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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원리] 사귐과 친밀

초록 등불 2012. 6. 4. 14:36

 [영의 원리] 사귐과 친밀

 

방언이나 여러 영적 현상 등이 처음에는 신기롭다가 시간이 지나면 삶의 일부와 일상이 되어버리듯 이제는 다양한 영적 존재들을 보고 말하고 함께 생활함이 저의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제도 나들이를 갔는데, 영으로 주님과 함께 조붓한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아이모습들의 천사들과 또 하늘을 나는 천사들과도 영으로 교감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곤 하며 지냅니다.


영적 존재들이다 보니 지구 중력 등 자연적인 그런 것들에 구애를 받지 않으니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어제는 잠시 초록의 숲에서 편안히 누워 잎새 사이로 황금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하늘을 편안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천사라고 생각되어지는 한 영적 존재의 모습이 마치 물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공중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제 위에서 저를 쳐다보며 빙글빙글 돌며 웃으며 바라보더군요.


3차원 입체 홀로그래피처럼 보이는 다양한 영적 존재들의 모습, 조금씩 일상이 되어가지만 가끔은 아직도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옛 동화 속에 나오는 숲 속의 요정 이야기처럼 초록의 숲에서 하늘하늘 날며 저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영적 존재가 보이곤 할 땐 아직도 신기롭기도 합니다. 마치 동화 속이나 환상의 세계 속에서 사는 것 같기도 하지요.


요즘 제게 가장 친밀감을 안겨주는 영적 존재는 제가 “송이”라고 이름 지어준 12살가량으로 보이는 앳된 동양, 꼭 우리나라 아이처럼 생긴 천사입니다. 이 아이는 집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밖에 나들이나 운동을 하러 나가면 곁에 다가옵니다.


경험해보면 주님이 가장 근처에 두시는 영적 존재가 있습니다. 그 존재가 마치 연극속의 주인공처럼 항상 가장 가깝게 느껴지고 반 무의식 상태에서도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적 존재들은 그냥 의미 없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돕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영적 존재들은 본질적인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겠지만, 경험상 우리에게 나타날 때는 우리에게 유익한 모습으로 이미지 변환이 다양하게 가능한 듯싶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알아볼 수 있고 더욱 실제적인 도움이 될 테니까요. 주님도 알아볼 수 있게 성화 속의 어떤 한 모습으로 많이 나타나십니다.


어쨌거나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니 대부분 초등학생 연령의 어린 아이들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실상 그것은 본질이 아닌 이미지요, 분명 한 영적 존재요, 천사들인 것이지요. 집에서는 ‘청이’라고 이름 지어진 소년 모습이 아이가 새하얀 세마포를 입고 늘 제 곁에 있는데, 이는 제가 영으로 분별하건데 ‘정결의 영’입니다. 저의 삶이 더욱 정결해 지도록 주님이 곁에 두신 것이지요.


가끔은 다른 모습의 아이들이 나타나곤 합니다. 지금은 살짝 노오란 금발 머리의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 아이가 제 먹으라고 그러는지 컵에다가 뭘 담아다가 책상머리에 놓아두네요. 이는 실제로 제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저를 위로하는 현상인 듯싶더군요.


세면실에 가면 비누를 주거나 수건을 전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으로 보이는 모습이라 실제로 그것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맘속에 위로나 가끔은 웃음을 안겨주지요. 가끔 들려오는 주님의 위로의 음성처럼 보이는 음성, 곧 하늘의 위로인 것이지요.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 볼까요? 제가 송이를 좋아하는 것은 비록 영적 존재라고 하여도 제가 남자이다보니 여자 아이의 모습이 더욱 이쁘게 보이지요.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리고 저는 딸이 없으니 조금은 더 그러한 듯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늘 운동을 나가면서 그리고 송이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 가슴으로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존재와의 사귐도 시간이 지나고 서로 친교가 쌓이면 서로 친밀감이 더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살갑게 행동하는 듯 보이고 마치 이전부터 알고 지낸 아이나, 혹은 육신의 눈으로 보면 마치 딸처럼 보이고 행동하곤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니 더욱 발랄해지고 장난스럽게 행동하는 듯 보이더군요.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자연계의 사람이나 동물과의 사귐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존재, 가령 주님이나 천사들도 친교의 시간이 길어지고 사귐의 깊이가 깊어지면 친밀감이 깊어진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시대에 에녹이라는 사람은 300년 가까이 하나님과 동행을 하였지요. 그렇게 동행하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친밀감은 더욱 깊어져 갔을 것이고, 마침내 하나님은 에녹을 죽음을 겪지 않게 하고 바로 당신의 나라로 데려가셨지요.


