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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각론] 방언 통변 실제 훈련

초록 등불 2012. 4. 2. 16:54

  [은사 각록] 방언통변 실제 훈련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문제들로 신앙상담을 하는 가운데 방언 통변이 되지 않아서 답답해 하시고 안타까워 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오늘은 방언 통변에 관하여, 실제적인 훈련에 관하여 말씀을 한 번 기록해 봅니다.


이 글을 통하여 방언 통변의 세계가 열려서 주님과 더 깊은 교통의 세계를 누리시고, 그 교통 안에서 주님의 생명 안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해 봅니다.


방언 통변이란 방언이라는 영적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며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듣는 것인데, 실상 하나님과의 교통, 즉 말씀을 드리고 받음은 이런 은사가 없이도 실상 가능한 것이지요.


예수님은 분명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를 받으셨던지 아니던지 간에 주님의 음성은 우리가 주님의 양이므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선지식과 확신으로부터 접근해야 합니다.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들으려고 해야 들려오는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사람과의 사귐도 그러하듯이 사귐이 깊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듯,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귐과 영적 깊이에 따라서 교통하거나 듣고 말하는 수준과 깊이가 다를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갓난아이도 어머니와 단순한 교통은 태어나면서부터 가능하듯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수준과 깊이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께 말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 수준에서 들려오는 음성들은 일반적으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 것이라” 등등 이런 간단한 음성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하면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무슨 대단한 계시나 환상이나 무슨 특별한 음성을 많이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상적으로 다루시고 말씀하시는 것들은 그런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가령 예배에 충실하지 못하면 “예배에 더욱 충실하여라”, 누군가를 미워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여라” 등의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음성입니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햇살이 비치듯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모든 사람이 듣는 더 낮은 수준의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수준의 음성도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본성 속에 넣어 두신 영의 기능인 양심이나 직관 등을 통한 음성이지요.


가령 우리가 죄를 짓고 나면 두근거리는 가운데 전해오는 양심의 소리나, 영이 본능적인 직관, 곧 직감으로 무엇을 감지하는 것 등도 실상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롬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롬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지만 다른 영의 한 기능인 영교는 일반인들은 그 영이 죽어 있으므로,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으므로 신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어쨌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거나 통변을 위해서는 이렇게 양심을 통하여 들려오는 소리나 직관을 통하여 들려오는 소리도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음성이고, 하나님의 음성이란 특별한 예언자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자신의 삶을 다루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실제적인 방언 통변의 훈련에 대하여 글을 기록하여 봅니다.


방언은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대로 우리의 혼이 아닌 우리의 영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교통하는 것입니다.


행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러므로 실제적으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영이지요. 우리의 영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언의 통변은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의 영 사이에 오가고 있는 기도나 대화의 내용, 즉 교통의 의미를 혼이 파악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우리의 영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일종의 모스부호와도 같은 영적 신호, 곧 방언이 오가는데, 우리가 통변의 세계가 열리면 우리의 혼이 그 신호를 감지하여 그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영이나 마음의 상태가 정결하지 못하면 흐린 물에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듯이, 하늘에 구름과 기상이변이 있으면 전파 신호를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듯이, 그 신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이나 제대로 된 다소 깊이 있는 통변을 위해서는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마음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정결하고 깨끗하지 못하면 통변 등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왜곡되게 들을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은 아심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시기 전에 우리의 마음의 정화작용을 먼저 하시는데, 이러한 과정 중에 나타나는 육체적 현상이 구토나 하품 등으로 일반적으로 나타납니다.


구토나 하품 등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영이 맑아진 것을 다소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하면서도 왠지 기분이 나쁘지 않고 하면 할수록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과 영적 상태가 좋아진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그것은 악한 기운이나 영들이 제거 되는 현상의 일종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오늘은 아주 초기적인 방언 통변, 전혀 방언 통변이 무엇이고 제대로 되지 않는 분들을 위한 실전 훈련의 글이니 그런 내용은 이쯤에서 마름하고 실제적인 내용을 기록해 봅니다.


영이나 혼으로부터 오는 신호를 구별하는 중요한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고 작용의 유무입니다. 우리의 혼이란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혼의 작용에서 우리가 무엇을 결정을 내리거나 하려면 반드시 사고하는, 곧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내가 생각하면서 하는 기도는 영의 기도가 아닌 혼의 기도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사고하면서 스스로 자아내는 설교는 혼의 설교입니다.


영으로부터 오는 것은 이러한 사고과정이 없습니다. 그냥 떠오르거나 들려오거나 생각나거나 느껴집니다. 사고 과정이 없기에 초자연적인 세계로부터 그냥 주어진 것임을 스스로 압니다. 일반 세상에서도 이러한 것을 영감이라고 하지요.


자 그렇다면 이 원리를 잘 숙지하시고 방언 통변의 연습을 들어가 봅니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라는 말씀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지 않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방언과 성령세례까지 받았는데 당연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수준은 높고 낮을지언정, 깊고 얕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무슨 특별한 계시나 그러한 것이 아닌 주로 자신의 삶과 생활을 다루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러므로 대다한 무슨 계시나 특별한 말씀을 기대하지 마십시요. 아주 사소한 일상적인 것들이 대부분 들려옵니다.


