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가운데 영으로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그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 위를 주님께서 걸어오시고 계셨습니다. 바다는 하얗게 파도를 내면서 부서지곤 하지만 물 위를 걸어오실 뿐만 아니라, 물방울에 옷자락 하나 젖지 않으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바다는 때때로 거세게 일렁거리건만 주님의 얼굴은 평화롭고 평온하기만 합니다. 그리고는 저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명과 능력이라, 네가 나를 믿느냐?” 동일한 물음을 세 번이나 거듭하여 던지셨습니다.
이어서 이르시기를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행하라. 나는 살았고 하나님 아버지도 살아계시며, 모든 말씀은 진리라”
그리고 다시 한번 비슷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네가 나를 믿느냐? 오직 믿음으로 행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너무도 기록해야 할 말씀들은 많은데 일들은 너무도 많고 체력이 부족하여 자꾸 뒤로 미루어지다 보니 이 말씀을 주신 배경이 아련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제가 이런저런 일로 다소 마음이 연약해졌을 때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조금께서 은혜로 나름 영의 세계를 허락하시고 걷게 하신 후로 종종 지체님들로부터 신앙상담과 아울러 중보기도 요청을 받습니다. 그런데 내용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다 기막히고 힘든 상황들이 대부분입니다.
심각한 자신이나 가족의 육체적 질병, 각종 중독의 병증, 정신적 심리적 심각한 증상, 악한 영에 의한 괴롭힘, 물질적 엄청난 어려움, 하나같이 결코 쉽지 않은 심각하고 때로는 한계 상황적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저의 권면의 말은 항상 같습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 인내하고 승리하시라는 것이지요.
너무도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기에 다시 한번 영적 진리를 간략히 요약해 본다면, 첫째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풍랑위로 걸어오시는 모습 가운데, “네가 나를 믿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저 역시 결코 쉽지 않은 고난의 시간의 걷고 있고, 하지만 오직 풍랑 위로 걸어오시기도 하시며, 말씀 한 마디로 잔잔하게 하실 수 있는 당신을 믿으라는 뜻이겠지요.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그 풍랑 위를 걸어갔던 베드로처럼 믿음으로 승리하며, 고난의 풍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당황하고 놀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고난의 물 위를 믿음으로 당당히 밟고 걸으며 승리하라는 말씀이겠지요.
마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제가 다른 글에서 다룬 기억이 나지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으며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역으로 사단의 역사와 그 힘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염려와 걱정에 휩싸여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믿음으로 마음의 평강을 잃지 않으며, 염려하지 말며 감사함으로 아뢸 것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마13: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마13: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다시 한번 중요한 영적 진리를 요약 말씀드립니다. 신앙의 세계는 믿음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신뢰 가운데 평안을 잃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가 역사합니다. 응답의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그 기도가 역사합니다.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걱정을 하며 주님이 아닌 어려운 상황을 바라보는 것은 사단에게 도리어 힘을 실어주게 되며 풍랑 속으로 더욱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두렵고 떨리더라도 영적인 전쟁에서 믿음과 기도로 승리하여야 합니다. 민족의 죽음 위기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 결심하고 금식하며 오직 믿음으로 승리했던 에스더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행하여야 합니다.
주님은 풍랑이는 바다위로 걸어오시면서 우리에게 이 진리를 가르치시기 위하여 “네가 나를 믿느냐? 오직 믿음으로 행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믿음 안에서 고난 후에 주실 장차의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인내하여야 합니다. 형들에게 팔려 노예로 갔던 요셉처럼, 혈혈단신 외로운 피난의 여정에 올랐던 야곱처럼, 오직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붙잡고 결국 승리하였던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소망을 잃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속의 인물이나 우리나 우리들의 이웃이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생의 시간이 마냥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이런저런 생의 문제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바라보며 환경에만 갇힌다면 어느 누구도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즐겁고 평탄한 길을 주실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며 또 곤란과 곤고의 시간에는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 또한 풍랑이 아닌 그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께 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는 법입니다.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셋째는 입술의 말과 고백, 그리고 생각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믿음 안에서 장래의 소망을 바라보며 부정적인 생각을 받아들이고 허락해서는 아니 됩니다.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것은 영적인 중요한 핵심 진리 중의하나입니다. 시간이 다소 걸릴지언정 말과 생각대로 생은 흘러갑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입술의 말과 생각을 믿음 안에서 지켜야 합니다.
