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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의 원리] 구체적 표현의 놀라운 역사

초록 등불 2012. 5. 8. 17:23

  

  [영의 원리] 구체적 표현의 놀라운 역사

 

성령님은 삼위 하나님 중 한 분 하나님이시며 인격체이시지만 한편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단강에서 물세례를 받으시고 그리고 하늘로부터 비둘기 형상으로 임하시는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부으심 가운데 사역을 감당하였듯이 삼위 하나님 중 실제적으로 능력을 행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만물을 지으실 때 실제적으로 그 창조를 말씀대로 행하신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지요. 그래서 성경은 창조의 기사 앞에 “성령께서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지요.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이러한 권능과 능력의 성령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가 영적, 혼적 감각으로도 느낄 수 있지만 또한 육적인 감각으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각에 대한 글이 아니니 이 부분은 간단하게 육적 감각에 대한 현상들만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체이시만 실제적인 어떤 능력과 에너지로써 충만하게 임하면 우리가 육체적으로도 어떤 느낌과 감각을 느끼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불의 뜨거운 느낌,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 몸이나 신체의 일부가 가벼워지는 부양감, 또는 반대로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 환한 빛이 비추어져 오는 듯한 느낌, 때로는 향기가 풍겨오는 듯한 느낌, 한없이 포근한 느낌, 시원한 느낌, 때로는 편안하여 졸리는 듯한 느낌 등 다양하게 느껴집니다.


성령의 임재시에도 어떤 감각을 느끼게 되지만, 악한 영이 역사할 때도 어떤 감각을 느끼게 되는데 가장 기본적인 구분은 성령님의 임재는 기분이 좋고 좋은 느낌이지만, 악한 영이 역사할 때는 기분이 나쁘고 나쁜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알아 두시면 유익하겠지요.


성령님의 임재시 가장 많이 느끼는 느낌은 일반적으로 불과 전류의 느낌입니다. 저의 경우는 지금까지 불과 전류의 느낌, 몸이 가벼워지는 부양감과 반대로 무거워지는 느낌, 그리고 영적인 지각으로 빛과 향기 등의 느낌을 느껴보았는데, 가장 자주 느끼는 느낌이 불과 전류의 느낌입니다.

하지만 시원한 느낌이나 아주 뜨거워서 구르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하는데,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체험과 경험이 목적은 아니지만, 사도바울이 늘 다메섹 사건을 회상하며 용기와 믿음을 새롭게 하였듯, 다양한 영적 경험들은 한편 우리 신앙의 뿌리가 되니 우리 모두 함께 더욱 사모하며 하나님의 나를 침노하면 싶습니다. 하지만 체험과 경험은 수단이나 과정일 뿐 목적은 우리 자신의 변화와 섬김임을 늘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저의 경우는 불의 느낌은 강력하게 기도할 때나 주의 일을 열심히 할 때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임하는 열감의 정도에 따라 덥기도 하고 다소 썰렁하기도 하여 옷을 입었다 벗었다, 선풍기를 켰다 껐다 하곤 합니다. 때로는 조금 불편한 감도 없잖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씀을 기록할 때도 불이 임하는데, 이 때는 타자를 치고 있는 열 손가락 끝이 뜨겁지요. 불이 흘러 나옴을 느끼지요. 지금도 점점 뜨거워집니다.


그런데 전류의 느낌은 다소 특이하게 물론 강력하게 기도할 때도 느끼지만, 이러한 현상은 저의 경우는 주 안에서 쉬거나 안식할 때, 혹은 잠자리에서 막 눈을 떴을 때 강하게 느껴집니다. 주 안에서 안식할 때 흐름은 이해가 되는데 잠을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왜 강하게 그런 느낌이 간간 임하는지는 저도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막 눈을 뜨면 두 팔과 어깨 부위가 저릿저릿 전류가 강하게 흐르는 경우가 간간 있습니다.


전류의 느낌이 강할 때는 실제적으로 전류가 손을 타고 흘러가듯 손에 적절한 표현이 다소 어려운데, 저릿저릿 그리고 절절절 무엇인가가 흘러가는 느낌이 선연합니다. 그리고는 때때로 온 몸이 흔들거립니다. 하지만 열의 감각과 전류의 감각이나 다른 여러 가지 감각의 다름에도 어떤 이유가 있을텐데 아직은 제가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깊은 고찰과 연구가 한편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쨌거나 전류의 느낌은 일반적으로 주 안에서 안식하고 쉴 때나 잠을 막 깬 후에 강하곤 하지만, 불의 느낌은 열정적으로 기도할 때나 주의 일을 할 때 강한데, 잠을 막 깨어난 그런 상태에서는 일반적으로 불의 느낌은 처음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잠을 깨어서 주님을 생각하면서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야 조금씩 불의 감각이 다가옵니다.


어느 하루도 그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다지 성령님의 임재도 느껴지지 않고 몸에 불의 느낌도 없고 그냥 평범하였습니다.


