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거실을 거닐어 오다가 보지 못하여 휴지 두루마기가 발에 걸려서 쓰러졌습니다. 그다지 풀리거나 헝클어진 모습이 아니어서 그냥 두고 지나쳐 오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제게 이르셨습니다. “반드시 세워두어라”
하루는 세면실에 들어가서 변기를 살펴보니 작은 얼룩이 보였습니다. 보기에 흉하여 손으로 가볍게 문질러보니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철 수세미로 세게 문질러 보았지만 지워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 나오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제게 이르셨습니다.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어라”
이러한 것뿐만 아니라 성령님과 조금씩 깊은 사귐의 세계로 들어가니 옷도 함부로 입지 못하게 하며, 말도 사투리도 쓰지 못하게 하며, 모든 일반적인 생활에서의 단정함과 깨끗함을 요청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이러한 내면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면적인 삶에서도 모든 면에서 늘 단정하고 깨끗함을 요청하시는 모습 속에서, 정결법과 관련된 구약의 레위기나 민수기 등을 읽어보면서 그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시내산에 강림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시기 전에 모세를 통하여 요청하시는 것들을 먼저 살펴봅니다.
출19: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출19:15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예비하여 제 삼 일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말라 하니라
여기에는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옷을 빨아 옷가짐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과 남녀가 서로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옷을 빨거나 몸을 씻으라는 구절은 수없이 나오지만 한 구절만 대표적으로 살펴봅니다.
레15:7 유출병 있는 자의 몸에 접촉하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그리고 시내산에서 남녀가 서로 가까이 하지 말라고 이르신 것처럼, 레위기 15장을 보면 남녀가 서로 가까이 하였을 경우, 다음날 저녁까지는 부정할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레15:10-18)
남녀가 가까이 하였을 경우에는 반드시 목욕을 하여 몸을 다시 깨끗하게 할 것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옷을 빨고 몸을 씻으며, 또 하나님께서 한 몸으로 허락하신 부부 사이의 사랑의 행위도 부정하다 하시며 목욕을 하고 다음날 저녁까지를 기다리라 하시는 말씀, 그리고 저의 삶 속의 내면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면적인 모든 것들까지 단정하고 깨끗함을 요청하시는 성령님의 통제 아래서 새로운 영적 사실, 원리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외모를 취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는데, “왜 하나님께서 옷을 빨고 목욕을 하라 하실까요?”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왜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한 몸 이룬 부부의 사랑의 행위마저 부정하다 하시며 정결하게 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셨을까요?
저의 삶 속의 외적인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통제하시는 성령님의 간섭하심과 성경을 읽어가면서 제가 깨달은 원리와 진리는 이것입니다. 그것은 몸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곧 이신치심(以身治心)의 원리였습니다.
쉽게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집이나 방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어지러우면 우리의 마음도 산란하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면 영혼육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의 마음도 다소 널브러져 버립니다. 말을 함부로 사투리던 비어든 하고 다니면 우리의 마음도 역시 그렇게 단정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곧 우리가 몸가짐을 바르게 할 때, 말 가짐을 바르게 할 때 우리의 마음도 단정하게 되고 정돈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부가 사랑을 나누었을 경우라도 몸을 씻고 적당한 시간 정결하게 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은, 사람은 육체를 입은 몸, 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 몸 됨의 아름다운 사랑의 나눔이지만 그 시간 동안에 영에 반하는 육체의 소욕 속에서 우리의 마음속에 육체의 정욕적인 생각이나 마음이 머리나 마음에 깃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냥 단순히 목욕을 하고 다음날 저녁까지 정결하게 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목욕이라는 행위와 기다리는 시간을 통하여, 그렇게 마음속에 깃든 육신의 정욕에 속한 생각과 마음을 씻어내고 다시금 영의 생각으로 거룩하게 하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구약의 율법을 따라 오늘도 지킬 필요는 없지요. 새로운 언약의 시대, 율법의 멍에에서 우리는 자유로워졌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 율법 속에 담겨 흐르는 정신과 뜻은 버려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하나 가르침을 받고 깨닫고 보니, 그리스도인은 내면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면적 것에서도 단정하고 깨끗하여야 합니다.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꾸밀 필요는 없으나 단정하고 깨끗하여야 합니다.