한편 제가 길고도 긴 고단한 삶의 여정과 그리고 극렬한 고난의 길을 때로 걸으며 주님의 은혜로 배운 진리는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군병이며, 그리스도의 남은 십자가를 우리 몸에 채우는 작은 중보자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이며 사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종교적인 의미의 생활 신앙을 하는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영적인 경험이 다소 부족한 분들은 영적 전쟁의 실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피상적이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며 그냥 예수님만 믿으면 근처에 오지도 못하거나 간단한 명령 하나만으로 도망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저도 한 때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영적 세계의 실상을 조금씩 알게 되고 그 속으로 들어가 보니, 영적 전쟁은 그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전쟁은 참혹한 것입니다. 격렬한 것입니다. 이 땅의 전쟁이나 하늘의 영들의 전쟁이나 전쟁은 격렬하며 한편 참혹한 것입니다. 피와 땀 흘림의 희생이 요구되며 시간도 걸리는 것이 전쟁인 것입니다.
그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영적 전쟁의 실상을 바로 깨닫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평안하게 앉아서 놀며 쉴 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 전쟁터의 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믿음의 영적 싸움을 위하여 부름 받은 군사요,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영적 파수꾼이요, 군사임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첫째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을 사단의 공격과 미혹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그리하여야 합니다. 나아가 이웃과 전 세계의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을 위하여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을 들고 성령 안에서 전진하여야 합니다.
전쟁을 할 때는 강하고 담대하여야 합니다. 승패의 90%는 정신, 곧 사기가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지하며 맹호같이 강하고 담대하며 독수리 같이 믿음의 눈과 날개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어려움 앞에서 울며불며 방황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들에 영적인 배후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너무도 다양하겠지만, 혹 우리의 부족과 허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라면 그리스도의 군인답게,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던 아담과 하와처럼 하지 말고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며 돌이키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여야 합니다. 또한 사단의 역사라고 생각되면 사단을 향하여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을 들고 쳐서 물리쳐야 합니다. 공격하여 그들은 제압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어쨌거나 강하고 담대하십시요. 오늘은 고난과 삶의 어려움에 대한 말씀이 아니기에 이 부분은 이 정도에서 마름합니다. 강하고 담대하며 고난의 날에는 기도하며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며 찬송하십시요. 하나님은 우리 모든 각 생에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들이 어우러져 생을 빚고 내면의 성숙을 이끄시며 인도하시고 섭리하시고 계십니다.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근래에 제가 일은 많고 다소 무리를 한 탓인지 몸 상태가 다소 좋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성격이 다소 열정적이라 기도를 하면 묵상기도보다는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고 부르짖기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아마도 체력이 된다면 매일 부르짖어 기도할 것입니다.
그렇게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다보니 체력이 소모되니 배가 고파서 중간 중간에 자꾸 이런저런 음식을 먹게 되고, 그렇게 식사가 일정하고 규칙적이지 못하다보니 소화기와 아울러 몸 전체의 상태가 좋지 않아졌습니다. 저는 소화기 상태가 나빠지면 온 몸의 상태가 나빠집니다.
그리고 많이 아파지면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통증과 피로감에 시달립니다. 몇 날 며칠이고 잠을 잡니다. 그래도 쉬 회복이 잘 되지 않습니다.