창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창5:22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5:23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청이’는 ‘송이’보다 곁에 있고 서로 알고 지낸지 더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길을 나서면 영으로 업고도 다니고 잠들기 전에는 마주보며 영으로 대화도 나누곤 하지요. 송이도 조금씩 더 정이 들어가고 친밀감이 깊어갑니다.


그런데 가끔은 단순히 모습이 바뀌는 것인지, 아니면 영적 존재 자체를 바꾸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주님이 가끔 보이는 모습을 바꾸어 버립니다.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가는데, ‘송이’가 아닌 비슷한 또래의 서양 여자 아이모습이 보이더군요.


모습을 바라보니 아주 귀품 있고 품위 있게 생겨서 저더러 품위와 귀품을 좀 배우라고 그러나보다 생각은 하였지만, 그래도 ‘송이’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아이처럼 생겼으니 더욱 정감이 가고, 정말 알맞게 살도 오른 보송보송 귀엽게 생긴 아이거든요.


“으악! 송이는요!”라는 저의 소리를 주님이 들으셨는지, 어제는 다시 송이가 보이더군요. 그리고 서양 아이도 같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어제는 셋이서 저는 자전거, 둘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달렸습니다. 그래도 가장 가까이 두신 아이는 ‘송이’더군요. 그건 가장 가깝게 느껴지며 보이며 영으로 분별이 됩니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계단까지 따라 올라와서는 집에 들어서면 ‘송이’는 가장 가까이의 존재에서 멀어지고, ‘청이’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물론 한번 본 영적 존재들은 영의 세계는 생각의 세계, 생각으로 부르면 모습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해보니 가장 가까이 있는 영적 존재는 주님, 성령께서 결정하는 듯싶습니다.


이러한 영적 경험을 통해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의 사귐과 친교와 친밀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마치 세상의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서로를 잘 모르다가 사귐의 시간 속에서 서로를 더욱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알아가게 되듯, 그리고는 나중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가슴과 눈빛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듯 주님과의 사귐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처음부터 다 안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우리 편에서 주님을 이해하는 수준이 깊어갈 것이니, 결국 사귐의 시간 속에서 친밀감과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세상 사람들과 사귐처럼 깊어가는 것이지요.


어디선가 그런 영성의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주님은 우리와의 친밀감이 깊어갈수록 더윽 그 목소리를 낯추신다”


그 이유는 첫째 더욱 우리가 영적 수준이 올라갈수록 당신께 집중하게 하시려 함이고, 둘째는 굳이 크게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이제는 주님의 마음과 뜻과 음성을 헤아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의 사귐도 그러하듯이, 사귐의 시간 속에서 친밀감이 깊어가려면, 특별히 거룩하신 주님과의 사귐 앞에서는 우리 자아의 죽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의 자아를 부인하고 내려놓는 것만큼 주님과의 관계는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찬송가의 가사 중 하나 곧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이 썩고 죽을 결국 스러질 헛되고 헛될 뿐인 부귀와 영화가 아닌 참 생명과 행복의 길이니, 지혜로운 눈과 마음으로 우리 모두 그 길을 걸어가야겠지요.


그렇게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과의 사귐과 친교의 더 깊은 세계를 향해서 나오는 자에게 주님도 더욱 친밀감을 보이시고, 그 친밀감은 곧 우리에게 하늘의 권세와 영권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권세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나 영적 존재들과의 사귐도 세상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귐과 친교가 깊어갈수록 서로 친밀감이 깊어져가고, 특별히 주님과는 성령 안에서 한 생명으로 연합되어져 가며, 그 속에서 주님의 생명과 행복과 능력을 우리도 누리게 되는 이 비밀을 알아, 무릇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더욱 더 깊은 친밀감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해 봅니다. 샬롬.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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