딤전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딤전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딤전2: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그리고 금욕주의는 아니지만 다소 금욕적인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듯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서로 거스르며 다투며 싸우는 것이며, 결코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육체를 입고 있기에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먹기를 탐하여서는 아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육신의 소욕과 정욕과 성정을 다스리기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도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육체를 입고 있기에 본능적인 욕구의 해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탐하여서는 아니됩니다. 성령 안에서 자유하며 자기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고전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본질적으로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중심은 반드시 행동과 외면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공경하고 경외하면 아무런 옷차림으로 예배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경외한다면 예물 하나를 드려도 최상의 것으로 최선을 다해서 드릴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중심은 외면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는 바, 단지 외식하는 외면이 아닌 신령과 진정의 내면이 담긴 아름다운 경건함의 모습이 우리의 삶과 신앙에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몸가짐, 옷가짐, 말가짐, 행동가짐을 반듯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면, 영혼육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마음가짐도 단정하게 되고 고요하게 되는 바, 그런 의미에서도 우리는 외면적인 깨끗함과 단정함의 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이러한 외적인 정결법을 주신 것은 단순히 그러한 행위를 하라는 것이 아닌, 그 행위를 통하여 내면을 다시금 정갈하게 하고 정돈하라고 주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제부터 주님, 곧 성령님과의 깊고도 깊은 임재와 친밀함을 누리시려면, 내면의 정결뿐만 아니라 그 바탕 위에서 외적인 부분도 깨끗함과 단정함을 유지하십시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변기와 같이 더러운 곳에 손이 닿으니 주님은 비누로 깨끗하게 손을 씻기를 원하시더군요. 휴지가 넘어져서 집안이 어지러워지니 정리를 하기 원하시더군요.
제가 이러한 원리 곧 이신치심(以身治心)의 원리를 안 이후로는 늘은 아니지만 가끔은 목욕을 할 때면, 목을 씻을 때는 “주님 목이 뻣뻣한 교만을 제하시고 겸손을 담아 주옵소서”, 가슴을 씻을 때는 “주님, 마음의 더러운 것들과 상처를 씻어 주시고 주님의 마음을 담아 주옵소서”, 배는 인간의 정욕과 탐심의 상징인 바 배를 씻을 때는 “정욕과 욕심을 내려놓게 하옵소서”라고 간간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는 이편과 저편을 모두 살펴야 하는 바,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보다는 본질적으로 중심을 보시지만, 한편 이스라엘 군대가 전쟁을 나갔을 때 육체의 생리적인 현상으로 땅이 더러워지지 않게 땅을 파서 깨끗이 묻으라 말씀하시며, 그러하지 아니하면 너희 중의 진을 떠날 수도 있음을 말씀하심과 같이 외적인 정결함과 깨끗함도 기뻐하십니다.
내면적인 것이든 외면적인 것이든지 하나님은 더럽고 불결하고 추한 것은 싫어하십니다. 단정하고 정결하고 깨끗함을 좋아하십니다. 성령님의 다스림 속에서 저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경험하였습니다.
우리는 간간 세계적인 복음 사역자나 혹은 목회자나 혹은 주님과의 깊은 친밀감을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난히도 하얀 옷을 입고 온통 하얀 옷을 입으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경험해보니 그것은 그냥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외적으로 깨끗함을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그 깨끗함을 상징하는 가장 가까운 색이 하얀색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정결과 거룩과 깨끗함의 나라입니다. 영으로 보이는 영적 존재들은 대부분 언제나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세마포를 입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 거룩하신 속성 때문에 우리가 외적으로던지 내면적으로던지 거룩하고 정결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가슴으로 배웁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내면적이던 외면적인 것이던 정결함과 단정함과 깨끗함을 좋아하시는 하나님, 그 영의 원리를 알아서 외면적인 것들도 단정하고 깨끗하게 하십시요.
그리고 더불어 이제부터 몸과 환경으로부터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이신치심의 원리를 좇아 살아가 보십시요. 더욱 더 마음도 단정하여져 가고 정결해져감을 느끼시는 가운데, 더 깊은 주님, 곧 성령님과의 깊고도 친밀한 임재와 사귐을 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샬롬!
아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아2: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아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빌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