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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원리] 물방울로 바위를 뚫는 법

초록 등불 2012. 3. 22. 16:35

 

  [영의 원리] 물방울로 바위를 뚫는 법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보니 수박을 완전히 관통하는 어떤 글자를 새길 수 있는냐 없느냐를 두고 “할 수 있다, 없다”라는 방송을 하더군요. 정답은 “할 수 있다”였지요.


하지만 기막히게 정교한 조각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도 결코 수박을 깨뜨리지 않고 완전히 속을 관통하는 글자를 새기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방법은 아주 높은 고압의 가느다란 물줄기를 쏘아대는 기계를 이용하여 글자를 새기는 것이었지요. 그 방송을 보면 물줄기도 엄청난 압력을 걸어서 쏘아대면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게 되지요.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그런 무시무시한 압력이 걸린 웬만한 쇳조각도 쪼개고 갈라버리는 그런 물줄기가 아닌, 그냥 한 방울씩 자연스럽게 똑! 똑! 떨어지는 물방울로 바위를 뚫는 원리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산자락에 올라보면 어떤 지형은 물방울이 한 방울씩 아래 바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최근에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라면 아마도 별로 자욱이 생기지 않았겠지만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떨어진 곳이라면 다소 움푹 팬 것을 볼 수 있겠지요.


그것은 떨어지는 물방울의 힘이 아주 약하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떨어지면 그곳에 작게라도 지속적으로 압력과 힘을 가하게 되니 풍화작용이 일어날 것이고, 게다가 계절이 오가면서 얼음이라도 얼고 녹다보면 더욱 풍화작용이 가속되어서 그분이 다소 삭고 낡아서 조금씩 부수어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물방울이 오랫동안 하 세월 떨어지다 보면 반드시 바위 같이 단단한 곳도 풍화작용이 팬 곳이 커져 갈수록 가속화되고 마침내는 쪼개어지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시간이 걸릴 뿐이지요.


오늘은 제가 왜 이런 상식적인 원리를 영의 원리라고 글을 쓸까요?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너무도 명백한 진리이자 영적 세계의 원리인데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들에서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응답이 된다”라고 말씀을 하며, 낙망하지 말고 기도할 것을 권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심삼일이 대부분이며 다소 인내력이 있다 할지라도 대부분 그리 오래 견뎌내지 못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쉽게 응답하시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리 쉽게 응답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이나 문제들이 하루, 혹은 며칠만의 기도만으로 쉽게 응답되고 해결된다면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라 시간을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며, 온 인류와 우주 만물, 그리고 천상과 지하 어둠의 모든 세계를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결코 쉽게 가벼이 움직이시거나 하시지 않으며 하실 수 없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세례요한이 오기까지 제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무려 300 여년 가까이 아무런 선지자도 보내지 않으시고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지요. 이 시기를 영적 암흑기라고 하지요.


우리 인간 편에서 보면 어떻게 당신이 지으신 피조세계에 300여 년 동안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실까, 늘 성정이 급한 우리네 편에 서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그분은 인자가 아니시고 시공간을 초월해 계신 신이십니다. 결코 가볍게 움직이시거나 변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지요.


만약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것들의 근원이요, 중심이요, 모든 것들을 붙들고 계신 그분께서 조석변개하시는 가벼운 분이라면 이 우주만물의 어떻게 되겠는지요? 그분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며, 결코 가벼이 움직이시지 않는 그리고 그러실 수 없는 분이신 것입니다.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우리 편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기도가 쉽게 하루 속히 응답되지 않는 것이 때때로 답답할 수 있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악과 악한 행실도 길이 그리고 오래 참으신다는 것이지요. 모든 것들이 일희일비 반응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의 기도와 선뿐만 아니라 악에도 속히 징벌을 하시겠지요. 그러므로 한편 속히 그리고 빠르게 반응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이 한편 우리 편에서 보면 자비로우심이신 면도 있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므로 우리 사람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모든 일들에 빨리 반응하시지 않으시며 또는 모든 일의 중심을 아시고 보시므로 또한 대충 넘어가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이라는 세월은 연단을 받은 것이지요.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무엇을 이루고자 한다면 물방울로 바위를 뚫는 온전한 인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특별하게 빨리 응답해 주시는 경우들도 있지만 기도의 세계는 결코 쉬운 세계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속히, 속히”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눈으로 그만한 기도의 응답을 받을 그릇과 준비가 되었는지 심중히 살펴보시는 것입니다.


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이 땅에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종파가 달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천, 수만, 수십만의 집회 장소에 모여서 집회를 하는 장면을 보면 모두가 그 시간은 천사요, 거룩한 사람들처럼 손을 들고 환희하며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십중팔구, 아닌 백중구구는 대부분 그 때뿐입니다. 그 장소를 나서자마자 평소의 습관을 따라 악을 행하고, 마음과 입으로 악을 쏟아내며 하나님의 뜻과 영이 아닌 육의 소욕을 좇아서 대부분 살아갑니다.


진정 괴로운 날이나 즐거운 날이나 어떤 시간과 장소이던지 오롯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삶이 이러하던지 저러하던지 기도와 말씀에 묵묵히 성실한 다니엘과 같은 사람은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우리는 늘 대부분 육신의 삶의 안락과 편안함을 추구하고 천국을 소망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궁극적으로 세상의 것들에 매여 울고 웃고 하지만, 성경을 가만히 읽어보면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관심과는 달리 영적 성장과 믿음의 성장입니다. 그리고 그 수준이 가히 우리가 생각하는 일상의 수준과는 너무도 거리가 멉니다.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쳐라 하여도 아무런 말없이 “아멘”, 힘써 복음을 전하며 당신의 사명을 다하였으나 “이제는 십자가에 올라가서 온 인류를 위해서 죽으라”하여도, “아버지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진정한 경외와 순종의 수준까지 성장하고 오르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눈으로 보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령이지만, 영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진정한 영생과 썩지 않는 보화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성숙과 성장을 가져다주는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늘 모범을 보이셨듯 가장 근본적인 힘을 하늘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기도인데, 대부분 이 성실한 기도의 삶에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물방울 같은 내 기도의 힘이라도 바위를 뚫겠다는 그런 의지와 성실함에서 대부분 실패하는 것입니다.


