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상태를 수리적인 표현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무리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리가 잘 아는 수학적, 수리적인 표현으로 영적인 상태를 표현하여 한 영의 원리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수리의 세계, 곧 수학을 배우려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곧 “수”이지요. 수학의 세계이니 “숫자, 수”가 그 바탕과 기본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 수학의 세계는 양의 세계와 음의 세계, 그리고 그 양자의 구분과 한편 모든 숫자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0, 영어로 “Zero"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학에서 실수, 곧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이해 가능하고 셈이 가능한 실수의 세계만 일반적으로 경험하고 이해하고 살아가지만, 물리학을 공부해보면 -i라고 하는 허수의 세계가 존재해야만 하고 그 허수를 사용하지 않고는 수리물리적으로 공식과 결론을 얻어낼 수 없는 기이한 세계도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적 경험과 논리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수를 사용하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 세계도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학이나 물리학은 비록 그 현상을 설명하는 가상의 세계이기는 하지만, 한편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그려내는 한 단편, 그런 면면을 살펴보면 창조된 우주의 신비로움과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을 간접적으로라도 알게 됩니다.
어쨌거나 이해하기 쉬운 실수의 세계로 돌아와서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양의 상태, 음의 상태, 그리고 그것의 구분의 근간이 되는 0의 상태, 곧 Zero Point로 영의 한 원리를 설명을 해 보고자 합니다.
양의 상태는 유여하고 남는 상태입니다. 반대로 음의 상태는 부족하고 모자라는 상태입니다. 빛으로 표현하면 양의 상태는 빛의 세계요, 음의 상태는 어두움의 상태입니다. Zero Point는 양도 음도 아닌 어쩌면 이 또한 깊이 생각해보면 가상의 무의 세계이지요.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깊은 세계를 논하는 것이 아니니, 쉽게 그냥 양과 음의 구분점이라고만 생각을 해 주십시요.
이 글을 쓰려고 기도하는 동안 성령께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반짝이는 예를 주셨는데, 그것은 전구의 원리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5: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빛을 발하려면 적어도 영의 에너지적 측면에서 Zero Point는 넘어서서 양의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조금이라도 영적 양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작은 전구가 불을 밝히듯 세상의 작은 빛이라도 될 수 있습니다.
양의 에너지가 많다면 많은 빛을 발할 것이고 적다면 조금 발하겠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최소한 0. 곧 Zero Point는 넘어서는 영적 에너지를 누리고 있어야 합니다.
“Zero Point 정도의 영적 에너지야 쉽게 누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이것도 정말 쉽지 않는 영의 상태, 영적 에너지의 상태입니다.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너무도 우리를 둘러싼 어둠의 환경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도무지 영의 에너지를 더해주거나 영적 상태를 올려주는 것은 드물고 대부분 우리에게서 빛과 생명을 뺏어가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우리의 생에 산재하는 무수한 수고의 삶이 그러하고, 타락한 우리의 본성이 그러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사단이 지배하는 삶의 환경이 그러하고, 본질적으로 사단과 그 휘하의 악한 영들도 그러합니다.
숱한 생의 수고로움, 곧 이런저런 염려과 걱정과 아픔과 수고로움은 우리의 마음에서 빛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도 주행성이나 양의 주광성이 아닌 야행성이나 음의 주광성, 곧 주흑성처럼 본성과 본능은 자꾸만 어둠을 좇아가려 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 곧 보고 듣는 대부분의 것들이 어둠에 속한 것들 투성이입니다. 근원적으로 사단과 악한 영들이 집요하게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둘러싼 모든 것들이 어둠의 천지이니 어둠에 속하지 않고 빛의 세계를 누리는 구분점이 Zero Point 상태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Zero Point 상태도 유지하고 못하고 다소의 때로는 깊은 어두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요?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양적인 상태인지, 음적인 상태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양적인 +의 상태라면, 우리의 마음에 빛이 있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감사와 사랑이 흐르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의 마음에 빛이 없는 어둠의 상태라면 우울, 슬픔, 염려, 근심, 슬픔, 죄악의 각종 마음이 자리잡게 됩니다.
