 글과 말들은 영적인 경험과 글들의 곳곳에서 보이더군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항상 우리의 영과 교통을 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그렇게 합니다. 직접 육신의 음성처럼 귀에 들리게 역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경우는 선진들의 경험과 자료들을 살펴볼 때 대부분 사단과 어두움의 세력의 역사입니다. 귀에다가 들리는 소리로 속살거리면 무조건 거부하고 물리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너무 현상과 역사를 추구하고 몰입하게 되면, 자신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할 수 있듯이, 자꾸만 자신의 느낌으로 어떤 감각을 영적 존재의 임재라고 착각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미혹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권면하듯 더 큰 은사도 사모하고 주님과의 깊은 교제나 영적인 경험들을 한편 사모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다소간의 절제와 하나님께 역사의 주권을 맡기는 마음, 그리고 분별력을 잃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에서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한 여성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 여성은 한 때 어떤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그 목사님이 직접 귀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말에, 자신도 너무도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집착처럼 사모하다가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게 되고, 그렇게 속살거리는 악한 영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하며 영육간에 병들어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해긴 목사님의 끈질긴 설득과 설명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렇게 들리는 음성이 너무도 좋아요”라고 하며 끝내 악한 영의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고 안타까운 길을 선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저런 영의 세계를 살펴보고 조금 경험하여 보니, 영의 세계는 정말로 혼미하고 분별이 필요한 세계라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됩니다. 정말 조심스럽게 말씀과 앞서 정로로 걸어간 검증된 분들의 말씀과 경험을 살펴,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야 하는 곳이 영의 세계인 듯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영성은 어떤 은사나 현상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성품을 덧입는 영성이 가장 근본이요, 중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은사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운 권세가 기본이요, 더욱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른 신분적 차원의 권세를 잃어버리고 능력만 사모하며 행하게 되면 주님이 말씀하신 바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오직 영성을 근원적으로 사모하며 은사와 능력적인 부분은 건전하게 사모는 하시되, 그 주심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과도하게 집착적으로 그것을 추구하시다 보면 많은 경우 미혹 당하기 일 수 인 듯 합니다. 꼭 기억하십시요.


한 몸에 다양한 지체가 있듯이 영성의 추구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덧입는 것에서 동일하지만, 하나님께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주시는 은사와 능력은 다양하고 개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 예언자 일 수 없으며, 다 병 고치는 자 일 수 없습니다. 물질로 섬기는 재정지기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사람도 있어야 하고, 이웃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섬기는 은사와 사람도 필요합니다. 모두가 같은 계열의 은사를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한 몸에 여러지체가 필요한데 손이나 발만 달린 기형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닮는 영성을 추구하시되 은사와 능력은 한편 더욱 능력있는 사역과 봉사를 위하여 사모는 하시되 성령께서 그 뜻대로 나누어 주심을 또한 철저하게 인정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필요한 마음과 정신이 다른 사람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그리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과 직임과 달란트와 은사를 좇아 충성을 다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린도서에 나오는 신령한 계열의 은사를 많이 사모하고, 또한 추구합니다. 저도 그러했으니까요.


앞으로 어떻게 저의 삶과 사역을 이끌어 가실지 모르지만, 그러나 막상 주님께서 이런 영적인 현상과 일들을 풀어내고 설명하고 이끌어가야 하는 방향으로 저의 걸음을 인도하시니, 한편 정말 두렵고 떨리기도 하고 힘들기도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경험들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오해와 곡해를 받을 수도 있으며, 그런 부분들이야 오직 주님 앞에서 사는 마음으로 감내할 수 있지만, 정말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신중하게 분별하여야 하는 영적인 세계의 일 앞에서, 물론 성령님의 도우심을 믿지만 조심스럽고 다소의 부담감이 없지 않습니다.


가령 누군가에게 신유의 은사가 임하면 처음에는 기도하면 병이 낫고 하니 신도 나고 어쩌면 한번 쯤 어깨도 으슥거려 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것은 잠시 뿐 끊임없이 밀려오는 피고름 수많은 환자들을 상대하다보면 은사와 능력은 곧 십자가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겠지요.


예언의 은사와 영이 임하여 갑자기 어떤 사람에 대한 구체적 소명을 알려 주시면, 한 사람의 생의 길이 걸린 문제, 잘못 분별하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일,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은 하시니 전하여야 할까, 말까, 오류가 있으면 안되는데.. 또 얼마나 스스로 안고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 얼마나 심사숙고 애써야 하겠는지요?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모하는 생활의 일상적인 은사가 아닌 고린도전서 계열의 신령한 은사에도 사람들은 영광만을 기대하지만, 실상은 이처럼 힘들고 감내해야 하는 부담과 십자가가 따르는 것입니다.