가령 지속적인 기도 특별히 방언기도가 영적인 삶에 큰 동력을 준다고 말을 들으면 잠시 마음이 동하여 시작을 합니다. 그러다가 작심삼일 곧 얼마가지 못하고 주저앉고 맙니다. 기도가 주저앉으니 당연히 환경과 어둠의 세력에 마음이 눌려서 하늘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영과 마음이 어둠으로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점점 무기력해져서 세상에 지고 사단에 지고 자신에게 지면서, 의와 거룩함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죄와 불의와는 가까워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뿐인 삶으로 점점 추락해갑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을 보면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하루 한 시간가량 방언으로 기도하였더니 사단이 와서 귀에 그런 알아듣지도 못하는 무익한 말을 왜 그렇게 기도 하냐. 그래서 저는 하루 두 시간으로 기도 시간을 들렸습니다. 또 다시 사단이 내게 와서 그렇게 속삭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기도 시간을 늘려서 하루 다섯 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서야 지혜와 계시의 유전이 터지고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저의 경우도 하루 두어 시간 이상씩 집요하게 2년을 넘게 기도하였을 때, 일반적으로 성령세례와 함께 주어지는 징표방언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의 능력 방언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환경적 어려움으로 또한 집요하게 하나님께 매달릴 때 다른 차원의 불이 임하고 각종 방언이 열리고 여러 은사의 세계와 환상의 세계가 열리고 영적 존재를 볼 수 있는 영안도 열렸습니다. 그리고 점점 깊은 세계로 이끌어 가고 계시고 가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평생을 나름 기도하며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정말 이 기간 동안은 집요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다른 것은 인내를 잘 하지 못하는데, 기도는 나름 잘 참고 오래합니다. 왠지는 모르지만 기도 하나는 마음먹으면 잘 참고 오래합니다. 그런 집요함이 있었기에 작은 은혜의 바다라도 거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다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저인데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저 집요하게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집요하게 기도한다면 저보다 여러 면에서 나은 분들도 많으실 터 더욱 더 깊은 세계를 경험하게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기도하여 그 구하는 바를 얻으려면 물방울로 바위를 뚫는 듯한 집요함이 있어야 합니다. 유전을 터트리려면 해긴 목사님과 같은 집요함이 있서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리고 쉽게 기도 응답을 하나님께서 해주신다면 누군들 얻지 못하고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중 전심으로 자신을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인 것입니다.


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물론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향하신 소명과 기름부으심이 다르니 성실하게 기도한다고 하여도 동일한 기름 부으심이나 성령의 나타남이 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반드시 어떤 소명과 분야의 기름 부으심이던지 깊은 차원의 능력과 영적 세계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어떤 은사와 능력이나 신비한 체험이 아닌 것은 잘 알고 계실 터,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품을 이루어 세상을 참으로 섬기는 중보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성령을 통하여만 가능한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많은 교회나 목회자님들이나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고야 비로소 사역을 시작하셨고, 제자들과 초대교인들을 향하여서도 너희가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사역을 하지 말라, 성령을 받지 아니하고는 사역자체가 안된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신약 성경은 온통 성령의 역사의 말씀이요, 이야기이지만 그런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많은 분들을 볼 때 한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도덕경 등의 좋은 말씀을 인간적인 이성과 지식을 이용하여 논하는 유교와 같은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성령의 역사와 능력을 부인한 채 이런 경건의 모양만을 가진 곳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기독교는 오직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이끌리어, 성령의 역사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그분과 함께 동역하는 성령의 세계인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만난 예수님도 일상적인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병자에게 손을 얹은 즉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 나가는 일도 일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옥에 갇혔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풀려나가게 하는 역사도 일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맹독의 독사에게 물렸는데 죽기는커녕 멀쩡한 것도 일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서 이런 초자연적 세계와 능력을 누리며 그런 세계를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그런 능력의 세계를 부인하는 자들에게서는 돌아서라고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줍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 글을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오늘의 말씀의 주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기도의 응답이던지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 안에서 누리고 경험하려면, 물방울이 바위를 뚫은 듯한 온전한 인내와 기도와 말씀대로 살아가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너무도 쉽게 지쳐 버리고 포기해 버리고 쉽게 낙망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회심을 위하여 40여년을 기도하였다지요. 유명한 기도의 사람들의 방석은 닳고 달아서 구멍이 났다고 하지요. 다니엘은 나라의 회복과 독립을 위하여 생전에는 보지도 못하였다지만 제 기억상 70년 가까운 세월을 기도했다지요.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물방울로 바위를 뚫는 듯한 온전한 인내의 경건생활이 있다면 더욱 깊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고 누리며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이 말씀에 또 많은 분들이 마음의 도전을 받으시겠지만, 정작 사단에게 그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작은 어려운 일들에 마음의 기쁨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생활의 수고와 염려에 그 마음이 눌리지 아니하고, 진정 말씀을 마음 밭에 품어 열매를 맺는 옥토의 분들을 얼마나 될까요? 저와 여러분 모두 그러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옥토가 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원해 봅니다. 샬롬 !


눅8: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눅8: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눅8: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눅8: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눅8: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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