남들은 즐거워하는 명절인데 몸이 그렇게 좋지 않으니, 가만히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 중에 하나 기도와 경건의 시간을 다소 조화롭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체력이 부족한데 무조건 부르짖고 소리 내어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묵상형의 기도를 조금 더 많이 가미, 소모적 기도형태보다 충전식 기도에 조금 더 많이 시간을 할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소 열정적이고 부르짖는 기도가 맞는 성격이라 잠깐이라도 소리 내어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으면 심령이 답답합니다. 저와 같은 기도유형을 가진 분들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어쨌거나 한 동안 지속되는 육신의 고단함, 하루 이틀 조금은 침묵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나름 애쓰며 지냈습니다. 어제도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누워서 설교와 강의 내용 등을 밤에 홀로 듣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눈, 곧 영안이 실제로 열려서 영적인 존재들을 보고 싶어 하지만, 저도 그랬지만, 실상 열리고 보면 꼭 좋은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장님이던 분이 시력을 회복하면 세상의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든 것을 보게 되듯이, 영적인 눈이 열려도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좋은 것도 보게 되지만 사단의 나라에 속한 좋지 않은 것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나라에 속한 악한 영들의 모습과 형상은 심장이나 마음이 약한 분들은 보면 감내하기 어려운 괴기스럽고 공포스럽고 더러운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것들도 수시로 보게 되기 때문에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어제도 곤하여 누워서 조용히 기도하며 말씀을 듣고 있는데, 악한 영 하나가 흉측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이런저런 모습들 많이 보았지만 아주 지독한 모습으로 쳐다봅니다. 모습이 끔찍하여 글로 표현하지는 않으렵니다.
“목사님 어떻게 보이세요?”라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이것은 마치 삼차원 입체 영상 홀로그래피 비슷합니다. 그렇게 형상이 보입니다. 너무도 흉측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니 다소 두렵더군요. 그래서 주님을 불렀습니다. 한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더군요.
사람마다 경험이 다를 것이고 나누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영적인 눈이 열리고 나면 현실과 아울러 또 다른 세상, 곧 환상의 세계와도 같은 영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만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들도 수시로 만나게 되고 대화도 나누게 되곤 합니다. 물론 영적인 존재들과의 대화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가슴으로 합니다.
그리고 굳이 환상이라고 할 것도 없고 생각만 돌리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빛의 존재들이던 사단의 나라에 속한 악한 존재들이던 수시로 보게 됩니다. 그렇게 세상에 보이는 물질적인 존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실존함을 영으로 눈으로 보고 영으로 느끼게 됩니다.
어쨌거나 주님께서 또한 담력을 주시기에 그런 어둠에 속한 존재들을 보아도, 그다지 신경도 쓰이지 않고 늘 빛의 나라와 그 속의 존재들만 보려하며 살아가기에 큰 불편함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제 나타난 악한 영의 모습은 정말 지독하게 흉측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쳐다보더군요. 그래서 주님을 불렀습니다. 한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기다리니 주님께서 눈앞에 걸어오시더군요. 평소에도 수시로 주님의 모습을 보지만, 어제는 너무도 생생하여 마치 걸어오시는데 옷자락 소리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나타나시는 주님의 모습은 제가 저의 집회시간에 한번 말씀 드렸지만 저의 경우 보통 크십니다. 3-4미터 크기의 형상이십니다.
누워있는데 허공으로 시중드는 천사인 듯한 천사 하나와 함께 주님께서 성큼성큼 걸어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평안하라. 인내하라. 승리하라” 그리고는 걸어오셔서 제 곁에 앉으셨습니다. 이건 영으로 보여서 그렇지 정말 실제처럼 주님이 곁에 계신 것처럼 생생하더군요.
곁에 앉으신 것이 영으로 보이기에 영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 저의 현실은 왜 이리 아프고 몸도 아프고 힘이든가요? 왜 이리 고난의 끝이 없는가요?”