생활의 은사이든 어떤 은사와 능력이던 모두가 귀하고 한편 아름답고 또 한편 힘듦과 수로고움이 따르는 사명이요, 남겨진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각각 자신보다 다른 사람과 받은 바 직임과 은사와 소명과 달란트를 존중하며 주며, 자신은 주님 앞에서 자신의 고유한 길을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영안, 곧 영의 눈으로 보는 일에 대해서 조금 더 언급하고 글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보게 되는 단계 이전에 간간 영적인 존재의 임재를 영의 감각으로 느끼기도 하게 되나 봅니다. 그 감각이 자신의 것이냐 제대로 된 것이냐는 들려오는 음성이 하나님의 것이냐, 혹은 사단의 것이냐, 아니면 자신이 지어낸 것이냐를 구별하는 영적 원리인 공명의 원리를 적용시켜 보면 완전히 오류는 없을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제대로 된 분별이 가능하겠지요.


저처럼 갑자기 주님이 열어 주셔서 보게 되던지 이런 과정을 겪게 되던지 영의 눈이 열려서 보게 되면, 좋은 면도 있지만 힘든 면도 적잖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글에서 말씀드린 기억이 나는데, 장님이 눈을 뜨게 되면 세상의 좋은 면도 보게 되지만, 어둡고 더럽고 잔인하고 참혹한 세상도 더러 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앞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자랑할 것도 없는 사람, 자랑하려 함이 아니라, 어쩌면 지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보는 것, 그래서 앞으로 많은 분들이 이런 영적 경험들을 하게 될 것이고, 또 나름의 개별적인 특성을 가지고 다소 여러 가지 색깔로 영적인 세계를 보는 경험을 하시게 되겠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그러하듯 보는 것 또한 다소의 색깔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흐름일터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하여 저의 경험을 조심스레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저의 그 이후 지금의 경우는 평소에도 늘 아슴아슴 영적인 존재들이 보입니다. 지금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향후 어떻게 될지 저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존재들은 아슴아슴 보이고 어떤 존재들은 영으로 임재가 느껴지기만 합니다.


문들 옛날을 돌아보니 한 번 기도하다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이 실제로 거기 오심을 너무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다소 놀란 경험이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그 날의 음성은 평소의 음성과는 너무도 다르게 바로 옆에 서서 하시는 듯 하여 거룩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낀 기억이 납니다.


어쨌거나 지금은 어떤 존재는 늘 곁에 있음이 느껴지고 아슴아슴 보입니다. 그리고 주의를 기울려 영으로 보려고 하면 형상들이 뚜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면서 의식이 영의 세계로 들어가면 갈수록 점점 형상들이 많이 보이고 뚜렷해지곤 합니다.


그렇게 형상이 희미하게 혹은 선명하게 보이는 존재들도 있고 보이지는 않고 뭐랄까요 마치 물로 만든 형상처럼 그렇게 형상의 희미한 윤곽들만 언듯언듯 보이는 존재들도 있고, 그냥 영적 지각으로 임재만 느껴지는 존재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지금은 주로 빛의 나라에 속한 주님의 형상이나 임재 천사들이 주로 보이지만, 간헐적으로 가끔은 종종 악한 영들의 형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다소 놀라기도 했지만 지금은 악한 영의 형상에도 별로 놀라지 않습니다. 그냥 대 축사 기도를 하거나 말로써 “절루가!”라고 해 버리고 가거나 말거나 그냥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런 천상의 존재들의 나타남은 저의 소관이 아니라 주님 혹은 성령 안의 역사이니 그냥 보통 기도하다보면 자주 보게 되는 경향성이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더군요. 그냥 가만히 누워 있거나 설교 등을 편안히 듣고 있어도 문득 보이거나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너무도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다소 감짝 놀라기도 합니다.


어제는 집회를 인도하고 피곤해서 밤에 누워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려하니 피곤해서 힘들고 자려하니 습관이 되어서 일찍 잠도 들지 않고 주님께 “뭐하고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니, 그냥 당신 안에서 쉬라고 하기에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누워 있다보니 낮에 체력소모가 다소 심해서 그런지 자꾸 배가 고프더군요. 참을까 말까 하다가 몸도 다소 오슬하고 그래서 매콤한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라면을 하나 끓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늘 아슴아슴 하얗게 보이는 곁에 따라 다니는 소녀 형상의 천사의 존재, 끓이다 심심해서 영으로 집중해서 들여다보았습니다. 집중해서 들여다보면 생김새나 부분들이 또렷하게 언듯언듯 보입니다. 기도함으로 영의 의식속으로 들어가도 그렇지요.