그렇게 일어나서 세면실에 가서 몸을 씻으면 그냥 간단하게 “성령이여! 불로 임하소서”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불이 확! 임하더군요. 물론 때때로 성령님의 임재를 기도하면 불의 감각 등으로 임하지만, 순간적으로 강한 불이 확 임한 경험은 그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말, 그리고 표현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성령이여! 불로 임하소서”라고 기도하니 정말 불로 임하였습니다.


그 후 기도하는 가운데서도 이러한 육적인 감각을 느껴보고 싶어서, “성령이여, 불로 임하소서”라고 기도하면 불의 느낌으로 임하시고, “성령이여, 전류의 느낌으로 흐르소서”라고 기도하면 그렇게 임하시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한 경험 가운데, 말의 구체적인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 또한 말로 표현되니 기도의 구체적인 표현이 또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방언에 대하여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전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고전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이 성경 구절을 제 나름 풀어 설명 드리면 이와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통역을 되기를 기도하라. 만약 통역이 되면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 뜻과 의미를 동시에 혼도 동시에 알아듣게 되니 괜찮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아니한 경우 방언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영은 기도하거니와 그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무슨 의미인지 모르니 마음의 열매는 없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 곧 구성으로도 기도하고, 방언으로 찬양도 하고, 또 구성으로도 찬양하라”


실제적으로 방언 통변이 되면, 많은 유익함이 있습니다. 지금 자신의 영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기도하는지를 알게 되니 자신의 영적 상태와 영적 필요함이 무엇인지, 혹은 영의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주시려고 하시는 지 등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가령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경우 하나님께서 지금 죄를 용서하여 주셨는지, 나름 상당한 정확도로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영이 회개의 간구를 드리다가 마음에 임하는 평강과 용서해 주심의 감각 속에서, 기도가 바뀌어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를 받으신 분은 꾸준히 방언 통변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한 노력하십시요.


하지만 제가 경험해 보면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통변이 되어 그 뜻과 의미를 알아듣는다고 하여도, 우리의 혼의 언어인 말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구성기도 또한 반드시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영의 방언 기도는 성령의 주관 하에 있기 때문에 나의 마음과 생각대로 간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나의 개인적인 마음과 뜻을 아뢰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말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말을 하면서 우리의 귀가 듣고 마음이 들으면서 마음의 열매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맺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이란 묘하여 말을 실제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영에 어떤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굳이 기도가 아니어도, 가령 “나는 누구가 좋아”라고 매일 반복하면 정말로 그 사람이 좋아져 버립니다. 실제입니다. 경험해 보십시요. 그냥 말이 이러할진대 기도하면서 구체적으로 표현할 때의 위력은 이보다 훨씬 강합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말의 표현으로 인한, 곧 마음의 기도를 통한 마음의 열매를 저는 경험으로 분명하고 선연하게 알기에, 마음에 어떤 열매가 필요할 때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반복하여 기도합니다.


저 역시 자아 중심의 사람이다 보니, 기도하지 않거나 하면 금세 사람의 타락한 본성을 따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 되어버림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매일 그러한 본성을 깨뜨리는 마음의 구성기도를 아주 구체적으로 합니다. 여러 면에서 부족하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제가 기도할 때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올려 드리는 기도는 특별히 목회자로서의 필요한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주님, 사랑하게 하소서. 겸손하게 하소서. 섬기게 하소서. 사람들을 품게 하소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게 하소서. 종의 마음을 주옵소서” 등을 매일 기도합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매일 반복하여 기도하다보면 성정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 하루는 나름 기도한대로 사랑과 겸손과 섬김의 삶이 성령 안에서 견지됨을 보게 됩니다.


저는 방언기도의 위력을 이론을 떠나 실제적으로 경험한 사람으로써 영성훈련 집회시에 방언기도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합니다. 그리고 방언 기도를 참 많이 드려려고 저 역시 애를 씁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에는 반드시 마음의 열매를 위한 이러한 마음의 구체적인 표현의 구성기도도 있어야 합니다.


가령 마음에 누군가가 밉다면, “주님,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해 보십시요. 정말 그 마음이 옵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기도하면 마음의 열매가 실제적으로 명확하게 맺힙니다. 다만 오늘의 만나는 오늘의 만나일 뿐, 내일의 열매를 위해서는 또 다시 내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그리고 쉬지 말고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말의 구체적인 표현의 중요성, 곧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말하는 대로 마음의 열매가 실제적으로 맺히는 이러한 영의 원리를 알아, 구체적인 표현을 통한 기도로 마음의 열매를 가득 누리며 주 안에서 마음의 천국을 누리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시길 기도해 봅니다. “오! 성령이여, 언제나 우리 마음에 충만히 임하셔서 부족한 우리를 생명과 의와 진리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아멘! 할레루야!


고전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고전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출처: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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