주님께서 구체적인 대답은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또 나를 믿으라. 많이 아프냐? 하지만 고난과 아픔이 마냥 덧없고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생명됨과 신비임을 네가 알아가고 있지 않느냐? 인내하고 승리하여라.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당신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이어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어떠한 사랑으로 사역하였는지, 하나님께 충성하였는지 기억하라”
이 말씀은 비록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나 제게 또한 어떠한 마음으로 목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지를 가르치시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실 때 주님의 모습과 그리고 온 방에 진정한 하늘의 사랑,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도 아무 것도 또한 바라지 않는 진정한 아카페 사랑의 영적인 분위기가 주님과 함께 온 방에 가득하였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신 것인지 영으로 너무도 생생하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주님의 모습은 단 두 글자, 곧 “사랑”이셨습니다. 그 모습과 그 영적 분위기는 사랑이었으며 그 사랑은 제가 있는 온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의 분위기 속에 휩싸이니 저의 마음에도 평안이 가득 찼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사랑으로 충만한 그런 곳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또 이르실 말씀은 없으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대답하시길 “내가 걸어간 길, 하나님을 순종하며 섬기는 그 길이 참 생명이요, 평안이며 생명이다. 오롯이 그 길을 너도 따라 걸으려무나”
그리고는 인자하게 웃으셨습니다. 너무도 인자하신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그렇게 웃으시면서 말씀을 이어셨습니다. “기뻐하라, 늘 기뻐하라”
제 곁에 늘 있는 소녀 천사도 주님을 보고 마냥 기뻐합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환상의 세계에 빠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상상이나 망상이나 어떤 정신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 곁에 머무는 천사의 이야기에서 기록하였듯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고 성령을 소멸하면 이런 모든 현상이 회복할 때까지 사라지니까요. 여러 부분에서 살펴본바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그리고 영적 실상임을 압니다.
“사랑”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주님의 모습과 인자하게 환하게 웃으시니 온 방 가득 빛과 사랑이 가득한 듯 느껴졌습니다. 마치 천국에 온 듯싶었습니다. 또 다시 주님께서 말씀을 이어하셨습니다. “늘 기쁘게 살아가며 기쁘게 사역하여라”
누워 말씀을 듣고 있다가 주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님, 그리스도인에게 꼭 일러주실 중요한 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주님은 지체하지 않으시고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은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으며 그 말씀을 또한 믿는 온전한 믿음”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나요?” 제가 다시 영으로 물었습니다. 주님은 세 가지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며, 둘째는 세상을 겸하여 사랑하지 아니하며, 셋째는 온전히 그분 안에 거하는 삶이다. 그리하면 참 믿음을 소유하게 된단다”
다시 이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강하고 굳건 하라. 멀지 않은 날 내가 올 것이다”
잠깐만 여기서 언급하고 지나가고 싶은 것은, 주님께서 “멀지 않은 날 다시 올 것이라”는 말씀에 대한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나 음성 가운데서 이런 말씀을 실제적으로 종종하시는 것은 두 가지 이유, 첫째는 우리의 늘 깨어 경성함을 위한 말씀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하시는 화법을 알지 못하고 우리의 시간적으로 시한부적 종말론에 빠져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언급을 하고 지나갑니다.
주님의 말씀에 제가 졸립기도 하고 자야 될 시간이라 “마지막으로 제게 이르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충성하라.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나는 언제나 네 안에 네 곁에 그리고 너와 함께 있다. 강하고 담대하라. 무릇 이기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다. 가히 상상도 하지 못한 아버지 나라의 영광을 나와 함께 누리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기쁘기도 하여, “주님, 제가 어떤 찬송을 불러 드릴 때 가장 기쁘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찬송인데 어떤 찬송이던 내가 기뻐하지 않겠느냐? 그리스도인들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른다면 신령과 진정으로 찬송한다면 그 모든 찬송은 나를 기쁘게 한단다”
주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조금 전에 보이던 흉측하던 악한 영의 모습과 생각은 저만치 가버리고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평안함과 주님의 사랑에 마냥 행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왜 이리도 육체적인 고난 등 생의 고난이 끝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냥 주님께 나의 생의 길을 맡기자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최근 너무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하니 몸에 다소 무리도 오고하여 잠을 자는 시간을 조금 당기자는 생각도 하였고, 졸립기도 하여 “주님, 졸립니다. 