양의 에너지의 상태라면 영에 속한 상태로 생명과 평안을 누리지만, 음의 에너지의 상태라면 육에 속한 상태로 사망과 곤고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곤고한 상태나 아니면 때로 사망의 깊은 흑암 속을 살고 있지요.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 속에 작게라도 평안과 기쁨과 사랑과 감사의 생명이 흐르고 있지 않다면,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둠으로 떨어진 것을 알아, 속히 양적인 상태로 올라가야 합니다. Zero Point 상태를 넘어서야 합니다. 반드시 양적인 상태로 속히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음적 상태가 되면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실상 어둠에 속한 것들뿐이기 때문에 점점 더 어둠으로 떨어지고,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욱 가속화 되면서 점점 깊고 깊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떨어지고 떨어지면 점점 영적으로 무기력해지고, 어두움의 일들과 영들에 지배를 당하게 되므로 산 아래로 많이 굴러 떨어진 돌이 정상으로 다시 올라가려면 그만큼 더욱 힘들 듯이, 병증이 악화되면 치료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듯이 점점 영적인 회복이 쉽지 않은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유류상종의 원리”에 의하여 어두움의 세계로 떨어지면 현상계에서나 영계에서나 그 수준의 어두움에 속한 무리들과 일들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일을 획일적으로 말씀 드릴 순 없지만, 일반론으로 자신의 수준에 맞는 영적 상태의 존재들과 일들이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밝은 빛을 발하고 있으면 어두움의 영적 존재들이 다가오려고 해도 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반듯하고 깨끗한 삶을 살고 있으면 나쁜 친구들이 다가오려고 해도 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야행성이 빛을 피하듯 다가오면 스스로 괴롭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논리로 현상계나 영계나 자신의 영적 수준에 맞는 영적 존재들이 다가오고 사람들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착한 학생들은 착한 학생들끼리 어울리고, 불량 학생들은 불량 학생들끼리 어울리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어두움에 속하면 어두움의 영들과 사람들이 다가온다는 것인데, 어두움의 영들이 다가온다는 것은 “사단, 도적이 오는 것은 도둑질 하고 죽이는 것”이 목적이므로 우리의 환경과 삶에도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적 상태, 곧 마음에 평강과 기쁨과 사랑과 생명이 적게라도 흐르는 상태가 아니라면 속히 양적인 상태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모두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모습을 끝없이 추구하여야 하는 바, 태양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끝없이 더 빛의 나라로 올라가려고 날마다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양적 상태로 올라가고 빛의 세계로 올라가면 갈수록 우리의 영혼과 마음은 더욱 더 밝은 빛을 누리게 되고, 더욱 더 빛 된 영적 존재들과 사람들과 우리의 주변에 다가오고 복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 상태를 끌어 올리려면 어떤 일들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죄를 회개하고 다시금 말씀을 읽으며 강력하고 지속적인 기도생활로 성령의 공급하시는 능력을 공급받아 말씀대로 점점 살아가며, 예수님의 이름 곧 권세와 성령의 능력과 예수님의 보혈로 원수사단 마귀를 대적하는 영적 전쟁을 하여 물리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동력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말씀입니다. 마음의 빛은 말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너무도 냉랭하다면 강력한 부르짖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작정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등의 특별한 기도도 도움이 되겠지만, 강력한 부르짖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이는 심각하게 식은 방의 온도를 올리려면 일반적인 불이 아닌 터보엔진격의 강력한 불이 필요한 원리와 같습니다. 영적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강력하게 부르짖는 기도만큼 위력적인 것은 없습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그리하였듯 강력하게 다시금 부르짖으십시요.
방언의 은사가 있는 분이라면 강력하게 방언기도를 가동시키십시요. 방언기도는 영적으로 놀라운 위력이 있습니다. 그 유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릇된 삶을 회개하고 어두움의 근원인 사단과 마음의 어두움을 강력하게 대적하며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십시요. “사단아, 어둠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게서 떠나가라” 강력하게 대적하시며 영적 전쟁을 하십시요.