두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음성, 곧 방언을 통변하려면 들으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방언의 은사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책을 보면서도 할 수 있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영이 하는 것이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줄거리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혼, 정신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영이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 있지요. 정말 온 집중력이 필요한 어떤 일이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하면서도 방언으로는 기도할 수 있고 훈련되고 깊어지면 아무린 집중력이 요하는 수학문제를 풀면서도 방언기도는 늘상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의 기도는 혼과는 독립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영과 혼은 서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기에, 영은 성령 안에서 방언으로 기도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은 또 따로 묵상기도 형태로 하나님께 방언과는 독립적으로 기도를 드릴 수 있지요. 효율이 두 배인 이중 기도가 가능한 것이지요. 또 영으로나 혼으로나 찬양을 드릴 수도 있지요. 이것과 관련되어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그런데 방언을 통변하려고 하면 들으려고 해야 하는데, 이 때는 방언을 말하는 영의 소리에 내 마음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영과 하나님 사이에 오가는 모스 부호를 포착하여 읽어 내려고 마음을 집중하고 모으고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왼손이 방언기도라면, 오른손인 마음을 완전히 일치시켜서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집중하고 방언을 듣고 또 듣고 가만히 있노라면, 사고과정을 거치지 않은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나 지식이 문득 영감처럼 떠오르거나 전해지게 됩니다.


그것이 방언 통변의 작용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생각이나 느낌이나 떠오르거나 혹은 육이 아닌 영으로 누군가 말을 하듯 전해져 올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의 혼으로 잘 다듬어서 표현을 하면 그것이 곧 통변인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자신의 머리로 사고과정을 거친 것이라면 이는 영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자신이 지어낸 것입니다. 자신의 음성인 것이지요. 그리고 사고 작용이 없이 영에서 오는 것에도 하나님의 음성 사이에 사단의 음성이 끼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에서 오는 모든 것들에는 반드시 영분별이 필요하고 필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던, 통변이던, 예언이던, 환상이던 그 무엇이던지 간에 영분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 사단으로부터는 오는 것, 나로부터 오는 것을 반드시 영분별 하여야 합니다.


때로는 예언이 정확하게 맞고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도 하나님께로부터의 역사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상이나 역사에 초점을 두지 마시고 언제나 말씀 안에서 맑고 정결한 영적 상태를 유지하며 반드시 영분별을 하여야 합니다.


신13: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신13:2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신13: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영분별도 깊이 들어가면 어렵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은 육체적인 현상이던 마음의 느낌이던 밝고 환하고 좋습니다. 반면에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은 어둡고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스스로 영적으로 개발되어져 가야하는 부분이지 이론만으로는 설명이 쉽지 않습니다. 영분별에 관한 글은 이 주제에 관하여 글을 쓸 때 다시 논하겠습니다.


자 대략적으로 방언 통변의 원리를 아주 기초적이고 상세하게 설명을 했는데, 이제 실습을 해 볼까요.


먼저 마음과 영이 정결해져 그 신호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죄를 회개하며 주님의 보혈로 영과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다소 가지십시요. 그냥 기도하지 마시고 영적 감각으로 어느 정도 정화된 느낌이 올 때까지 정결하게 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요. 이 때의 기도도 혼의 기도를 하던지 방언으로 기도하던지 관계없습니다. 다만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면 되겠지요.


다음에는 사단의 음성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늘과 땅, 땅 아래 모든 것들 위에 뛰어난 이름, 곧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사단이 끼어들지 못하게 명령하십시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명령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같은 동일한 권세가 있음을 믿으십시요. 그리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도 다 내려놓으십시요. 혼을 비우십시요. 머리도 비우십시요.


이제 통변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방언기도를 시작하십시요. 그리고 비운 빈 마음, 곧 사고작용을 그친 마음을 그곳에 완전히 일치시키고 들으려고 하십시요. 아무 것도 처음에 들려오지 않더라도 참고 인내하며 계속하여 방언을 하면서 잠잠히 기다리십시요.


방언을 조금 말하고 나면 통변을 해야 하고, 또 방언을 조금 말하고 나면 통변을 해야 한다는 선입관을 버리십시요. 방언의 통변은 영어 등의 외국어를 통역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길고 긴 방언이 단순한 몇 마디로 표현될 수도 있고, 아주 짧은 방언이 무수히 긴 말로 풀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게 방언을 말하며 마음을 집중하고 들으려고 하며 잠잠히 기다리다보면, 자신의 사고과정을 거치지 않은 어떤 생각, 느낌, 지식, 말씀 등이 전해져 오거나 느껴지거나 떠오를 것입니다. 아니면 영으로 누군가가 말을 하듯 무엇인가가 들려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우리의 말로 적절하게 표현해 보십시요.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소의 오류가 있어도 좋으니 틀려도 좋다는 생각으로 그냥 방언을 말하고 작은 느낌이나 생각이 붙잡히면 그것을 우리말로 풀어 설명을 해 보십시요. 그렇게 자꾸만 시도하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를 힘쓰면 방언이 깊어지고 통변의 세계도 점점 열려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통변이 열리면 자신의 말로 풀이하면 통변이요, 누군가를 위해서 방언 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이 말씀하시듯 말로 표현하면 그것이 일반적인 수준의 예언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수준의 예언이 아닌 더 깊은 예언의 세계는 예언의 은사의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권면의 수준의 예언은 방언 통변의 세계가 열리면 주님의 마음과 주님이 말씀하시듯 표현하면 그것이 곧 예언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일이나 영의 일이나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곧 성령께서 열어 주시는 부분이지만, 우리의 연습과 훈련 그리고 경험 속에서 영에 속한 것들도 개발되어져 가고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실제와 훈련을 계속 하시다보면 점점 깊은 통변의 세계가 열려져 가실 것입니다.


신앙상담이나 영성훈련을 하다보면 방언 통변이 되지 않아서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하여 어떻게 하면 방언 통변이 되는지 최대한 쉽게 설명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영의 일은 지식은 어디까지나 지식일 뿐, 실제적으로 기도라는 터널을 통하여 모든 것들이 열려갑니다. 부지런히 기도에 힘쓰셔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져 가시고 또한 영적인 세계도 열려 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 드립니다. 샬롬!


고전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고전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고전14: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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