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들어 맞는 기쁨의 첫 주일은 요한복음 8장 1-11절의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용서하는 내용”의 본문이었습니다. 본문을 읽고 본문의 핵심에 관해 기도하니 “하나님의 사랑”이라 감동하셨습니다.
나아가 감동하시길 “하나님께서 사랑이심을 너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사랑은 너희를 향한 용서로 나타나셨느니라”
“그러나 또한 알아야 할 것은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은 너희를 향해서도 그러한 마음을 원하신다”이르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일백 데나리온의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주님이 말씀하신 바 있지요.
또한 말씀하시길 “용서는 참으로 이기는 것이요, 마음의 평강을 누리는 길이요, 하나님을 체험하는 길이다”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종교의 성격에 대해 말씀하시며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이다. 용서가 본질이다. 너희의 삶에서 용서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밝히 드러내는 빛의 영적 행위이다”이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언적으로 말씀하시길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잊지 말라. 용서받은 죄인임을 가슴에 늘 기억하며 이웃의 허물을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라”이르셨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한숨 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죄와 비판의 문제지요. 언젠가 한 지체를 만나 상담하니 교회에 다니기 싫다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입술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정죄와 비판은 언제나 죄입니다. 사랑의 권면은 가능하나, 우리 자신 스스로 수많은 허물과 부족함을 안고 살아가는 죄인인 우리에게 정죄와 비판의 자격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죄하고 비판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의 사랑이 오롯이 우리에게 임하여 무엇을 하던지 사랑으로, 어디에 있던지 육이 아닌 영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사랑은 절대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영은 절대로 정죄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허물을 감싸주며 그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여 따뜻한 말, 위로의 말, 권면의 말로 함께 하지 절대로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을 향하여 한점 부끄러움도, 허물도 없었던 주님의 외침을 들으십시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오늘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 타인의 허물을 용서하며, 정죄하고 비판하지 아니하는 참된 기독교의 본질을 따라 아름다운 생을 살아가십시요.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율법의 사슬에 정죄받고 죄인되어 신음하는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려 하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왜 또 다른 비판과 정죄의 수갑으로 허물많고 죄많은 이들이 진정 찾아야 하는 교회, 그 교회로 오는 발길을 막으십니까!
자신을 돌아보면 수치스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의 일만 달란트의 허물은 어둠에 숨긴 채, 타인의 백 데나리온의 허물 앞에서 세치의 혀를 독사처럼 놀리십니까! 정죄하지 마십시요. 타인의 허물보다 정죄하는 그 입술의 죄가 백배나 중함을 기억하십시요.
그러므로 언제나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하십시요. 그것은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요, 본성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써 마땅히 행할 바입니다.
요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