이제 자야겠어요”라고 말씀 드리니, “평안하여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불을 끄고 잠을 자려고 돌아누웠는데도 영적 지각으로 보니 주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계셨습니다. “주님, 제가 잠을 자려고 하는데 왜 가지 않으시고 가만 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시길, “나는 네가 깨어 나와 대화를 나누던지, 잠을 자고 있든지 관계없으며 늘 너와 교통하며 곁에 있으면 행복하단다. 어린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이가 잠들었다고 해서 그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니? 대화하다가 잠을 잔다고 해서 쉬 그 곁을 떠나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주님, 그런가요? 감사하고 행복한 말씀이네요..”라고 대답을 드리고는 여전히 주님께서 그 자리에 계신 것을 느끼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늘 이 글과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의 나라는 실존하며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토록 아픈 삶의 이유에 대하여 주님께 물었을 때 주님께서 대답하신 것처럼, 여상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고난의 길에서나 평강의 길에서나 저와 함께 굳건히 흔들리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등지고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 것인가를 함께 알자는 것입니다. 저의 간증이나 경험을 들으시면 어떤 분들은 부러워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때때로 저도 저보다 깊은 주님의 임재를 경험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러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제가 아는 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이런 하늘의 영광과 행복을 하늘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안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이나 땅에 속한 것을 진정으로 모두 포기하기만 하면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영광의 누리고 거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전의 저도 그랬듯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루살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루 말씀을 읽고 도전을 받으면 힘을 내다가 대부분이 옥토가 되지 못하고 씨앗을 받기는 받았으되 대부분 흙이 얇은 돌밭이 되어서 어려움의 해가 돋으면 금세 시들고 무기력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의 가시덤불이 다가오면 금세 시들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신앙생활과 경건생활로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지 못합니다. 다니엘처럼 이러하던지 저러하던지 매일 성실하여야 합니다. 평생에 그러하여야 합니다. 기쁜 날이던지 슬픈 날이던지, 순경의 때이던지 역경의 때이던지 그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늘의 영광을 맛보고 누리게 됩니다.
글이 길어져서 다소 곤하네요.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어차피 이 땅의 삶에는 아픔과 시련과 눈물과 죽음의 고통과 슬픔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과 아픔도 많습니다.
스미스 위글스워스 목사님께서 기도하면 다른 사람들은 주님께서 쉽게 치유하여 주시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극렬한 고통을 겪으며 치유하시는지, 당신의 자녀의 불치병은 치유해 주시지 않으시는지, 왜 자신의 아내는 빨리 데려가시는지 그 까닭을 몰라, 하나님은 신비라고 생각하였듯 것처럼, 때로는 우리 생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과 시련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그분의 생각과 경륜과 인도하심은 우리보다 높고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니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밝히 말씀하듯이 우리의 궁극의 소망은 결코 이 땅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의 저 하늘이요, 우리의 시민권도 그러합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저 하늘나라를 향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의 삶인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이 그러하였듯이, 로마제국의 박해에 죽음도 불사하고 맞섰던 숱한 믿음의 선조들처럼 우리도 육신의 생명은 죽일지언정, 영의 생명은 어쩌지 못하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육과 영을 동시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슬픔이나 아픔이나 수로고움에 주저앉아 마냥 울지 마십시요. 군사는 사기가 떨어지면 이미 진 것입니다. 사단과 그 나라를 위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하여 성령의 검을 드십시요. 30여년 가까운 세월 보통사람이면 가히 상상도 하지 못할 숱한 고통의 시간, 부족한 저도 잘 견디며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부족한 제가 이러할진대 여러분은 능히 더욱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도의 손을 드십시요. 말씀의 검을 뽑아 드십시요.
제가 기도하다가 영적으로 어느 정도 갖추어주면 간간 보여주시는 환상이 옛 장수가 갑옷과 투구와 방패 등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마지막 착검을 하는 모습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 에베소서의 말씀처럼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온전히 갖추어 입고 마지막으로 말씀, 곧 성령의 검으로 착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하여 온전한 영적 상태를 재정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망은 결코 이 땅이 아니요, 하나님과 주님이 계신 저 푸르고 푸른 하늘입니다. 아멘! 샬롬!
엡6: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이라
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엡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엡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