많은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런지는 잘 모르겠고, 얘기를 나누어본 소수의 분들의 경우는 경험이 비슷한데, 마치 뭐랄까요? 이 눈으로 보이는 물질세계와 더불어 빛으로 만들어진 어떤 형상의 존재와 세계가 공존하는 것처럼, 말 그대로 물질계의 세상과 환상의 세계가 겹쳐 있는 것처럼 제겐 영의 세계와 존재는 그렇게 느껴지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땅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하늘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께 물어보니 천사와 함께 춤도 추지 않느냐고 물어보시는데, 저의 경우도 기뻐 찬양을 하면 온 방 가득 보이는 천사와 형상이나 느낌으로만 느껴지는 천사의 가득한 임재, 저는 주로 어린 천사들을 보여주시는데 그래서 마치 주일학교 아이들이 온방 함께 앉아서 찬양을 드리는 것 같은 천사들이 가득한 영적 환상처럼 황홀한 세계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온 방에 가득합니다.


어제도 그렇게 라면을 끓여 먹다가 늘 곁에 따라 다니니 집중해서 들여다보니 형상이 다소 뚜렷하게 보입니다. 참 예쁩니다. 그러다가 문득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순간 다소 깜짝 놀랐습니다. 거실에 큰 사람이 하나 서 있지 않습니까?


감짝 놀람과 동시에 누군가 쳐다보니 늘 찾아오시는 예수님이시더군요. 잠시 놀라다 낯잊은 모습이라 “아! 주님이시네”라고 말하고 말았지만, 영의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집중해서 보다가 고개를 돌려서 그런지 정말 생시나 실제처럼 보여서 순간은 문득 놀랬습니다.


주님께서 라면을 끓이고 있으니 “배가 고파 그런지 네가 라면을 너무 자주 먹는구나! 앞으로 좀 삼가라. 배가 고프면 생각해서 몸에 이로운 것으로 먹으라” 이러시더군요. 조금 놀랐지만 자주 뵙는 모습이라 곧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제 건강을 생각해 주시는 주님의 고마운 말씀에, “라면 대신에 오슬오슬한 기운도 쫓아내고 맛도 나게,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에 청량고추, 파도 숑숑, 마늘도 찧어 넣고 내가 요리해서 정 배가 고프면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피곤해서 주님과 긴 대화는 나누지 못하고 “주님, 오늘도 오셨네요. 제 곁에 계시네요”라고 말씀을 드리니, “네가 언제나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은 나와 교통하는 시간이 아니냐? 세상의 일로 말하면 사랑하는 연인들이 만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냐. 그러니 내가 곁에 있거나 이렇게 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하시더군요.


요즘은 늘 곁에 아슴 주님도 계심이 보이길래 “늘 곁에 계시잖아요”라고 말씀 드리자, “그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라고 약속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런 말씀에 대한 일반적인 임재와 밤중의 또 다른 다소 선명한 모습으로 찾아오심에 대한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다소 놀라기도 했지만, 생시처럼 주님의 모습을 새롭게 본 경이로운 밤이기도 했습니다.


영적인 세계의 일들, 곧 듣는 것이나 느끼는 것이나 생각나는 것이나 등의 일상적인 경험이 아닌 영의 눈으로 보는 일은 부족하나마 조금 걸어보고 겪어보니 악한 영들의 모습 때문에 다소 힘들 때도 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과 그 나라와 그리고 그 나라에 속한 존재, 그리고 영적 세계의 존재에 대한 실증적인 믿음이 자라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체적인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인하여 더욱 쌓여가니까요.


저보다 깊고도 깊은 세계를 걸어가셨고 가고 계시는 많은 분들도 계실 것이고, 저는 이제 영적 세계의 얕은 시내를 걸어가면서 얕은 수준의 이름 경험을 하여도, 이런 경험들이 비록 힘들고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또 한편 덜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한편 깊은 위로가 되는 하나님의 손길로 느껴집니다.


부족하고 작은 사람이 저도 이런 세계를 조금 열어주셨는데, 여러분에겐 사모하면 애쓰면 더 큰 영적인 세계와 경험들을 허락하지 않겠습니까? 집착이나 몰입은 하지 마시되 건강하게 신령한 은혜와 세계 또한 사모하시면서, 영적 건강한 분별력 안에서 조심조심 바른 영적인 길과 경험을 누리시며, 더욱 믿음도 자라가고 삶의 향방도 땅이 아닌 오롯 하늘을 더욱 향해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래보며, 이 글을 마름합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제 곁에 계신 모습과 천사가 환상처럼 보입니다. 주님은 말씀대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눈으로 보여 주시는 것 같습니다.


평강과 빛 되신 주님, 언제나 우리의 소망과 빛이 되어 주시고 의지할 피난처와 생명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소서. 영으로나 환상으로가 아닌 진정으로 주님을 만날 그 감격의 영광의 날을 부족하나 손꼽아 사모하며 준비하며 기다려 보렵니다. 언제나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할렐루야!

왕하6: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왕하6: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왕하6: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출처 및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 초록 등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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