그리고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어두움의 상태를 극복하기 어렵다면, 영적인 무리들 속으로 뛰어 들어가십시오. 이를 “이를 무리의 법칙”이라고 하지요. 자신의 힘만으로 냉랭하게 식어버린 영적 상태를 양적 상태로 올리기 힘들다면, 뜨겁게 불이 타고 있는 무리 속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장작불이 서로에게 옮겨 가듯이 영적인 에너지도 그렇게 교류가 가능합니다. 이를 “임파테이션”이라고 하지요.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영적인 지도자를 만나서 상담도 하고 기도도 받으십시요. 영적인 집회나 무리 속으로 들어가십시요. 영적인 사람들과 사귀고 만남을 가지십시요. 정말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나 영적인 삶에서나 가까이 하고 사귀는 사람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육신의 건강을 위하여 수시로 건강검진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스스로 늘 영적상태의 진단을 하여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주님을 향한 사랑과 평안과 기쁨과 감사가 있는지, 빛이 있는지. 만약 그러한 것이 없고 원망과 불평, 슬픔과 염려, 죄된 마음과 생각이 자리잡으로 하거나 자리잡고 있다면 속히 기도와 말씀 등으로 양적 빛의 상태로 올라가야 합니다.
즉시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점점 무기력해지고 회복이 어려워집니다.
성경이 말하듯 우리의 모든 능력의 근원은 우리 자신이 아닌 주님이시고, 구체적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슥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성령님은 인격체이시며 또한 창조와 부활의 전능한 능력이십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 속에, 우리 위에, 우리 곁에, 우리를 통하여 임재하시고 운행하실 때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죄악과 사단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거룩하신 그분께서 임재하시도록 운행하시도록 우리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분께서 그분의 뜻대로 역사하시도록 자기 부인, 곧 우리의 자아 곧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 곧 그분이 역사하시고 이끄시는 대로 우리도 힘을 다하여 애써야 합니다.
골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그렇게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운행하시고 흐를 수 있도록 우리 속의 모든 불순물, 저항체를 제거하면 온전한 인격체 되시지만, 능력적인 차원에서 하늘전류라도고 영성가들이 가끔 부르는 성령께서 우리라는 질그릇을 강력하게 흐르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라는 부족한 필라멘트지만 아름답고 강력한 빛을 세상에 비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통하여 강력한 빛과 불이 흐르면 예수님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불이 우리로부터 흘러나와 온 땅으로 번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눅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그리고 그 거룩한 불길의 속에서 우리 자신 또한 이 땅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거룩한 평강과 기쁨과 생명과 능력을 거룩한 불길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수리적인 원리로 영적 상태의 진단과 회복에 대하여 설명해 보았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양적 빛의 상태입니까? 아니면 음적 어두움의 상태입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마음에 주 안에서 평안과 생명과 기쁨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면 빛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근심과 염려와 우울과 두려움과 죄악과 무엇인가에 매여 사로잡힌 것을 느낀다면 이는 어두움의 상태입니다. 그러하다면 속히 영적이고 생명적인 것들을 가까이 하시면서 즉시 회복하고 치료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방치하면 더욱 어두움으로 떨어지게 마련이고, 떨어지는 만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더욱 어두움과 나쁜 환경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다소 깊이 경험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보이는 세계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치열한 영적 전쟁의 결과들입니다.
정말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 애쓰지 아니하면, 정말 기도에 젖고 말씀에 잠기는 삶을 살지 아니하면 대부분 Zero Point 상태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만큼 본성이 타락한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모든 것들이 어두움에 속하여 있으며 우리에게서 늘 빛을 빼앗아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쉐마라고 부르며 매일 읽고 낭독하는 성경말씀의 하나에 속하는 아래 구절처럼, 매일매일 그렇게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 자신과 죄와 사단과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Zero Point 상태를 넘어서고, 점점 더 빛의 나라로 독수리처럼 성령의 바람을 타고 비상하여 올라가며, 점점 더 밝은 빛과 불을 세상에 밝히고 던지며 우리 자신도 거룩한 기쁨과 능력, 그리고 이 땅에 거니나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신11:13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신11:14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신11:15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신11:16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신11: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신11:18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신11: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신11:20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신11:21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의 장구함 같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